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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271화 (27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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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화려한 복수 (7)

겨우 복구한 요새가 반파되다시피 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요새에 주둔중이던 연합군의 병력 중에 사망자는 없었다.

신성 교국 아스토리아의 주력이 머무는 곳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사제단이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요새를 뛰어다니며 목숨이 위태로운 자들을 모조리 되살려낸 것이다.

과연 교국이 자랑하는 사제단 다운 활약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던 병사들을 되살려낼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제단이라고 해도, 무너진 요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요새의 4할 가량이 파괴되었습니다. 만약 지금 서부에서 마물들이 몰려든다면 절대로 막을 수 없을 겁니다.”

피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요새의 시찰에 나섰던 지휘관은 요새가 사실상 거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며 병력의 이동을 건의했다.

다른 이들 역시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요새를 복구하자니 애로사항이 한 둘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후방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물자조차도 귀하디 귀한 취급을 받는 이곳은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후방에서 물자를 조달해오자니 기나긴 보급선을 따라 언제 물자가 도착할지도 알 수 없었고, 서부의 마물들도 신경이 쓰였다.

“주둔지를 옮긴다.”

결국 연합군의 사령관이 지휘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병력의 이동을 결정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근방에는 버려진 요새와 주둔지들이 넘쳐났다는 것이었다. 개중 거점으로 쓸 만한 요새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지금은 잠잠하다지만 언제 마물들이 들이닥칠지 몰랐다. 게다가 자연적으로 일어났다기에는 석연치 않은 지진이 지휘부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곧장 지휘부의 명령을 받은 선발대가 새로운 거점을 찾기 위해 요새를 나섰다.

남은 자들은 폐허가 된 요새에서 쓸 만한 물자를 찾는다거나 부상자를 돌보는 일에 매진했다.

그렇게 연합군이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선발대의 병력 일부가 근방의 소식을 탐문하여 돌아왔다.

그들을 통해 들은 중부의 요새들이 모두 자신들과 처한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의 모든 요새와 주둔지들이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그중에는 자신들처럼 거점을 옮겨야 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곳들도 있었다.

“그래도 요새가 반파될 정도의 피해를 입은 건 저희뿐입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재앙으로 인한 아군의 손실이 예상보다는 다소 적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들의 불운에 한숨이 나왔다.

“일단 지진이 시작된 게 우리랑 가장 가까운 것만큼은 확실하군.”

하지만 연합군의 사령관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신전 기사들과 사제들을 선발하여 전선 너머의 상황을 확인하라. 탐색 거리는 지휘관의 재량에 맡기겠다. 단, 탐색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마물들과의 교전을 최대한 피하고, 마기의 침식이 일어나지 않도록 1주일 내로 귀환할 것을 주지시키도록 하라.”

검은 하늘이 펼쳐진 저 저주받은 땅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사령관의 명령을 받은 신전 기사들을 비롯한 탐색대가 요새를 출발했다.

“전방에 마수 출현!”

요새를 나선 탐색대는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서부에서부터 접근중인 마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역시 그 지진은 마왕과 관계가 있었던 건가!”

탐색대의 지휘를 맡은 성기사가 이를 갈아붙이고는 서둘러 부대를 물릴 준비를 했다.

당장 서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마수의 출현을 본대에 알리는 것이 훨씬 더 시급했다.

만약 예상대로 이번 지진이 마왕의 수작이라면 앞으로 전선을 넘어올 마수는 하나 뿐이 아닐 테니까.

“접근 속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대로라면 본대와 합류하기 전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지 멀리서 보기에도 위압감이 넘치는 마수의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다. 기마 이동에 능한 신전 기사들이라면 몰라도 사제들은 절대로 마수를 따돌릴 수 없었다.

“선임 기사급 이상의 기사들은 나와 함께 마수를 저지한다. 나머지는 사제단과 함께 본대로 복귀하여 이 상황을 알리도록.”

결국 성기사가 결단을 내렸다.

“서둘러라. 마수의 크기를 보건대 최소한 상급, 시간을 그리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죽음을 각오하고도 오히려 덤덤하기까지 한 지휘관의 말투에 명령을 받은 기사가 이를 악물었다.

