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상점 (1)
무기상점의 입구. 가판대에는 병기들이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상점을 들르는 플레이어들은, 제일 먼저 무기. 적을 무찌를 병기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욱 늘어선 가판대 한쪽에는, 장현이 만든 무리늄 도끼도 있었다.
“이게 여기에 있네?”
장현이 자신의 손으로 제작된 무기를 들어 보였다.
“이건 최근에 입수된 건데…. 그러고 보니 이걸 만든 자가 너였군! 과연 대단한 플레이어로군.”
지로발은 아하.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편으로는 장현을 바라보는 눈빛이 빛났다.
“흐음…. 어디 어디.”
장현은 이어서 가판대의 무기를 차근차근 살폈다.
검, 칼, 창, 못이 박혀있는 몽둥이나 메이스에 이어, 점점 크기가 커지는 도끼와 그레이트 엑스 순으로 놓여 있었다.
‘망치는 병기가 아닌 기타 잡품에 있었지?’
장현은 이곳에서 무기를 살 생각은 없었다. 그저 대충 어느 정도 수준인지 둘러보기만 했다.
그는 이제 1회차의 초보가 아니다. 초보 지역 상점의 가판대에 있는 무기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넌 여기 무기가 맘에 들지 않는 건가?”�
그 반응에 지로발은 의아했다.
“난 대장장이다. 특별상점의 무기라고 해도 별로 내키지 않는군. 내가 직접 만드는 것보다 못한걸. 내 무기는 내가 만들어야겠어. 그러니 무기보다 기타 잡품을 보고 싶다.”
장현이 간단히 대답했다.
“역시 그렇군. 대장장이였어.”
지로발이 이해했다는 듯 끄덕였다.
“그런데 기타 잡품이라니, 혹시 원하는 게 따로 있나?”
“대장장이에게 필요한 게 뭐겠나? 모루와 망치지. 네가 가진 모루를 보여줘.”
“모루. 알겠다. 망치는?”
“모루 먼저.”
지로발이 장현을 안내했다.
그곳엔 무기를 제외한 대부분 물품이 있었다.
잡철. 연철. 강철 뭉텅이들.
쇠꼬챙이. 막대. 철판 등, 아직 제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원자재 덩어리들이 우르르 쌓여 있었다.
“흠….”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둘러보더니 우뚝 섰다.
각종 금속으로 만들어진 모루들 앞에서.
생김새는 다들 비슷했다. 평평한 면에 금속을 접고 두드릴 수 있는 뿔과 각진 부리가 있었다.
이건 지금으로선 당연한 디자인이다. 현대의 지구처럼, 공업 선반이 나오기 전에는 이게 최선이다.
‘차이점은 크기와 두께 정도인가.’
장현은 그중에서 꼼꼼히 골라, 소재가 초록빛을 띠는 모루를 골랐다.
높이는 장현의 허벅지 정도, 뿔은 장현의 팔길이 정도였다.
이제부터 다룰 금속의 성질을 고려한다면 이 정도의 크기는 필요했다.
대개의 경우, 모루의 크기는 장비의 내구도. 그리고 만들어 낼 생산물의 단단함까지 결정한다.
“이게 쓸만하군.”
“모루는 그걸로 됐나? 그럼 망치를 고르지.”
지로발이 망치가 종류별로 진열된 선반을 가리켰다.
대장장이에게 망치는, 전사의 검과 같다. 가장 손에 익은 것을 고르기 위해 수도 없는 가늠을 해 봐야 했다.
하지만 장현의 대답은 또 한 번 그의 예상을 넘었다.
“아니. 내가 쓸 망치는 직접 만들겠어.”
“허어. 망치까지. 그렇다면 말릴 수야 없지만, 나로서는 손해가 큰데.”
그 말에 장현이 지로발을 쏘아보았다.
여차하면 조금 전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고 한 행위에 대해서 고발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상점 주인인 지로발로서는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켜야 이로웠다.
하지만 장현에게 약점을 잡혔기에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은 그가 말했다.
“알겠다. 그럼 따로 원하는 건 없나?”
“여기 시설 내가 사용해도 되겠지?”
장현은 한쪽에 있는 작업실을 보고 물었다.
상점의 이용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그것을 알기에 모루까지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망치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지로발은 이제 포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이런 적은 없지만 뭐. 내 재량이니까. 그 모루를 1000포인트에 산다면 허락하지. 어때?”
다만 그 순간에도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사지.”
장현이 흔쾌히 수락했다. 상태 창에서 즉각 1000포인트가 차감되고 4000포인트 남았다.
“확실히 대장장이는…. 대장장이군.”
지로발이 묘한 얼굴로 작업실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그긍. 그그긍.
장현은 모루를 끌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허.”
리저드 맨의 작업실은 생각 외로 설비가 좋았다. 수많은 망치와 모루를 비롯해 화로에 프레스까지 있었다.
다만 수동이라서 저걸 쓰려면 미친듯한 힘이 필요할 터였다. 장현은 이 상점의 설비를 보고 한숨만 나왔다.
