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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29화 (129/307)

제129화

129화

이윤과 코코아톡을 주고받은 이후, 갈피를 잡은 에르제는 그제야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 앞으로 앞뒤 다 자르고 본론만 말하지 마. 제발. ]

어디에선가 길을 잃은 아이 둘을 발견했다고 설명을 덧붙인 이후.

이윤은 ‘미아보호소’에 데려다주라고 이야기를 했고, 저 코코아톡이 마지막으로 온 내용이었다.

가볍게 읽씹한 에르제는 교대하는 타이밍까지 기다렸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뭐냐?”

귀신의 집에 있던 내내 마주치지 못했던 박장호는 에르제의 두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미아보호소에 데려다줘야 해요.”

“아아, 길 잃은 아이들이구나.”

“자의는 아니지만요.”

“……? 타의로 길을 잃을 수도 있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응, 그래.”

박장호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손을 쓸 수 없는 에르제를 대신해서 미아보호소의 위치를 찾아 주었다.

“별로 안 머네.”

“다행이네요.”

“안 덥냐?”

박장호가 여전히 인형 탈을 착용하고 있는 에르제를 보며 혀를 찼다.

“달걀 용사는 더위를 모르거든요.”

“……뭐라는 거야?”

“전설의 용사니까요.”

“…….”

대화가 자꾸 빙빙 돌아서 박장호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금방 미아보호소에 도착한 에르제는 입구에서 아이들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달걀 용사는 이제 가 봐야 해.”

작은 아이가 인형 탈의 팔을 양손으로 꼭 잡았다.

“어디로요……?”

“지구 지키러.”

“흐윽…….”

그 짧은 사이에 정이라도 든 건지, 작은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큰 아이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그래도 조금 더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였다.

“이, 이제 보내 드려야 해. 혜성아, 흐읍.”

“싫은데에…….”

작은 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포시 에르제의 손을 놓아주었다.

에르제는 그런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웬만하면 다 잊어버리렴.”

“네에.”

“부모님도 꼭 찾기를 바란다.”

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굽혔던 무릎을 폈다.

그리고 미아보호소 안내원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는 두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겠지.’

기억을 지워 주는 편이 좋았겠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이었기에 정신이 버텨 내지 못했을 터.

그래도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매혹의 힘을 담아 이야기했으니,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는 않을 거다.

‘세상에 알려져서 좋을 이야기는 아니니까.’

“가자. 시간 없어.”

미아보호소에 들르느라 교대할 시간이 조금 지났기 때문에 박장호가 에르제를 재촉했다.

‘다음이…… 바이킹이었나?’

다음 행선지를 떠올린 에르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기 전에 장미영한테 부탁해서 옷을 몰래 갈아입어야겠네.’

* * *

그리고 다시 현재.

알바 몬스터에서 에르제가 미아보호소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장면이 나오자,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댓글이 증가했다.

― 길 잃은 아이도 찾아 주고, 서은우 착하네.

⌎ 원래 애는 착했어.

⌎ ㅋㅋㅋ 그건 맞지.

― 아닠ㅋㅋㅋㅋㅋ 달걀 용샄ㅋㅋㅋㅋㅋ

⌎ 그래도 계란 용사라고 안 해서 다행…….

⌎ ㅋㅋㅋ 애들 순수해서 진짜 믿고 있잖아~.

― ㅋㅋㅋㅋㅋ 박장호랑 서은우 표정 딱 이거임.

( 놀이동산에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사진 )

⌎ 앜ㅋㅋㅋㅋㅋ

⌎ 둘 다 귀엽 ㅠㅠㅠㅠㅠㅠ 큐 ㅠㅠㅠ

⌎ 그러고 보니 요즘 박장호랑 서은우 사이 다시 괜찮아진 듯?

― 근데 저거 용사 맞냐? 세상에 배에 눈깔 달린 용사가 어디 있냐?

⌎ 그 와중에 애기들 은우 손 꼭 잡고 있는 거 세상 사랑스러움. 눈깔이 하나면 어떻고, 배에 달렸으면 어때. ㅠ

⌎ 그럴 수도 있지……. 요즘 용사라고 나오는 만화 보면 별별 게 다 있더라.

단순히 미아라고 하기에는 아이들의 몰골이 심각해서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건 아니냐 말도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훈훈한 광경이었다고 마무리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기회를 틈타 어그로들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 속보) 서은우 과거 만행 (링크)

⌎ ?

⌎ 만행?

⌎ 아, 뭐야? 진짜 뭔 일 있었는 줄 알았네.

⌎ 222 이거 예전에 은우가 길가에 쓰러져 있던 사람 병원에 데려다준 거 아님?

⌎ 만행이 아니라 미담이지, 이건.

― 서은우가 아이들 발견한 곳 (충격)

⌎ 뭔데?

⌎ 그래서 어디라고;;

⌎ 뭐야, 저 사람 기사 링크도 안 올리고. 내가 대신 올려 줌.

⌎ 아니, 그래서 링크 어디 갔냐고?

⌎ 진짜 X발 오늘도 세상은 아름답다

결국에는 ‘서은우가 잘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다행히 시청자와 이브 간의 싸움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미아보호소에 아이들을 맡긴 이후에는 바이킹과 롤러코스터, 자이로드롭 등 놀이기구 위주로 로테이션이 돌아갔고.

에르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가게 된 곳은 안내 데스크였다.

[ 이달그마. ]

[ 혈기 넘치는 하루가 되기를. ]

에르제는 자신을 알아본 명석한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끝까지 예능인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

― 오늘도 1이달그마 하고 갑니다~.

