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플레이어 런 킹덤 (4)
안젤라가 마스크를 쓴 채 장현에게 아쉬운 듯 말했다.
“이렇게 마스크가 많이 팔릴 수 있는 시기에 너와 영지민 모두가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왔으니. 과연 반도체와 마스크 생산이 제대로 돌아갈지 의문이구나. 비단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킹덤에서도 계속 마스크가 필요한 상황인데.”
그녀의 말에 장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어차피 OEM으로 드워프들에게 위탁해놓았습니다. 마스크 생산 역시 리자드맨들에게 위임시켰습니다. 주택 건설과 축산 클러스터 역시 크로커다일들에게 위임시켰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호오, 준비를 철저히 했구나.”
“그동안 어떻게 일군 영지이고 사업체인데, 그냥 내버려둘 수야 없지요.”
“그럼 내가 따로 도와줄 것도 없겠는걸.”
“에이, 왜 그러세요.”
장현이 안젤라의 양 어깨를 붙잡고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젤라님은 그냥 이렇게 제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얼마나 감동 받았는데요.”
“흥. 말했잖아. 내가 온 건 음양합일신공 때문이었다고.”
“거짓말!”
그 순간 장현의 입술이 다시 안젤라의 입술을 덮었다.
“으읍.”
안젤라는 눈을 크게 떴으나, 이내 가만히 그를 받아들였다.
잠시 후 그를 두 손으로 살짝 밀어낸 안젤라가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 때나 이런 식으로 날 건드리면 안 돼. 그럼 네가 날 우습게 여기는 걸로 알고 난 돌아가 버릴 거야.”
“알겠어요. 더 이상 안 그럴게요.”
안젤라가 주의를 주자 장현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는 재빨리 새로운 주제를 꺼내는 게 좋았다.
그는 포프에게서 받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모듈을 꺼냈다.
“이건 혹시 반도체와 패드 부품?”
안젤라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보더니 물었다.
“맞아요. 이건 반도체와 패드를 구동시키는 모듈입니다. 앞전에 얘기하셨죠? 창조신의 패드가 파손되었다고요. 제가 한번 복구시켜 보려고요. 이건 그 부품들입니다.”
“이걸로는 불가능해. 일반 패드와 창조신의 패드는 형태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달라. 물론 부품 역시 다르고. 그게 가능했으면 진즉에 복구했겠지.”
“그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잊으셨군요. 전 대장장이이기도 하지만 연금술사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이것들로 창조신의 패드 부품을 만들겠다는 거야?”
안젤라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리 장현이 연금술사라고 해도 창조신의 패드를 복구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이 모듈은 일반 금속이 아니에요. 이걸 연성술을 사용해 새로운 금속으로 만들 겁니다. 그리되면 창조신의 패드용 부품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새로운 금속으로 창조신의 패드 부품을 만들 수 있다고?”
안젤라는 불신어린 표정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장현이 이 정도로 확신한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창조신의 패드 부품뿐이 아닙니다. 이 금속은 아마도 백신 저장 용기로도 쓰일 수 있을 겁니다.”
“으응, 백신 저장 용기? 뭐? 백신 저장 용기라면, 설마 백신을 만든 거야?”
안젤라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가능성만 확인해본 상태인데다 임상을 거친 것도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어요. 확진자를 잡아서 바이러스 샘플을 채취하면 그때서야 제대로 만들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겠죠.”
안젤라는 장현을 신기한 물건 보듯이 보았다.
그가 가진 재능이 남다른 것이란 건 진작 알았지만, 설마 바이러스 백신까지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 못한 것이다.
장현이 그런 안젤라의 표정을 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충분히 어색한 분위기는 돌렸으니 이동해야 할 때다. 그래야 백신 샘플 또한 얻을 수 있을 테고.
“안젤라님, 곧 추적자들이 따라붙을 겁니다. 그들의 선두에는 아마도 확진된 몬스터들이 있을 것이고요.”
“그렇겠지.”
