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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12화 (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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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의 실수가 없도록 끊임없이 본래 목적을 되뇌며 백문을 지나쳤을 때였다.

    [전체 보상 '빨간 물약 5개'를 획득합니다.]

    [전체 보상 '패자의 날개 1개'를 획득합니다.]

    ……뭐지?

    난데없는 보스의 통보였다.

    내가 흥분한 사이 임무 생성을 지나쳤나 싶어 임무창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존재하는 임무는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받은 퀘가 없는데 웬 보상?"

    의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전방을 바라보는 순간 또 하나의 의문이 피어났다. 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건 또 뭔데? 웬 계단이야? 여길 올라가라고?"

    살짝 불평을 해 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어둠에 반쯤 파묻혀 있는 계단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다시 잠들어버린 엑스칼리버를 위해서 이겨내야 했다.

    "까짓것 한 번 해보자고. 누가 이기나. 어차피 나는, 나는……. 더 잃을 것도 없는 놈이야!"

    호기롭게 소리쳤지만 내 두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코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신중할 뿐이었다.

    난 겁쟁이가 아니니까.

    그 증거로 나는 대범하게 첫 번째 계단에 엉덩이를 붙였다. 계단을 등지고 앉은 나는 상태부터 점검했다. 초보 운전 티내는 것처럼 자꾸 뭐 하나씩 빼먹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자위할 수 있었지만, 내 콧잔등에 주름이 생기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동정 티내는 것도 아니고. 씁."

    전투 흐름을 딱 끊어주는 계단과 안내 덕분에 조급함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계단이 나왔다면 중간에 쉬는 공간이 분명했다. 내 생각에 계단을 오르고 2층으로 오르면 새로운 몽마와 싸우는 방이 나올 것 같았다.

    잠시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된 김에 나는 하나씩 점검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능력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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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격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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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력 : 25 + 35

    + 지력 : 0 + 10

    + 체력 : 0 + 10

    + 속도 : 0 + 10

    + 정확 : 0 + 10

    + 행운 : 0 + 10

    + 잔여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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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됐든 효과를 보려면 어느 정도 노력을 해야 했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몸의 변화가 뚜렷해졌고, 공부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자고로 스탯은 모일수록 강해지니까. 일단 힘에 몰빵……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올려야지. 한 50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처음 단순하게 근력을 올린 탓에 외통수에 걸린 것과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능력은 근력이었다. 괜히 다른 곳에 분산되면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었다.

    "속도를 올리면 일정 구간부터 공격 회수가 높아진다는데……. 언제 될 줄 알고?"

    비록 일반 삽입 공격에 한해서였지만 속도를 통해 그 횟수를 높일 수 있었다. 아주 매력적인 효과였지만, 딱 봐도 초반에 바랄 건 아니었다.

    한 번 박을 때 두 번 박는 건 좋은데. 힘 1짜리로 두 번 박느니, 그냥 힘 10짜리로 한 번 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얼추 데미지 올라가는 것도 근력 보너스가 높아 보이는데.

    아쉬움을 금세 털어 버린 나는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아니, 열어 보려고 했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바로 업적이었다.

    "업적창!"

    뿅! 하고 내 눈앞에 나타난 업적창은 현재 3개의 업적이 활성화된 상태였다.

    여신 겁탈, 최초의 동정, 회심의 일격.

    "아. 방식이 좀 달랐지. 인벤토……리? 어?"

    마음이 급했는지 나도 모르게 정식 명칭인 보관창이 아닌 익숙한 단어를 내뱉었다. 보스는 똑똑했다. 내가 인식하는 주체를 가지고 결정하는 듯 싶었다.

    하나씩 알아가는 것에 대한 기쁨을 즐기며 나는 작은 창에서 만져달라고 애쓰고 있는 미활성 증표를 손으로 눌렀다. 확인절차 따위는 없었다. 이 시대의 인공지능처럼 보스도 학습하는 듯 했다.

    꽤 편하네.

    역심의 일격이라는 묘한 이름의 업적을 활성화시킨 뒤 나는 미련 없이 업적창을 닫았다.

    "그냥 오토 활성 되면 좋겠는데. 아니지. 아니야. 증표를 아이템으로 따로 주는데 이유가 있지 싶은데? 그러고 보니……."

    닫아버린 업적창을 다시 열어 보았다. 나는 활성화 중인 업적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손을 가져갔다. 반짝이고 있는 업적에 내 손가락이 닿는 순간.

    ['역심의 일격 증표'를 탈착하시겠습니까?]

    "응."

    [업적 '역심의 일격'을 비활성화합니다.]

    [치명 증폭이 25 감소합니다.]

    ['역심의 일격 증표'를 획득합니다.]