당장에라도 저들과 함께 결사 항전을 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상황의 중대함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억지를 부리지는 않았다.

“부디 살아서 뵐 수 있기를.”

신전 기사 특유의 군례를 취해보인 기사가 사제들을 이끌고 자리를 이탈했다.

“혹시 나를 원망하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원망은 저기 간 형제들이 하고 있겠지요.”

성기사의 말에 선임 신전기사들이 피식 웃었다. 애초에 헌신과 희생을 미덕으로 여기는 신전기사들이기에 자신들이 동료를 남기고 가는 쪽이 아니라 다행이라 여기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전원 전투 준비!”

어느새 거리를 좁혀온 마수의 외양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정말 크군.”

이제까지 만나본 마수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거대한 마수의 모습에 성기사가 조금은 질린 얼굴을 해보였다.

그만큼 마수의 모습은 흉악했다.

제 놈들끼리 영역다툼이라도 한 것인지 상처를 그득 입은 몸뚱이에 난폭하게 대지를 박차는 모습이 이제껏 봐온 마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흉폭해 보였다.

“나보다 먼저 그분을 뵙는 형제는 단단히 벌을 주마. 그러니 절대로 나보다 먼저 가는 형제는 없어야 할 것이다.”

흉맹한 마수를 본 성기사가 가장 앞으로 나서며 검끝에서 줄기줄기 성광을 피워올렸다.

“본디 그분을 뵙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억지 쓰지 마시지요.”

다른 기사들 역시 성기사를 따라 성광을 끌어올리며 마수의 진로 앞에 섰다.

“사악한 것들을 무저갱으로!”

성기사가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돌격을 했다. 아니, 하려 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서 갑작스레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이제 막 괴수를 향해 검을 찔러넣으려던 성기사가 움찔 놀라 소리가 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핀?”

먼 발치에서나마 본 적이 있는 새하얀 그리핀이 그곳에 있었다.

“검을 거두고 물러서라!”

그리핀 위에 올라탄 노기사가 거듭 소리쳤다.

“창공의 기사가 이곳에는 어인 일이요! 또 저 마수는 뭐고!”

성기사는 검을 거두는 대신 노기사에게 물었다.

“나는 창공의 기사가 아니라, 아덴버그의 마렉 슈나일 로아힘이다!”

예상과는 달리 노기사의 정체는 창공의 기사가 아닌 아덴버그 제국의 검성이었다.

“그리고 저건 마수가 아니라 전승 대공의 아룡, 골드레이크다!”

그리고 자신들이 상급 마수일 거라 생각했던 괴물은 드라흔의 아룡이었다.

“그게 무슨...”

성기사는 믿을 수 없었다. 머나먼 동부에 위치한 아덴버그의 공작이 서부에 나타난 것도 믿기지 않았고, 또 그자의 말도 믿기지 않았다.

비록 전장에서 함께 싸워본 것은 아니나, 드라흔의 아룡이 저리 생기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골드레이크는 금빛 비늘이 아름다운 드레이크였지, 저리 오물이 묻은 듯 더러운 꼴을 한 괴수가 아니었다.

“마기의 침식 때문이니, 내 말을 의심하지 말라!”

“그럼 더더욱 막아야 하지 않겠소!”

성기사의 완강한 태도에 검성이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 저놈 위에는 전승 대공이 타고 있단 말이다!”

“그게 무슨 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임 신전기사가 비명처럼 외쳤다.

“정말입니다! 저 위에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마수의 측면을 노릴 생각으로 옆으로 물러나 있던 기사가 거대한 괴수의 등에 올라탄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사정을 설명해보시오!”

성기사는 일단 검을 거두지 않았다. 자신을 검성이라 주장하는 자의 말만 믿고 괴물을 놓아주기에는 자신들의 임무가 지나치게 중요했다.

“귀국의 용사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승 대공이 은밀히 서부로 잠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왕과 만났고 싸웠다!”

설명이랄 것도 없는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완고한 성기사를 납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알려진 전승 대공의 성품이라면 제 의동생인 용사를 구하기 위해 서부로 향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전원 물러나라!”

상황을 이해한 성기사가 그제야 검을 거두었다.