장현의 말에 안젤라 역시 진지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중 백신 샘플용으로 확진된 몬스터를 몇 마리 잡을 것입니다. 그 외에는 필요 없으니 다 죽여야죠.”
***
장현과 안젤라가 킹덤의 입구를 향해 나아간 지 얼마 후.
예상대로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놈들의 상태는 지구에서 보던 영화 속 좀비나 다름없었다.
다만 사람이 아닌 몬스터 좀비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크르륵.
기차역에서 보던 좀비와 외양은 비슷하지만 놈들에게서는 뭔가 다른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컥. 컥. 컥.
초록빛 기운이 몬스터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역시, 모두 확진된 몬스터들이군.”
그는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창을 꺼냈다.
보호막 형성 마스크를 썼다고는 하지만, 가능하면 확진자들에게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았다.
현재 장현은 음양합일신공이 대성에 이르면서 경기 시작 전보다 일취월장한 상태다.
그의 단전은 내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확장되었다.
대성에 이른 내공이 단전에 가득 차 있었기에, 그는 여느 플레이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더군다나 그의 곁에는 역시 대성을 이룬 안젤라가 있었다.
그녀는 고위 마족의 신체까지 지녔기에 장현보다 더 강했다.
물론 강함을 판단할 때 내공과 육체적 능력만이 아닌 전투 능력 또한 봐야겠지만.
안젤라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강자임에는 분명했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몬스터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만 주의한다면 처리하기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저놈들에게서 백신샘플을 얻어야하니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안젤라님은 뒤에 계세요.”
“알겠어. 장현, 조심해.”
안젤라의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기에 장현은 미소를 지었다.
몬스터들의 눈은 빨갰고,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녹색 아지랑이의 기운은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녹색 기운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겨졌다.
치이익.
몬스터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녹색 기운이 보호막을 파고들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안심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푹! 푹!
그가 창을 찌르면 한 마리의 몬스터는 반드시 쓰러졌다.
몇 번 움직이지 않고 그는 추적자 몬스터들을 모두 쓰러트렸다.
어차피 쓰러진 놈들이었지만 다시 움직이지 못하게 샘플용 두 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머리를 박살내버렸다.
“자, 샘플용으로 두 마리는 내버려뒀고. 남은 이놈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바이러스가 안 퍼질까.”
놈들을 내버려둔다면 언데드로 부활할지도 모른다.
가장 좋은 건 태워서 없애는 것이다.
장현은 오랜만에 쑤엉을 불렀다.
“쑤엉.”
쑤엉의 몸체에서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쑤엉은 아직 상급 정령으로의 진화를 끝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쑤엉의 몸체의 힘을 빌리면 중급 정령의 화염을 쓸 수는 있었다.
장현은 인벤토리에서 화로를 꺼내 샘플용 두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몬스터들을 모두 그곳에 집어넣었다.
이어 쑤엉의 몸체를 꺼내 화로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이놈들은 모두 바이러스에 확진된 몬스터들이다.
잔해가 남는다면 대기 중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오랫동안 불을 피웠다.
모든 몬스터 사체들이 재만 남기고 타버리자 불은 곧 스스로 꺼졌다.
화로 속 잿더미를 치우던 장현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엄지손톱 크기의 녹색 알갱이들이었다.
수십 마리의 확진된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태웠기에 그 정도 크기의 알갱이들이 남을 수 있었다.
장현은 녹색 알갱이들을 끌어 모아 감정 스킬을 사용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의 결정체]
-코로나바이러스의 정보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것일 줄은 알았는데. 백신의 결정체였다니.”
이러면 굳이 샘플용 몬스터들을 살려둘 필요가 없다.
아직 살아있는 놈들을 화로에 던져 같이 태우려다가 잠시 멈추었다.
어쩌면 곧 쓸데가 있을지도 모른다.
장현은 안젤라에게 말했다.
“안젤라님, 이 녹색 알갱이로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네. 그렇지만 백신이라는 게 종족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몰라요.”
