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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41화 (241/307)

제241화

241화

토트윈과 루비다이아가 마지막으로 의논하던 것은 따로 연습이 필요 없는 부분이라 최종 결정이 대기실에서 이루어졌으나, 그렇다고 이에 대한 구상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뭐가 나아? 이거 과해?!”

“이건? 이 정도면 괜찮을까?”

“아, 그건 너무 약한데.”

“나는 못 해.”

그래서 에르제는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멤버들의 모습을 구경했다. 물론 불똥이 가끔씩 튀기는 했다.

“야! 네가 하자고 해 놓고 너는 왜 연습 안 해!”

“……이게 연습이 필요해?”

“허어, 자신이 있으셨구먼? 비주얼 센터다, 뭐 그런 건가?”

“바른대로 말해. 너, 우리가 고통받는 거 보고 싶었지.”

태현우가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압박했고, 민주혁은 눈을 흘겼다. 최근 살갑게 대해 주던 민주혁의 태도를 생각하면……. 음, 심각한 편이었다.

민주혁은 입술을 비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예전에 시상식 때도 이상한 거 들게 하더니,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무슨 계획이요?

하자고 한 건 루비다이아잖아……!

공허 속의 외침도 아니고. 에르제는 슬픈 표정을 지었으나 멤버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결국 태현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 말에 다른 멤버들의 태클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단단히 밉보인 모양이었다.

에르제는 코밑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뱀파이어 로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거지. 이해해라.’

차라리 에이리스와 치고받고 싸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에르제는 소파의 부드러운 부분에 머리를 콕, 하고 박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곧 스태프가 들어와 슬슬 무대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트윈은 각자 하던 것을 멈추고 곧바로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가요제전과 다르게 초반에 무대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수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앉지는 않았지만, 이번 무대가 끝나면 대기실에 잠깐 들렀다가 바로 객석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연습 좀 했어요?”

“…….”

백스테이지에서 다시 만난 루비다이아의 리더가 배시시 웃으며 물어왔으나, 토트윈 멤버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원망 어린 눈빛을 받으며 루비다이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팬들이 엄청 좋아할 텐데, 나중에 고맙다고나 하지 마요.”

“그걸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윤치우가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뭔가 저희 데뷔 때처럼 흑역사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그런 거지.”

“아……! 그 CG.”

“CG 아니고 뮤비 제작사에서 직접 만든 거예요.”

“헉!”

별 얘기는 아니고, 그냥 머리띠 이야기다.

CG 처리를 한 것처럼 귀만 보이도록 만든 머리띠이기는 했으나, 토트윈에게는 여전히 부끄러운 흑역사로 남아 있는 듯했다.

‘나는 별로 상관없지만.’

카테이아 대륙에서는 흔한 모습이라 에르제에게는 그다지 타격이 없긴 했다. 오히려 판타지 캐릭터를 재현한다고 많은 연구를 했구나 하고 감탄했을 뿐.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른 생각에 에르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카테이아 대륙에 가 본 적도 없는 지구의 인간들이 어떻게 카테이아 대륙의 종족들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을까?

뱀파이어처럼 인간들의 기록에 남아 있다면 모를까, 드워프 같은 종족은 딱히 기록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던데.

‘늑대인간이야 무슨 설화처럼 내려오고 있고.’

심지어 용족 같은 경우는 색깔별로 그 생김새까지 구현되어 있었다. 나라별로 등장하는 용이 다른 점도 신기했다.

‘아무리 카테이아 대륙의 종족들이 이 세계로 넘어왔다고 해도, 딱 한 개체밖에 넘어오지 못했을 텐데…….’

에르제처럼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뱀파이어 일족들을 보낸 경우와는 다르지 않나.

특히나 알을 깨고 나온 자식을 알아서 살라며 방치하는 드래곤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혹시 반대인가.’

어쩌면 지구의 인간들 중 몇은 카테이아 대륙에 갔다가 돌아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기록으로 남겼거나, 지구에서 그 형체를 재현했다면…….

‘가능성은 있네.’

왜, 지구의 소설 같은 것을 보면 그렇지 않나. 이세계 트럭인가 하는 것에 치이면 이세계로 가고, 회귀 트럭에 치이면 회귀를 한다고 하니까.

‘서은우는 트럭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에르제 자신이 트럭에 치인 것도 아니었고…….

‘차 종류가 달라서 내가 몸을 차지하게 된 건 아니겠지.’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이내 지웠다.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가정이었다.

“뭐 해? 은우야, 가자.”

잠깐 뜬금없는 상념에 젖어 있던 에르제의 어깨를 민주혁이 툭, 쳤다.

“아, 응.”

에르제는 고개를 흔들어 털고는 잡생각을 날렸다.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무대에 집중해야겠다.’

시상식 무대.

오늘 무대는 특히 중요했으니까.

이번 연도에 토트윈이 수상할 거라고 예측하는 상들은 굉장히 많았다.

그런 시상식에서 볼품없는 무대를 보여 준다면, 상을 탔을 경우 과연 적합한 수상인가에 대한 비난이 난무할 것이다.

무대 바로 뒤편, 토트윈과 루비다이아 멤버들의 잔뜩 긴장한 표정이 보였다.

