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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6화 (6/307)

제6화

6화

인생 컷! 스튜디오로 가기 하루 전.

장 대표는 이윤을 호출했다.

“윤아.”

“예, 대표님.”

“이번에 내가 애들한테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

“네.”

장 대표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컴퓨터 모니터를 돌려 이윤에게로 향하게 했다.

“여기 보이지. 이 기사.”

“다 옛날 일인데요, 대표님.”

“옛날 일은 무슨, 아직도 사람들이 나를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부르는데.”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말에 이윤이 주먹을 입에 가져가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래도 지금의 모카 엔터테인먼트는 대표님이 다 일구셨잖아요.”

“그럼 뭐 하냐? 남자 아이돌이 자꾸 망하는데.”

장 대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모카 엔터테인먼트는 원래 큰 회사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대표는 사람 보는 눈과 히트곡을 고르는 안목이 뛰어났기에 그 장점이 회사의 성장으로 직결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현재 모카 엔터테인먼트의 복도에 걸려 있는 아이돌 사진은 대부분이 알아볼 정도로 이름을 날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기세를 몰아 런칭했던 남자 아이돌 그룹은 안타깝게도 모조리 망했다.

아니, 멸망했다.

처음 만든 팀은 첫 음악 방송에서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음 이탈과 춤 실수를 연발했고, 그 후로는 어떤 방송에서도 써 주질 않았다.

이후 어렵게 다시 런칭한 다른 그룹은 2명이나 음주운전을 해서 이미지를 말아먹었다.

물론 그 뒤에 런칭했던 다른 남자 아이돌도 마찬가지였다.

학폭 이력이 드러나거나 홈마와 친목질을 하는 등등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고 사건을 터뜨리곤 했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장 대표는 그들의 잘못임에도 위약금조차 받지 않고 모두 계약 해지를 해 주었다.

결국.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던 장 대표는 남자 아이돌 한정으로는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옛 기억을 떠올리던 장 대표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한다. 아무 논란도 없이.”

“물론이죠.”

“하아, 근데 솔직히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불안하기는 해. 은우 그 녀석이 기억을 잃어서 걱정되기도 하고……. 이번에도 망하면 그냥 내가 지지리도 운이 없는 거겠지?”

자조 섞인 그의 말에 이윤이 재빨리 화제를 전환하며 웃었다.

“그래도 오늘 윤성후 선생이 말하는 거 들어 보니까, 오히려 춤은 좋아졌다고 하던데요? 전화위복일 수도 있습니다, 대표님.”

“그렇겠지?”

“예. 은우가 비주얼 말고도 다른 게 되면 팀에 무조건 이득이니까요.”

“으음, 그래서 말인데.”

장 대표가 그 말에 겨우 웃음을 지으며, 서류 하나를 들고 흔들었다.

“내가 이번에 애들 사진이랑 프로필을 잡지사 쪽에 쫙 돌렸거든.”

“잡지사예요?”

“어. 인터뷰 뽑고, 화보 뿌리면 데뷔할 때 홍보가 좀 될까 싶어서.”

“아하.”

하지만…… 모카 엔터의 남자 아이돌이면 분명 거절당했을 텐데?

이번에도 말아먹는다면, 그들로서도 제 살을 깎아 먹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이윤이 눈썹을 찡그리자, 장 대표는 자신 있게 서류를 이윤에게 들이밀었다.

“나도 솔직히 거절당할 거 각오하고 한 거거든. 근데, EW 측에서 2명이 마음에 들었나 봐.”

“누구요?”

“은우랑 주혁이.”

“아하.”

이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은우와 민주혁은 멤버 내에서 비주얼로 따지면 1, 2위였다.

그래서일까? 다행히 EW 관계자의 눈에 들었던 모양이다.

장 대표는 뿌듯한 표정으로 서류에 적힌 글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른 곳은 다 반려되었는데, EW에서 미끼를 물었지. 조건이 없는 건 아니고, 아예 이 퇴마 콘셉트로 가자고 하더라.”

“퇴마 콘셉트요?”

그제야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한 이윤이 서류를 자세히 살폈다.

확실히 과하게 분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지를 생각해야 하는 아이돌이라면 꺼릴 만한 콘셉트이기는 했다.

그러나 장 대표는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마침 우리 데뷔 앨범이랑 콘셉트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냉큼 좋다고 했다. 기획팀에서 짜고 있는 우리 애들 세계관도 그렇고.”

