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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36화 (36/211)
  • 36화. 영지전을 준비하다 (1)

    지네차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거대지네였다.

    지네는 마치 지구의 육교를 연상시킬 정도로 컸고, 몸통에 붙은 수백 개의 다리는 하나하나가 사람 몸통부터 굵고 사람 키보다 컸다.

    “설마 지네한테 잡아 먹히는 건 아니겠지?”

    “씨벌, 말이 씨가 될라. 그딴 재수 없는 소리 할 바에 닥치고 있어!”

    강신배 휘하의 이상영이 중얼거린 말에 최형석이 거칠게 외쳤다.

    강신배 무리에 대한 반감이 큰 탓이다.

    최형석의 욕설에 이상영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고릴라 같은 새끼가 왜 갑자기 욕하고 지랄이야! 네 배때기에 구멍 나고 싶니?”

    “크크 뭐라고 씨불여 대는 거냐?”

    최형석이 비릿한 미소로 사시미를 인벤토리에서 소환했다.

    “킥킥. 고작 칼 꺼냈다고 내가 무서워할 것으로 생각했다면 착각이라고 해주지. 먼저 칼을 꺼냈으니 죽어도 원망치 말거라.”

    이상영 또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무기를 손에 쥐었다.

    그의 무기는 펜싱 검과 유사하게 생긴 레이 피어였다.

    그때 장현이 나서서 최형석을 말렸다.

    “최형석 그만. 지금 저들과 싸울 때가 아니야.”

    “죄송합니다. 형님.”

    장현의 만류에 최형석은 두말하지 않고 얌전히 사시미를 인벤토리로 넣었다.

    “개처럼 짖어대더니 고작 한마디에 깨갱거리는 거냐.”

    이상영이 최형석을 비웃자 강신배 또한 그를 말렸다.

    “상영 씨도 참아요.”

    “흐흐. 저놈 운이 좋군요.”

    “아니, 저자는 운이 없는 거예요. 상영 씨에게 찍혔으니.”

    강신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말을 들은 최형석이 싸늘하게 바라보며 몸을 돌렸다.

    “크큭. 그 말 나중에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지.”

    소란이 일어남을 보고도 끼어들지 않고 지네차를 운전하는 데만 집중하던 병사 로메드가 그 순간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지금 굳이 그렇게 다툴 필요 없다. 어차피 질리도록 싸울 테니까.”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로메드에게 향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로메드는 잠시 힐끔 뒤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말 그대로다. 너희들은 영지전을 하게 될 테니. 성주님은 너희에게 기대하는 거 같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너희는 결코 영지전의 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영지전!

    말 그대로 영지끼리 총력을 기울여 상대 영지를 빼앗는 것이다.

    로메드는 그걸 언급한 것이다.

    “그러잖아도 궁금했어요. 영지전을 계속 언급하던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죠? 우리가 이 사람들이랑 영지를 걸고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요?”

    이나연이 벌떡 일어나 로메드를 향해 물었다.

    헬릭스 앞에서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감히 질문하지 못했지만 미치도록 궁금했던 부분이다.

    사람들끼리의 목숨 건 싸움은 그녀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동시에 그 질문은 다른 사람들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채 로메드는 대답했다.

    “사람들일 수도 있고, 다른 상대일 수도 있겠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세히 좀 설명해줘요. 아까 성주님이 말한 다른 종족들을 말하는 건가요?”

    “내가 너의 보모로 보이나? 곧 알게 될 거다.”

    싸늘하게 말하는 로메드의 반응에 이나연은 입을 다물었다.

    ‘크로커다일과 리자드맨 플레이어.’

    장현은 로메드가 말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리자드맨과 크로커다일.

    인간이 아닌 플레이어들이다.

    상점에서 만난 리자드맨 지로발, 그리고 눈앞의 크로커다일 로메드.

    이런 자들이 영지전에서 싸워야 할 상대인 것이다.

    장현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일행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 여긴가.”

    “뭐야 이 성벽은? 잠깐 병사양반 여기가 맞나요?”

    장현일행과 강신배 일행은 지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성안으로 들어왔는데 일행들의 앞에 놓인 것은 성벽이다.

    그 앞에 문이 두 개 있었다.

    로메드가 했던 말과 행동으로 보아 일행들에게 이 문을 열고 나가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맞다. 각자 문을 골라서 들어가면 된다. 이제 나의 일은 끝났다.”

    로메드가 떠나려고 하자 강신배가 급히 물었다.