‘내가 중반에 이 정도 설비만 갖춰놓고 있었어도 테세리움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1회차의 인류는 그만큼 절박했다. 초보자 상점의 NPC만도 못한 시설 속에서, 때로는 갓 캐온 광석을 몬스터 껍질 위에 올려놓고 두드리는 등. 열악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싸웠다.
‘뭐. 전장에서 이런 시설을 갖추기란 불가능했지만.’
여유분의 금속이 있고 여유분의 화력이 있었다면, 당장 마왕과의 전투가 벌어질 때 썼을 터였다.
그래서 테세리움은 생각만 하고 만들지 못했다.
무스펠헤임르(Múspellsheimr).
북유럽 라그나로크에서 등장하는 전설. 세상을 태워버릴 만큼의 강렬한 불꽃. 먼저 그게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것이 테세리움이었다.
달리 신의 금속이라 말하는 게 아니었다.
“흐흐. 내 작업실에 감탄했군!”
툭툭.
장현이 잠시 상념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지로발은 으쓱했다.
그는 앞발로 장현의 어깨를 두드리고 자신의 장비를 설명했다.
“대단하지? 이 설비는 마계에서 표준으로 통하는 거다. 직업별로 필요한 장비는 다 갖추어져 있지.”
“훌륭하다.”
“그렇지? 크흐흐. 그래도 눈은 제대로 달려 있군. 그럼 작업이 끝나면 보도록 하지.”
지로발이 웃으며 나갔다.
상인답게 그는 손님에게 친절하다. 물론 물건의 가치도 모르는 호구나, 예의를 차리지 않는 상대는 손님으로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현은 그 둘 모두에 해당하지 않았다. 까다롭기는 하지만, 분명 큰돈이 될 것 같은. 진짜 손님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아쉽군. 스톡은 터져나는데 아직 쓸 수 없다니.”
혼자 작업실에 남은 장현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스톡(Stock). 창고에 있는 재료는 그야말로 풍요롭기 짝이 없었다.
거대흑전갈과 오크 로드.
하지만 지금 당장 장현이 다룰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흑전갈의 독침과 일반 오크들의 뼈와 뿔이다.
대장장이 레벨이 최소 중급은 되어야, 거대흑전갈의 껍질과 오크 로드의 뼈를 다룰 수 있을 터.
장현은 오크뿔이에욤과 오크뼈에욤을 꺼내 방금 구매한 모루 옆에 쌓아두었다.
‘오크뿔이에욤은 고탄소강, 오크뼈에욤은 저탄소강이다.’
경도로 따져 재료를 분류했다.
철강은 탄소성분의 함유량에 따라 구분된다.
오크뼈에욤은 탄소량 0.03% 이하의 저탄소강 레벨의 경도다. 부드러워 가공은 용이하지만 내구도가 떨어진다.
반면 오크뿔이에욤은 고탄소강. 경도가 높고 내구도도 기대할 만하지만, 가공이 어렵다.
장현은 이 둘을 합쳐 우선 합금을 만들 생각이었다.
터엉.
오크뿔이에욤 한 덩이를 먼저 쥐었다.
생체금속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모루 위에 올려놓고, 선반에 걸쳐있는 집게와 망치를 집었다.
훕!
땅! 땅! 땅!
그리고 작업실의 망치를 빠르게 내리쳤다.
지금, 이 작업은 본격적인 제조가 아닌 정련과정이다. 생체금속인 오크뿔이에욤에서 이물질들을 정리하기 위한 과정.
땅! 땅! 땅!
먼저 우글우글한 덩어리를 두들겨 매끈하게 만든다. 이 과정을 도합 세 번. 그 가운데 불순물이 일차적으로 정리된다.
“다음.”
금속 한 덩이를 끝낸 장현은 오크뼈에욤을 집었다.
우르르르.
모루 옆에 쌓아놓은 금속들 모두 정리 대상이다.
땅! 땅! 땅!
땅! 땅! 땅!
단순한 작업의 반복이지만 장현은 한 땀 한 땀 집중해 정신을 쏟았다.
그렇게 십 분쯤 지났을 때,
“후.”
이 정도면 얼추 된 것 같다. 장현은 정리한 금속들을 화로 앞으로 옮겼다.
후두둑! 탁탁탁!
이제 화로에 불을 켤 차례다.
화로 안에는 이미 석탄이 가득 있었지만,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불이 너무 약한데…. 이대로는 시간이 너무 들어.”
두드리는 것으로 이물질 배출까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장현이 필요한 것은 그 이상의 단계였다.
패턴 웰티드(Pattern-welded). 흔히 다마스커스 강이라 불리는 강연철 합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화력이 필요했다.
“연성술이…. 될까?”
긴가민가하며 장현은 화로 안의 석탄 한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기초연성술.”
스킬을 적용한다. 나직한 외침과 함께 장현의 손에서 빛이 생성되었다.
뜨뜻한 열기가 충분히 감돈다 싶을 무렵 장현은 양손으로 석탄을 감싸 쥐고 비벼댔다.
