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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82화 (82/211)
  • 82화. 대공의 박람회 (2)

    “대체 뭣들 하는 것이오!”

    그때 지네의 형상을 한 마족이 나타나 강하게 꾸짖었다.

    지네 마족은 몸통의 절반이 땅에 닿아 있었고, 남은 절반은 위로 꼿꼿이 세운 상태였다.

    지네 마족의 배에 달린 수많은 발들에서 실선 같은 얇은 기운이 흘러나와 헬릭스와 에첼비를 감싸기 시작했다.

    지네 마족이 쏘아 보낸 실선은 계속해서 둘을 감싸더니 어느새 공처럼 둥근 보호막을 형성했다.

    그러자 두 마족을 중심으로 사방에 퍼져나가던 기운이 보호막을 넘지 못하고 진정되어갔다.

    헬릭스와 에첼비는 그제야 지네마족의 개입을 알아차리고 서로를 향한 공격을 거두었다.

    이곳이 어떤 곳이고, 지네 마족의 신분을 알기에.

    더 이상 힘을 쓴다는 것은 그 주인을 무시하는 게 되는 걸 알았다.

    둘이 싸움을 멈추자 보호막 역시 흩어지며 사라졌다.

    지네 마족이 두 마족 앞에 다가와 목소리를 높였다.

    “두 분은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잊은 겁니까?”

    “미안합니다. 나실 장로.”

    헬릭스가 공손히 사과했다.

    나실 장로는 대공의 비서실장과도 같은 신분을 가진 이다.

    박람회를 직접 기획하고 주최한 실무자로 같은 대공 측의 귀족이기에 헬릭스와의 사이도 나름 좋은 편이었다.

    비록 실력은 헬릭스에 약간 못 미치지만, 대공을 직접 곁에서 모시는 만큼 실질적인 위치가 낮지 않은 것이다.

    나실은 이어 에첼비를 돌아보았다.

    “에첼비, 이곳에 모습을 보이다니 의외로군. 그 담대한 기개는 칭찬하지.”

    나실은 비꼬듯 에첼비를 향해 말했다.

    그는 에첼비의 존재를 보고서야 헬릭스가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이곳이 박람회 장소만 아니었다면 먼저 공격했을 것이 분명했다.

    “흥. 귀하의 칭찬 감사하는 바요.”

    에첼비는 뻔뻔한 얼굴로 웃으며 대꾸했다.

    실로 낯짝이 두껍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나실은 대번에 인상을 굳히고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킬 정도로 용기가 담대한 것을 보니 대공 전하를 뵙는 것도 피하지 않겠지.”

    “그건…….”

    나실의 말에 성난 황소 같던 에첼비가 주춤거리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한 태도였던 그가 대공 얘기가 나오자 곧바로 쩔쩔매는 모습은 우스웠지만 주위에서 지켜보는 자들 중 웃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전장의 맵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장현 일행은 실소했다.

    김덕배가 중얼거렸다.

    “저 자식, 대공 얘기 나오니까 바로 꼬리 말아버리네.”

    “대공을 만나면 바로 죽을 것 같아 그러겠지. 보아하니 대공한테 죽을죄를 진 것 같은데 말이야.”

    장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화면 속에서 다른 마족이 등장했다.

    “나실, 너무 에첼비를 몰아붙이게 말게나. 이번에는 대공께서 주최하신 박람회이니만큼 너그럽게 넘어가줬으면 좋겠군. 손님 접대에 문제가 있다는 뒷말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은가.”

    “제넥스 성주.”

    나실과 헬릭스의 표정이 굳었다.

    제넥스 옆에는 제시카가 함께 있었다.

    헬릭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안젤라와 제시카 간에도 신경전이 일었다.

    “제시카, 박람회를 무척 기다렸다. 대결은 잊지 않았겠지?”

    “하하하, 박람회가 끝날 무렵 네 표정이 기대되는구나, 안젤라.”

    소성주들의 대화를 들은 장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거 아르헨에게 졌다간 소성주한테 사랑을 얻기는커녕 칼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는걸.’

    그때 장현 일행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이쪽으로 모이세요.”

    장현과 일행들은 자신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튜토리얼에서 보았던 마족과 비슷한 외형이었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 등에는 박쥐의 날개를 단 마족이었다.

    “엇, 데니우스?”

    김덕배가 부지불식간에 외쳤다.

