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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19화 (19/305)

<-- 10. 최강의 기병대 -->

당장에라도 최전방에 위치한 맹스크 요새로 달려갈 것 같았던 24연대 소속 중갑 기병대는 예상과는 달리 더디게 나아갔다. 대부분의 물자를 맹스크 요새에서 제공받기로 했음에도 그 행군 속도라는 게 일반 보병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 점이 궁금해 김선혁이 이유를 물으니, 클라크가 대답해주었다.

“단순 훈련이라면 모를까. 요새에 도착하자마자 작전에 투입될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말을 혹사시킬 필요는 없지. 게다가 사스테인 놈들이 얌전하게 국경 너머에서 회전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여 프레드릭은 2개 조의 기병을 번갈아 정찰대로 운용했다. 덕분에 가뜩이나 느린 걸음이 더욱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전방 이상무!”

“서남 방면, 적군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삐 오고 가는 정찰대의 기병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입이 텁텁하게 말라왔다. 그래서 김선혁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수통의 마개를 만지작거리게 되었다. 그런 그를 보며 클라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 피가 마르고 입이 탈거다. 하지만 명심해. 진짜 전투가 시작되면 지금의 긴장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는 걸. 그러니 벌써부터 힘 빼지 마라.”

“그렇게 말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격려 같지 않은 격려에 그가 입을 비죽이니, 그래도 대꾸하는 것을 보니 완전히 넋을 놓지는 않은 것 같다며 클라크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가다보니 멀리서 보이는 새까만 그림자들이 있었다. 저도 모르게 창을 움켜잡고 근육을 팽팽하게 조이는데 뒤에 있던 한센이 뒤통수를 툭, 하고 밀었다.

“피난민들이다. 긴장 풀어.”

“아...”

아무래도 국경이 소란스러워지니 위험에 민감한 백성들이 피난길에 오른 모양이었다.

“가서 국경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오도록.”

프레드릭의 명령에 기병대원 중 하나가 냉큼 달려가 피난민 무리를 향해 달려갔다가 금세 돌아왔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훨씬 흉흉한가봅니다. 당장 전투가 벌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국경 안쪽에서 붉은 깃 달린 투구를 쓴 적 기병대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답니다.”

“사스테인 놈들이군. 투구에 그런 볼썽 사나운 장식을 꽂고 다닐 놈들은 최소한 우리 군중에는 없으니까.”

기병의 보고를 받은 프레드릭이 정찰대로 1개 조를 추가하고는 탐색의 범위를 더욱 넓히라 지시했다. 그 말에 기병대 1개 조가 먼지를 피워 올리며 전장을 향해 달려가고, 피난민들의 두려움 가득한 눈빛이 그들을 스쳐갔다.

“이게 진짜 전쟁...”

겁에 질린 그 음울한 눈초리들을 보고 있자니 김선혁은 숨이 턱, 하고 막힐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스테이터스가 있고 스킬이 있어 어딘지 모르게 게임 같았던 세상에 새삼 현실감이 돌아왔다.

“정신 차려. 진짜 전쟁은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그 말에 김선혁은 양손으로 뺨을 세게 치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전장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게 된다. 벌써부터 이렇게 겁을 먹어서야 나중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선두에서 전달한다. 혹시 모를 전투에 대비해 대열 유지하고, 무기를 놓지 말도록. 나중에 가서 허둥지둥해봐야 사스테인 놈들의 화살 밥이 되고 만다.”

조용하게 전달되는 명령에 기병대원들이 수레에 실어두었던 무기들을 집어 제 말등에 얹었다. 철컥거리는 쇳소리를 들으며 김선혁은 몇 번이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

“끄응. 온 몸이 다 찌뿌둥하네.”

다행스럽게도 행군 첫날부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과도한 긴장 속에서 하루를 꼬박 보냈던지라 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불안 속에서 겨우 취한 잠마저 악몽에 시달리느라 잔 건지 안 잔 건지 모호하게 되어버린 탓에 온몸이 무겁기만 했다.

“조금만 참아. 아무리 늦게 가도 나흘이면 도착할 거리다.”

“차라리 빨리 달려가는 게 낫지 않아요?”

