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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50화 (50/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50화

    쿠아가 황야를 향하여(2)

    다시 태어난다면 미녀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는 얼간이 자식들이 가끔 있는데.

    내가 단언하자면 미녀로 태어난다는 건 인생 골드 패스에 불과하다. 물론 아름다운 여성이 받는 사회적 대우나 혜택이 적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미녀가 받는 대우란 어디까지나 골드 패스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 인생 플래티넘 패스로 아주 그냥 날로 먹고 싶은 놈들이라면 단연 ‘미남’으로 태어나야 된다!

    아무리 여자가 예뻐도 가로수길 물구나무 쇼는 불가능하니까. 남자가 잘생기면 가로수길이 아니라 논두렁길만 걸어도 물구나무 선 여자들이 사열종대로 이장네 마당까지…… 아니, 아니아니.

    아니다.

    물구나무 얘기는 잊어주길 바란다.

    이 소설을 읽고 있을 어린이 친구들에겐 너무나 이른 얘기다.

    아기가 생기는 프로세스에서 물구나무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아기는 황새가 물어주는 거란 말이다!

    애초에 착한 어린이는 이딴 힙스터 소설을 읽으면 안 된다! 그냥 뮤튜브 같은데 가서 해골빡 보고 ‘와!! 샌드!! 빠삐루스!!’ 같은 코멘트나 달다가 9시 되면 자는 게 착한 어린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디즈니 만화동산도 보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잘도 마을에 출입했네……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골치 아픈 애랑 엮이게 됐을까.”

    거의 납치되듯 페페에게 끌려온 곳은 페페가 머물고 있는 방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던가, 동료들의 눈에 되도록 안 띄도록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페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싫은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내게 받은 꽃을 물컵에 옮겨 담아 창가 쪽에 놓았다.

    알겠나?

    이건 현재의 내 외견이 미형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던 길에 대충 꺾어온 이름도 모르는 잡초에 저렇게 기뻐하지 않나?

    씹다 뱉은 혼모노처럼 생겼어 봐라. 장미 수천 송이를 가져다줬어도 그대로 불태워 버렸겠지.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답례만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 아닐 테고.”

    “배 안 고파요? 이거 은근히 먹을 만해요.”

    가져온 과일을 한 입 크게 베어물고 오물오물 씹어 삼키는 걸 보여줬다. 혹시나 독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서 안 먹을 수도 있으니까.

    떨떠름하고 시큼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솔직히 둥지 주변에 먹을 게 없어서 주워 먹는 거지, 돈만 많이 벌면 이딴 거 절대 안 먹는다!

    “늘 이런 거 주워 먹고 다녀?”

    끄덕끄덕.

    페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과일을 하나 쥐고 살펴보더니 한 입 베어 물었다.

    페페는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뱉지는 않고 꿀꺽 삼키더니 이쪽을 노려봤다.

    “더럽게 맛없어.”

    “머, 먹을 만은 한데…….”

    “그만 먹어. 있다가 방으로 간단한 요리라도 주문해 줄 테니까.”

    페페는 내 손에 들려 있던 과일을 뺏어 내려놓더니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나한테 무슨 용무일까?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이래 봬도 모험가야. 하이브 마인드에게 우호적일 리 없다는 건 기억해 둬.”

    알고 있다.

    나도 하이브 마인드인 이상 모험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다면, 타이밍만 맞는다면, 여유가 있을 때 처리해두는 게 최선인 족속들이란 말이다.

    페페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모험가와 하이브 마인드의 관계란 그런 것이니까.

    “이번엔 단순한 순서의 문제예요.”

    “말해 봐.”

    “그리고 비용 대비 효율의 문제겠네요.”

    페페에게 하이브 마인드는 모조리 토벌해야 될 대상이다. 나도, 아비엥도 공평하게 말이다.

    그렇기에 나도 아비엥도 페페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를 진행해야 했다.

    “일단 저는 저항할 생각은 없어요. 페페가 당장 저를 죽이겠다면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에요. 오늘도 그런 각오로 찾아왔구요.”

    “그렇다면 남은 701호 둥지만이 저항하겠네?”

    “맞아요. 701호는 어떤 지하자원을 우연히 손에 넣은 덕분에 급속도로 발전한 둥지예요. 지금까지 이 섬에서 토벌해 온 둥지들과는 격이 다르니, 페페도 꽤나 고생을 하게 되겠죠.”

    “그 수고를 덜기 위해 누자베스 네게 유예를 주고 있는 거야.”

    “페페가 허락해준 시간 동안 701호 둥지를 무력화시킬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자신이 없어 보이네?”

    “예. 둥지의 규모면에서 차이가 나니까요. 그래서 페페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어요.”

    페페의 눈빛이 점차 식어갔다.

    이미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너무 까부는 건 그다지 좋은 판단이 아닌데, 누자베스. 내가 분명히 말했지? 하이브 마인드인 너와 우호적인 관계도 아니고, 그런 관계가 될 생각도 없다고.”

    “단순하게 코스트만 계산하죠.”

    페페가 천칭저울에 올려야 될 것은 두 개.

    내게 협력해 아비엥을 토벌할 힘을 실어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아비엥에게 패배한 후 팀을 이끌고 가서 아비엥의 둥지를 직접 토벌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선택지에서 수고와 위험도가 적은 쪽을 고르면 되는 것이다.

    “페페가 준 유예가 있더라도, 제게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어요. 아비엥이 제 둥지를 집어삼키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둥지가 되겠죠. 그렇다면 페페가 골라야 할 합리적 선택이란 두 가지 뿐.”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보이며 말했다.

