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 푸어-120화 (1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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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창공의 기사 (2)

김선혁은 국왕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대신해 나선 것은 맹스크 사령관이었다.

“폐하. 그리핀도르의 소심한 작자가 귀하디귀한 그리핀 라이더들을 전장에 내보냈을 리가 없습니다. 하물며 그것도 바로 직전까지 전선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녹테인이 아닙니까.”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고,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되는 것. 필요하다면 제 부모를 죽인 원수라고 해도 기꺼이 웃으며 손을 잡는 게 바로 외교다.]

맹스크 사령관은 뛰어난 군인이었지만, 훌륭한 외교관은 아니었다. 애초에 왕국의 방패는 기략으로 적을 맞이하는 대신 기본에 충실한 전술을 선호했다. 이런 국가 간의 거래나 계략에는 다소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핀도르가 어떤 대가를 약속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터,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밀약을 맺었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건 창공의 기사들이 전선에 곧 도착할 거란 사실이다.]

국왕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맹스크 사령관을 질책하는 대신 부드럽게 물었다.

[맹스크 사령관.]

“예. 폐하.”

[그대와 그대의 군대는 창공의 기사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선을 다해 막아내 보이겠습니다.”

[듬직하군. 왕국의 방패를 믿겠다.]

맹스크 사령관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국왕은 다시 김선혁에게 말을 걸었다.

[들은 대로다. 맹스크 경은 최선을 다해 창공의 기사들을 막아내 보일 것이라 약속했다. 그대가 있건 없건 그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꺼이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낼 것이다.]

그는 맹스크 사령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난 전쟁 이후로 부쩍 늙어버린 노사령관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원한다면 언제고 전선을 떠나도 좋다. 허나 그대가 생각이 변해 전선에 남는다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겠노라. 그것이 나와 그대가 맺은 계약일지니.]

테오도르 국왕 역시 그를 굳이 잡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저는….”

**

칼스테인 요새의 주요 인사들 사이에 은밀하게 소문이 퍼졌다. 드라흔이 전선을 이탈해 영지로 돌아간다는 소문이었다.

“허. 붉은 늑대들의 우두머리에게 큰 부상을 입었다더니, 정말이었던 모양이군.”

“아무리 하늘을 이점 삼아 움직였다고 해도 작정하고 함정을 판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아무런 피해 없이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그의 상세를 염려하는 이들은 부상이 크지 않기를 바랐고,

“완전히 지 멋대로군. 운 좋게 와이번 한 마리를 얻어서 하늘에서 깔짝깔짝 대놓고는 잘난 듯이 굴더니, 마지막까지 안하무인이야.”

“전쟁이 아직 끝난 것도 아닌데 혼자 돌아가겠다니, 명성에 비해 책임감이 영….”

그가 세운 전공을 질시하는 이들은 그를 험담했다.

“이번 전쟁에서 그가 치른 크고 작은 전투만 사십 회가 넘는다. 우리 중 누가 있어 그렇게 전장을 전전하였는가.”

“그가 푸른 늑대들을 꺾고 붉은 늑대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상당한 피를 흘려야 했을 것이다. 삿된 마음으로 영웅을 헐뜯지 말라.”

물론 그에 대한 험담은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몇몇 기사들은 질투에 눈이 멀어 안전한 하늘에서 경험한 전쟁도 전쟁이냐며 욕을 해댔지만, 드레이크를 타고 치른 전투의 횟수만 해도 어지간한 기사들이 따를 수 없을 정도였으니 다른 기사들에게 구박만 받았을 뿐이다.

“흥. 그가 세운 공이라고 해봐야 아리아 아이젠을 태우고 다닌 게 고작이지. 사실 공은 아리아 아이젠이 전부 세운 게 아닌가.”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자들에게 그런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드라흔을 헐뜯었고, 명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모함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전선에 투입되어 명성을 얻을 날만 학수고대했건만, 막상 전장에 도착하고 보니 온 천지에 드라흔의 이름만이 진동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명성과 전공, 혈기 넘치는 젊은 기사들에게 드라흔은 넘을 수 없는 벽이자, 자신의 입신양명을 방해하는 훼방꾼이었다.

“나도 와이번만 있었다면….”

“이방인 따위가….”