    “문이 어떻게 다른 겁니까?”

    “그건 알려줄 수 없다. 더 궁금한 게 없다면 난 가보겠다.”

    “잠깐만요. 그 사람들, 우리가 관리해야 할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엔 지금 우리밖에 없잖습니까.”

    “그것도 들어가 보면 알게 된다.”

    쿠오옹.

    쿠쿠쿠.

    로메드가 지네차를 이끌자 지네는 기이한 울음소리를 토해내더니 몸을 돌렸다.

    도움 되지 않을 말을 마지막으로 로메드는 지네차를 타고 돌아가 버렸다.

    남겨진 장현 일행과 강신배 일행은 두 개의 성문 앞에 섰다.

    “행운을 빌지.”

    장현은 강신배 일행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할 때, 강신배가 급히 말렸다.

    “잠깐만요!”

    스윽.

    장현은 무슨 일이냐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

    “아니, 정말로 그냥 들어갈 생각인가요?”

    강신배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방금 한 얘기 못 들었나?”

    “들었죠. 들었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헬릭스 성주는 영지 전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우린 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목숨 걸고 서로 싸워야 할 겁니다.”

    “그래. 그 영지전으로 인간들의 대표를 뽑는 내기를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혹시 인제 와서 목숨을 거는 게 두려운 것인가?”

    장현은 반문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인제 와서 새삼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는 눈빛이었다.

    강신배의 말대로 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아비규환의 참상에 당면할 것이다.

    사실 지금 이렇게 성문 밖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 자체가 큰 손해나 다름없다.

    이 문 안에는 자신들이 관리해야 할 하급병사들이 있다.

    그들이 다른 종족들에게 살육당하기 전에 수습해야 한다.

    강신배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면이 있긴 해도 결코 전투를 두려워할 자는 아니다.

    장현의 말에 표정을 굳힌 강신배가 짐짓 여유로운 척 얘기했다.

    “목숨을 거는 게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다만 성주와 악어 병사가 한 말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른 종족들을 상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신배의 말에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나연 누나가 이 사람들과 우리가 영지를 걸고 싸우냐고 물었을 때, 그럴 수도 있고 다른 상대일 수도 있다고 했어. 또한, 성주는 다른 종족을 언급했고.”

    김덕배의 중얼거림을 들은 강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장현을 보았다.

    장현이 물었다.

    “그래서 다른 적이 있을 수 있으니 힘을 합치자는 건가?”

    “합치는 것까진 아니라도 굳이 다른 적을 앞두고 우리끼리 먼저 싸울 필요는 없겠지요.”

    장현은 잠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도록 하지.”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강신배도 미소를 지었다.

    말을 마친 장현은 먼저 좌측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를 따라 최형석, 김덕배, 이나연, 이성훈도 따라 들어갔다.

    쿠쿵.

    장현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러자 김혜정이 강신배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대장, 저것들 쳐 죽여도 모자랄 텐데 뭘 힘을 합치자고 하는 거야!”

    “혜정아, 조금만 참아. 곧 기회가 올 테니.”

    “응, 대장만 믿을게.”

    김혜정은 만족스럽다는 듯 강신배에게 안겼고, 강신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튜토리얼에서 김혜정은 여자들의 리더였다.

    타고난 독기를 바탕으로 반대하는 여자들은 가차 없이 두들겨 패고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러자 강신배가 그녀를 섭외했고, 그녀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강신배의 카리스마에 끌린 것 또한 한몫했다.

    그 모습을 본 이상영이 투덜거렸다.

    “으흠, 이거 애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흐흐, 상영 씨 남자는 능력 아니겠수. 세상에서야 돈이 최고였지만, 여기서는 마나포인트가 최고야. 마나포인트만 충분히 얻는다면 여자는 얼마든지 꼬실 수 있어.”

    김민석이 그를 달래며 이정환을 돌아보았다.

    “안 그래, 이정환 씨?”

    “글쎄, 별로. 난 여자한테 관심 없어. 내 관심사는 오직 금속과 무기뿐.”

    이정환의 말에 김민석과 이상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도 들어가자. 어떤 놈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 구역의 지배자다!”

    강신배의 말에 그의 일행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그렇게 그들 또한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장현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눈앞에 보인 것은 전투장면이었다.

    리자드맨족과 크로커다일족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관리자다!”

    “인간들의 관리자가 나타났다.”

    장현 일행이 모습을 드러내자 두 종족은 경계하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장현 일행들은 그 말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헐! 저, 저것들은 또 뭐야?”

