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짓는 플레이어 79화
하이브 마인드의 방식(2)
“마르테제가?”
카타쿨라는 보고를 들은 후 조금 놀란듯 되물었지만,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예, 카타쿨라 각하. 765호 둥지의 관리자 누자베스와 독단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번 일만큼은 아무리 마르테제라도 가벼이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한동안 재기불능에 가까울 정도의 부상을 입혔다라. 무단으로 행동한 벌을 내리기엔 성과가 나쁘지 않은데.”
“각하. 베놈 편대는 저희 둥지의 비장의 수였습니다. 비장의 카드를 꺼낸 성과가 고작 그것이라면 득을 취했다 볼 수 없습니다.”
카타쿨라는 턱을 괴며 잠시 현황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일단 초전에서 참모 중 하나인 ‘오베론’을 잃는 실책이 있었다. 그리고 호즈칸의 방위대는 명령에 따라 착실하게 방어선을 물리고 있었지만, 병력 손실의 누적도는 무시할 수 없는 선까지 도달해 있었고 말이다.
거기에 모험가팀은 둥지의 경계선인 ‘데드라인’에 도달하기 직전. 물론 마르테제의 베놈 편대가 움직인 이상 모험가팀의 저지는 무난하게 이뤄지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765호 둥지의 주둔지에서 별동대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소수의 병력으로 베놈 편대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모험가 놈들이 당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생각은 없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어중이떠중이 같은 놈들을 보냈을 리 없다. 둥지의 가용 병력들 중 가장 유능한 개체를 모아 별동대를 편성했을 것이다.
게다가 누자베스 본인은 큰 부상을 입고 둥지에 틀어박힌 상황. 더 없이 형편성 좋게 마련된 상황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지금이 두들겨 볼 때로군.”
카타쿨라는 의자 뒤에 걸쳐놨던 망토를 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전투의 지휘는 직접 맡겠다. 어린 이웃사촌에게 어른의 인사를 가르쳐 줘야겠지.”
111호 둥지의 관리자.
카타쿨라의 출전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아리카 섬의 진정한 강철의 군주가 누군지 보여줄 차례였다.
* * *
“두들겨 볼 기회겠지.”
휠체어에서 꾸역꾸역 일어나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아, 휠체어는 두르난 아재가 내 설명을 듣더니 순식간에 뚝딱뚝딱 만들어준 것이다.
“베놈이라는 비장의 수를 까보였고, 그 비장의 수를 급한 불을 끄는데 돌렸다면.”
카타쿨라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여전히 이쪽이 열세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카타쿨라 역시 착실하게 내몰리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쪽의 핵심 전력이 별동대로 빠진 상황이다. 병력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지만.”
내 둥지의 챔피언인 스칼렛과 루칸다가 빠졌고.
리제 역시 고대 유물인 아르테간트를 시릴스에게 넘겨 개인의 전투력이 상당히 하향되었다.
나 역시 반신불수가 된 탓에 전선에 나서기 힘들다. 오로지 순수하게 병력으로만 카타쿨라의 공세를 막아내야만 한다.
그러니까.
천재일우라고 하기엔 부족함 감이 있지만.
카타쿨라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의 호기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불특정 요소가 상당수 배제된 전장.
이 정제된 상황에서 규모의 경쟁은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
“방어선을 구축해놨으니 쉽게 무너지진 않을 텐데.”
리제는 내 머리맡에 걸터앉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111호 둥지의 방위대와 전투를 몇 번이나 거듭하며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다.
하지만 나와 카타쿨라가 같은 하이브 마인드이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외곽방위대와 둥지 심부의 본대.
병력의 질이 같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상대한 병력들과 규격 자체가 다른 놈들이 나설 것이다.
“우리는 병력을 소모하며 별동대가 돌아오길 기다려야겠지. 여기서 어느 정도의 손해로 시간을 벌 수 있을지가 쟁점이겠고.”
솔직히 말해서 루칸다와 스칼렛 없이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을 통솔해본 적은 없다.
소대급 병력을 운용하는 부분은 꽤나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대규모 병력의 운용을 홀로 맡는 건 다른 문제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묻는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이전처럼 정밀한 기계 부품처럼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리제 쪽은?
인간의 지휘와 하이브 마인드의 지휘를 동일선에 두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고작해야 선봉에 서서 ‘나를 따르라!!’라고 악을 내지르거나, 날카로운 소리를 울리는 화살을 쏴서 진격 방향을 알리는 게 전부 아니던가?
하이브 마인드가 상대적 소수의 병력으로 대규모의 인간 군세에 맞설 수 있는 것도 지휘의 정밀함 덕분이다.
하지만 이번엔 같은 하이브 마인드가 상대다.