― 혈하~.

에르제가 매 회마다 이달그마를 외쳤기 때문에, 이제는 시청자들도 물들어 버린 상태.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토트윈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도 생겼기에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었다.

뭐가 되었든 팬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알바 몬스터는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시즌 1을 종료했다.

애초에 긴 호흡으로 계획한 예능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 시즌, 한 시즌의 길이는 짧은 편이었다.

그래도 시즌 2, 시즌 3 방식으로 계속 이어 나간다고 했으니 에르제가 물의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계속 고정적으로 출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제이는 오늘 자 알바 몬스터 방송이 끝나자마자 바로 리모콘을 들어 음악 방송을 재방송하는 채널로 바꿔 버렸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하필 토트윈의 무대가 나오고 있었기에 아예 나올 일이 없는 바둑 채널로 다시 바꿨다.

‘하, 진짜 불편해 죽겠네.’

제이는 자신의 근처에 앉아서 TV를 보는 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저번에는 음방까지 따라오더니 왜 우리 집까지 기어 들어와서 사냐고.’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계급이 높은 데 캄의 명령이었기에 제이는 어떠한 반발도 하지 못하고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X발, 도대체 잠시만 같이 살라고 하는 건 뭔지.’

하아.

제이는 마른세수를 하며 김지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멍청한 놈이 서은우한테 잡히지만 않았어도, 데 캄에게 이런 명분을 주지 않았을 텐데.

― 네 위기를 내가 막아 주었으니 너도 내 부탁을 들어주어야겠지?

서은우와 김지원의 밀담을 자신에게 전하며 부탁으로 교묘하게 위장한 명령을 내리는데, 어떻게 그 면전에다 대고 싫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제이가 온갖 욕과 투덜거림을 속으로 내뱉고 있을 때,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채선과 눈이 마주쳤다.

“왜?”

제이가 조금 짜증스럽게 묻자, 이채선은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 속도만큼 빠르게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후우, 멤버가 하나 늘어도 귀찮을 판에 완전히 남남인 뱀파리스가 들어와서는.’

솔직히 뱀파리스인지, 뱀파이어인지도 잘 모르겠다.

라하임은 뱀파이어를 배신한 쪽이었으나, 그 속내를 알기 어려웠으니까.

제이는 멍하니 바둑을 보고 있는 라하임에게 말을 걸었다.

“라하임.”

“?”

“잘 곳을 마련해 줄 테니까 거기에 머무르는 건 어떻습니까?”

“몇 번이나 대답했지만, 싫다.”

라하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게 에르…… 아니, 서은우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

“어차피 하루 종일 토트윈 무대나 서은우 나오는 예능만 보고 있잖습니까. TV에서 재방송 안 해 주면 무튜브로 또 찾아서 보고.”

“그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라하임이 동공이 풀린 눈으로 제이를 바라보았다.

“연예계 쪽은 내가 잘 모르니 네게 도움을 받는 거지.”

“……내가 도움이 된 게 있긴 합니까?”

“저번에 음방 데려가 줬던 것처럼 그 정도면 충분하다.”

“하……. 그러니까 그 정도는 그쪽이 따로 살고 있어도 해 준다고 했는데.”

열심히 설득을 해 보았지만, 라하임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말없이 리모콘을 가져가서 음악 방송 채널로 돌리는 라하임을 보며, 제이는 ‘네 맘대로 해라.’라고 생각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그러나 그런 제이를 라하임이 붙잡았다.

“왜, 또, 뭡니까.”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제이가 묻자, 라하임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저번에 음악 방송에서 토트윈 무대를 같이 보았을 때, 서은우가 했던 말을 기억하나?”

“……? 전혀.”

“기억력이 좋지 않군.”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제이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억누르고 되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팬사인회에서 보자고 했다.”

“그건 팬들한테 하는 말일 텐데요.”

“아니.”

라하임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또렷하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분명 나에게 한 말이다.”

“서은우도 그러더니 그쪽도 자의식 과잉입니까? 도대체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그렇게 되는 거지.”

어이없다는 듯한 제이의 말에 라하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둔하기 짝이 없다.”

“……설마 저 들으라고 하는 말입니까?”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나?”

“솔직하게 말하시죠. 당신, 서은우가 어렸을 때 잃어버린 동생입니까?”

“정신 차리거라.”

어쩜 이렇게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은지.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히자, 라하임은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튼 나는 그 팬사인회에 가고 싶다.”

“……토트윈의 팬사인회에?”

“그렇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듯하군.”

“이유…… 를 물어보기는 참 싫군요.”

“궁금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됐습니다.”

제이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되물었다.

“그러니까 팬싸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가야 되는지 모르겠다?”

“팬싸가 아니라 팬사인회.”

“같은 말입니다.”

제이는 대충 대답해 주며, 스마트폰을 꺼내어 토트윈의 팬사인회 일정을 훑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이렇게 조금이라도 라하임과 떨어져 있고 싶었기에 제이는 성실하게 정보를 찾아 알려 주었다.

“9월 4일, 3일 뒤에 3집 앨범 첫 팬싸가 있습니다.”

“빠를수록 좋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지?”

“음……. 원래는 앨범을 사서 응모하고 해야 하는데, 지금 그렇게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고…….”

오늘 도대체 몇 번째 한숨을 쉬는 건지, 제이는 또 깊이 들이마신 숨을 뱉어 내며 말을 이었다.

“그냥 찾아가서 티켓 보여 달라고 하면, 매혹의 힘을 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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