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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80화 (80/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80화

    하이브 마인드의 방식(3)

    [누자베스 : 각 부대장 보고해.]

    [햄토리 : 쮸, 쮸쮸! 쮸우-쮸쮸쮸!!]

    [누자베스 : 그래그래, 우린 다 뒤진 목숨이지. 근데 그걸 또 구태여 말할 필요가 있었냐, 햄토리.]

    [보르가 : 키륵, 키!! 키륵키륵!]

    [누자베스 : 꼭 지금 그런 걸 물어봐야겠냐, 보르가?]

    [존슨 : 우…… 어…… 워…….]

    [누자베스 : 오, 스칼렛이 없으니까 존슨 네가 부대장이냐. 뭐? 새벽의 저주가 좀비 혐오를 조장하는 좀비 차별 영화라고!? 근데 넌 구울이잖아.]

    [존슨 : 워어어어…….]

    [두르난 : 새까맣게 몰려오는구먼!! 어서 쏘게 해줘! 한 발만, 한 발만 쏘면 돼! 제발 쏘게 해주게!!]

    [누자베스 : 그만하세요, 어르신! 박격포성애자처럼 굴지 말라구요!]

    [두르난 : 허억, 헉…… 한 발만…… 딱 한 발만 쏘면…….]

    카타쿨라의 군세가 관측된 것과 동시에 765호 둥지의 각 부대가 재빠르게 지정 위치에 집결했다.

    리제 쪽도 접근을 포착하여 바로 병력을 집결시켜 전투를 준비했다.

    누자베스가 마인드 모드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시점. 그가 넘어야 할 난적 카타쿨라도 같은 판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드디어 두 하이브 마인드가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게 된 것이다.

    [누자베스 : 이야…… 눈대중으로 봐도 1만은 족히 넘겠구만. 또라이가 둥지에서 얼마나 박아대는 거야.]

    [루칸다 : 각하, 그쪽의 상황을 파악하기 힘듭니다만. 간략하게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누자베스 : 아냐아냐, 여기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물론 이쪽은 피곤죽이 돼서 냅다 도망치겠지만. 너희는 베놈 편대 격파에만 집중해.]

    누자베스는 부상으로 전장에 나설 수 없다. 리제 역시 아르테간트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조금 싸울 줄 아는 보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

    거기에 모든 챔피언들을 베놈 편대에 할당한 이상 열세의 상황은 당연한 것이었다.

    ‘1만의 대군과 4천 남짓한 연합군.’

    숫적 열세라면 병력의 수준이라도 우월해야 게임이 되겠지만.

    아무리 좋게 봐줘도 누자베스의 군세는 카타쿨라의 군대에 비해 무장이나 훈련 수준이 조악했다.

    거기에 하이브 마인드의 명령이라면 용암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마족과 달리.

    인간의 군대는 그 정도의 충성심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병력의 절반 정도는 열세 상황에서 겁을 먹고 내뺄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다.

    실제로 전열을 갖추고 충돌에 대비하고 있는 인간 보병들은 겁에 잔뜩 질린 분위기였다.

    “앰병……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이건 개죽음이라고, 개죽음!”

    “누자베스가 죽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누가 그래! 그럼 저 마물들이 왜 날뛰지 않는 건데.”

    “그럼 왜 이번 전투에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냐고.”

    “빌어먹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먼저 내뺐나 보지.”

    병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리제의 귀에도 들리고 있었다.

    지휘관인 리제가 함께 있음에도 병사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존재는 누자베스였다.

    누자베스의 빈자리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단순히 끝내주게 잘 싸우는 무장 하나가 불참한 수준이 아니라.

    부대 전체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니까.

    ‘이래서는 카타쿨라를 제압한 후가 걱정이 되네.’

    리제는 씁쓸한 웃음을 삼키며 부대의 전열에 나섰다. 리제도 전투를 거듭하며 병사들에게 신뢰를 받기 시작했지만, 누자베스의 인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었다.

    하이브 마인드라는 합성생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될 정도다.

    마왕 아일라드가 빚어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마물. 전쟁군주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이 마족은 전쟁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누자베스를 보고 있으면 느낄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종족을 초월하여 병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적수인 카타쿨라의 흥미를 동하게 만들 정도.

