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안젤라를 맞이하다 (3)
안젤라는 장현에게 농염한 마기를 내뿜으며 매혹의 스킬을 사용했다.
이것은 그녀가 서큐버스라는 마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레 얻은 것이다.
서큐버스는 마족 종족 중 하나로 육감적인 몸매를 지녔으며 남성을 유혹하여 정기를 갈취해 자신의 힘의 근원으로 삼는다.
안젤라는 어머니의 피를 이어 서큐버스의 종족으로 태어난 덕에 남성을 유혹하기에 최적인 외모를 타고났다.
그뿐 아니라 그녀의 매혹 스킬은 이런 그녀의 특성을 강화했다.
아버지인 헬릭스의 피를 이어받아 강대한 마기를 바탕으로 한 그녀의 스킬에 적중당한 장현은 순식간에 가슴이 요동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크윽. 이, 이건.’
장현은 지금 가슴이 두근두근 요동치며 전신의 기혈이 들끓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의 환상이 눈 앞에 펼쳐진 가운데 안젤라가 요염한 모습으로 그에게 안겨 왔다.
‘이건 안젤라의 스킬이야.’
장현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환상이며 안젤라의 스킬에 당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의 능력으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지.’
그가 전력으로 십성에 이른 내공을 운기 하며 매혹의 스킬에서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 로메드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안젤라 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로메드의 고함과 동시에 장현을 덮친 매혹의 스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헉! 헉!”
장현은 정신을 차렸지만, 전신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새삼 안젤라가 고위 마족인 헬릭스의 딸이라는 것이 와닿았다.
그녀 역시 고위 마족의 피를 타고난 강자다.
아무리 그가 환생자이며 인간 플레이어 중 강자라고 할지라도 안젤라에 비하면 벌레나 마찬가지였다.
‘위험했어. 저자가 아니었다면.’
장현은 정신을 차리고는 안젤라를 막은 로메드를 보았다.
“안젤라 님! 방금 하신 일은 엄연히 영지전에 개입하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다 녹화되고 중계된다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만약 헬릭스 성주님께서 아신다면 큰일 날 것입니다.”
“쳇! 고작 매혹의 스킬을 썼다고 큰일까지야…….”
“안젤라 님!”
“알았어! 알았어! 앞으로 조심할게”
로메드가 다시 한번 그녀를 보고 소리치자 그녀는 듣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방금 그녀가 장현에게 매혹의 스킬을 쓴 것은 사실 그를 의심해서였다.
‘히든 피스의 개봉과 관련 있는 자가 아무래도 이 자 같은데.’
물론 안젤라도 이성훈이라는 공무원이 그녀를 안내하며 설명한 점으로 보아 영지를 일으키는 데 이바지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히든 피스는 다르다.
헬릭스 성주마저 접근하기 힘든 비밀과 관련된 자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평범했다.
딱! 일 잘하는 수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반면 장현은 다르다.
그녀도 인간 플레이어들이 튜토리얼을 끝내고 성주성에 왔을 때를 기억했다.
‘고작 5명이었어.’
장현과 함께 살아남았던 인간 플레이어들은 총 5명.
히든 피스를 개봉시킨 플레이어라면 분명 관리자들이다.
물론 그자가 인간 종족이라면 분명 이곳에 있지 않겠나 하는 것에서 그녀는 가장 유력한 후보라 생각되는 장현을 시험한 것이다.
‘멍청한 로메드 녀석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로메드에게 세이프존을 방문한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았다.
단지 안방에서 벌어지는 영지전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싶다는 이유를 댔다.
아무리 믿을만한 충복일지라도 아버지인 헬릭스마저 접근이 불가한 일을 하인에게 말할 정도로 철이 없지는 않았다.
이로써 그녀가 경기에 개입하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알아보고 싶었던 일은 함부로 시도할 수 없게 됐다.
이제 그녀가 시도해볼 일은 하나였다.
‘히든 피스를 개봉시킨 자가 저자가 맞다면 영지전 승리야 아무것도 아니겠지.’
안젤라는 장현을 보며 생각에 잠기더니 돌연 김덕배를 향해 말했다.
“이곳의 영주여!”
김덕배는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장현이 식은땀을 흘리고, 로메드가 소리친 상황으로 보아 소성주 안젤라가 장현에게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자 긴장한 채 대답했다.
“네. 말씀하십시오. 소성주님.”
“영지전을 승리로 이끌도록 해라.”
“그야 저희도 승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덕배는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갑자기 소성주가 저런 말을 꺼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맛있는 걸 먹여서 그런가.’
