소설리스트

The Boss-159화 (159/200)
  • <-- Ninetail Queen -->

    ***

    2차전의 시작은 따귀였다.

    분노한 여름달의 반격은 매서웠다. 하필 이전에 2대 맞았던 왼쪽 볼이 또 2배를 맞으며 볼거리가 걸린 것처럼 변했다.

    썅! 섹스 배틀이라며! 이건 폭력이라고, 폭력!

    아무리 속으로 울부짖어 봐야 무슨 소용이랴.

    잔뜩 부풀어 오른 뺨으로 인해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면 너무 아팠다. 나는 굳이 고통을 살 생각이 없었다.

    그 대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봉인이 풀인 폭군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마!

    고통만 클 뿐 여름달의 싸다귀 3연타는 별로 강하지 않았다. 물론 아프긴 드럽게 아팠다. 단지 1천5백 안팎의 피해가 가소로울 뿐.

    확실히 상황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는지 여름달의 얼굴에도 얼핏 긴장이 어린 것 같았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개처럼 엎드려있는 여름달의 허여멀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쫘아악……!

    "으윽! 네놈! 날 희롱할 속셈이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니 꼴리는 대로 하세요."

    "잘근 잘근 씹어 먹……. 흐윽! 억!"

    까고 있네.

    괜히 입씨름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전기톱으로 여름달의 음부를 파고들었다. 여전히 차갑고 딱딱했다. 강하게 허리를 튕길 때마다 전기톱이 쇠를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나도 아프다. 너도 아프겠지."

    개소리에는 개소리가 답인 모양이었다.

    여름달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더욱 고통을 즐기. 아니, 참으며 박았다. 그리고 또 박았다. 그냥 미친 듯이 박았다.

    끼릭, 끽! 끼리릭!

    단 1%의 쾌락도 없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건 섹스가 아니니까. 지금 나는 섹스 배틀을 하고 있었다. 배틀에 중심을 두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찰싹! 찰싹!

    허리를 튕겨 전기톱으로 여름달의 차가운 동굴을 헤집으면서도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저 정신 나간 몽마의 볼기짝을 때릴지 몰랐다. 물론 공격 판정을 받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 놓고 손을 휘두를 수 있었다.

    속맛은 버리고, 손맛만 챙겼다.

    이것만해도 충분히 남는 장사라 생각했다.

    이윽고 내 공격이 모두 끝났다.

    재수 좋게 10번 모두 치명타가 터지며 89,451의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화상 효과에서 벗어난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데미지였다.

    40%가 넘는 피해를 받은 여름달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호흡은 거칠 대로 거칠어져 있었다. 기껏 새하얗게 돌려놓았던 피부도 울긋불긋 하게 돌아간 지 오래였다.

    특히 날 기쁘게 하는 것은 여름달의 전신에 맺힌 땀방울이었다.

    "후욱, 후욱!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인간이여!"

    표독한 얼굴로 내게 으름장을 놓는 여름달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더 이상 그녀가 두렵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으로 나는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물론 이유가 있었다.

    뚝, 스르륵…….

    여름달의 속곳의 얇은 줄 부분이 끊어지더니 이내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 몇 가지 사실이 주르륵 흘러 들어왔다.

    왕족은 다르구나. 효과 중첩이 돼야 탈의가 된다? 그리고 파괴는 더 어렵고.

    딱히 의문을 표하지는 않았다. 그냥 납득해 버렸다. 내가 받아들이고 말고 할 것 없이 보스가 정한 규칙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어쨌든 내게는 한층 더 좋아진 상황임에 분명했다. 다음 회전부터 내 전력을 다 쏟아 부울 수 있게 됐으니까. 잘하면 원킬을 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아니다. 괜히 욕심 부리다 망할라.

    물론 자만심을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다시 마음을 다잡을 때 여름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게 보였다. 나를 마주보던 그녀가 이내 오른손을 뻗어 내 가슴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읊조렸다.

    "묶어라."

    동시에 여름달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서 푸른 기운을 뿌리는 빛줄기가 쏟아졌다. 기다란 국수 가락 같은 푸른 빛줄기는 이내 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그녀의 공격을 받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속으로 불만을 토했지만 속박의 밧줄은 매몰차게 내 전신을 휘감았다. 내 목에서 서너 바퀴 돈 밧줄이 이내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겨드랑이를 지나 어깨로 올라간 녀석은 다시 가슴과 허리를 휘감으며 내려갔다. 푸른 밧줄은 내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휘감은 후에야 움직임을 멈췄다.