‘지휘의 숙련도가 능력 면으로 보자면 어딜 어떻게 생각해도 카타쿨라가 나보다 몇 수는 위겠지.’
게다가 챔피언 하나 없는 나와 달리 카타쿨라는 쓸 만한 챔피언도 대동하여 진격해 올 테니까.
‘막을 수 있냐 없냐를 생각하지 말자.’
착안점을 옮기자.
나는 내 방식대로 싸우면 된다.
후발주자로써 선발주자와 같은 궤도를 달리며 앞서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드디어 물러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네.”
잠깐 내 스테이터스를 확인하고.
각오를 다졌다.
* * *
누자베스의 작전은 간단했다.
카타쿨라가 군세를 이끌고 오면 1차 방어선에서 최대한 병력을 갉아먹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각한다.
그리고 다시 거리를 유지하다, 돌아가려는 낌새를 보이면 이쪽에서 거리를 좁혀 발목을 붙잡겠다는 것이다.
리제는 일단 동의했지만, 이 작전의 효용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익숙치 않은 것이겠죠. 아직 어린 하이브 마인드라고 들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나설 수 없는 전장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기에 그런 지리멸렬한 작전을 제안한 것입니다.”
리제에게 작전의 개요를 전해 들은 레오번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레오번도 그렇게 생각해?”
“지리적 이점을 버리고 규모와 수준이 더 우세한 군단에 산발적인 충동을 유도하겠다는 것 자체가 하수입니다.”
“그렇네. 이 주변은 게릴라전을 하기에도 여의치 않은 곳이니까.”
지금까지 누자베스는 연이은 전투에서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왔다.
누자베스의 전술적 판단이 어느 정도 신뢰할만한 것이라고 리제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리제도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의아한 것이었다.
“765호 둥지의 군세를 버리고 퇴각한다면?”
“둥지에서 출전한 본대가 베놈 편대와 합류할 것입니다. 모험가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면 더 이상 승기는 없겠죠.”
“누자베스의 작전을 무시하고 끝까지 남아 방어선을 사수한다면?”
“그때는 스텔라 님께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이쪽이 괴멸하기 전에 별동대가 베놈 편대를 격파하고 돌아오길 말이죠.”
“누자베스가 머리를 쥐어뜯어도 괜찮은 작전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네.”
도망칠 수도.
버틸 수도 없는 전장이다.
그렇기에 리제도 레오번도 뾰족한 타개책을 떠올릴 수 없었다. 누자베스가 하책을 내놓았다고 마냥 비웃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누자베스가 이런 작전을…….’
리제가 의문을 곱씹어 보는 동안 레오번이 잠시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아가씨. 바로 어제 하르젠 백작에게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하르젠 백작?”
리제도 그 이름을 모르진 않았다.
본도 론트라섬의 북서부에 위치한 영지의 영주였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아리카 섬과 가장 가까운 항만 시설을 갖춘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하르젠 백작은 아리카 섬에서 론트라 섬에 상륙하기 위해 향해야 하는 영지의 영주였다.
물론 하르젠 백작은 영지의 대부분을 하이브 마인드에게 빼앗겨 명색만 유지하고 있는 허물뿐인 귀족이었지만.
“아리카 섬에서 온 배는 한 척도 없었다고 합니다. 영주님도…… 파오루 님도 아직 론트라 섬에 도착하시지 못하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원군을 부르기 위해 갔든, 단순한 피신이었든.
바체트령의 본도 론트라 섬으로 향했으리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렇게나 시일이 지났는데도 론트라 섬에 도착하지 못했다니? 확실히 레오번이 이상하게 여길만한 일이었다.
레오번의 눈가에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이 짙게 떠올랐다. 리제는 레오번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레오번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던 ‘의심’의 그림자가 엿보였다.
리제는 탁상 위에 올려놨던 페이퍼 나이프의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려놓고 말했다.
“아버님께서도 오라버니도 무사하길 바랄 수밖에 없겠네. 무슨 사정이 있어서 론트라 섬에 상륙하지 못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호족회에서 이 사실을 꺼림칙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의혹을 방치한다면 순식간에 몸집을 불릴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레오번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구태여 누명을 뒤집어 쓰실 필요는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래?”
“군세의 퇴각이 끝나는 즉시 의혹을 풀어야 할 것입니다, 아가씨. 제가 아닌 호족장들 앞에서 말입니다.”
레오번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막에서 떠났다.
리제는 저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페이퍼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즐기게 놔둘 수는 없으려나. 마지막이니까 말이야.”
호족장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조시네스와 만나야 할 이유가 생겼다.
리제는 천천히 해야 할 일을 정리해가며 천막을 나섰다. 때마침 지평선 너머에서 강철의 갑주로 무장한 트롤 군대가 빼곡하게 밀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