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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24화 (224/307)

제224화

224화

이윤이 보내온 코코아톡에는 하얀이 소속되어 있는 ‘루비다이아’와 같이 무대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에르제 혼자가 아니라 토트윈 전체가.

에르제와 하얀이 냈던 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바꿔서 다같이 부르는 걸로 하자는 얘기였다.

“……이거 대표님의 아이디어야?”

“모르겠는데.”

민주혁이 심각한 얼굴로 물어서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모른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하얀이 나랑 무대를 또 하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래서 장 대표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건가.’

자세한 내막까지 이윤이 말해 준 것은 아니라서 이 이상의 추측은 불가능했다. 의미도 크게 없었고.

“별론데. 너무 별론데.”

민주혁은 이마를 확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도 동의했다.

“그러니까여. 애초에 콘셉트가 섹시인데…… 어쿠스틱 버전으로 만들겠다는 것까지는 이해해도 이걸 열 명이 넘어가는 인원이 부르는 게……?”

“심지어 어쿠스틱 버전이면 전자 악기도 없이 노래 불러야 하는 거잖아. 이거…… 기존 곡의 맛을 살릴 수가 있나? 단테야, 가능해?”

“……해 봐야져.”

안단테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대답했다.

“제일 문제는 말이야.”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민주혁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춤이 없잖아.”

“응?”

“아, 그게 문제였어?”

하기야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을 해 놓고 10명이 넘는 인원들이 춤을 추고 있는 건 진짜 말도 안 된다.

그럴 거면 그냥 원곡을 그대로 가져와서 춤을 추고 말지.

‘루비다이아’는 7인 그룹이니까 짝이 맞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윤치우는 손을 턱에 댄 채 꽤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모두가 말이 없어졌을 때쯤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대표님 생각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해.”

윤치우의 말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무슨 소리를 하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윤치우는 꿋꿋하게 말을 이어 갔다.

“시간이 없잖아.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하는 것도 아마 단테한테 맡기지 않을걸. 루비다이아 쪽에 부탁할 가능성이 높지. 곧 ‘Epilogue’ 활동 시기가 되면, 단테가 편곡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

“그건…… 그렇져. 밤을 새워야 할지도여.”

안단테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윤치우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어쿠스틱도 그런 의미에서 결정하셨을 것 같아. 은우는 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걸 새로 배울 시간이 없잖아. 뭐, 하라고 하면 못 할 것도 없기는 한데. 그만큼 몸이 힘드니까.”

“……집중도가 흐트러지기는 하겠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민주혁도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Epilogue’에 집중하라는 뜻이겠지 뭐.”

“내 생각도 그래.”

윤치우는 바로 그거야, 하는 눈빛을 띠었다. 그는 멤버들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 위로 올렸다.

“시상식 때의 무대야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주혁이 말대로 ‘Epilogue’ 조금 있으면 나오잖아. 우리 활동에 전력을 쏟아야지.”

“으음.”

멤버들은 상황을 이해했지만, 그래도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Epilogue’ 활동기와 시상식 무대를 준비하는 기간이 겹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끌리지 않는 무대를 준비하는 건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이럴 거면 그냥 다른 팀이랑 무대를 하면 안 되나? 꼭 루비다이아랑 해야 하는 건지.”

태현우가 투덜댔다. 멤버들도 대충 동의하는 눈치였고.

이곳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은 에르제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야.’

하얀의 얼굴을 또 봐야 한다는 것은 찝찝했지만, 그래도 춤은 추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서은우의 영혼을 다시 자신의 몸으로 불러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당시의 상태를 또 겪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에 갇힌 것 말고, 서은우가 자신의 몸을 차지하고 있을 때의 자신의 영혼 말이다.

‘그때는 무저갱에 갇힌 기분이었지.’

오감이 차단된 공간 속에 꽤 오랜 시간 정신체만 남아서 유영을 했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어서 더욱 버티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의 고통이라니.

에르제는 그때가 생각나서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냥 할래.”

춤만 없다면, 뭘 해도 상관없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하얀이 뭘 할 수 있겠는가.

‘퀸님!’ 하면서 이상한 소리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루비다이아에다 토트윈 멤버들까지 다 있을 때 그럴 리는 없으니까.’

우려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에르제는 처음으로 장 대표의 일 처리 능력에 만족하며, 열렬하게 내적 박수를 쳐 주었다.

처음 코코아톡을 보자마자 사레들려 물을 뱉어 낸 건 까맣게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 * *

그로부터 3일 뒤. ‘Epilogue’의 디지털 싱글 음원 발매를 4일 앞둔 시점에서 에르제는 연습실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았다.

드라마는 종영되었고, 알바 몬스터 시즌 2도 마무리된 시점.

그런 상황에서 숙소를 벗어났다는 것은 그 이유가 하나밖에 없었다.

일족들과 관련된 일.

오늘 오전 에르제는 대마녀에게서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 1장로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어. ]

기다리다 못한 1장로가 에이리스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는 소식이었다.

에르제를 비롯한 뱀파이어 쪽 세력이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다.