고작 이틀거리를 며칠에 나눠서 가야 한다는 게 도리어 비효율적으로 느껴져 그리 물으니, 클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지휘관은 저기 계신 저 분이라서.”

요컨대 까라면 까야지 별 수가 있냐는 말이었다. 딱히 반박할 말도 없는 정론이라 김선혁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을 뿐이다.

별명이 전장의 멧돼지라더니, 조심성은 더럽게 많네.

아무래도 이번에는 혹시 남게 될지도 모를 경력상의 오점에 대한 우려가, 중대장의 급한 성질을 이긴 모양이다. 그래도 제 성질을 이기지는 못한 것인지 조금씩 속도를 올리려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저건 또 뭐야?”

멀리서 먼지를 피우며 달려오는 기마가 보여 눈을 가늘게 뜨니, 정찰대로 파견되었던 중대의 기병이 보였다. 그런데 그 익숙한 모습 옆에 차림새가 가벼운 복장의 기병 하나가 함께 하고 있었다.

“뭐지?”

본대에 당도한 기병이 아덴버그 왕국의 제식 구호를 외치며 경례를 했다.

“앞으로! 27연대 소속 제 2 경장기병 중대, 3조 조장 오웬슨입니다.”

“그래서? 27연대 소속 기병이 왜 여기에 있지?”

원래대로라면 타 부대의 인원이니만큼 적당히 말을 받아주었을 프레드릭 중대장의 말투가 쌀쌀 맞은 것은 오웬슨이라는 기병의 몸에서 풍겨오는 미약한 피 냄새 때문이리라.

“현 상황, 27연대 적의 기습으로 교전 끝에 부대 재정비를 위해 후방으로 일시 퇴각 중. 이에 위험을 알리고자 중대장님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

“이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오웬슨은 현재 27연대가 퇴각 중이며, 입은 피해가 적지 않다 말했다.

“적군 규모는 1개 중대이며, 복색과 전술로 보건데 사스테인 기병단의 일개 중대가 확실합니다.”

“그 개 같은 놈들이!”

“국경 수비대는 뭐하고 있는 거야!”

여기저기서 술렁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프레드릭 중대장은 바짝 굳은 얼굴로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오웬슨에게 물었다.

“교전 시각과 위치는?”

“전일 오후, 이곳에서 서남 방면으로 5시간 거리에서 적의 척후와 최초 조우하였고, 두 시간 뒤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전은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계속되었고 아군은 피해를 만회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귀 연대의 주둔지로 일시 퇴각 중입니다.”

5시간 거리라면 바로 코앞이나 다름이 없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레에 올려두었던 대부분의 장비가 중대의 기병들에게 전달되었고, 순식간에 전투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럼 어디선가 놈들이 우리를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그간 사스테인 놈들이 보여왔던 전술에 의하면 아마도 그렇겠지요.”

중대장의 말에 1조의 조장과 2조의 조장이 굳은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빌어먹을. 이래서 처음부터 내가 다 같이 이동하자고 했건만. 뭐가 3면에서 유기적 기동을 통해 적을 유인해서 궤멸시킨다는 거냐.”

어쩐지 성질에 맞지 않게 신중함을 보인다 했더니 윗선에서 따로 지시가 내려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전술이라는 게 김선혁이 듣기에도 허술하게만 들린 걸 보니, 입안자가 그리 유능할 거 같지는 않았다.

“이거 망삘이 오는데...”

불길한 말은 가급적이면 내뱉고 싶지 않았지만, 무능한 지휘관 아래 병사들은 언제나 고생을 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저쪽 세상에서도 통용되는 이야기였고 이쪽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쪽 세상에서 치러야 할 대가가 훨씬 더 가혹하다는 것이었다. 단지 몸만 고생하면 될 뿐인 저쪽과는 다르게 이쪽은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테니까.

“알았다. 귀 부대의 용투(勇鬪)에 경의를 표하며, 그 안타까운 결과에 몹시 유감하는 바이다. 또한 황망한 와중에 보낸 배려에 감사한다.”

“별 말씀을. 중대장께서는 왕국 제일로 이름 높은 귀 부대가 부디 저 간악한 놈들에게 철퇴를 가해주기를 바라노라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다.”