장현은 마족을 위한 백신은 아직 개발할 생각이 없었다. 이것은 인간을 위한 백신이었다.
다만, 이제 자신의 여자나 다름없는 안젤라를 위한 백신은 만들어야겠지.
그렇게 되면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 만드는 백신은 인간을 위한 백신이겠구나.”
“엄밀히 말하자면 저와 소성주님을 위한 것이죠.”
“나도 될까? 난 마족이잖아.”
“안젤라님을 위한 백신도 만들어야죠.”
“종족에 따라 작용한다고 했으니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도 백신이 효과 있겠네.”
“그래요.”
그 말에 안젤라는 베시시 웃으며 장현에게 매달렸다.
뭉클.
장현은 등에서 느껴지는 안젤라의 신체에, 잠시 얼굴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한눈팔지 않고 백신 제작을 위해 연금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연금술사 조각의 특성 발동]
-연금술사 조각이 해당 물질을 분석합니다.
-기존에 없었던 미확인 물질이라 분석하는데 시간이 지연됩니다.
고급 연성술의 숨겨져 있던 스킬이 조건이 충족되어 발동됩니다.
-히든 스킬 mRNA 플랫폼 기술이 백신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백신의 효과를 사전 테스트 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 임상에 비해 유의성 확보가 다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역시 된다.’
고급 연성술의 효과다.
연금술사 조각의 특성이 자동으로 발동했다.
장현은 희열을 느꼈다.
그때 안젤라가 말했다.
“장현, 내가 따로 도와줄 일은 없어?”
물론 있다.
“백신을 한번 제조할 때마다 내공의 소모가 클 거예요. 그러니 작업이 끝날 때마다 운기를 해야 하니 그때 도와주시면 돼요.”
“뭐, 그거야 간단한 일이지.”
안젤라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강해지는 수단이라 가능한 많이 하는 게 그녀에게도 좋다.
다만 운기하는 과정에서 마치 사랑을 나눌 때와 비슷한 쾌감이 느껴졌기에, 조금 전 그와 사랑을 나눈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웠던 것이다.
장현은 곧장 연성술을 시전했다.
그의 손에서 빛이 일어나고, 녹색 알갱이 중 일부가 그 빛에 휘말렸다.
장현은 연금술사 조각이 안내하는 mRNA 기술을 활용해 백신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두 가지 방식의 백신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라고.’
장현은 연금술사 조각이 전하는 정보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원리는 그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두 가지 방법으로 제조가 가능하다고 하니 둘 다 만들어보고 효과가 좋은 걸 사용하면 될 것이다.
다행히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사전 테스트를 해볼 수 있었다.
‘과연 히든 피스인 연금술사 조각의 권능이로군.’
1회차 때도 대장장이 조각의 권능으로 제작 방법을 모르는 아이템들을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있었다.
곧이어 연금술사 조각의 권능으로 백신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장현은 안젤라도 가상 시뮬레이션을 볼 수 있게 했다.
먼저 첫 번째 방식의 백신이 제조되기 시작했다.
시뮬레이션 속에서 녹색 알갱이들이 분리되고 희석된다.
시뮬레이션 상에서 250mg의 희석된 코로나 바이러스 알갱이가 단백질 형태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때 시뮬레이션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난다.
단백질은 그 사람의 체내에 들어가 몸속의 면역체계와 싸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희석된 바이러스였던 단백질은 면역체계를 이기지 못해 점점 줄어들더니 곧 모두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안젤라가 물었다.
“장현, 이거 지금 백신이 바이러스를 물리친 거 맞지?”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다른 방법의 백신 제조 기술도 있어요. 그것도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도록 할게요.”
다시 영상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두 번째 방식의 백신이 제조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녹색 알갱이들이 단백질이 아닌 아데노바이러스 형태로 바뀌었다.
아데노바이러스는 시뮬레이션 영상 속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더니 곧 면역체계와 싸우기 시작했다.
면역체계는 이번에도 아데노바이러스를 상대로 이겼다.
영상이 끝나지 않고 다시 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