    “밀도가 낮은 본도에서 부화했다면 순식간에 성역을 구축했을지도 모르겠군.”

    카타쿨라는 누자베스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입밖으로 내뱉었다.

    비교적 하이브 마인드의 둥지 밀도가 높은 아리카 섬에서 후발주자로 부화하여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한 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짓뭉게질 수 있는 이 섬에서 말이다. 특히나 에르바키나 연맹의 전폭적 지원과 풍부한 매장 자원을 지닌 ‘아비엥’을 격파하고 그 위에 올라선 전공에 대해선 카타쿨라도 크게 평가하고 있었다.

    어쩌면 누자베스는 마왕 아일라드가 추구하던 가장 순수한 형태의 하이브 마인드일지도 모른다.

    “만유현상의 제1원인에 닿은 존재는 실존의 영역에서 초극을 한다고 알려졌다만.”

    지금까지 반신에 가까운 고위 마족들이 초극의 영역에 도전해 왔다.

    초극에 도전했던 마족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마족은 ‘최초의 죄인’인 나르시안이다.

    나르시안은 가장 원초적인 금기에 대한 저항을 그의 출발점으로 삼아 초극을 이루려 했다.

    “만약 하이브 마인드의 태생인 우리가 제1원인에 닿고자 한다면, 합리적 폭력에 그 근간을 둬야겠군.”

    마족으로 태어난 이상.

    완전무결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갈망을 언제나 품고 있는 법이다. 카타쿨라도, 그리고 누자베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 누가 더 제1원인에 가까웠는지 검증을 시작하지.”

    카타쿨라가 마인드 모드로 의식을 전환시켰다.

    한눈에 1만에 가까운 병력이 보였다.

    어설프게 모아놓은 어중이떠중이 오합지졸도 아니다. 외곽 방위를 위한 병력이 아닌, 결전을 위한 1군 본대.

    이번 전투에 참여한 다섯의 챔피언이 각자 지정된 위치로 이동한 후 보고를 올렸다.

    [카타쿨라 : 전군 진격이다. 이 섬의 아릿카사가 누군지 똑똑히 알려주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카타쿨라의 병력이 진격하는 걸 포착한 누자베스도 각 부대장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누자베스 : 얘들아, 우리가 언제 쉬운 싸움을 해본 적이 있었냐? 개엿같이 부조리한 전장에 내몰려서 뒤지지 않으려고 사지 비틀면서 버틴 거지.]

    누자베스는 양손을 깍지 껴서 그 위에 턱을 얹으며 말했다.

    [누자베스 : 밑바닥에서 똥물 뒤집어쓰며 기어 올라온 놈들이라 깡다구 밖에 없다는 걸 알려줘라.]

    데드 엔딩으로 소설이 조기 완결 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누자베스는 그런 농담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격돌이 코앞이었다.

    * * *

    콰앙!

    천둥 소리 같은 박격포의 폭발음이 격돌의 시작을 알렸다. 아무리 질 좋은 강철로 전신을 무장했다고 해도 박격포를 직격으로 맞고 멀쩡하긴 힘들었다.

    카타쿨라의 결전부대는 7할 이상이 ‘정예 하이오크 투사’다. 그것도 풀플레이트 갑옷으로 무장하여 움직이는 성벽처럼 보인다.

    비비큐 클럽의 초탄 포격에 십수 마리가 산산조각 나서 흩뿌려졌지만. 1만에 가까운 병력 중에서 열 마리 남짓이 당한 것뿐이다.

    게다가.

    [카타쿨라 : 오호라, 곡사화기로군.]

    [루모라 : 각하. 포격 궤도 파악이 끝났습니다. 바로 응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메테오콜의 사용 허가를.]

    [반칼 : 헬캣 기동대 명령 대기 중입니다!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바로 달려가 쳐부숴버리겠습니다!]

    장거리 곡사화기는 아비엥에게 더 없이 치명적인 병기였다. 하지만 카타쿨라는 이 섬에서 가장 오랫동안 웅크려 있던 하이브 마인드다.

    박격포 부대에 대한 대비 및 파훼법은 당연히 갖추고 있었다.

    111호 둥지의 챔피언.

    루모라는 ‘아크 리치’에 속하는 고위급 마족이다. 인간의 술식으로 비교하자면 5서클에 도달한 상위 술식 구사자.

