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플레이어 런 킹덤 (3)
안젤라가 장현에게 말했다.
“그래. 지금 보내준 링크를 열면 나의 위치가 전송될 것이다. 목적지를 그곳으로 설정하면 화살표가 안내할 것이야. 그리고 이후부터는 음양합일신공 표지를 통해 연락하자.”
“알겠습니다.”
장현은 보내준 링크를 열었다.
그녀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마치 네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한 것처럼 그녀와 자신 사이에 노란색 굵은 실선이 상태창에 표시되었다.
“신기하군요. 이것은.”
“고위 마족의 권능 중 하나야. 설정된 길을 따라오면 된다.”
“네.”
장현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도 안젤라와 헤어지게 돼 마음이 심란했었다.
처음에는 그저 테오가 내린 미션과 퀘스트 때문에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한 것이었다.
그녀를 유혹하려고 애쓰던 중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감정이 생겨났다.
어쩌면 서큐버스의 유혹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그 마음을 부정하려 했다.
한편으로는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조차 없었다. 짊어진 짐이 무거워서였다.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과거로 보내준 동료들의 희생이 있어서였다.
마왕을 물리쳐야 하는 임무를 가진 그다.
퀘스트나 임무수행의 과정이 아니고서는 안젤라와 진지한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젤라의 사랑을 얻으라는 퀘스트를 성공했다면 몰라도, 결국 경기를 위해 영지를 떠날 때까지 퀘스트는 성공하지 못했다.
장현은 결국 그녀의 사랑을 얻는 데에 실패했다고 여겼다.
물론 퀘스트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기에 나중에라도 기회는 있었다.
‘그런데 경기에 플레이어팀으로 지원했다니.’
장현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안젤라가 보고 싶었다.
분명 헬릭스 성에서 인사하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장현은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젤라에게 가는 길은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직 경기 초입 부분이었기에 강력한 마족이나 몬스터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곧 장현은 숲 한가운데에서 가벼운 무장을 한 안젤라를 볼 수 있었다.
이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현은 두 눈으로 보고서야 실감이 났다.
“안젤라님, 정말 안젤라님이 경기에 참가하셨군요.”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 줄 알았느냐?”
안젤라는 정말로 플레이어팀으로 경기에 참여한 것이다.
장현은 그녀를 보고 밝은 미소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안젤라님.”
안젤라는 피식 웃었다. 그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티내고 싶진 않았다.
“아까운 수하를 잃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장현 역시 안젤라의 말에 씨익 웃었다.
“이렇게 둘만 있으니 박람회가 끝나고 드림히트 성으로 가던 때가 떠오르는군요.”
“이번에는 그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할거야. 내가 괜히 여기에 합류한 게 아니니까.”
“그래도 안젤라님이 계시니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얻은 정보를 활용한다면 좀 더 쉽게 이곳을 통과할 수 있을 거야.”
안젤라의 말에 장현은 눈을 번뜩였다.
“혹시 아는 것이 있으신가요?”
“이번 플레이어 런 킹덤의 경기 운영 목적이 뭔지는 알고 있다.”
안젤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마계에 퍼진 확진자들의 처리와 동시에 플레이어 중에서 면역력을 가진 자를 찾아내 백신을 제작하는데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야. 그리고 마계주민들에게서 격리하기 위함 또한 있고.”
“그게 이 경기의 목적이란 말씀입니까?”
“그래. 코로나 바이러스는 너희 인간들에게서 시작된 바이러스지만 우리 마족에게도 치명적이지. 가진 마나 포인트를 모두 잃게 되니깐.”
“그럼 안젤라님도 위험해지시는 거 아닙니까?”
장현은 걱정이 되어 물었다.
그 말에 안젤라는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쳤다.
“바보 같긴! 난 이미 음양합일신공을 전수받은 뒤로 계속해서 수련하고 있잖느냐. 그리고 네가 없으면 더 이상 수련할 방법이 없다. 홀로 할 수는 있지만 이건 함께해야 효과가 크니까. 그리고 난 마스크를 넉넉히 챙겨왔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안젤라는 장현의 눈을 슬쩍 피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그전에 내공 수련부터 하고 움직이도록 할까요?”
장현이 고개 돌린 그녀의 얼굴 앞으로 돌아가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젤라는 슬며시 자신의 눈앞에 들이민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두근거려.’
안젤라는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안젤라님?”
장현이 대답 없이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불렀다.
그제야 안젤라가 대답했다.
“그래. 네 말대로 내공 수련부터 하고 움직이도록 하자.”
안젤라의 말에 장현은 씨익 웃었다.
지네차에서 처음 수련한 이후로 계속해서 함께 해온 음양합일신공 내공 수련은 매번 할 때마다 기쁨을 안겨주었다.
내공이 차오르는 것은 둘째 치고, 수련에 대한 쾌감과 즐거움이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득 부작용이 떠올랐다.
‘과연 이걸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장현과 안젤라는 숲 속에서 바닥에 마주 앉아 손바닥을 맞대었다.
장현의 단전에서 음양합일신공의 기운 한 가닥이 실처럼 빠져나와 전신을 순회하고 오른쪽 손바닥을 통해 안젤라의 왼쪽 손바닥으로 들어갔다.
장현의 기운은 곧장 안젤라의 단전으로 내려가 그녀의 단전에 있는 음양합일신공의 내공을 슬며시 건드렸다.
그러자 안젤라의 내공 기운이 경계하듯 장현의 기운을 탐색하더니, 이내 익숙한 기운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어울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장현과 안젤라의 내공 기운은 실이 매듭을 맺듯 합쳐져 안젤라의 전신 혈도를 돌기 시작했다.
