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40화 (240/307)

제240화

240화

어찌어찌 무대를 마치고 돌아온 토트윈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아무리 공을 많이 들이지 않은 무대였다고 하더라도, 오늘 같은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하.”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윤치우를 시작으로, 토트윈의 표정은 점차 굳어 갔다.

에르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힘을 쓰다니.’

토트윈으로 있는 동안 아이돌 활동에 진심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에르제는 최근 웬만해서는 매혹의 힘을 쓰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제외한 멤버 모두는 피나는 노력으로 무대에 서고 있었기에 자신 또한 편법으로 무대에 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오늘은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기에는 너무 상황이 심했다.

MR은 곡의 어느 부분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튀었고, 조명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고정을 시켜 주지 않았는지 태현우의 인이어가 빠져서 질질 끌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나름 최선을 다해 무대를 끝내기는 했지만……. 무대를 망쳤다는 허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평소 파이팅이 넘치던 태현우마저 진이 빠진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소파에 앉아 있었으니, 현재 토트윈의 심정이 어떤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매혹의 힘 덕분에 완전 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솔직히 워낙 최악이었던 탓에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에이리스와 관련된 일을 예시하는 건 아니겠지. 괜한 불안감에 에르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연말 시상식 무대를 끝으로 에이리스와 본격적인 ‘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런 일이 터지니 어쩐지 신경이 쓰였다.

“사과 한마디 없네.”

민주혁은 싸늘한 눈으로 대기실 문을 바라보더니 이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토트윈 전원이 같은 행동을 취했다.

자리를 지키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무대도 끝났으니 그냥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우리 잘못도 아니고, 누가 봐도 방송국 측 잘못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자.”

그들 중 가장 먼저 감정을 추스른 윤치우가 멤버들을 다독였다.

“그래야지.”

“짜증 나여. 무대 끝나고 기억이 없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여.”

다들 투덜거리며 짐을 챙겼다.

곧 문을 열고 들어온 이윤의 표정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윤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 뒤에 무대에 선 애들도 난장판이더라. 요즘 시대에 이런 사고라니, 진짜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이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사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었기에 돌아갈 준비는 금세 마쳤다.

“괜히 출연 안 했다가 불이익받을까 싶어서 나왔더니 아주 개판이네, 개판이야.”

차에 탄 이윤은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를 열심히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토트윈의 분노는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화가 나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대신 화내 주면 점차 풀리는 그런 것 말이다.

물론 이윤도 정말 화가 나서 그랬겠지만, 아마 그런 계산도 어느 정도 깔려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총괄 자리에 올라서 그런 건가.’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방송국을 떠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토트윈은 오늘의 무대에 대한 반응이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 * *

[ 토트윈 가요제전 무대 영상 링크 ]

[ 미쳐 버린 박자 감각의 토트윈 ]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무튜브에 가요제전 때 토트윈의 무대 영상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방송국에 대한 욕을 게시판에서 실컷 한 팬들이 이제는 무튜브 영상 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동병상련을 겪은 다른 아이돌의 팬들까지 합류하면서 어떤 쇼츠 영상의 조회수는 순식간에 10만 이상을 찍어 버리기도 했다.

― 미친 거 아니냐고! 진짜 방송국 X끼들, 일 똑바로 하는 꼴을 못 보는 거 같음. ――

┖ ㅇㄱㄹㅇ 어떻게 매년 사건 사고가 일어나냐?

┖ 걔네 월급도 랜덤으로 줘야 정신 차림. ㅅㅂ

― 그 와중에 토트윈 박자랑 멜로디 다 찾아가는 거 개 미쳤네;;

┖ 기인열전급인 듯.

┖ ㅋㅋㅋㅋ 진짜로;

┖ 역시 주혁이다. 애들 당황하지 않게 곧바로 먼저 안무를 시작해 주고 있음.

┖ 오, 그러네.

― MR 튀는 와중에도 화음은 놓지 못하는 은우와 현우……. 이것이 우크로스인가…….

┖ 우크로슼ㅋㅋㅋㅋㅋ

┖ 우리 치우도 껴 주세요. ㅠㅠ

팬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방송국을 욕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그런 와중에도 잘하고 있는 모습에 더욱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 왜 내 본진은 저렇게 하지 못하는가…….

┖ 설마 티X스?

┖ ㅇㅇ……. ㅠㅠ 괜히 비교되는 중;;

토트윈과 비슷한 일을 겪은 몇몇 아이돌 그룹은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그대로 망해 버린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것도 못 하느냐면서 비난하는 팬들은 없었으나, 토트윈과 비교당하는 것을 피하진 못했다.

심지어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돌 1군과 2군 가르는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토트윈과 다른 아이돌 그룹이 사고에 대처하는 모습을 짤로 만들어 박제하기까지 했다.

“음…….”

“어…….”

그래서 토트윈 멤버들은 얼떨떨한 와중에도 다른 아이돌 그룹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왠지 미안해지는데.”

“그러게여…….”

멤버들 중 가장 소심한 안단테는 공식 계정에 제발 비교하지 말아 달라는 글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뿐.

곧 숙소로 들어온 이윤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부담감이 덕지덕지 묻기 시작했다.

“팬들이 이번 시상식 무대 엄청 기대하고 있더라. 거기는 이런 사고 일어난 적이 없으니 엄청 잘할 거라고…….”

“아!”

“그게 그렇게 되나.”