    순식간에 거미줄에 잡힌 먹잇감처럼 변했다.

    귀갑 묶기도 아니고. 썩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던 기술에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보스의 규칙은 서로 한 번씩 공방을 주고받는 것이니까.

    반쯤 체념한 채로 애꿎은 어금니만 깨물고 있을 때였다.

    스르륵, 파스스.

    "이럴 리가!"

    "……어?"

    내 온몸을 구석구석 휘감았던 푸른 줄기가 사라졌다. 얼음이 깨친 것처럼 푸른 입자를 뿌리면서.

    순간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했다. 그것도 잠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속박 저항이 확률 싸움에서 이긴 것 같았다.

    나 속박 저항이 50%였지.

    절반의 싸움에서 승리하자 자신감으로 가슴이 충만했다. 나와 달리 여름달은 처음으로 어두운 기색이었다.

    여름달의 얼굴에 어린 패배의 기색을 본 순간.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엎드려 이년아!"

    "악!"

    허망한 눈빛을 뿌리고 있던 여름달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졌다. 그녀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공격권은 내개 넘어와 있었다.

    나는 거칠게 손목을 잡고 여름달을 엎드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박았다. 그냥 박았다. 이젠 고통도 익숙했다.

    퍼억! 촤르륵! 퍼억, 퍽!

    "크윽! 네 놈! 내가 복수하고 말 것이다!"

    여름달도 이미 전투를 포기한 듯 다음을 다짐했다.

    그것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방금 내 몸을 구속하려던 공격이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필살기였나?

    의문도 잠시 나는 더욱 열심히 허리를 튕겼다. 차갑기만 했던 여름달의 동굴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봤자 미지근한 국물 같았지만.

    속박 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나는 온힘을 다해 전기톱으로 여름달의 음부를 찔렀다.

    "……내가 졌다."

    신음도 교성도 없었다.

    여름달은 끝까지 이상했다.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패배를 자인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쟤 뭐냐.

    안쓰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조금 찝찝했을 뿐이었다. 물론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여름달'에게 19,748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여름달'이 절정에 올랐습니다.]

    나는 이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어진 전리품 소식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번에도 대박이었다.

    의외의 소득에 기뻐하는 순간 설원이 사라졌다.

    "……아!"

    뒤늦게 꿈에서 깼다는 걸 깨달은 나는 나지막이 탄성을 흘렸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강한 욕망이 만든 뜻밖의 전리품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바로 전리품을 확인할 수 없었다.

    "……선호야!"

    나와 함께 여름달의 권역에 진입했던 선호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가슴이 차갑게 굳었다.

    ***

    결론부터 말하면 선호는 무사했다.

    나는 선호를 차에 태우고 그 옆에 나란히 쓰러져 있던 리아도 차에 태웠다. 정신이 없는 와중 헛소리를 하는 미야프는 냉정하게 소환 해제했다. 지금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대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달린 나는 금세 지역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미 병원에 수많은 사람들이 실려 왔다는 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릉 아산 병원에 그나마 괜찮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8번 국도를 달렸다.

    그렇게 허겁지겁 병원에 도착한 나는 선호를 안아들고 응급실로 쳐들어갔다. 리아를 뒷좌석에 처박아 놓은 채로.

    다행히 미리 소식을 듣고 대기하고 있던 의사가 과로로 인한 실신이라 말해주며 별 일 없을 거라 했다. 그제야 안심한 나는 뒤늦게 리아가 떠올랐다. 뒤늦게 진찰을 받았지만 그녀도 선호와 같은 증상이었다.

    걱정이 되어 2인실에 입원을 하기는 했지만, 그 뒤로 가벼운 의사들의 얼굴을 보니 큰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큰일은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태백산에 집결했던 참가자들이 모두 실신했다는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아, 장기전.

    그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아리엘 때와 달리 여름달은 의외로 전투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꿈속에서 전투는 현실의 시간이 느리게 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 미세한 차이가 수많은 참가자들을 추풍낙엽처럼 만들었고, 그 바람에 날린 낙엽 중에는 선호와 리아도 있었던 것이다.