    박격포 포격 정도라면 마나 배리어를 전개하여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거기에 라이칸스로프 ‘반칼’이 이끄는 ‘헬캣 기동대’는 기병에 비견될 정도의 기동력을 갖춘 부대다. 야간전, 산악 및 험지에서도 상당한 기동력을 발휘하여 그 효용성은 기병 이상!

    게다가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화약의 잔향을 쫓는다. 아무리 위장을 하고 있어도 라이칸스로프의 추적에서 완전히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카타쿨라 : 루모라, 박격포 방어에 전념하도록. 전병력 대열을 유지한다.]

    [루모라 : 예, 각하.]

    [카타쿨라 : 우리의 이웃사촌이 아주 바보가 아니라면 하나뿐인 귀중한 포격 지원부대를 박아놓고 쓰진 않겠지.]

    카타쿨라의 예상대로 비비큐 클럽은 초탄 사격 후 재빠르게 박격포를 챙겨 자리를 이동하고 있었다.

    응사의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카타쿨라 : 반칼, 추격을 허가한다.]

    [반칼 : 놈들의 목을 모조리 물어뜯어 놓겠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누자베스의 ‘그레이브야드’ 부대와 카타쿨라의 ‘아르가노트’ 부대의 거리는 착실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철모를 뒤집어 쓰고 머스킷으로 무장한 1200마리의 구울 부대.

    그리고 상급 강철 갑옷과 트릴륨 도끼로 무장한 8400여 마리의 하이오크 투사.

    “나는 납탄 따윈 믿지 않아.”

    아르가노트의 부대장이자, 카타쿨라의 가장 큰 신임을 얻고 있는 챔피언 ‘로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내의 투기를 꺾는 건 언제나 철의 검이지. 저런 무른 금속 따위가 아니야.”

    로아는 카타쿨라와 마찬가지로 21개나 되는 헬베르카의 분가 중 하나인 ‘루스날’의 명맥을 잇는 마족이었다.

    헬베르카의 특성 중 하나인 ‘미형’의 특징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덕분에 로아는 누구나 납득할 정도로 미소년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외견이 10대 초중반의 소년이라고 할지라도 수백 년을 살아온 마물이다.

    심약해 보이는 큰 눈망울이라던가, 온화한 성품을 대변하듯 부드러워 보이는 금발이라던가.

    이런 로아의 외견적 특성은 모두 ‘위장’에 불과했다. 루스날은 헬베르카의 분가들 중에서 가장 포악하고, 흉폭한 마족을 배출해내던 가문이다.

    로아 역시 루스날의 말예다.

    전투에 피가 끓는 본성을 품은 짐승이라는 의미다.

    [로아 : 카타쿨라. 신호하면 바로 진격할게. 땅굴을 파고 머리만 내밀고 있는 겁쟁이들을 상대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루모라 : 로아, 각하께 입을 가벼이 놀리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요.]

    [로아 : 항렬을 따지면 내가 위라니까.]

    [카타쿨라 : 루모라, 전투에 집중하도록.]

    [루모라 : 예, 각하…….]

    카타쿨라는 아르가노트 부대와 그레이브 야드 부대가 파놓은 참호의 거리를 가늠했다.

    [카타쿨라 : 마르테제가 부재중이라 혼자 놀기에 심심하겠군, 로아.]

    [로아 : 누자베스라고 했던가? 그 애송이가 이쪽을 즐겁게 해줄만한 녀석이길 기도하고 있어.]

    [카타쿨라 : 마르테제도 크게 평가한 사내다. 적어도 시시하진 않겠지.]

    [로아 : 마르테제가?]

    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사뭇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는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로아 : 어서 날뛰게 해줘, 카타쿨라.]

    그와 동시에 로아의 시야에 붉은점이 표시되었다. 하이브 마인드의 지배에 속한 챔피언은 시각과 청각을 통하여 명령을 하달받는다.

    시야에 찍힌 붉은 점은 진격 방향을 의미했다.

    붉은 점이 빠르게 두 번 깜빡였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아르가노트 부대가 매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누자베스 : 저 친구들이 화가 많이 났네. 보르가, 환영 인사나 한 번 해줘라.]

    [보르가 : 키륵, 키륵!]

    참호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보르가가 손에 쥐고 있던 기폭 스위치를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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