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본경기가 시작되다 (2)
부우웅!
상점표 제작실이지만, 그래도 직접 만든 망치다. 손에 착착 감겨오는 느낌을 받으며 장현은 망치를 마음껏 휘둘렀다.
“이야아앗!”
쾅! 콰직! 쾅! 빠각!
휘두르면 스켈레톤이 한 번에 박살 났다. 계속해서 돋아나는 해골들에는 신경 쓰지 않고 전면을 향해서만 휘둘렀다.
“이런~ 뼈다귀 새끼들이 감히!”
그 뒤를 이어 덕배와 형석, 태석과 나연도 따라붙었다.
싸악! 파각!
최형석은 걸쭉한 욕질을 하며 칼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는 기다란 일본 장도가 들려 있었다.
“흐흐, 내가 이래 봬도 검도 4단이유.”
최형석은 장현을 바라보며 으쓱하며 뽐냈다.
“좋아!”
앞쪽에서 플레이어들이 활약한 덕분에 인간들은 파죽지세로 전진해 나갈 수 있었다.
아악! 아아악!
“제길!”
하지만 적이 너무 많았다.
땅에서 손부터 돋아나는 게 스켈레톤이다. 발목을 붙잡히면 인간은 사정없이 쓰러졌다.
한 번 쓰러지면 곧 죽음이다.
넘어진 사람의 팔 옆에서 까닥거리며 해골의 손이 솟아났다.
“아아악! 으악!”
덜컥. 덜컥. 찌이익.
스켈레톤은 쓰러진 사람들을 물어뜯었다. 내장이 없는, 뼈만 남은 괴물은, 목으로 넘긴 살점을 그대로 땅에 흘려보냈다.
따각따각. 달그락 달각.
따각따각. 달그락 달각.
그리고 죽은 이의 사체에서 뼈가 솟아올라 또 하나의 스켈레톤이 된다.
“으악!”
“사, 살려줘!”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사람들이 공황에 빠졌다. 하얀 뼈들이 굶주린 늑대들처럼, 집단으로 먹이에 덤벼드는 것 같았다.
“으아악!”
“이런 조심해!”
나연이 고함을 지르며 주의하라고 하였다.
따각따각. 달그락 달각.
따각따각. 달그락 달각.
장현은 그를 향해 다가오는 해골들을 흘깃 보고는 앞을 향해 달렸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수밖에.
그는 계속 망치를 휘두르며 전진하고 있었다.
쾅! 콰직!
‘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금 이게 다가 아니다. 곧 나타날 놈들도 있다.
크아아아오!
해골 말을 탄 스켈레톤 20개체가 나타났다.
인마일체의 워리어.
해골이라는 점만 빼면 위용에 감탄했을 것이다.
“돌.격.하.라.”
가운데 있는 대장으로 보이는 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골전사들이 말을 달려왔다.
‘스켈레톤 워리어.’
죽어도 죽지 않는 자.
일반적인 무구로는 계속해서 되살아난다. 그나마 있는 약점이라면 불. 혹은 성수.
“이럴 때 쓰려고 스크롤을 사뒀지!”
“덕배! 넌 멈춰!”
“어……. 응?”
막 유니크 스크롤을 찢으려던 덕배가 장현의 고함에 멈칫한다.
“내가 쓴다!”
샐러맨더 소환 스크롤을 이런 데서 잃을 수는 없었다. 장현은 파이어 스크롤을 꺼낸 뒤 언제든지 찢을 준비를 했다.
까드드득! 까닥까닥!
다각다각. 다각다각.
기마병. 스켈레톤 워리어들이 신속하게 앞으로 달려왔다. 타이밍을 재고 있던 장현은 바닥을 향해 강하게 망치를 내리쳤다.
“스킬 한방!”
콰콰쾅!
3배로 늘어난 근력이, 망치에 힘을 담고 땅을 후려갈겼다.
콰르르륵!
땅이 움푹 패이며, 가공할 만한 흙의 파도가 해골 전사들을 쓸어 버렸다.
“발동!”
찌익!
장현은 스크롤을 찢어 쓰러진 해골 전사들 위에 던졌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화르르륵--!
불씨가 해골 전사들에게 붙자 빠르게 번져나갔다. 온몸이 불타는 해골들이, 달각거리며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인간. 스켈레톤 할 것 없이 닿는 대로 불을 퍼뜨렸다.
“아아악!”
기기기긱!
사람도 상했지만, 불은 급속도로 해골들을 집어삼켰다. 상황이 좋아졌다. 스켈레톤이 불타서가 아니다.
“앞이 보여!”
“나무 조심해!”
사방으로 뻗어 나간 불길은, 캄캄하던 숲을 벌겋게 밝혀냈다. 사람은 죽음도 괴물도 무서워하지만, 어둠 또한 대단히 무서워한다.