    "후……. 식겁했네. 망할 새끼."

    식겁한 건 한 가지가 아니었다. 그나마 나는 바로 병원으로 향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도 응급실에서 난리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뒤늦게 구급차에 실려 이송된 참가자들로 응급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영동 지방의 병원이 거의 마비됐다는 뉴스를 끝으로 나는 TV를 껐다. 더 이상 봤다가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가뜩이나 놀란 가슴은 무리하는 게 아니었다.

    식사도 거른 채 쌍으로 드러누운 선호와 리아를 돌본지 반나절이 지났다.

    드디어 선호가 신음을 흘리며 의식을 되찾았다.

    나는 그 즉시 간호사에게 콜을 넣었고, 이내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에 나타났다.

    잠시 후 내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선호와 리아를 진찰한 의사는 바로 퇴원해도 될 정도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물론 바로 퇴원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혹시 모르니 경과를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고, 의사도 그런 편이 더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 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서야 나는 선호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뭐, 썩 제대로 됐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 새꺄!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에이, 형. 왜 그래? 오글거리게. 악!"

    "아오! 이걸 그냥 죽여?"

    사태 파악을 못한 채 해맑은 선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내가 저런 놈 때문에 가슴을 졸였다니.

    괜히 억울했다.

    그 모습에 리아가 키득키득 거리가 내 눈치를 받고 슬그머니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뒤늦게 눈치를 살린 선호를 노려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뭐가 어떻게 돼. 형이 농땡……악! 알았어! 그만 좀 때려!"

    "제대로 말해라. 뒤진다. 진짜."

    "아, 진짜. 나도 이제 서른인데."

    서른 같은 소리하네. 넌 열세 살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리아가 있기에 차마 뒷말을 삼켰지만, 그렇다고 눈빛까지 사그라진 건 아니었다.

    움찔한 선호가 얼른 어떻게 된 상황인지 내게 들려주었다.

    "그냥 리아 씨랑 같이 파티 맺고 들이 댔지. 그런데 레이드 몹은 다 그래? 엄청나던데?"

    "뭐가?"

    "뭐긴 뭐야. 데미지지. 나 한방에 뻗었어. 리아씨도 한 방에 뻗었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

    난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선호의 뒤통수를 다시 한 번 후려갈겼다. 음. 한 뇌세포 1억 마리쯤 줄었겠네.

    "이게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나. 장난해? 무슨 광역 공격에 쳐 맞은 것도 아니고. 둘이 동시에 어떻게 죽어?"

    "……진짜에요. 처음 이상한 얼음 공격에 다 맛이 갔어요."

    언제 다시 자리에 앉았는지 리아가 날 빤히 바라보며 진지하게 끼어들었다.

    "형 진짜라니까? 갑자기 손으로 내……. 그러니까……."

    선호가 재빨리 리아와 바통을 터치했지만, 조금 민망했는지 말끝을 자꾸 흐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선호가 차마 말하지 못한 단어를 끄집어냈다.

    "니 꼬추를 잡디?"

    "어?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갑자기 한 손으로 내 거길 잡더니, 다른 한 손으로 리아 씨……. 그러니까……."

    또 다시 민망해하는 선호를 대신하여 이번에는 리아가 작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 성기요. 내 성기도 동시에 쑤시더라고요. 손가락으로. 그리고 얼어 죽었어요."

    "미치겠네. 그럼 진짜 광역 공격이었단 말이야?"

    "음. 그런 거 같아요. 방금 메일을 확인해 봤는데. 난리가 난 거 같아요."

    리아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며 어색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동안 함께 지낸 덕분에 리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마 지금 인터넷 지분의 최대 주주는 바로 나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곧 내게 쏟아지는 관심으로 이어질 테고.

    그러면 기자들이 달라붙겠지. 주변 CCTV를 뒤질 테고.

    결국 태백산에서 대량의 실신 상태가 벌어졌을 때 나 혼자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상황에서 내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잠수 타자."

    나는 물러설 때를 아는 남자였다.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선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공부는 잘하던 녀석이 왜 저리 눈치가 없는지. 이상한 쪽으로 모라란 면모를 보이는 선호의 모습에 괜히 한숨이 튀어 나왔다.

    에효. 저거 언제 사람 구실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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