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3화
223화
“은우야아아아!!”
인터뷰가 끝나고 차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까지 남아 인사를 나누고 온 이윤이 에르제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달려왔다.
“?”
에르제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니, 그는 양팔을 벌린 채로 힘차게 달려오고 있었다.
저번에 TV에서 우연히 보았던 레슬링 기술을 시연하려는 모양이었다. 클로스라인(Clothesline)이었던가? 아무튼.
‘나 잘못한 거 없는데?’
에르제의 미간이 깊이 패었다.
이번 인터뷰는 자신이 생각해도 참 잘했다.
이희주는 몇 번이나 함정이 뻔히 보이는 질문을 던졌지만, 큰 문제 없이 잘 넘겼으니까.
그건 주변 멤버들의 반응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지막에 가서는 딱히 걱정하는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윤은 뭐가 또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양손을 올려 주먹을 쥔 에르제는 클로스라인에 대비했다.
하지만, 이윤의 행동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덥석!
한달음에 달려온 이윤은 에르제를 안아 주었다. 심지어 토닥거려 주기까지 했다.
“?”
덕분에 양팔이 가운데에 껴서 쪼그라든 요상한 자세가 되었다.
“웬일이야!”
이윤은 그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진짜, 처음으로 인터뷰하는데 걱정이 안 됐다. 오늘 대답 아주 좋았어.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자고.”
“…….”
순간, 에르제는 멍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안아 주려고 했던 거였구나.’
겨우 팔을 빼낸 에르제는 머쓱하게 콧잔등을 긁었다.
이윤은 등을 팡팡 두들겨 주고 난 뒤에야 그를 놓아 주었다.
“대표님도 인터뷰 전문 보면 놀라시겠다. 놀라시겠어. 훌륭해!”
이윤은 좀처럼 보여 주지 않는 엄지 척까지 해 주며, “가자!”라고 힘차게 외치고 차로 향했다.
그의 뒤를 따르며 멤버들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이번에는 은우가 대처를 꽤 잘하긴 했어.”
“처음 보는 장면이라 어색해.”
“저는 은우 형이 아무 말이나 해도 좋아여!”
그래. 더 칭찬해라, 인간들아.
에르제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뒤에서 걷던 민주혁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말은 하지 않았는데,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고작 인터뷰 하나 정상적으로 해냈다고 이런 분위기라니.
‘음.’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야지.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나서 운전대를 두들기는 이윤을 바라보았다.
‘사고 나지는 않겠지.’
사고가 난다고 해도 이들을 지켜 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정체가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에르제는 혀를 차며, 검은색 밴에 올라탔다.
* * *
꽤 오랫동안 에르제는 무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에이리스 쪽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토트윈 내부적으로는 ‘Epilogue’의 준비로 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뱀파이어의 일’은 라하임을 비롯한 일족들에게 맡겨 두고, 에르제는 토트윈의 음원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는 중이었다는 뜻이다.
어느덧 ‘Epilogue’의 음원 발매까지 일주일을 앞둔 시점에 에르제는 멤버들과 함께 숙소 거실에 앉아 있었다.
자체적으로 해 오던 토트윈의 내부 회의 시간이었다.
매니저인 이윤도 없었고, 오로지 토트윈 멤버들끼리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비록 회의라고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사실은 주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러니까 멤버들의 결속을 다지는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멤버 간의 불화로 팀이 깨지는 경우는 너무도 흔했고, 윤치우는 토트윈이 그렇게 와해되길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만든 자리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번에 발매한 곡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거나, 평소 서로에게 불만이 있으면 시원하게 털어놓는 자리라고나 할까.
하지만 서로 불만이 있다고 해 봤자.
“저번에 현우 형이 제 옷을 입었어여!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엥? 내가?”
“3일 전이었는데, 노란색 티셔츠!”
“아, 그거.”
태현우가 들켰다는 표정을 짓고는 머쓱하게 웃었다.
“미안!”
얄미운 사과에 안단테가 씩씩댔다.
별것 아닌 일로 참 열과 성을 다해서 다툰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곧 타깃이 바뀌었다.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민주혁이 옆에 놓아두었던 책을 침착하게 집어 들며 에르제에게 내밀었다.
“이 책은 ‘성공과 자만’이라는 책이야. 앞으로 우리가 아이돌로 성공해 나가고 난 뒤에 마음가짐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볼 수 있어. 우리의 평소 행동 양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책이라고 생각해.”
“……응.”
그런데 그걸 왜 자신한테만 내밀고 있는 걸까. 멤버들의 헛헛한 표정들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선물.”
민주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에르제에게 완전히 떠밀고는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뭐야! 왜 우리 건 없어!”
태현우가 항의를 했지만, 민주혁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돌려서 봐. 처음에 은우 먼저 보라고 준 거야.”
“각자 하나씩 사 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왜 은우가 먼전데?”
“각자 하나씩 책을 사서 주라고? 너 돈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져서 내려오는 줄 알아? 평소에 돈을 아끼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해야 해.”
민주혁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꾸했다. 평소의 성격과 말투였다.