27연대의 오웬슨은 보고를 끝으로 사라졌다.

**

이제 24연대 소속 중갑 기병대 백여명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이대로 속도를 올려 단 번에 맹스크 요새에 도달하여 혹시 모를 습격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한다는 것이었고, 하나는 교전을 염두에 두고 지금의 속도를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쉽지 않은 선택, 그 과정에서 프레드릭 중대장은 클라크의 의견을 물었다. 아무래도 그가 실질적인 기병대의 리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미 27연대가 당했다면, 저희 역시 노리고 있을 게 빤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속도를 높였다가는 자칫 인마가 지친 상태에서 적습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랬다면 모를까. 되도 않을 탁상공론에 시간을 너무 허비한 게 천추의 한이다.”

의견이 일치했으니 남은 것은 만전을 기하는 것뿐이었다. 그 역시 진즉에 완전 무장을 마친 중갑 기병대는 언제 돌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준비가 철저했었던 차라 프레드릭은 흐뭇한 얼굴을 해보였다.

“정찰대를 불러 들여라. 놈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안 이상, 굳이 부대를 쪼개 전력을 약화시킬 필요는 없겠지.”

그 말에 전령이 출발했고, 이내 오래 걸리지 않아 정찰대와 함께 돌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온 이들의 수가 부족했다.

“8조의 인원들은 아무래도 벌써 당한 모양이군.”

정찰 나갔던 8조의 인원 절반이 증발된 것이다. 분노한 기병대원들은 당장에라도 사스테인 놈들을 찾아 박살을 내야 한다며 떠들어댔지만, 프레드릭을 비롯한 지휘부는 침착했다.

“아무리 사스테인 놈들이 유격전에 능해도 국경 안쪽에서 오래 휘젓고 다니는 것은 상당함 부담일 터, 분명 놈들은 곧 모습을 드러낼 거다.”

프레드릭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해가 막 저물기 시작할 무렵, 적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게 사스테인?”

김선혁은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어버린 목을 풀며 멀리 보이는 적의 모습을 보았다.

급소 위주로 보강을 한 철판 갑옷은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았고, 주렁주렁 안장에 메어진 단창과 활따위는 저들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이쪽이 원래 있던 세상의 기사들과 같은 모습이라면, 저쪽은 갑옷을 보강한 몽골 기병과 같은 모습이었다.

“전 기병! 돌격 대형으로! 선두는 3조! 그 뒤는 1조와 2조가 받친다!”

하지만 속 편하게 적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김선혁이 채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전에 프레드릭의 명령이 떨어졌고, 기병대원들이 민활하게 움직이며 방향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선혁은 첫 전투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 잠시 프레드릭이 이방인이 선봉을 맡았다는 데 우려를 표하기는 했지만, 다른 기병대원들이 변호를 해주자 더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혹시라도 겁먹고 주춤거리면 가장 먼저 네놈부터 베어낼 것이다.”

프레드릭의 으름장에 김선혁은 와락 인상을 썼다.

앞에서는 사스테인 기병대가 으르렁거리고, 뒤에서는 프레드릭이 칼 쥔 손을 건들댄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그때 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측면을 잡히지 마라!”

24연대 소속 일백 중갑 기병들이 그에 대응하듯 대지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리고 김선혁 역시 떠밀리듯 말을 내달렸다. 한 발 늦게 그의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이 드디어 실전입니다. 화끈한 편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챕터는 '기병 잡는 기병대 잡는 기병대'입니다.

*표지 교체했습니다. 마음이 몹시도 아리따우신 모 독자님의 펜아트입니다. 비록 그리다 말았다고 하셨지만, 제가 보기에 몹시 마음에 들어 주워다 표지로 쓰는 중입니다. 찡긋.

이 자리를 빌어 고생해주신 제작자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0^

*앱 상에서 드래곤 푸어 김선혁이라는 제목이 길어 짧게 표기되어 '드래곤 푸...'라고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기에 표지까지 너무 사랑스러우니 장르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표지 다시 교체합니다. ㅜㅜ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이벤트 딱지 오전 중으로 발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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