“파이어 스크롤을!”
“지금으로 충분해! 전진!”
겁 없이 나서려는 사람들을, 장현이 제지했다. 지금 그에게 파이어 스크롤이 여러 개 남아 있다지만 임시방편이다.
화르륵! 화르륵!
터억!
“이얍!”
이나연이 불붙은 스켈레톤 하나를 붙잡았다. 겁도 없는지, 그녀는 손에서 덜걱거리는 해골을 크게 휘둘러 앞으로 내던졌다.
달각달각. 퍼걱!
화르르륵. 화르르륵!
“잘했어!”
장현이 감탄했다. 해골들이 횃불이 되었다. 앞쪽 시야가 밝혀지고, 저 앞까지 모습이 드러났다.
그렇게 드러난 상황은……. 별로였다. 장현은 처음의 반도 안 되는 숫자를 보고 멈칫했다.
“사람들은?”
“오다가……. 돌아갔어요! 이쪽이 위험하다고…….”
울먹이는 이나연에게 그는 혀만 찼다.
“제기랄.”
저건 버린다. 아무리 사람을 살리려고 해도, 제 발로 죽으러 간 사람까지 챙길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헉헉, 스켈레톤이 불에 타 사라졌어.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그나마 고군분투하며 뒤따라온 사람들이 있었다. 덕배가 하는 말에 장현은 거칠게 고개 저었다.
“아직 멀었어. 기차역으로 갈 때까지는 속도를 늦춰서는 안 돼.”
“어디가 기차역인지 알아? 왜 길을 벗어난 거야?”
덕배가 헐떡이며 물었다. 거의 어깨로 숨을 쉬는 게, 다리까지 풀린 듯했다.
“이제 곧. 그리고 저쪽은 예감이 좋지 않아. 마치, 어서 오라는 듯 길이 놓여있었거든.”
“그, 그건……. 그렇다면 함정이란 거야? 어떻게 알아?”
“그냥 감이야.”
“감? 고작 감 때문에 여기로 온 거라고?”
“그 감에 나는 목숨을 건졌다.”
장현의 반문에 덕배는 입을 다물었다.
감이든 뭐든 목숨을 걸었다면 고작이 아니다. 이제껏 장현이 보여온 성과는 ‘어떻게?’라는 말을 닥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달각달각. 달각달각.
뒤에서 여전히 해골들이 솟아났지만, 일행은 최선을 다해 돌파해냈다. 숫자가 확 줄어든 것이, 아마도 떨어져 나간 인간들을 목표로 삼은 모양이었다.
“다 왔어. 좀 더 힘을 내!”
해골과 식인식물들의 숲을 벗어나자, 저 앞에 큰 구조물이 보였다. 퀘스트의 목적지인 기차역이다.
크아아아!
마침내 장현들이 기차역의 계단에 올라서자 해골들은 계단 앞에서 울부짖으며 덜그럭거리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그들을 쫓아오지 못하는 듯 울부짖으며 덜그럭거리고만 있었다.
“후! 이제 끝난 건가.”
“그 드립치지마! 그거 하면 꼭 더한 것들이 나온다고!”
덕배의 요란에 장현이 피식 웃었다. 헐떡대며 뒤쪽을 맡은 최형석이 뒤이어 도달했다.
“와~ 죽는 줄 알았네. 무슨 오크 다음에 이제 해골이냐.”
땡땡땡땡!
마지막 인간들이 도착하자, 기차역에서 클래식한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첫 번째 퀘스트를 달성한 여러분. 축하합니다. 이어서 두 번째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 퀘스트는 ‘죽음으로 가는 기차여행’입니다. 당신의 노오력을 발휘해 살아남으세요.
-‘죽음으로 가는 기차여행’- KRT 119 열차의 종착지는 ‘바르다르분가’. ‘바르다르분가’역입니다. 이용에 주의하십시오. 바르다르분가역까지 남은 시간 2시간입니다.
삐이이익!
증기기관도 아니건만, 요란하게 열차가 경적을 울렸다. 그와 함께 철컥. 철컥.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하철.
“뭐. 뭐야!”
“기차가 출발한다!”
“달라붙어! 죽기 싫으면 타!”
장현이 호통치며 사람들을 내몰았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열차는 옆에 ㄷ 자형 손잡이가 무수히 달려 있었고, 허겁지겁 달려온 사람들은 간신히 그 손잡이에 매달렸다.
치익! 치익! 우우우우웅!
“으아아아…….”
“으흑…….”
열차가 가동하며 소음과 강풍이 불어왔다.
매달린 사람들은 꾸역꾸역 위로 올랐다.
덜컹거리는 열차에서, 위로 올라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쉽든 어렵든 올라가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죽으니까.
푸쉬쉭. 쉭쉭쉭-
빠아아아아앙!