질투와 시기로 골은 나날이 깊어졌고, 급기야 김선혁의 귀에도 그런 이야기가 들어갈 지경이 되었다.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중앙기사단이야말로 편한 곳에서 이기는 전투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놈들이 감히 백작님을 욕하는 건 진짜….”

“아니. 너야말로 그 중앙기사단 소속 기사 아냐?”

그는 잔뜩 흥분해 떠들어대는 김우영을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저는 중앙기사단의 기사이기도 하지만, 이방인이기도 하고, 백작님과 그래도 함께 싸웠던 전우 아닙니까. 전우. 전우를 험담하는데 참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요.”

지난 명령불복종 건으로 참된 교육을 받은 바 있는 김우영은 이제 열렬한 그의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그리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인데 본인이 더욱 흥분해서 떠들어대는 꼴이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떠들어대는 기사들한테 뭐라고 해주기는 했고?”

“동료들 간의 화기를 해칠 수도 있고, 제가 아직 짬밥이 그 정도가 아니라….”

요컨대 김우영이 하는 짓은 그냥 고자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나보고 가서 혼내주라고? 아서라. 괜히 같지도 않은 이름값 때문에 아군이랑 얼굴 붉히는 게 더 창피한 일이다.”

그가 혀를 차며 나무라니, 김우영이 머쓱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나저나 뭐 이렇게 소문이 빨라.”

“사령관께서 지침을 내리셨습니다. 백작님의 부재를 전제로 모든 전략을 재수립한다고.”

기사들과 마법사들 사이에만 퍼진 소문이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근데 정말로 떠나실 겁니까?”

“당장 떠날 건 아니야.”

“떠나긴 떠나실 모양이군요.”

“가야지. 내가 전쟁광도 아니고.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잖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전쟁이 앞으로 10년이 지속된다 한들 그보다 큰 공을 세울 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이번 전쟁에서 세운 전공은 압도적이었다.

“언제 가십니까?”

“할 일만 마무리 짓고 떠날 생각이다.”

김우영은 그 남은 할 일이 뭔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레벨이 곧 오를 거 같아서, 그것까지는 올리고 가련다.”

그의 대답에 김우영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이유를 물었더니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백작님도 우리와 같은 이방인이긴 하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백작님은 레벨이고 뭐고 신경 안 쓰시는 줄 알았습니다.”

“레벨을 올려야 오래오래 살아남지.”

물론 그 레벨을 올리다가 죽을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번 외유는 철저하게 시설물을 목표로 하여 타격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단지 레벨업을 위해 또다시 손에 피를 묻힐 생각은 없었다.

“건승을 바라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꼭 백작님의 영지에 들르겠습니다.”

김우영은 그와 함께 싸울 수 없다는 사실에 강한 아쉬움을 표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왕실이 허락할지 모르겠다.”

그는 건성건성 인사를 하고는 김우영을 돌려보냈다. 정작 다시 만나지 못할 것처럼 작별인사를 나누었지만, 그들은 금세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모두 그리핀도르의 그리핀 라이더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터, 우리는 드라흔 백작을 통해 하늘의 적을 상대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맹스크 사령관의 말에 기사들이 저마다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개중에는 벼르고 있던 차에 마침 잘 됐다는 얼굴로 호승심을 보이는 자도 있었고, 그저 덤덤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는 자도 있었다.

“어쩐지 자기 욕 듣고 가만있을 사람이 아닌데, 너무 덤덤하다 했어.”

김우영은 어쩐지 눈빛을 착, 하고 가라앉은 김선혁을 보며 몸을 떨어댔다.

**

훈련에 임하는 기사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지만 훈련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그들은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헉!”

“이게 대체….”

창공에서 유성처럼 내리꽂힌 와이번, 기마돌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와 기세에 기사들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검력을 일으켜 막아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빨간 점이 다가선다 싶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노린내 나는 와이번의 아가리가 바로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럼 다시.”

김선혁은 그런 그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 다시 레드번과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또다시 중앙기사단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자는 후방으로 돌려보내겠다.”

가만히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상급 기사가 으름장을 놓았다.

이번에는 쉽게 당하지 않겠다.

다시는 망신을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기사들이 호기롭게 하늘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처음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마치 첫 공격은 그저 워밍업에 불과했다는 듯이 김선혁은 인정 사정 봐주지 않았다. 그는 윈드 피어싱마저 동원해 기사들을 압박했다.

쾅!

