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왕좌의 게임 (3)
한편, 장현과 일행들은 아르헨이 다섯 번째 플레이어들 세력을 병합한 지 한 달쯤 지난 후에야 도착했다.
처음 출발할 때보다 수는 더욱 불어나 있었다.
이유는 그가 항다와 그의 영지민들에게 백신을 만들어주고 마스크를 제공해주자, 그들이 지나치다가 마주친 플레이어들에게 홍보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장현이 의도치 않게 벌어진 일이었다.
기왕 영지민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되지 않도록 녹색 알갱이로 백신을 만들어 주사를 접종해주었다.
그들은 백신을 맞고서 감격했다.
그 이후로 마주친 플레이어들에게 나서서 장현의 영지민으로 복속되고 나서 백신을 맞았다고 하니, 너나할 것 없이 플레이어들이 투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1회차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에는 백신이 최후의 전투 때까지 플레이어들에게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에게는 킹덤의 왕좌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해지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게 장현 일행은 갈수록 수가 불어났고, 어느새 수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장현과 일행들이 아르헨이 자리 잡고 있는 항구 쪽으로 다가오자, 멀리서도 긴 행렬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헥터가 부하에게 보고를 받고는 서둘러 아르헨에게 보고했다.
“아르헨 영주님. 밖에 다른 성의 플레이어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 수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족히 수만 명은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아르헨은 직접 나가 눈으로 확인했다.
과연, 끝없는 플레이어들의 행렬이 줄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아르헨의 곁에는 이정환과 김혜정이 있었다.
장현을 피해 도망친 둘은 결국 아르헨의 아래에서 관리자로 신분이 상승했고,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들은 다가오는 플레이어들 선두에 익숙한 얼굴들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르헨님, 저들은 헬릭스 성의 플레이어들입니다.”
“나도 알고 있다.”
아르헨의 시선은 장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장현.
자신에게 최초로 패배를 안겨준 자.
비록 일대일로 승부를 벌인 것은 아니지만, 거인족을 누가 많이 죽이느냐의 승부에서 패배했다.
그는 자연스레 자신을 이긴 장현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일대일로 붙는다면 난 절대로 지지 않는다.’
아르헨은 호승심을 불태우는 와중에, 저들이 이곳으로 이동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스러워했다.
킹덤의 곳곳에는 영지민을 이끌고 온 플레이어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둔 거점 시설들이 있었다.
얼마 전 들린 리자드맨 점주가 있는 주점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렇기에 대부분 인근 거점시설을 위주로 자리 잡지, 저렇게 단체로 이동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르헨 또한 항구 근처에 도착했기 때문에 자리 잡게 된 것이지, 만약 킹덤의 다른 위치에 도착했다면 도착한 지점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대체 저 인원수는 뭐란 말인가’
아르헨이 주목한 부분은 장현이 이끌고 온 플레이어들의 수였다.
아르헨이 데리고 온 영지의 부하들은 고작 천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동안 병합한 세력들을 합쳐도 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킹덤에 도착한 이들은 추적자팀과의 전투에서 상당수가 죽었기 때문이다.
비록 전투에서는 이겼다 할지라도 놈들이 끌고 온 확진된 몬스터와 싸우고 나면, 많은 영지민들이 바이러스에 확진되어 쓰러져갔다.
그들은 대부분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이곳에는 치료약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마나 포인트로 자체적으로 회복해서 극복하는 경우 외에는 대부분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지민들을 이끌고 킹덤에 자리 잡은 플레이어들은 인원이 천 명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저 인원은 헥터 말대로 수만 명은 될 것 같지 않은가.’
인원수가 의미하는 것은 아마도 병합한 다른 플레이어들을 받아들인 거겠지.
아르헨이 병합한 다섯 영지의 영지민들을 다 합치면 만 명 정도다.
그에 반해, 장현이 이끌고 오는 플레이어들의 수는 무려 수만 명.
그 의미를 짐작한 아르헨은 긴장했다.
“모두 전투를 준비해라.”
아르헨은 장현이 자신이 보낸 경고장을 받고 전투를 치르기 위해 온 것이라 여기고 부하들에게 전투 대비를 지시했다.
얼마 후, 장현이 아르헨과 마주섰다.
장현은 가능하면 전투를 치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회귀시킨 최후의 동료이자, 이번에도 반드시 힘을 합쳐야 할 동료였다.
신의 검의 주인이 되어 마왕과 싸워야 할 플레이어로 장현이 점찍은 이가 바로 아르헨이었다.
장현은 부하들을 대기시키고 단독으로 아르헨의 플레이어들 무리로 나아가 외쳤다.
“아르헨. 난 장현이오. 여기서 그대를 만나게 되어 반갑소.”
“장현, 그대의 이름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서 반가워할 정도로 친했던가? 그것도 이런 인원을 이끌고 와서 말이지.”
아르헨이 장현에게 대답했다.
“이제부터 친해지면 되지 않소. 아르헨 그대에게 긴히 할 얘기가 있는데 단 둘만의 자리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소.”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군. 나와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그렇소. 매우 중요한 일이오. 난 그대와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오.”
아르헨은 장현의 말에 결국 주위를 물러 둘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이제 얘기를 해보실까. 내 밑으로 들어오라는 경고를 받고 나와 싸우러 온 줄 알았는데.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지? 설마 내 밑으로 들어올 마음이 들었다는 건 아닐 테고.”