“확실히…….”

“그러니까 무조건 잡아야 하는 기회다. 윤아.”

“예, 대표님.”

“일단 이것만 무사히 지나가면……. 알지? 내가 박 대표한테 작업 치고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애들 티저 공개할 때쯤, 거기 컴백 콘 초대석에 앉혀서 바이럴 마케팅 유도하면 될 거고. 내일 잡지 쪽에 실리는 화보 사진 말이야. 그것도 데뷔 쇼케 할 때, 추첨으로 주면 괜찮을 것 같거든?”

장 대표의 말에서 이번만큼은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뚝뚝 묻어 나왔다.

“그러니까, 믿고 맡긴다.”

“예. 걱정하지 마세요.”

* * *

그렇게 콘셉트가 확정되었고, 그와 어울리는 조합으로 선정하느라 민주혁과 에르제가 같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멤버가 바뀌었던 것이다.

오늘 그들이 찍어야 하는 것은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사냥꾼.

물론, 잡지사 쪽에서 제시한 콘셉트였다.

“이분이 오늘 뱀파이어죠?”

정무진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민주혁이었다.

‘뭐?’

에르제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자, 이윤이 맞장구를 쳤다.

“네. 은우 피부가 하얘서 은우를 뱀파이어로 할까 했는데, 이미지로는 주혁이가 더 어울려서요.”

“직접 보니까 더 그러네요.”

정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혁은 금발이라 그런지 양끼가 있는 느낌이었고, 조금 더 야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와 반대로, 서은우는 왠지 고상한 분위기에 얼핏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다고 여긴 정무진이 박수를 치며 주위를 환기했다.

“좋습니다. 바로 진행하도록 할게요.”

“자, 잠깐!”

에르제가 황망히 손을 내저었지만, 정무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탓에 이윤이 에르제에게 붙잡혔다.

“어째서 제가 뱀파이어가 아닌 거죠?”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이윤이 민주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봐도 주혁이가 어울리잖아. EW에서 주혁이를 뱀파이어로 하자고 했는데, 너희 그룹 콘셉트도 주혁이가 뱀파이어니까.”

“그럴 수가.”

그러니까.

이놈의 껍데기가 문제다.

원래 자신의 몸이었다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사냥꾼으로 촬영을 한다고 하길래 당연히 자신이 뱀파이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인간들은 형편없는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에르제가 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 생각에 저자는 실력이 없어요.”

혹시나 주변에 들렸을까 싶어 이윤이 황급히 에르제의 입을 막았다.

“사고 치지 마, 제발.”

그렇게 이윤이 에르제와 입씨름을 하는 사이.

잠시 사라졌던 정무진은 우두커니 서 있던 민주혁에게 검은색 옷을 넘겼다.

“주혁 씨는 이거 입어 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어, 그리고…….”

에르제의 입을 막고 있는 이윤을 본 정무진이 멈칫했다.

“아하하하.”

이윤이 멋쩍게 웃으며 변명했다.

“애가 긴장을 해서요. 좀 풀어 주고 있었습니다.”

“아……. 예.”

떨떠름한 정무진의 대답에, 이윤이 황급히 다가와 민주혁을 챙겼다.

“이거 입히면 되는 거죠? 가자, 주혁아.”

순식간에 에르제만 혼자 남겨졌다.

“…….”

초점을 잃은 에르제의 눈동자가 배회하는 동안, 정무진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하얀색 옷이 들려 있었다.

“서은우 씨?”

에르제가 그를 말없이 쳐다보자, 정무진은 손에 들려 있던 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저쪽에서 이거 입고 나와 주시면 됩니다.”

조금 전 민주혁과 이윤이 들어간 곳이었다.

정무진은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자리를 떴다.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촬영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아.”

멀어져 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에르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손을 들어 올리자, 하얀색 로브가 그의 손에서 길게 떨어져 내렸다.

자신의 의사는 하나도 존중받지 못한 채,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뱀파이어 사냥꾼이라니.’

에르제는 어딘가에 흩어져 있을 일족들을 떠올리며,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 아이들아.

로드가 이렇게 힘들게 산단다.

* * *

에르제가 의상을 입고 나오자, 분주히 돌아다니던 스태프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꺅꺅거렸다.

“와, 진짜 잘 어울려요!”

“어머!”