    "오, 이거 신기한데?"

    업적창에서 떨어져 나온 증표는 다시 내 보관창으로 돌아가 있었다. 업적과 칭호의 차별성이 확실히 느껴졌다. 칭호보다 업적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돌아온 증표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업적 정보와 다른 게 없었다. 그것을 통해 나는 확신했다.

    이거 거래되겠구나.

    업적에 대한 소유욕이 들었지만 이내 실소와 함께 버려야했다.

    "파밍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그래도 나한테 쓸모없는 거 나와도 속 쓰리진 않겠네. 귀찮겠지만 바꿀 수 있으니."

    나름 긍정적인 생각을 끝으로 나는 다시 업적창을 닫았다. 물론 다시 활성화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아무리 건망증이 심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상태창이나 확인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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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 560/560

    + 정력 : 560/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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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153

    + 마법력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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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력 : 18

    + 항마력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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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중률 : 130

    + 회피율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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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도 : 28

    + 치명 증폭 : 250%

    + 치명 저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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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유!"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근력 5를 올린 결과 타격력이 24나 늘어났다. 물론 버프 빨이긴 했지만 확실히 눈에 띠는 결과라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일을 끝낸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인벤토리!"

    게임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아이템이었다.

    보관창을 소환한 나는 처음 보는 물품들을 차례로 누르며 정보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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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물약]

    + 활력 100 회복.

    + 일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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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자의 날개]

    + 전투 중 도주.

    + 특수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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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일반 상점을 구경하며 보았던 빨간 물약은 슬쩍 훑어보고 넘어갔다. 대신 패자의 날개는 내 이목을 끌어 당겼다. 그것은 동화 한 개를 내는 게 꺼려서 나중을 기약했던 특수 상점의 물건이었다.

    "코인 상점에서 이런 걸 파나 보네. 괜찮은데?"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 중 패색이 짙어졌을 때 사용하라고 만든 것 같았다. 이와 비슷한 물품이 있다면 위험을 크게 줄여줄 듯 싶었다.

    물론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현재 보유 중인 동화가 3개에 불과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이것을 사용하고 나서 구매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두 개 있나, 한 개 있나. 어차피 전투에서 탈출하는 건 한 번뿐이니까. 필요하다 싶으면 사면되지. 그보다……."

    이제 기술을 봐야 할 시점이었다. 분명 2레벨이 되면 확인하려고 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뒤로 미루면 까먹는 법이었다. 덕분에 4레벨을 달성하고 나서야 확인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뭐, 궁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살짝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의 박자에 맞춰 기술창을 열었다.

    팟!

    우리 기술창이 달라졌다.

    성투 입문만 달랑 있던 시절의 기술창이 아니었다.

    "하나, 둘, 셋, 넷. 어이쿠, 많기도 하네."

    기술의 숫자를 하나씩 헤아려 보았다.

    "마흔 여섯. 허, 많기도 하네."

    총 46개의 기술이 새로 나타났다. 한참동안 새로 나타난 기술을 탐독해 보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얼굴에서 영혼이 빠져나갔다.

    "미친 거 아냐? 성기 수련? 염력 촉수? 꼭지 폭격? 이거 진짜 제정신인가?"

    지금 이 기현상을 겪으며 나는 그동안 믿지 않았던 신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의 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는 현상은 신의 장난처럼 느껴졌으니까. 어찌 보면 보스의 등장이야 말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신은 개뿔.

    도저히 신의 작명이라 여길 수 없는 기술명이었다.

    특히 염력 촉수가 골 때렸다. 이 기술을 마스터하면 더 강력한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일종의 스킬트리 방식을 채용하는 보스였다.

    "염력 촉수를 마스터하면, 뭐? 촉수 폭풍? 촉수로 3구멍을 연타……에라이."

    아무리 나라도 이정도 변태는 아니다. 아 정말 이러다 미치는 거 아닐까? 진짜 디테가 또라이라고 한 이유가 있었네.

    상상조차 못했던 다양한 기술명이었지만, 기술 설명을 슬쩍 읽어보니 언뜻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충 어떤 방식인지 알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콜드 볼트 같은 것은 얼음 삽입으로 변형하는 식이었다.

    거참, 쓸데없이 친절하네.

    나도 남자인지라 기술 정보를 읽다보니 슬슬 적응이 됐다. 뭐, 바다 건너 섬나라 사람들도 이정도로 똘기 충만하지 않겠나 싶었다. 이미 섹스 배틀에 동참하는 순간 정해진 운명과 다름없었다.

    보스의 기술은 의외로 단순했다.

    스킬 트리와 스킬 레벨.