대체 뭘 기초로 만들었는지 모를 기차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렸다. 때마침 굉음과 함께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시야가 밝아졌다.
“이. 이제 살아난 건가?”
“흐아아……. 죽는 줄 알았어……. 살다 살다 달리는 기차에 매달리고…….”
여기저기서 한숨 돌렸다는 듯 쏟아지는 아우성.
장현은 그 모습을 힐끗, 눈에 담았다.
두 번째 퀘스트는 죽음으로 가는 기차여행이다. 이름 그대로,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연속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퀘스트.
이 기차는 곧 활화산을 통과한다. 그 말인즉.
‘여긴 불바다가 돼.’
안전지대는 기차 안.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덜컹덜컹! 덜컹덜컹!
꽤애애애액!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이동하는 지하철. 장현은 몸을 낮춘 채, 차량 위에 씐 글자를 읽었다.
-C 3
‘화물차량.’
그는 곧 이전의 기차여행이 어떠했던지를 기억했다.
‘제일 뒤 차다. 기차는 총 열여덟 차량. 그중 화물차 셋 승객 차 열다섯. 최소 앞으로 두 칸 이상 가야 승객 칸이 나온다.’
이게 지하철인지 기차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려면, 마족 놈들이 그런 디테일에 신경 쓰겠냐만.
그런 거야 어쨌든, 객차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승객 칸으로 가야 했다.
덜컹덜컹! 덜컹덜컹!
열차가 요란하게 울린다. 장현은 몸을 낮춰 중심을 안정시키며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고함 질렀다.
“어! 저 사람 간다! 앞으로 간다!”
“이봐요!”
덜컹덜컹! 콰당탕!
어설프게 따라오려던 사람 몇이, 열차의 요동에 기겁했다. 성급하게 움직이다간 그대로 바깥으로 떨어질 처지인 것이다.
“현아! 장현아! 너 어디 가!”
뒤에서 덕배가 고함 지르는 말에 장현은 슥. 돌아보았다.
짜증이 솟았다. 학창시절 친구 김덕배. 오래전 죽었던 그를 만나 반갑지 않았던 건 아니다.
문제는 이놈이 현재로서는 짐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잃으면 큰일 나는 짐.
“덕배. 죽기 싫으면 그냥 조용히 따라와라.”
“뭐? 너 대체……. 갑자기 왜 그래?”
“……”
으드득.
다시금 짜증이 났다. 이놈은 잃으면 안 된다. 귀속된 샐러맨더 스크롤이 날아갈 테니까. 그뿐 아니라 컴퓨터 해킹 쪽에 대한 능력은 덕배를 따라갈 자가 없다.
이제부터 그는 용암지대에 갈 때까지 덕배를 살려야 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와의 교환 비용이 발생할 때……. 사정없이 한쪽을 골라야 한다.
터억. 터억.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 짜증 나네.’
지난번 생에서도, 중요인물을 지키기 위해 수도 없는 사람이 죽었다. 때로는 장현 자신이 중요인물이 되기도 했다.
마왕을 쓰러트리고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수도 없이 비윤리적인 일이 일어났다. 개만도 못한 쓰레기를 스킬 때문에 살려야 했던 일도 있었고, 모두를 위해 항상 희생만 했던 사람을 허무하게 몬스터에게 내줘야 하는 일도 있었다.
“네 목숨의 가치는……. 네 생각보다 훨씬 크다.”
“……응? 어?”
“넌 여기서 죽어도 되는 놈이 아니야. 따라와라.”
장현은 덕배에게서 등을 돌리고는 다시 움직였다. 뒤에서 덕배가 혼자 감동하였는지 뭐라 중얼거렸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콰르르릉! 우르르릉!
굉음 속이라 고함지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요동은 점차 심해지고, 장현이 척 척. 거미처럼 기어나갔다. 제일 먼저 그를 따른 것은 최형석이었다.
“다들! 따라가자!”
“뭔 줄 알고요!”
이나연이 고함질렀다.
“뭐든 여기보단 나을 거 같은데!”
최형석이 맞고함 지르고, 이나연이 떨떠름하게 끄덕였다.
후와아악!
달리는 열차 위에서는 엄청난 바람에 휘말린다. 더군다나 바람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여기 있으면 위험할 것은 당연.
척. 척. 척.
장현을 따라 덕배가 움직이고, 이나연과 최형석도 그 뒤를 따랐다.
화르르륵! 화르르륵!
바람은 점점 매서워졌다. 아니 뜨거워졌다.
처음에는 뜨거운 열풍 정도였지만, 가면 갈수록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열기가 휘몰아쳤다.
“미치겠군!”
“제기랄! 밑에 봐! 용암이야!”
치이익! 치익!
점입가경. 열차는 어느 순간 시뻘건 용암 위를 달리고 있었다.
“으아아아…….”
철로가 녹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환경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