비록 위력을 조절하고 겨냥도 살짝 옆으로 틀었다지만 까마득한 허공에서 내리꽂힌 공격의 위력이 약할 리가 없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단단한 바닥이 터져나갔고, 기사들은 그 무지막지한 기세에 하마터면 훈련 상황이라는 것조차 잊을 뻔했다.

“창공의 기사들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는 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그들이 그리핀을 타고 있는 이상 이런 식의 공격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짧게 한 마디를 한 김선혁이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녹테인의 기사들은 항상 이런 엄청난 돌격을 상대해왔던 건가.”

혈기 넘치던 기사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전장에서 거듭된 승리는 자신들이 잘나서가 아니었다. 단지 상대가 자신들과의 전투에 집중할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이런 괴물이 버티고 있으니, 전력을 다할 수 있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그간 김선혁의 공을 폄하하며 내심 이방인이라 무시하고 있던 기사들의 선입견이 완전히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온다! 한눈팔지 마!”

다섯이 한 조로 묶인 기사들이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리는 붉은 궤적을 보며 검을 뽑아들고 각기 다섯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리고는 타이밍을 노려 검을 찔러 넣었다.

쾅!

또다시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고, 기사들의 주변이 쑥대밭이 되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기사들이 대응다운 대응을 해 보였다.

“이제 진짜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너무 일렀던 모양이다. 무감정하게 한마디를 내뱉은 김선혁이 날아오르는 것을 본 기사들이 금세 질린 얼굴이 되었다.

“저거 봐. 화난 거 맞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김우영이 김선혁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몸서리쳤다. 아무래도 과거에 당했던 상처가 떠오르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훈련은 계속되었다.

쐬에에에엑!

그렇게 낯빛이 꺼멓게 죽어버린 기사들 위로 몇 번이나 붉은 궤적이 내리꽂혔다.

**

기사들이 레드번의 돌격에 완전히 적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무리 실전을 가장한 훈련이라 해도 아군을 상하게 할 수는 없는 법,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검력의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능력이 제한된 상태에서의 훈련이었을지언정, 수십 번이나 레드번의 돌격을 겪고 나니 기사들은 감히 김선혁을 더 이상 얕볼 수 없었다.

“폐하의 말이 이해가 가네. 창공의 기사들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만큼은 절대 아닐 거야. 만약 자네와 같은 자가 일곱이나 있었다면 그리핀도르는 진즉에 대륙의 패자(霸者)가 되었을 걸세.”

맹스크 사령관 역시 그간 말로만 들었던 붉은 악마의 돌격을 지켜보고는 감탄했다. 다소 과장이 섞인 말이었지만 영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칭찬에 기뻐하는 대신, 창공의 기사들이 지닌 강점을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창공의 기사들은 하나가 아닙니다.”

그의 말에 사령관은 그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과의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김선혁은 동시에 마법사들을 상대했다.

“한 자리에 멈춰 서서 마법을 뻥뻥 날려대는 건 우리 전문이지. 그보다는 방어가 먼저지 싶은데 도와주시겠소?”

머리가 희끗하게 샌 노마법사는 요격은 알아서 하겠다며, 제 몸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 말했다. 아무래도 녹테인의 마법병대가 허무하게 몰살당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버텨! 어떻게든 마법을 유지해내라!”

“이걸 어떻게 버텨!”

마법사들은 각기 자신하는 방어 마법을 펼쳤고, 그는 그 마법이 깨질 때까지 두들기고 들이 받아댔다.

“한 겹으로 안 되면 두 겹을 치면 될 거 아니야!”

마법사들의 훈련방식은 무식할 정도로 과격한 방법이었지만, 그만큼 효율적이기도 했다. 마법사들은 하나의 마법으로 부족하면 여러 겹의 마법을 펼쳐 공격을 막아내는 식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용기병이라는 건 정말, 무시무시하구만.”

작정하고 펼친 마법마저 종잇장처럼 찢어내고 머리를 들이미는 기형창의 위력에 마법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구먼. 이제부터는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마법을 강화하면 되니 백작은 더 이상 수고하실 거 없소. 그동안 고생하셨소.”

아리아 아이젠까지 동원해 혹시 창공의 기사들이 폭격을 시도할 경우마저 대비했다.

- 레벨업 했습니다.

그렇게 마법사들의 적응이 끝나갈 무렵, 김선혁은 뜻하지 않은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 3차 전직에 필요한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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