음의 기운과 양의 기운이 번갈아 가며 혈도를 청소하고, 기운이 지나간 곳은 혈맥이 강하고 튼튼해졌다.
그렇게 안젤라의 전신을 순환한 기운의 매듭은 다시 장현의 전신 혈도를 돌면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두 남녀의 내공은 일주천, 이주천 순환이 일어남에 따라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물줄기 같았으나 여러 차례 순환을 거듭함에 따라 기운의 줄기는 어느새 강물과도 같이 커졌다.
‘이전과는 달라.’
‘다시 한 단계의 벽을 넘고 있어.’
기운이 지나가며 느끼는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해서 장현과 안젤라는 서로의 몸속을 두 눈으로 보듯이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서로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도 공유하게 됨에 따라 지금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서로를 원하는 마음,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 서로를 안고 싶어 하는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장현과 안젤라는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해 흘렀다.
이윽고 내공 운기가 끝이 났다.
맞닿은 손을 조심스럽게 떼고 감았던 눈을 떴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보다가 상대의 감정이 자신이 느낀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둘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입술이 포개어지고, 그렇게 숲속의 한가운데서 정신없이 사랑을 나누었다.
[히든 퀘스트 안젤라의 사랑을 얻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음양합일스킬이 대성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마계의 고위 마족인 안젤라가 플레이어 장현의 사랑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안젤라는 마왕 후보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안젤라의 사랑을 얻은 장현은 안젤라가 마왕에 등극할 경우 대공의 지위에 오를 수 있습니다.]
퀘스트 알림이 연이어 울렸다.
‘사랑을 얻었다고?’
장현은 자신의 눈앞에 얼굴이 붉어진 채 눈을 감고 있는 안젤라를 보았다.
분명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이다.
하긴, 사랑을 나누는 중이니 사랑을 얻었다는 말이 맞겠지만.
보상 알림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안젤라까지 단숨에 대성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안젤라가 마왕 후보 자격을 얻었다.
부끄러움에 떨고 있는 이 서큐버스가 마왕 후보라니.
더군다나 장현 자신이 대공?
이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장현, 무슨 생각해?”
사랑을 나누다 갑자기 멈춘 장현에게 안젤라가 물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흔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생각해보자.’
장현은 눈을 감았다. 다시 입술을 포개고 그녀를 안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둘은 풀숲에 누운 채로 말이 없었다.
모든 행위가 끝나고서야 지금 일어난 일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안젤라와 사랑을 나누다니.’
그 소성주 안젤라와.
믿어지지가 않았다.
눈앞에 뜬 테오의 전언이 현실을 확인시켜줬다.
[장현, 드디어 안젤라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구나.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이 전언이 너에게 보인다면 넌 이미 그녀의 사랑을 얻는데 성공했겠지. 그게 이 전언이 전해지는 조건이었으니까. 수고했어. 모태솔로인 줄 알았는데 서큐버스의 사랑을 얻다니. 솔직히 놀랐다. 그동안 놀린 걸 사과하도록 하지. 이제 그녀의 사랑을 얻었으니 마왕을 쓰러트리기 한결 쉬워질 것이야. 그렇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제 목표가 머지않았겠지. 너의 성공을 기원한다.]
대수롭지 않게 테오의 전언을 읽은 장현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안젤라를 보았다.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다.
그녀가 이렇게 자신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안젤라의 눈이 살짝 뜨였다.
“뭘 보고 있어?”
“안젤라님의 자는 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그 말에 안젤라가 샐쭉 웃더니 눈을 감았다.
“행복하구나.”
“무엇이 말인가요?”
“그냥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난 지금껏 한 번도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 마치 네가 대장장이 일을 하면서 즐거워 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런데 문득 행복하다는 게 이런 감정이 아닐까 생각되는구나.”
“저도 소성주님과 함께 있어서 행복합니다.”
“정말이냐?”
“네.”
“너의 그 말, 듣기 좋구나.”
장현의 대답에 안젤라는 미소를 활짝 띠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둘은 그렇게 다시 사랑을 나누었다.
한참이 지난 후, 장현과 안젤라는 킹덤으로 가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장현, 이제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추적자팀에서 우릴 쫓기 시작할 거야.”
“그럼 서두르도록 하죠. 이때를 위해 내공 운기를 했던 거니까요.”
“이때를 위한 것이 맞느냐?”
얼굴이 붉어진 안젤라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뭐, 삼천포로 빠지긴 했지만. 어쨌든 음양합일신공을 대성했으니 내공은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삼천포? 그게 뭐지?”
“아닙니다. 고향에서 쓰던 말입니다. 이제 마스크부터 쓰도록 하지요.”
“그러도록 하지. 그보다 너의 고향은 어떤 곳인지 궁금하구나.”
안젤라가 마스크를 쓰면서 말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함께 가도록 하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안젤라의 눈빛이 깊어졌다.
“제가 이 경기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현은 그 뒤에 덧붙이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마왕을 쓰러트리고, 인류의 독립을 이루어낸 후.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지요.’
장현과 안젤라가 마스크를 착용하자 이윽고 마스크에서 전신을 덮는 얇은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안젤라가 신기한 듯 보호막을 두들기자 탕탕 하는 맑은 소리가 울리며 보호막이 물결치듯 움직였다.
“흐음. 이 정도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기 중에 가득하더라도 안전할 테지?”
“물론입니다. 마계의 그 어떤 마스크보다 뛰어난 성능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 될수록 이 마스크는 헬릭스 성과 김덕배 영지에 막대한 포인트를 안겨다줄 것입니다.”
안젤라의 물음에 장현이 씨익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