    이것이 전부였다. 정해진 선행 기술이 존재했고, 각 기술마다 올릴 수 있는 단계가 있었다. 간혹 1단계가 끝인 기술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술은 3단까지 배울 수 있었다.

    "최대 기술 레벨은 3이라 보면 되겠네. 은근히 스킬 포인트 관리가 필요하겠는데?"

    기술의 종류는 많았지만 기술치는 한정적이었다. 음격이 하나 오를 때 기술치 하나 주는 식이라 태생적으로 기술치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 10개를 최대 레벨까지 올리는데 30개가 필요하니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긍정적인 성격이 또 다시 빛을 발하며 나는 점점 내게 필요한 기술을 찾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불꽃 삽입이나, 전기 삽입 같은 기술도 탐이 났지만 일단 넘어갔다. 설명을 보면 지력 기반 기술임을 알 수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근력 기반 기술이었다.

    "광전사가 뭔지 보여주마."

    갑자기 쓸데없는 의지가 무럭무럭 불타올랐다.

    모든 기술을 차근차근 재차 분석하니 몇 가지 기술이 내게 어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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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 수련]

    + 희망을 가지게나.

    + 성기를 통한 공격력 1% 상승.

    + 범용 입문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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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 삽입]

    + 넣는다고 했지, 한 번이라고는 안했다.

    + 삽입 공격 시 10% 확률로 추가 삽입.

    + 범용 입문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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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 쌍란이나, 구강 삽입, 황금 성기도 괜찮아 보이지만……. 그래도 패시브 스킬이 더 낫지 싶은데. 특히 도둑 삽입은 필수 같은데?"

    쪼렙이 그렇듯 사실 기술에 큰 영향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름 강력한 일격을 할 수 있는 제한 기술. 즉, 액티브 스킬에도 관심이 갔지만 그보다 패시브 스킬에 더 마음이 끌렸다. 그 중 추가 삽입이 나에게 딱 맞는 기술 같았다.

    "성기 수련은 일단 킵 해 놓자. 필수 스킬 같지만 지금은 별 효과 없을 거 같으니까."

    결정을 내린 나는 거침없이 도둑 삽입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보스의 물음에 담담히 답하자 그 즉시 기술 습득이 이루어졌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3단계까지 도둑 삽입을 올려 버렸다.

    덕분에 4개였던 기술치가 1개밖에 남지 않았다. 아깝지 않았다. 원래 아끼다 똥 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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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 삽입]

    + 숙련도 : 1성

    + 삽입 공격 시 30% 확률로 추가 삽입.

    + 범용 달인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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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호! 30%! 근데 숙련도는 뭐지?"

    범용 기술이 범용 달인 기술로 변한 건 놀랍지 않았다. 1레벨짜리 기술은 입문, 2레벨짜리 기술은 전문, 3레벨짜리 기술은 달인으로 표기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숙련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도움말에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네. 이거 튜토리얼이 아니라 베타 서비스 아냐?

    살짝 보스를 만든 존재에 대한 의심이 싹틔웠다. 어쩔 수 없었다. 이 나라의 게임사에 하도 당하다보니 의심부터 하게 됐다.

    "에이, 하다보면 알겠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나저나 하나 남은 스킬 포인트를 어디다 써야 하나."

    의문도 잠시 나는 남은 기술치의 사용에 대해 고민했다. 처음에는 성기 수련에 눈이 갔지만, 한 가지 기술이 눈에 밟혔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두 기술은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았다.

    성기 수련과 활력 회복.

    공격력을 올리느냐, 아니면 활력을 회복하느냐.

    그 사이에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이걸 고민할 필요가 있나? 물공 1%냐, 피회 1%냐. 그 차인데? 어차피 나중에는 다 배워야하는 거 아냐? 물약 먹는 것도 턴을 소비하는 거던데. 흠."

    게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컨셉이었다. 자유도 높은 게임의 경우 더욱 그러했다. 나도 컨셉을 확실히 잡은 상태였다.

    엑스칼리버의 부활.

    이 목표를 위해서는 결국 엑스칼리버를 최대한 많이 사용해야했다. 근력을 올리면 혹시라도 깨어날까 싶어 올린 것도 없지 않았다. 더욱이 삽입 공격을 하면 할수록 이 녀석의 병이 낫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래, 어차피 지금 공격력은 부족하지 않잖아? 안전하게 가자. 안전하게."

    결론이 나왔다.

    하나 남은 기술치를 소비하여 습득한 기술 정보를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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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력 회복]

    + 지구력을 얻고 싶은가?

    + 매 공방 후 전체 활력의 1% 회복.

    + 범용 입문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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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라치네. 지구력은 개뿔. 1%로 잘도 지구력을 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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