    그 말을 들었는지 마족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호오. 그대는 튜토리얼에서 만났던 플레이어로군요. 여기까지 살아서 오다니 축하합니다.”

    “이이익, 네 놈!”

    데니우스에 대한 기억이 워낙 공포로 각인되었기에 김덕배는 순간 얼어붙었지만, 곧이어 그에 대한 분노가 공포를 넘어섰다.

    김덕배의 반응을 지켜본 데니우스는 피식 웃었다.

    “난 대공 전하의 박람회 이벤트 경기를 진행하기 위해 고용된 플레이어 관리자 데니우스입니다. 저에 대한 소개는 따로 더 하지 않아도 괜찮으실 테구요. 그보다, 그대들은 어디 소속인가요?”

    꿀꺽.

    마족 데니우스의 질문에 김덕배는 조금씩 두근거림이 진정되었다.

    지금 데니우스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무엇보다 분노를 터뜨린다고 그와 싸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아니, 싸워서 죽인다고 하면 더 큰 문제다.

    놈은 이번 이벤트 경기의 플레이어 관리자라고 했다.

    김덕배가 사고치기 전에 장현이 먼저 데니우스에게 대답했다.

    “우린 헬릭스 성주를 따라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성주가 저기서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말이야.”

    김덕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흘깃 쳐다본 데니우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헬릭스 성주님 소속 플레이어였군요. 여러분은 저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절 따라 여기 플레이어 명부에 등록을 하시면 됩니다.”

    데니우스의 말에 김덕배와 일행들은 명부 등록을 위해 대기했다.

    잠시 후 데니우스의 눈동자가 그들을 하나하나 훑었고, 동시에 각각의 사람들은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소속 – 헬릭스, 신분 – 플레이어, 이름 – 김덕배, 대공전에 입장했습니다.]

    [소속 – 헬릭스, 신분 – 플레이어, 이름 – 장현, 대공전에 입장했습니다.]

    [소속 – 헬릭스, 신분 – 플레이어, 이름 – 이나연, 대공전에 입장했습니다.]

    [소속 – 헬릭스, 신분 – 플레이어, 이름 – 최형석, 대공전에 입장했습니다.]

    [소속 – 헬릭스, 신분 – 플레이어, 이름 – 김태석, 대공전에 입장했습니다.]

    명부 등록을 끝낸 데니우스가 말했다.

    “여러분은 이제 등록을 마쳤습니다. 이후로는 각지에서 모인 플레이어들이 머무르는 휴게실로 이동하면 됩니다. 곧 경기가 시작될 테니 서두르세요.”

    “잠깐만요. 우린 앞으로 어떤 경기에 참여하게 되는 건가요?”

    데니우스의 말에 이나연이 나서서 물었다.

    그녀는 지금 이대로 무작정 따라가기가 찜찜했다.

    모든 경기는 항상 큰 위험이 따랐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벌어질 경기는 각 영지전에서 승리한 자들만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자신들 또한 그랬듯이.

    영지전의 승자들 중 관리자급 이상만 모아서 벌이는 승부가 안전할 리 없다.

    경기 시작 전까지 가능한 정보를 많이 얻어둬야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영지전처럼 다른 플레이어들과 직접 다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누구와 싸운다는 거죠?”

    데니우스의 아리송한 대답에 이나연은 재차 질문했다.

    “플레이어가 아닌 다른 이종족이죠. 그들을 상대로 싸워야 합니다.”

    “이종족이라니, 대체 그들은 누군가요?”

    “어차피 경기에 나서게 되면 알게 될 겁니다. 특정인에게 많은 정보를 주면 경기의 공정성을 해칠 수가 있습니다.”

    “제발! 부탁이에요. 플레이어들과 싸우는 건 아니라면서요. 전 경기의 승자가 되고 싶다거나 한 게 아니에요. 그저 살아남고만 싶은 거라구요.”

    이나연은 데니우스의 말에 매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데니우스의 표정이 변하며 말투가 싸늘해졌다.

    “쯧쯧, 좋습니다. 조금만 더 알려드리죠. 그들은 거인족입니다. 당신들과 같은 지적 생명체이지요. 마족이 여러 종족이 있듯이 인류도 여러 종족이 있더군요. 여러분처럼 소인족도 있지만 거인족도 있답니다. 다음 경기는 그 거인족들을 상대로 살아남는 겁니다. 한 쪽이 전멸할 때까지요.”