아무래도 케이크를 비롯해 맛있는 걸 먹여서인지 영지전에서 자신들이 이기길 바라는 듯했다.
‘그렇다면 뭐 도움이라도 주려나?’
“아시다시피 크로커다일 병사들은 무척이나 강력해서 이미 리자드맨을 복속시켰다고 합니다. 혹시 소성주님께서 도움이라도 주실 수 있으신지요?”
“갈!”
순간 로메드가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소성주님이 특별히 격려를 해줬더니 감사할 줄 알 것이지 불공정한 개입을 요구하다니! 죽고 싶은 거냐?”
“죄송합니다.”
로메드의 기세에 움찔한 김덕배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내가 돕지 않더라도 히든피스를 얻었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터. 영지전에서 너희들이 이긴다면 내 특별한 선물을 하도록 하지.”
“히든피스? 그게 무엇인가요?”
“글쎄…….”
안젤라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관리자들을 훑었다.
그녀가 보기에 김덕배는 히든 피스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안젤라가 장현을 본 순간, 장현과 눈이 마주쳤다.
장현은 무심하게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안젤라의 말에 당황하거나 하지 않고 무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안젤라는 장현을 더 주시했다.
“소성주님, 인제 그만 돌아가셔야 할 때입니다. 복귀가 늦어지면 성주님이 찾으실지도 모릅니다.”
로메드는 아무래도 소성주가 이대로 있다간 계속 사고 칠 거 같았던지 조심스레 언급했다.
“할 수 없지. 로메드. 인제 그만 돌아가도록 하자. ”
“네, 영주 님.”
로메드는 그 말에 반가운 듯 벌떡 일어섰다.
계속 있다간 안젤라가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불안했었다.
혹시라도 조금 전과 같은 매혹의 스킬을 사용하는 식으로 영지전에 개입했다가 성주에게 들통난다면 소성주는 질책 듣는 수준에 그칠지 몰라도 자신의 목은 날아갈 것이다.
그런 기색을 느꼈는지 안젤라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너 떠난다니까 이상하게 신나 보인다. 혹시 나 때문에 불안한 거야?”
“아닙니다. 소성주님 덕으로 오늘 맛있는 걸 먹어서 기분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그렇군. 확실히 맛있었지. 로메드. 지금 돌아가는 대로 세이프존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영상을 다 나한테 보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소성주님. 그럼 전 지네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로메드는 속으로는 일복이 터졌구나! 중얼거리면서 지네차를 향해 뛰어갔다.
안젤라는 뒤따르며 장현을 향해 흘깃 보았다.
‘또 보자고. 지금이 아니라도 히든 피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떤 것인지 곧 알 수 있겠지.’
시간이 부족해 곧 떠나야 했기에 안젤라는 궁금한 것을 결국 알아내지 못해 아쉬웠다.
그렇지만 영지전의 전투는 패드로 다 확인할 수 있으니 자연스레 히든 피스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녹화된 영상으로 살펴본다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행적은 다 녹화되기 때문에 설령 히든 피스를 개봉하는 부분은 녹화되지 않더라도 갑자기 이상한 부분을 찾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휴……. 드디어 갔군요. 심장 떨려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성훈이 무릎을 짚었다.
그는 다리가 후들거려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수고했어. 정말 잘했어.”
“아하하. 감사합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장현이 이성훈을 격려하며 칭찬했다. 진심이었다.
이성훈 덕분에 신경 쓰이던 문제가 해결됐다.
안젤라가 약속한 선물이 뭔지는 대략 짐작이 가기 때문에 이제 영지전에 오롯이 집중하면 된다.
안젤라가 돌아간 후 장현은 관리자들만 따로 불렀다.
“소성주도 돌아갔고, 이제 영지전에 집중해야 해. 영지전에서 승리해야 생존에 유리한 만큼 반드시 이겨야 해. 크로커다일족과 강신배 영지. 그 둘만 이기면 돼.”
장현의 말에 김덕배가 호응했다.
“그 둘 다 우리만큼 영지를 키우진 못했을 거야. 우린 이제 보급과 수성 측면에서는 크게 걱정할 것은 없을 거야. 이제 전투가 벌어져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영지를 이렇게까지 키운 건 정말이지 나도 깜짝 놀랐어. 자세히 얘기 좀 해봐. 이성훈 주무관한테 얘길 들어보니 호구 조사를 했다고?”
“네가 다른 영지들 정탐하고 오겠다고 떠나고 난 후였어. 이성훈 주무관이 영지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서 호구 조사를 해보는 게 어떻냐고 그러더라고.”