화르륵.
장현은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오크 뼈와 뿔을 연성했듯이, 계속해서 석탄을 연성했다. 그렇게 얼마간, 그의 손이 스쳐짐에 따라 석탄의 크기가 줄어들고 새까맣게 응축되었다.
“된다!”
천만뜻밖에도, 기초연성술은 석탄의 성능도 올릴 수 있었다. 이거라면 기존의 화력을 훨씬 높일 수 있을 터였다.
화르륵. 화르륵. 화르륵.
손의 열이 석탄의 구조를 바꾸었다. 그의 감각에서 불순물이 느껴졌다.
‘조금씩 예민해지는걸.’
처음 기초연성술을 사용할 땐 단지 따뜻한 느낌이었다. 진흙을 뭉쳐 단단히 만들 때의 느낌과 비슷한 그런 감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장현은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항상 거칠고 상처투성이였던 손이 지금은 매끄럽다.
금속과 병기를 손으로 만드느라 감각이 죽었던 손이 지금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의사들의 손이 이러할까.
“음….”
석탄 안의 불순물들이 느껴졌다.
장현은 상상했다.
불순물을 태우는 상상을.
그러자 손의 열기가 나아갔다.
화르륵.
석탄에서 하얀빛이 일기 시작했다.
불꽃과는 달랐다.
열기는 석탄의 불순물을 태우면서 하얗게 변해갔다.
“이건…. 광탄이군.”
광탄. 말 그대로 빛나는 석탄이 되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지대의 골렘이 드랍하던 재료 아이템. 이 정도면 충분히 필요한 열을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좋아 좋아.”
그는 상기된 얼굴로 다음 석탄을 집어 들었다.
화르륵. 화르륵. 화르륵.
대략 30개 정도의 광탄을 만든 그는 화로를 광탄으로 채워 넣었다.
그리고 화로의 작동 버튼을 눌렀다.
쿠---르르륵!
마법 장치인지. 작동 버튼을 누르자 불길이 일었다. 장현은 발로 밟는 풀무로 바람을 밀어 넣었다.
화악. 화르륵!
공기 속의 산소가 불을 만났다. 광탄은 불길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잠시 만에 모든 광탄이 맹렬한 기세로 열을 뿜어댔다.
쿠릉!
화로 뚜껑을 열고, 장현이 오크뿔이에욤을 넣었다.
화아악. 확.
강한 기세를 뿜어내던 불길은 오크뿔이에욤을 만나자 집어삼킬 듯 기세를 피어 올렸다.
달아오른 불이 하얀빛이 될 때까지 장현은 풀무질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풀무질과 함께 불꽃이 거세게 인다. 오크뿔이에욤을 감싼 불이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툭. 투욱. 치이익!
어마어마한 고열이다. 떨어진 땀이 바로 증기를 피워 올린다. 그러기를 한참.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장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군.”
하얗게 백열(白熱) 하는 오크뿔이에욤을 집게로 집어 모루로 옮겼다.
떨그렁.
내려놓기 무섭게 장현은 망치로 두들겨댔다.
땅땅땅! 땅땅땅! 땅땅땅!
‘일정한 힘으로. 리듬 맞춰서.’
현대 지구처럼 프레스 기계가 있다면 좋겠지만, 마계에서 그런 것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따라서 여기서부터는 대장장이의 역량으로 메워야 했다.
땅! 땅! 땅!
장현은 신중히 내리쳤다. 기초연성술로 불순물은 충분히 제거했지만 이렇게 두들기면 더욱 치밀해진다.
하얗던 오크뿔이에욤은 장현의 망치질에 두들겨 맞자 빨갛게 변하며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장현은 이 금속괴를 완전히 펴질 때까지 두드리고, 앞뒤에 이어 옆면들도 두들겼다.
땅땅땅! 땅땅땅! 땅땅땅!
계속해서 두들기며 차츰차츰 직사각형의 모습을 띠도록 만들었다. 이런걸 앞으로 20개를 만들어야 했다.
‘패턴 웰티드.’
오크뼈에욤은 속성이 부드러운 대신 잘 휘어진다.
오크뿔이에욤은 단단한 대신 부러지기 쉽다.
때문에 이 둘을 덧붙여서 수없이 두드리면, 경성(硬性)과 연성(軟性)을 동시에 갖춘, 이상적인 금속으로 바뀐다.
땅땅땅! 땅땅땅! 땅땅땅!
‘먼저 하나.’
단조한 오크뼈에욤을 모루 위에 올려둔 채, 그는 오크뿔이에욤을 화로에 넣었다.
덜컹덜컹. 쿠르륵!
화아악! 쿠와아악!
그렇게 또 하나의 금속괴를 달구기를 여러 번.
“후우….”
반복 작업이다. 자그마치 이 짓을 스무 번을 해야 한다. 장현은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망치를 두들겼다.
그러면서 시간의 흐름조차 잊었다.
땅땅땅! 땅땅땅! 땅땅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