“너 적금은 들고 있어? 정산금 받은 거 착실하게 모으고 있는 거지? 지금 회사랑 계약 기간 끝나고 다시 재계약을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태현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민주혁은 꿋꿋이 할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평소에 착실히 준비를 해 둬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은우 먼저 준 거는 제일 가까워서 준 것뿐이고.”
“알, 알았다고.”
정신이 혼미해진 태현우가 고개를 흔들었다가 이내 마지막 말에 반응했다.
“야! 은우가 제일 가까워서 준 거는 거짓말이잖아! 너 여기에 있다가 은우 옆으로 가서 앉은 거 다 봤거든?”
그 말에 민주혁은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태연하게 대답했다.
“거기 불편해. 여기가 편해.”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냥 흐뭇하게 아이들 싸움이나 구경하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자신이 중간에 껴서 이러고 있는 건지.
에르제는 책을 조심스럽게 등 뒤로 숨겼다.
문제의 소지가 되는 것을 얼른 시야에서 감추기 위해서였다.
‘이게 회의인 건지 스트레스 푸는 건지.’
윤치우도 한발 떨어져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리더잖아. 뭐라고 한마디 해 봐.
뭐 진짜로 싸우고 있는 건 아니니까 상관은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지금에 한해서였다.
혈기왕성한 녀석들이라 진짜 감정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에르제의 생각과 같았는지, 지켜보던 윤치우가 결국 나섰다.
“둘 다 그만해. 다음으로 넘어가자. 앨범 얘기하는 게 낫겠어.”
윤치우는 섭섭해하는 태현우를 진정시키며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현우 너, 주혁이가 책 선물해 줬던 거 하나도 안 읽었잖아.”
“크흠, 그건 그렇지.”
정곡을 찔린 태현우가 무안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차피 둘 다 진심으로 섭섭해하며 싸우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반쯤 장난이 섞여 있던 상황이었다.
태현우도 어느새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돌아왔다.
‘민주혁은…….’
저쪽도 뭐 크게 신경 쓰는 건 아닌 듯했다.
그렇게 앨범과 관련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곧 토트윈 멤버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라, 일에 관한 것이라 더욱 그런 듯했다.
“라이브를 할 때 이 부분은 특히 조심해야 해. 상체를 크게 쓰는 움직임 뒤에 따라오는 부분이라서 순간 호흡이 딸릴 수도 있어.”
“이번 연도 마지막 곡이니까 12월 초에 발매되는 거라고 해도 시상식 때까지 충분한 활동은 못 하겠는데, 그러니 임팩트를 좀 더 강하게 가져가는 건 어떨까?”
이미 앨범 준비 단계에서부터 나왔던 이야기들의 재탕도 있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최대한 걱정을 많이 하고, 막상 무대에 올라서는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평소에 체화를 시켜 놓자’는 토트윈의 기본 모토였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모토.
에르제는 열띤 이야기를 나누는 멤버들을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서는 분명 떠나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뱀파이어는 인간보다 노화가 몇 배는 느렸고, 게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10년 넘게 장수하는 아이돌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꼭 멤버들 간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소속사 문제로 해체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그룹이 존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될 가능성이 높겠지.’
자신은 저들과 다르니까.
큰일이었다.
일족을 찾기 위해 시작한 아이돌이 이제는 그에게 아주 소중한 일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음유시인으로서 행복했던 기억이 지구에 와서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노래를 하면 즐거웠고, 처음에는 남사스러웠던 춤도 이제는 꽤 잘 추게 되었다.
‘물론 하얀과 춰야 했던 춤은 지금 추라고 해도 못 추겠지만.’
그때는 서은우가 자신의 몸을 차지해서 무대를 섰지만 말이다.
‘다행이라고 하기도 참 뭐하네.’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멤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속담은 정말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 이번 연말에도 잘 부탁해요~!! ]
에르제는 하얀에게서 온 뜬금없는 연락에 얼굴을 굳혔다.
‘연락처를 교환했었던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연말에 잘 부탁한다니.
뭐를?
연말에 있을 거라고 해 봤자, ‘Epilogue’의 무대와 시상식밖에……. 어, 시상식?
시상식을 떠올린 에르제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아니겠지.’
저번 시상식 때는 다른 아이돌 그룹과 무대를 하거나 다 같이 노래를 하지 않았나.
‘아닐 거야.’
에르제는 고개를 저으며, 조금 전에 떠 왔던 물을 찾았다.
냉수로 목이라도 축여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상식에서 진짜 하얀이랑 그 춤을 추라는 건 아닐 거야.’
에르제는 자신의 희망 사항을 다짐하듯 중얼거리며, 물에 가득 담겨 있던 물을 쭉 들이켰다.
하지만 물을 채 다 마시기도 전에 이윤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선만 내리깔아 이윤에게서 온 코코아톡을 확인한 에르제는,
“쿨럭.”
사레들려서 기침을 하면서 컵을 내려놓았다.
“은우, 괜찮아?”
바로 옆에 있던 태현우가 걱정하듯 물어왔고, 민주혁은 말없이 일어나 수건을 갖고 왔다.
“고마워.”
에르제는 턱을 따라 흘러내린 물을 닦아 내고는, 이윤에게서 온 코코아톡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