“얼굴이 진짜 열일 한다.”

서은우 본연의 선한 외모와 발목까지 오는 순백의 로브. 그리고 어깨부터 내려오는 금색 줄이 화려함을 더했고, 그와 어우러져 손에 들린 십자가와 새하얀 권총까지.

스태프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맙다고 하기에는 참 애매한 발언들이 많네요.”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에르제의 곁으로, 정무진이 다가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예상한 대로네. 열심히 소품을 준비한 보람이 있어. 분위기가 딱 맞네요.”

“그러면 곤란한데…….”

에르제가 권총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대답했다.

뱀파이어한테 뱀파이어 사냥꾼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일단 입으라고 해서 입기는 했지만, 저 친구와 내 역할이 바뀐 건 아닌지 매우 의심스러운데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떨지…….”

“에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완전 찰떡인데.”

에르제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지만, 정무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나.’

손으로 옷을 매만지며 전반적인 분위기를 확인하던 정무진은 이내 만족스러운 얼굴로 뒤에 서 있던 스태프 하나를 불러왔다.

“희연 씨, 곧 촬영 들어가니까 여기 옷매무새만 좀 다듬어 줘요.”

“네.”

희연이라고 불린 그녀는 촬영을 위해 에르제의 옷을 정리해 주곤, 이내 그를 보며 감탄했다.

“뱀파이어 사냥꾼 분위기가 물씬 풍기네요. 진짜로요!”

“……애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입 틀어막고 비웃겠네요.”

“애들이요? 멤버들?”

“아니요. 그자들 말고……. 당장 찾지 못하는 녀석들이요.”

에르제가 씁쓸한 말투로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누군데요?”

“가족들이요.”

에르제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 모습이 왠지 슬퍼 보였다.

게다가 가족들이라니.

자세한 이야기는 알지 못했으나, 그의 감정에 공감하게 되는 건 금방이었다.

그녀는 한참 옷매무새를 정리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금방 볼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요. 어딘가에서 다들 잘 살고 있을 걸요?”

“위로……. 고마워요.”

“헤헤.”

에르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위로가 되었다는 말에 따라서 배시시 웃었다.

“촬영 시작할게요! 중앙으로 와 주세요!”

“아, 저기 은우 씨! 잠깐만!”

촬영을 시작한다는 말에 에르제가 몸을 돌리자, 희연이 그의 소매를 재빨리 붙잡았다.

그러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척 세웠다.

“저 오늘부터 은우 씨 1호 팬 할게요. 힘내요! 파이팅!!”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에르제의 등을 밀었다.

‘팬?’

원래 이렇게 ‘팬 할게요!’ 하고 팬이 생기는 건가?

떠밀리듯 중앙으로 나온 에르제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민주혁의 곁에 섰다.

뱀파이어 복장을 하고 있는 민주혁을 보니 속이 쓰렸지만, 뭐 어쩌겠나.

이것도 다 데뷔하기 위한 고행쯤으로 여기는 수밖에.

게다가 뱀파이어 사냥꾼은 EW 쪽에서 준 콘셉트이기에 데뷔 이후까지 계속 영향을 끼칠 것 같진 않았다.

‘애초에 십자가나 마늘, 이런 게 뱀파이어한테 통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밤에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인간 부모들이 지어 낸 이야기였을 뿐이니까.

오히려 지금 손에 들려 있는, 마력 탄환을 쏘아 대는 마도구가 더 위험했다.

이쪽에서는 총이라고 부르는 모양인 듯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족들이 당한 경험이 도움이 되겠네.’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정무진이 크게 소리쳤다.

“자! 처음에는 자유롭게, 각자 의상 콘셉트에 맞게 자세를 잡아 보세요.”

이윤에게서 카메라라는 마도구가 어떤 건지 들었기에 에르제는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섰다.

“크르르르.”

민주혁이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며 손톱을 드러내어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르제는 그 손을 꽉 잡았다.

“?”

그러고는 유려한 몸놀림으로 그 손을 민주혁의 등 뒤로 꺾었다.

“야……?!”

다급하게 민주혁이 외쳤지만, 에르제는 빠르게 그를 제압해 바닥에 눕혔다.

무릎으로 등 위를 누르고.

꾸우욱―.

들고 있던 차가운 백색 권총을 민주혁의 관자놀이에 대고 강하게 짓눌렀다.

“여기까지다. 더러운 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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