‘하긴, 루비다이아도 마찬가지이겠구나.’

그들도 이번 무대가 같은 이유로 중요할 터.

동기부여는 확실하겠군.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제이는 몇 달 만에 방송국 나들이를 나온 상태였다. 그동안 에이리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던 그는 그녀가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재 에이리스의 정신은 온전히 1장로 카얀에게 쏠려 있는 상태.

심지어 뱀파리스 본부를 벗어나 1장로가 숨어 있다는 어느 산으로 향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뱀파리스 본부 내에 그와 친하게 지내던 한 뱀파리스가 위험을 무릅쓰고 알려 준 내용이니 99퍼센트 확실한 정보일 것이다.

‘……에이리스가 날 아예 찾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녀에게 자신은 휠체어를 미는 도우미 수준일 뿐, 현재 혈석이 없는 그는 에이리스에게 별다른 존재 가치가 없었다.

더는 로드라고 부르기도 싫은 이름을 곱씹으며 제이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LAK의 다른 멤버들이 불편한 제이의 심기를 눈치채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았다.

“쯧.”

제이는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더 이상 에이리스가 자신을 찾지 않는다면 굳이 숨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마 1장로와 에이리스, 이 둘의 전쟁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든 결판이 나겠지. 자신의 처분은 그때 가서 내려지지 않을까.

어느 쪽도 승산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으니, 미리 둘 중 하나의 세력에 붙는 건 너무 위험천만한 선택으로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이는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토트윈과 루비다이아, 두 그룹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에르제.’

제이는 에르제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이득을 많이 보고 있는 건 확실히 에르제였다.

두 세력이 힘을 다했을 때, 에르제가 마무리를 짓는다면.

그리고 혹시 이 모든 상황을 에르제가 유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뱀파리스는 끝이다.’

제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무대의 중앙으로 나오는 에르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두 세력의 충돌이 바로 코앞인데도 태연하게 시상식 무대에 서고 있는, 뱀파이어 로드의 모습을.

‘……모든 상황을 꿰고 있는 거겠지.’

제이는 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 비어 있는 기억과 에르제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어쩌면, 지금의 마음처럼 자신은 에르제를 이미 도왔을지도 모른다.

그저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을 뿐.

‘기억이 이렇게 텅 빈 공간으로 남았다는 건 누군가 내 기억을 지웠다는 건데…….’

그날 이후 일이 전개되는 양상을 살펴보면, 1장로나 에이리스가 자신의 기억을 지운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1장로는 그날 이후로 만난 적이 없었고, 에이리스는 오히려 사라진 기억 때문에 혈석을 가져간 것이 1장로라고 믿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오늘 난 이걸 확인해야겠어.’

제이는 주먹을 꾹 쥐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만약 자신이 에르제를 도왔던 거라면, 그래서 지금처럼 도망을 다녀야 했던 거라면 이후 자신의 신변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에르제밖에 없다.

제이는 토트윈과 루비다이아의 무대가 끝나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 나는 Chaser, 조금 더 Closer―!

록으로 편곡된 ‘Chaser’의 멜로디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고, 객석에서는 열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토트윈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잊었는지 LAK의 다른 멤버들도 박수를 치며 즐기는 모습.

‘……그 와중에 아이돌 활동도 잘하고 있군.’

제이는 입술을 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무대는 에르제보다 오래 아이돌 활동을 한 그가 보아도 훌륭했다.

제이는 기존의 섹시 콘셉트를 완전히 버리고 록으로 편곡한 점이 아주 괜찮은 판단이었다고 봤다. 두 그룹을 반반씩 나누어 무대를 했다면 모를까, 10명이 넘는 인원이 단체로 ‘Chaser’의 안무를 춘다고 생각해 보라.

팬들이 좋아할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을 하자니, 기존 곡의 매력이 완전히 죽어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록 편곡은…… 아주 좋은 대안이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었다. 제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토트윈이 LAK를 넘어섰다던 댓글들이 보이던데…… 그럴 만하군.’

자신이 없는 사이 LAK의 빈자리를 치고 들어온 토트윈의 기세는 놀라웠고, 오늘의 무대로 그 실력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토트윈이 수상하는 상들에 대해서는 아마 이견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깊이, 더 깊이

빠져드는 순간을.

어느덧 무대는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시상식에 참석한 다른 가수들도 어깨를 들썩거리며 무대를 즐기는 모습.

이곳에서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인 듯했다.

‘왠지 외롭군.’

제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서서히 잦아드는 ‘Chaser’의 반주를 들었다. 무대가 끝나면 토트윈도 이쪽 근처로 오게 될 것이다.

‘아마 저 자리쯤.’

제이는 에르제가 앉을 자리를 대충 눈으로 확인하고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

그리고 무대가 끝난 직후의 토트윈과 루비다이아의 모습에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와하하하!!”

“멋있다!! 예쁘다!!”

주변에서 폭소와 함께 열띤 반응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저게 무슨?’

그리고 제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요즘 유행하는 엔딩 요정을 자처하며 카메라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제이는 헛웃음을 지으며, 스크린에 비치고 있는 에르제의 엔딩 요정 포즈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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