‘마찬가지로 에이리스도 지금을 노리고 있었겠지.’

에이리스가 먼저 움직이지 않은 건 1장로의 인내심이 곧 바닥을 드러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였다.

‘명분.’

그리고 그 시기를 노리고 있던 것은 바로 명분 때문이었을 거고.

에이리스는 뱀파리스 로드이자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강자가 위를 차지한다는 이념에 따라 구성된 뱀파리스인 만큼, 그녀가 로드의 자리에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그녀 다음으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1장로가 에이리스의 편에 붙어 있으니, 밑의 뱀파리스들이 더욱 굴복하고 있었을 터.

‘하지만 지금은 둘이 갈라선 상황이니까 당연히 세력이 양분되고 있겠지.’

그런 상황에서 만약 에이리스가 먼저 움직인다면?

1장로가 배신하고 자신을 치려 한다는 완벽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이는 오히려 에이리스가 지탄을 받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철혈통치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니까.

로드지만, 밑에 있는 이들의 민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거다.

증거 없이 1장로를 내치고 죽인다면, 그 밑의 뱀파리스들은 공포는 느낄지 모르지만 충성심은 급속도로 하락할 것이다.

언제 자신도 이유 없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질 테니까.

‘심지어 대악마까지 불러올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 이후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러니까 에이리스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먼저 반란을 일으키도록 만들고, 자신은 제압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에르제는 피식 웃었다.

‘로드라는 자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지.’

에르제는 이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근데 그건 1장로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에이리스가 먼저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은 1장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이 먼저 공격하면, 에이리스에 붙을 이들이 훨씬 많아질 거라는 사실도 말이다.

‘명분이 가지는 힘은 그만큼 강력해. 에이리스에게 당위성이 있는 만큼, 1장로에게 붙을 뱀파리스들도 많이 떨어져 나갈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1장로가 먼저 움직였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게 분명해 보였다.

‘미끼……를 던졌다는 건데.’

에르제는 눈을 꾹 감았다.

사실 에르제는 에이리스와 1장로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더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1장로에게 던져 줄 마땅한 미끼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Epilogue’가 끝나고 시상식이나 가요제전까지 다 마치고 난 뒤에나 일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자신의 예상보다 한 달 넘게 시기가 앞당겨진 만큼, 훌륭한 미끼가 있어야만 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1장로는 정말 단순한 멍청이가 될 테니까.

하지만 그동안 지켜봐 왔던 1장로는 결코 머저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미끼가 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데.’

감았던 눈을 뜬 에르제는 만지작거리던 스마트폰의 화면을 켜서 [ 대마 ]라고 저장되어 있는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고, 대마녀가 전화를 받았다.

[ 무슨 일이야? 못 오게 됐어? ]

“아뇨. 그건 아니고, 제가 가기 전에 일 하나 더 부탁드리려고요.”

[ 부탁? ]

조금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 네가 아이돌인 건 알고 있지만, 너 은근히 나 부려 먹는다? 나 대마녀야. 마녀들의 정점. 뱀파이어 로드보다 아래가 아니라고. ]

“알죠.”

에르제는 피식 웃었다.

하여간 성깔 하나는 대단했다. 지금도 말투에 가시가 돋쳐 있으니.

저번에 혈석을 부수려고 했던 장면이 문득 떠올라 에르제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에르제는 알고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자신과 한배를 탄 만큼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거라는 것을.

[ 내가 우스워? ]

“그런 거 아니에요.”

[ ……그래서, 뭐? 무슨 부탁? ]

“들어줄 거예요?”

[ 들어 보고. 쓸데없는 부탁이기만 해 봐. 그냥 1장로 몸에 있는 독 지금 터뜨리고 계획 다 망쳐 버릴 테니까. ]

“쓸데없는 건 아니고.”

에르제는 조금 전에 했던 1장로의 움직임과 미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요약해서 전달했다.

대마녀는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조금 뒤에 대답했다.

[ 로드 자리를 고스톱으로 딴 건 아닌가 보네. ]

“네?”

[ 아냐.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미끼가 뭔지 확인해 달라는 거지? ]

“네. 저희가 뱀파리스 쪽에 심어 둔 뱀파이어들은 죄다 솎아 내진 상태라서.”

[ 알아, 알아. 후우. ]

“부탁드릴게요.”

[ 오래 안 걸려. 여기 오기 전에 다시 연락 줄게. ]

“네.”

자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끊어진 전화를 보고, 에르제는 헛웃음을 흘렸다.

‘대마녀가 1장로와 소통할 때 남겨 둔 창구들이 있으니까 미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그녀가 호언장담한 대로 일족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기 전에 연락이 올 터.

이제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한 차를 보며, 에르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슬슬 지난 과거들을 청산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에이리스와 자신의 관계.

그리고 서은우와의 관계도.

그 모든 것들의 끝이 서서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

에르제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차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새파란 하늘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하얀 구름들이 넘실거린다.

밤이 지나고 찾아온 한낮의 하늘.

그 모습이 왠지.

뱀파이어 에르제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토트윈의 서은우로 살아갈 날을 암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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