    “그 악어 인간 병사와 상점 주인과 같은 종족들이군. 저놈들이 우리와 영지전을 벌일 상대였군 그래.”

    김덕배가 호들갑스레 놀란 반면, 최형석은 무심히 중얼거렸다.

    “형석이 형, 이제 저 종족들이 적으로 나타난 거군요. 오크랑 달리, 거의 사람과 비슷한 거 같던데 큰일이네요.”

    “뭐? 형석이 형? 이게 어디 감히!”

    김덕배가 형이라고 부르자 최형석은 기가 찼다.

    김덕배가 말한 내용보다 형이라는 말에 더 발끈했다.

    “그럼 형이지 누나입니까? 아니면 장현에게는 형님, 형님 하시는데 전 장현 친구니까 저한테 형이라고 하실래요?”

    “이 새끼가 죽으려고 용을 쓰냐?”

    “아이구,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요. 앞으로 계속 얼굴 봐야 할 텐데 호칭 정리는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아니면 최형석 씨라고 불러요?”

    벌컥 화를 내던 최형석은 김덕배의 말에 잠깐 생각하더니 이내 화를 풀었다.

    “형이라고 하지 말고 형님이라고 해라.”

    “알겠어요, 형석 형님.”

    “내가 아무나 동생 삼지 않는데….”

    “저보다 나은 동생도 없을 겁니다. 하하”

    김덕배가 넉살 좋게 대꾸하자 최형석은 문득 죽은 동생들이 생각났다.

    ‘태석이, 이 멍청한 놈! 죽을 거면 혼자 죽지 다른 동생들까지 다 데려가서는, 제길!’

    삼두견들에게 모조리 죽어버린 동생들을 잠시 떠올린 태석은 잠시 왼팔을 살폈다.

    어느새 죽은 동생들의 수만큼 새로이 왼팔에 흉터 수가 늘어나 있었다.

    ‘반드시! 반드시 살아서 복수해주마. 저승에서 기다려라. 새끼들아.’

    최형석의 분위기가 침중해지자 김덕배는 머쓱해져서 슬쩍 장현에게 다가갔다.

    장현은 리자드맨과 크로커다일이 사라진 방향을 보고 있었다.

    “장현아, 저놈들 왜 갑자기 우리가 나타나자 도망쳤을까?”

    장현이 그 말에 대답하려고 할 때 사람들의 상태창에 알림이 떴다.

    [퀘스트 : 세이프존 영지전에서 승리하라.]

    -헬릭스 성주는 세이프존 영지를 일통해서 승리하는 종족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각 영지에서는 영주를 선출하세요. 영주가 굴복하거나 죽게 되면 해당 영지는 영지전에서 탈락합니다.

    -영지전 승리 기준 : (현재 비공개)

    “퀘, 퀘스트가 떴어. 그런데 영지전 승리 기준이 비공개야. 그럼 뭐로 승리했다는 걸 알 수 있지?”

    “이, 이게 그 크로커다일 병사가 말했던 영지전이군요……. 승리 기준은 나중에 다시 뜰 그거로 생각해요.”

    “어이 이나연이! 그놈들이랑 결국 한 판 붙겠는걸.”

    “휴……. 이봐요! 최형석 씨! 난 그 사람들이랑 싸우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아니 어쩔 수 없이 싸우더라도 되도록 사람들끼리 목숨 걸고 싸우고 싶지는 않단 말이에요.”

    “뭐야. 아까 전이랑 다른데? 그놈들이랑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굴더니.”

    “그건 그냥 그 사람들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어요.”

    “저, 그보다 우린 이제 어떻게 할까요?”

    공무원 이성훈이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정확히는 장현을 바라보면서.

    “뭘 어쩌긴 어째. 퀘스트대로 해야지!”

    “그, 그러니까 어떻게 하죠? 영지전에서 승리하는 기준도 모르는데 말이어요.”

    “그 문제는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으니 일단 저 사람들부터 만나야겠지. 아마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영지민들 같으니까.”

    장현이 가리킨 방향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 전 크로커다일과 리자드맨 들과 전투를 벌였던 사람들이다.

    그 사람 중 젊은 남자가 한 명 다가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장현이 대표임을 인식했는지 장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관리자다. 성주에게서 관리자라는 직책을 받고 이곳으로 왔다.”

    “역시, 그렇군요. 관리자를 뵙습니다. 저희는 영지민입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정하진이라고 합니다.”

    장현의 대답에 남자는 쉽게 이해하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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