“전승 대공의 상태가 좋지 않소. 치료를 해야 하는데, 저놈이 아무도 제 주인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유난을 떠니 영 곤란하던 참이오.”

신전 기사들이 물러나자 그제야 숨을 돌린 검성이 하강하여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성기사 역시 그렇지 않아도 전승 대공일 거라 추측되는 인물이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어 불안하던 참이었다.

척 보기에도 심각한 부상을 입은 듯, 미동도 없는 전승 대공은 위태로워 보였다.

“먼저 출발한 사제단을 다시 불러들여라!”

성기사가 다급하게 명령하자, 몇몇 신전 기사들이 멀리 풀어두었던 제 말을 타고는 부리나케 요새 쪽으로 향하였다.

“일단 사정은 알았소. 사제단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전승 대공부터 살리고 봅시다.”

성기사는 마왕과의 전투가 어찌 끝났는지 묻지 않았다.

이미 한 번 마왕에게 패하여 실종되었던 바가 있던 전승 대공이다. 그런 전승 대공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발견했으니, 당연히 이번에도 또 패배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전승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패배에도 성기사는 오히려 경외감을 느꼈다. 지고한 위치에 올라서도 그 의기를 잊지 않은 전승 대공의 행보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사제단이 돌아오더라도 아룡이 제 주인을 저리 감싸고 돌아서야, 치료나 할 수 있겠소?”

쉽사리 제 주인을 내놓을 것 같지 않은 아룡의 모습에 성기사가 우려를 표하니, 검성이 대꾸했다.

“전승 대공을 살릴 수 있는 자가 온다면, 아룡은 내가 맡겠소.”

철검을 두들기며 말하는 검성의 모습을 보면 그 방법이 그다지 온화한 것이 아닐 거라는 사실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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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사의 예상대로였다.

사제단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아룡을 제압하겠다고 나선 검성은 아룡을 힘으로 제압했다.

“다행이 이놈 역시 부상이 심했던지라 어렵지 않게 제압했지만, 힘이 돌아오면 금세 또 날뛰어댈 거요. 그러니 최대한 치료를 서두르시오.”

검성의 말마따나 아룡은 계속해서 거꾸러지면서도 끊임없이 제 주인을 향해 다가오려 했다. 구슬프게 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신들이 악당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라, 사제들이 묘한 얼굴을 해보였다.

“허어...”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 사제들은 전승 대공의 상태를 보고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어찌 사람이 이 꼴을 하고도 살아남았...”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에 치료부터 하시오.”

검성의 핀잔에 사제들이 허겁지겁 달라붙어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은 것인지 사제단 전체가 달려들어 치유의 힘을 퍼붓는데도 전승 대공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소식을 전해들은 요새의 병력과 연합군의 지휘부가 이곳에 몰려들었다.

“허어... 어쩌다가...”

그들은 끔찍한 부상을 입은 전승 대공을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요?”

그리고는 곧장 검성에게 일이 이렇게 된 경위를 물었다. 하지만 신전 기사에게는 잘도 사정을 설명해주었던 검성은 어쩐 일인지 입을 꾹 다물고는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마왕과 싸운 거요? 그럼 혹시 마왕은 어찌 됐는지 알 수 있겠소?”

“허어. 전승 대공이 저리 됐는데 어찌 그런 것을 물으시오. 자중하시오.”

성급한 누군가가 승패에 대해 물었다가 다른 이들의 질타를 받고는 찔끔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제단이 전승 대공의 부상을 모두 치료해냈다.

“외상은 해결 됐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건 폭주하는 기운입니다. 저건 우리도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탈진해버린 사제단의 대표가 그리 말하고는 체면도 잊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래서 용사는 찾았습니까?”

성기사에게 간단한 설명을 들었는지 지휘부의 인사들 중 하나가 나서서 또 다시 사정을 물었다. 전선에 파견된 아스토리아의 대주교들 중 하나였다.

이번에는 다른 이들도 궁금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 어느 누구 하나 방금 전처럼 질책을 하지 않았다.

검성 역시 방금 전처럼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았다.

“용사라...”

검성이 물었다.

“궁금한 게 용사의 행방인가.”

그런데 그 음성이 유달리 날카로웠다.

“그도 아니면 성검의 행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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