김덕배는 공을 이성훈에게 넘었다.
이성훈은 쑥스러운지 히죽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호구 조사를 한 거군. 그 결과로 레스토랑도 만들고 말이야.”
“응. 조사해보니 우리 영지민들 중에 요리사를 비롯해서 술이랑 커피 제조하던 사람들도 있더라.”
“그렇군. 호구 조사한 자료들 있으면 나한테 줘봐. 내가 좀 봐야겠어.”
“그래. 이성훈 주무관이 다 가지고 있어.”
“네. 제가 이따가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 부분은 넘기고. 이나연은 경비대장 경비대원들 훈련 시킨 건 성과가 좀 있었나?”
장현이 이나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최형석 씨가 소환한 스켈레톤과 삼두견을 상대로 훈련했는데 창과 방패를 결합한 집단훈련이 꽤나 효과가 있었어요. 언제라도 전투를 벌여도 괜찮아요.”
“좋아. 그럼 우리가 먼저 공격하기로 한다. 목표물은 크로커다일족이다.”
“강신배 쪽은 어떻게 하고? 혹시 우리가 크로커다일족과 전투 중에 놈들이 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는데.”
“크로커다일족을 상대로 이기면 우린 마나포인트를 얻으면서 레벨업을 할 수 있어. 그때가 되면 강신배 일행이 설령 뒤치기를 시도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렇다면 알겠어.”
그렇게 장현일행은 크로커다일족을 먼저 치기로 정했다.
***
크로커다일족과의 전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장현은 1회차 때 직접 제작한 트레뷰셋 투척기를 다시 제작하고자 했다.
그의 머릿속엔 트레뷰셋 투척기의 설계도가 들어있었다.
‘마침 움집을 만든다고 목재는 충분히 모아뒀군.’
트레뷰셋 재료는 기본 뼈대는 목재에 한다면 될 것이다.
다만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이니만큼 대장장이 직업의 퀘스트를 병행해야 했다.
고급대장장이가 되기 위해선 레벨 3 이상의 금속을 사용한 아이템을 4가지 제작해야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레벨 3 이상의 금속은 에레뜨.
‘에레뜨는 투척기의 무게추로 쓰면 되겠어.’
혹시나 에레뜨만으로 트레뷰셋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염려되었지만, 일단 만들어봐야 했다.
트레뷰셋은 통짜로 에테르 금속을 다 소비하기엔 부피가 너무 크다.
‘정 안되면 투척기 무게추라도 통짜로 만들면 되겠지.’
장현은 목재를 깎고 트레뷰셋 투석기의 뼈대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땅.땅.땅.
제작에 집중하면서 그의 모든 정신은 설계도와 재료에만 신경을 쏟아부었다.
점점 골격이 만들어지고 중요한 트리거와 스토퍼, 휠까지 만들었다.
마침내 에레뜨를 사용해 무게추까지 만들었을 때 기다리던 알림이 떠올랐다.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하였습니다. 이름을 지어주세요.]
“트레뷰셋 투척기!”
장현은 기다리지 않고 이름을 지었다.
[트레뷰셋 투척기가 마계 아이템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트레뷰셋 투척기]
-사거리 200m의 투척기를 제작하였습니다. 무게추를 이용한 트레뷰셋 투척기로. 지렛대의 원리와 포물선의 원리를 적용하였습니다. 투척물은 100kg 지 가능합니다.
-트레뷰셋 투척기의 무게추를 리자드맨의 금속 ‘에레뜨’를 사용했습니다.
-에레뜨의 효과로 투척 사거리가 보정됩니다. 20% 향상됩니다. 투척물의 감당 무게도 20% 향상됩니다.
-투척 사거리 240m, 투척 가능 무게 120kg입니다.
-고급대장장이 퀘스트(1/4)를 완료했습니다.
‘됐다.’
장현은 트레뷰셋 투척기를 만들며 리자드맨 금속 에레뜨를 사용했다.
본래의 기능을 20% 향상시켜주는 에레뜨의 효과는 트레뷰셋 투척기에도 역시나 적용되었다.
사거리와 투척무게의 향상으로 공격력이 대폭 증가했다.
소득은 그뿐이 아니다.
무엇보다 대장장이 직업의 레벨업을 위한 퀘스트를 하나 끝냈다.
장현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트레뷰셋을 만족스레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크로커다일 영지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트레뷰 셋으로 크로커다일 놈들 영지를 초토화 시켜주마.’
그때 장현의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장현 님! 이건 공성병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