    “뭐, 뭐라고요. 한 쪽이 전멸할 때까지?”

    “그러니 살아남고 싶다면 최대한 적을 많이 죽이세요.”

    “시, 싫어! 한 쪽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라니. 그게 무슨 경기야. 제발 경기 내용 좀 바꿔줘요. 꼭 죽여야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쯧쯧, 안타깝습니다. 아직도 플레이어의 본분을 모르는군요.”

    “플레이어의 본분이라니, 그게 상대를 죽이거나 내가 죽거나 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난 그런 본분 따위 필요 없어요. 거부하겠습니다.”

    이나연은 악에 받쳐서 힘주어 얘기했다.

    이제는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그런 말은 힘을 갖추고나 하는 겁니다. 플레이어 이나연 씨. 능력이 안 되는 자가 그런 말을 하는 건 그냥 죽여달라고 하는 거죠. 안타깝군요. 당신에게 쓸데없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데니우스는 고개를 저으며 이나연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이나연에게 향한다면 그녀는 튜토리얼에서 그랬던 것처럼 펑! 하고 터지고 말 것이다.

    그 순간 장현이 데니우스의 앞에 나타났다.

    “입장 확인됐으면 저희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데니우스의 손가락이 스윽 아래로 향했다.

    “운이 좋았군요. 과연 그 운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장현은 이나연이 또 사고를 칠까봐 억지로 그녀를 끌고 들어갔다.

    “이나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우리가 왜 저들 뜻대로 죽거나 죽여야 되는 거야? 플레이어의 본분 그 따위 것 개나 주라고 해. 나쁜 놈들. 내가 마족 놈들 모두 죽여버릴 거야.”

    마족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듯 했다.

    “그래, 우리를 괴롭히는 마족 놈들은 모두 죽이자. 그래서 더 이상 저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지.”

    장현이 이나연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가능할까? 장현. 정말 우리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래.”

    장현은 눈물이 글썽이는 이나연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고마워, 장현.”

    “그런데 이나연, 그동안 존대하다가 화나니까 또 반말하네. 그냥 편하게 말해. 어차피 나보다 나이도 많잖아.”

    장현이 농담조로 약 올리듯 말했다.

    그 말 덕에 이나연은 마음을 다스리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진정이 되자 그녀는 조금 전 자신이 한 행동이 부끄러워졌다.

    하마터면 헛되이 죽을 뻔했다.

    그 뿐 아니라 말리던 일행들에게까지 큰 폐를 끼칠 뻔한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개죽음이다.

    “나연 누나, 이제 좀 괜찮아?”

    “응. 미안해, 덕배야. 나 너무 민폐만 끼치지?”

    “아니야. 나도 사실 힘들었어. 오히려 누나가 데니우스한테 그렇게 쏘아붙여주니 속이 다 시원한걸.”

    “속이 시원하다고?”

    “응,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거든. 누나가 대신 해줬잖아.”

    “일단은 당장 닥친 일부터 하나씩 해결해가자! 반드시 우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장현의 확신에 찬 말을 듣자, 이나연들은 그 말이 정말로 실현될 것만 같았다.

    이나연이 소란을 벌이는 모습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눈에도 자연스럽게 띄었다.

    그들은 이나연을 보며 비웃었다.

    “크큭, 저 애송이들은 뭐야?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눈물이 글썽글썽, 와 제발 부탁이에요 하는 거 들었냐? 튜토리얼도 아니고 여기에서 우는 사람을 볼 줄이야.”

    “뭐, 계집애잖아. 계집애가 이런데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했겠냐?”

    “오오, 그럼 저기 세 명 중에 서방이 누구려나?”

    “왜 한 명일 거라 생각하지?”

    “이야, 너 천잰데. 그럼 나도 저년 서방이 되어볼까.”

    남자들 몇 명이서 이나연을 가리키며 성희롱 발언들을 내뱉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들으라는 듯 말을 했다.

    이나연이 분노하기 전, 최형석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지팡이를 들고 땅을 후려치자 삼두견과 스켈레톤 수십 마리가 소환되어 성희롱한 남자들을 둘러쌌다.

    언데드들 사이로 최형석이 나타나 남자들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욕을 퍼부었다.

    “이 망할 놈의 쓰레기 새끼들이 어디서 아가리를 함부로 놀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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