더 많은 인원을 이끌고 나타난 장현이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기 위해 찾아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장현은 아르헨의 싸늘한 말에 대꾸하지 않고, 천천히 어떤 한 인물에 대한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클라우드 제국의 아르헨, 모험가이자 헌터. 그의 좌우명은 될놈될 안될안. 좌우명의 유래는 자신의 인생여정을 설명하기 때문. 클라우드 제국의 공작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정실인 배다른 형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복수를 위해 헌터 길드에 뛰어들었고 헌터 길드장의 눈에 띄어 검술을 배웠다…….”
“잠깐! 너 대체 정체가 뭐지? 어떻게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냐.”
아르헨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맹세코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말한 적이 없었다.
아니지. 그의 사부였던 헌터 길드장에게는 자신의 사연을 말했지만 그는 이미 원래 세계에서 죽었다.
심지어 그에게도 자신이 공작가의 서자라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지방 귀족 가문이라고 했었다.
아르헨은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짚이는 게 있었다.
“넌 혹시 상대방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스킬이라든지 그런 걸 가지고 있는 거냐?”
아르헨이 검을 쥐었다.
자신의 과거를 허락도 없이 엿본 자라면 상대가 그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때 장현의 입이 열렸다.
“아르헨, 난 당신에게서 직접 이 얘기를 들었어.”
장현은 아르헨에게 받은 지식 속에 있던 그의 과거 기억을 언급한 것이다.
회귀 후 아르헨을 만났을 때 그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아르헨 스스로가 판단한 것이다.
이 사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회귀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기억 속 전언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난 그런 적이 없다. 너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너한테 직접 얘기를 했다고? 하하하. 장난하자는 거냐. 넌 내가 모르는 사이 나와 만난 적이 있다는 말이냐?”
“당신의 현재 기억 속에서는 그렇겠지. 난 미래에서 회귀했으니까.”
장현은 결국 그에게 털어놓았다. 아르헨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이후로 진행이 되질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계획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동료이기 때문이다.
마현이 마계에서 만난 사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아르헨은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는 용사이다.
“미래에서 회귀했다고? 크큭. 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이유가, 미래의 나에게서 직접 들었다 이거구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이 없군. 그래서 미래에서 온 플레이어 장현은 내게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지?”
아르헨은 조소하며 말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소릴 해서 오히려 그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질 정도였다.
적당히 혹할 만한 얘길 했다면 경계심을 유지했겠지만, 미래에서 회귀했다는 소릴 진지하게 하는 상대에게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스스로가 우스웠던 것이다.
그렇기에 대수롭지 않게 물었던 것이다.
장현은 그런 아르헨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기에 흥분하거나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제 곧 이곳 킹덤에서 플레이어들 간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내전이 발생할 거야.”
“그건 당연한 소리지. 퀘스트 보상을 보면 나름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 있는 자라면 누구나 왕좌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을까. 고작 그런 소리가 다라면, 이거 정말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는데.”
“아르헨. 플레이어들 간의 내전을 막지 않으면 결국 최후의 전투에서 마왕에게 패하고 만다.”
“최후의 전투에서 마왕에게 패한다고?”
아르헨은 다시 뜬금없는 얘길 하는 장현에게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최후의 전투에서 마왕에게 패한다면 마왕과 싸운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는 물론 언젠가 마왕을 쓰러트릴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장현이 어떤 소리를 이어갈지는 궁금했기에 마저 들어보고자 했다.
“이번 킹덤의 경기가 왜 생겼는지 알고 있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마계 마족들의 불만을 다스리기 위해 제물들이 필요해서지.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이 인간 플레이어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어서 격리시킬 명분도 필요하고 말이야. 그렇지만 마왕은 결국 우리 인간들을 마계에서 모두 없애버릴 생각이다. 그동안은 필요에 따라 인간들을 마계에 잡아왔지만 이제 그 목적도 곧 충족되기 때문이지.”
“킹덤 경기가 생긴 이유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나도 듣는 얘기가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인간들을 잡아온 목적이 충족된다는 건 무슨 소리지?”
“마왕과 대공은 창조신의 아이템을 천계에서 가져왔다. 거기에는 창조신의 권능이 담겨 있기에 그것을 얻는다면 능히 창조신의 반열에 올라갈 수도 있지. 현재의 마왕과 대공 같은 자들에게도 까마득한 존재가 창조신이야. 그동안 창조신의 아이템은 파손이 되어있었지만 다양한 세계에서 잡아온 인간들의 지식과 문화를 통해 그들은 그 파손된 아이템을 거의 다 복구했다. 그러니 더 이상 우리 인간을 살려둘 이유가 없어. 물론 굳이 죽일 이유도 없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변수가 생겼고. 마계주민들의 분노를 풀어줄 거리가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마왕군과 싸울 수밖에 없었고, 최후에는 나와 아르헨 그대를 비롯해 다섯 명만이 남게 되었지. 우리 다섯은 마왕과의 전투를 통해 그를 죽일 수 있는 수단을 발견했고,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과거로 돌아갈 수단이 있었고 내가 회귀했다. 난 너에게 직접 전해들은 얘기로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내 말을 믿어주겠나.”
장현은 말을 마치며 아르헨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르헨은 너무 엄청난 얘기를 들은 나머지 뭐라고 대꾸하기가 힘들었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상대방이 너무 진지한 표정이었고, 그는 결코 무시할만한 존재 또한 아니다.
그는 인간 플레이어들 중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이들 중 한 명이자, 왕좌를 차지할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거짓말을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한다고.
아르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 다섯 명이라고? 너와 나 외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누구지?”
“나, 아르헨, 마현, 테오, 제이미. 현재 킹덤에서 각 세력을 이끌고 있는 플레이어들이지.”
“흠,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뭐지? 네가 미래에서 회귀했으니 왕좌를 차지하고 마왕을 쓰러트리도록 도와달라는 건가?”
아르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