다들 부담감과 더불어 없던 긴장감까지 생긴 모양이었다.

‘못할 걸 잘해 버리니, 잘할 건 더 잘해야 되게 생겼네.’

에르제는 헛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이번 시상식 무대는 루비다이아와의 합동 공연이었고, 적당히 신날 수 있는 수준의 록 편곡이 가미된 ‘Chaser’를 함께 부르기로 했다.

아직 어떻게 바꾸었다는 얘기를 팬들에게 하지 않아서 팬들 대부분은 다른 걸그룹과의 ‘섹시’ 콘셉트에 대해 큰 우려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동시에 무대 자체는 잘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더욱더 고조되고 있는 상황인 듯했다.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루비다이아 멤버들과 얘기를 해야 할까여?”

안단테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그렇게 말했다.

에르제는 그런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미약하게 혈기를 흘려보냈다. 진정 효과가 있는, 혈기를 활용한 기술이었다.

“걱정하지 마. 평소처럼만 해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그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팬들의 기대감이 아무리 높아졌다고 해도 그들은 하던 대로 본래의 모습을 보여 주면 된다.

‘여차하면, 또 힘을 쓰면 되니까.’

정 안 되겠다 싶을 때는 보험도 마련돼 있다.

에르제는 안단테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벽면에 놓여 있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시상식 무대가 끝나고 난 뒤 이틀.

최종 결전까지 총 3일이 남아 있었다.

* * *

엉망진창이었던 가요제전 무대가 끝나고, 토트윈은 드디어 골든 테이프 시상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신인상이 아닌, ‘올해의 아티스트상’ 등에 노미네이트가 되었는데, 토트윈 내부적으로는 수상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강력한 경쟁자인 LAK의 활동은 뜸했지만, 그 틈을 파고든 솔로 가수들과 걸그룹들의 활약이 아주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지금 대기실에 같이 있는 루비다이아였다.

토트윈과 루비다이아의 대기실은 달랐으나, 최종 점검을 위해 루비다이아 측 대기실에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이거 먹어도 돼요?”

“저는 이거!

토트윈은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아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초콜릿 등을 보며 마구 군침을 흘렸다.

“앗, 다 먹지 마요!”

“그건 빼고!!”

물론 루비다이아도 만만치 않았다.

까드득, 에르제도 루비다이아 몰래 껍질을 깐 다크 초콜릿을 입 안에 넣고 씹었다.

“!!”

쓴맛과 단맛의 절묘한 조화가 전신에 활력을 돋운다.

초콜릿을 몇 번 먹어 보기는 했지만, 에르제는 단연코 오늘 먹은 초콜릿이 가장 자신의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 다크 초콜릿 76% ]

에르제는 라하임에게 빠르게 초콜릿의 정보를 보내며, 그 뒤로도 두 개를 더 까먹었다.

그렇게 잠깐의 간식 타임이 끝나고, 토트윈과 루비다이아는 본격적으로 합동 공연을 위한 최종 점검을 시작했다. 물론 잠깐이라고 하기에는 그들 주변에 간식의 잔해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말이다.

과자 껍질을 옆으로 치우며 루비다이아의 메인 보컬이 입을 열었다.

“가요제전 영상은 저희도 봤는데, 그거 때문에 괜히 불안하네요.”

“설마 여기서도 그러지는 않겠죠.”

윤치우의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대단해요. 무대 망했다는 생각보다 와, 진짜 잘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하하하…….”

엄밀히 말하면 매혹의 힘 덕분이었으나, 그들이 그것까지 알 리는 없었다.

“어쨌든.”

‘짝!’하고 박수를 친 루비다이아의 메인 보컬은 토트윈 전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까지도 정하지 못한 거, 지금 마무리 지어야죠.”

“……아아, 그거요.”

민주혁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루비다이아의 메인 보컬은 씩 입꼬리를 올렸다.

“하는 걸로 하죠!”

“으음…….”

민주혁과 그녀의 대립은 곧 토트윈과 루비다이아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요즘 이 정도는 기본이라니까요?”

“아니, 굳이 하지 않아도…….”

“허어, 그래요. 아이돌 1군이면 이런 거 하지 않아도 괜찮다~. 뭐 그런 뜻인 거죠?”

“루비다이아도 매년 음반 순위에서 상위권이던데요.”

저번에도 했던 말들이 다시 되풀이된다.

‘솔직히 나는 상관없는데…….’

이 대립의 유일한 방관자인 에르제만이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다크 초콜릿을 씹었다.

까드득.

하지만 그들의 대화 사이에 끼어든 이 이질적인 소리에.

“……응?”

모두의 시선이 에르제에게로 쏠렸다.

그중에서도 하얀이 뱁새눈을 하고 그를 노려보았다.

“은우 님, 저번에도 의견 안 냈죠!”

“맞아! 그랬어!”

“이 곡 원래 하얀 언니랑 은우 님이 같이한 거잖아요. 주인이 정해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주 합심을 하는구나.

에르제는 난감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과 마주했다.

“어……. 음.”

에르제는 볼을 긁적이며 말을 끌었다.

만약 여기서 토트윈의 편을 들면……. 이미 눈이 반쯤 맛이 간 하얀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전에도 나랑 ‘Chaser’ 하겠다고 그 난리를 쳤으니…….’

어쩔 수 없나.

에르제는 토트윈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 하는 걸로 하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