    “제게 잠시 협력해주던가.”

    손가락 하나를 접으며 이어 말했다.

    “지금 당장 저를 여기서 죽여야 돼요.”

    미리 챙겨온 나이프를 뽑아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미 정답이 나온 눈초리였다.

    이쪽을 죽일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저 정도의 살기라니, 아마도 1초 뒤에 나이프를 집어 내 목을 찢어 놓겠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자, 저항할 생각은 없다.

    그런 제스처를 취하고 있자 페페가 입을 열었다.

    “협박이 능숙하네. 마냥 어린애인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한 짓도 할 수 있는 걸요.”

    페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게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이니까! 내 인생에서 하이브 마인드를 돕는 일 따위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고마워요, 페페. 그럼 바로 일정을 잡아 볼까요?”

    “되도록 빨리. 나도 할 일이…….”

    똑똑.

    페페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페페? 일어났어요? 다들 1층에 모였는데…… 혹시 어젯밤에 잠이 안 온다더니 늦잠이라도 잤어요?”

    카를린의 목소리였다.

    페페는 화들짝 놀라며 문 쪽을 향해 말했다.

    “으, 응! 일어났어, 일어났어!”

    “목소리가 평소랑 다른데…….”

    “어디가!? 아, 그래. 조금 몸살 기운이 있는 거 같아서 누워 있었던 거야. 금방 내려갈 테니까 1층에서 기다려 줄래?”

    “몸살이요? 아, 그럼 잠깐 들어갈게요. 체력 회복에 좋은 스킬을 전에 손에 넣었잖아요.”

    끼릭.

    문고리가 돌아갔고.

    “읍!?”

    페페가 내 입을 틀어막은 채 단숨에 침대 쪽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자기도 침대로 들어와 이불을 덮었다.

    페페는 살짝 이불을 들추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바짝 엎드려 있어. 카를린이 방에서 나가면 창문으로 나가게 해줄게.”

    끄덕끄덕.

    이런 반응을 보니 아직 동료들에게는 내가 하이브 마인드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모양이다.

    어젯밤에 막 알게 됐으니 아직 알릴 시간이 없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 정말 얼굴이 빨갛네요. 산책 나갔다가 감기라도 걸린 거 아니에요?”

    “아냐아냐. 별거 아냐. 진짜 신경 쓸 필요 없어. 준비하고 내려갈 테니까.”

    카를린이 침대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왠지 엎드려 있는 구도가 조금 민망하다만. 무릎을 세운 채 누워 있는 페페의 다리 사이로 내가 엎드린 구도였다.

    확실히 누군가를 이불 아래로 숨기기 위한 자세로는 베스트다만.

    ‘허벅지 안쪽 사이에 얼굴을 끼워 넣고 있다는 점이…….’

    어쩐지 굉장한 만족감이다!

    양 뺨으로 전해져 오는 부드러운 감촉과 온기! 게다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은은한 향기까지…….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하더라.

    그래, 업계의 전문용어로는 ‘코박죽’이라고 한다.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코박죽은 어디까지나 ‘코렁탕 장인 박정희 죽었음’의 준말이니까.

    ‘평정심이다. 진정하자, 누자베스.’

    여기서 흥분했다간 여러모로 곤란하다.

    코코아페이퍼가 아니라 보아라 노블레스로 가게 되는…… 아니. 아니, 진짜 농담이다.

    ‘심호흡.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숨을 내쉬자.

    “햐윽!?”

    “페페 괜찮아요? 갑자기 왜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니긴요! 지금 몸이 흠칫 떨렸는데, 오한 증상도 있는 거 같아요. 얼굴도 더 빨갛게 상기됐고.”

    “지, 진짜 괜찮으니까…… 제발 나가서 기다려줘 카를린.”

    “…….”

    갑자기 카를린이 입을 다물었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더욱 몸을 바짝 밀착시키며 청각에 집중하려던 찰나.

    화악!

    이불이 걷혔고, 그대로 들켜버렸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페페의 그 뭐냐, 어쨌든, 밀착하고…… 젠장, 심호흡인데 뭔가 이상한 의미로 날숨을 불어넣고 있는 것 같은, 망했다 진짜.

    “카를린 부탁이야! 누자베스가 여기 있었다는 얘긴 모두에게 비밀로 해줘. 이건 나중에 제대로 설명할 테니까.”

    “그, 그렇네요…… 이, 이상하다 싶었어요…… 산책 같은 걸 하지 않던 페페가 갑자기 밤에 여관을 빠져나가다니…… 산책이 아니라 밀회였던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 아니, 맞아. 사실 누자베스하고 그런 관계였어……. 비밀로 해서 미안해.”

    진짜?

    진짜 나랑 그런 관계였단 말인가?

    잠깐, 잠깐만. 나도 모르던 사이에 그렇게 관계가 진전됐단 건가?

    어쨌거나 카를린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알았어요. 두 사람의 사생활이니까 못 본 걸로 할게요. 하, 하지만…… 이, 입으로는…… 그건 스텔라 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불경한 짓이에요!”

    카를린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버렸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멍하니 페페를 바라보자, 페페는 이제 자포자기한 것처럼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나랑은 싫어?”

    “싫은 건 아닌데요. 너무 전개가 갑작스러워서…… 일단 하려던 걸 마저 하죠.”

    음흉한 상상은 그만두길 바란다.

    이쪽이 하려던 건 ‘메모리얼 전투’ 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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