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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18화 (18/305)

<-- 10. 최강의 기병대 -->

“뭐? 사스테인?”

“어디! 어디!”

단지 사스테인이라는 이름을 꺼냈을 뿐인데 신경 무딘 기병대원들이 경기를 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 발작적인 반응을 본 클라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네놈들도 알아야 할 테니, 일어난 김에 들어라. 그리고 거기 한센 좀 깨워.”

어느 기병대원이 이런 상황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센을 후려치자,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이 둔감한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어떤 놈...”

“조용.”

코를 부여잡고 발광하려는 한센을 한마디 말로 조용히 시킨 클라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맹스크 요새 인근에 3개 연대 규모의 적이 출현했다. 그런데 그 안에 사스테인 놈들의 모습이 목격되었다는 첩보가 있다.”

“그 기병 같지도 않은 새끼들이!”

“빌어먹을!”

대체 그 사스테인 기병단이라는 놈들이 어떤 자들이길래 이리도 난리인지, 김선혁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와 27연대 소속 경기병 2개 중대가 만약을 위해 맹스크로 지원 나가게 되었다.”

그는 ‘만약’이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안도하고 말았다. 어쩌면 운 좋게 대치 상태까지 가지 않고 단순한 위력 도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저쪽 세상에서 그런 식의 도발이 빈번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가 복무하던 대한민국의 휴전선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곳의 권력자들은 피를 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방금 내가 말한 만약이라는 말은 무시해도 좋다. 상부에서는 적들의 의도가 설령 단순한 위력 시위라고 할지라도 이번에야말로 사스테인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결정을 내린 상황이다.”

클라크의 말은 확인 사살에 가까웠다.

“오랜만에 위에서 마음에 드는 결정을 내렸구만!”

“오오! 드디어 빌어먹을 사스테인 놈들이랑 제대로 붙어보는 건가!”

김선혁을 제외한 기병대원들은 도리어 잘 됐다고 난리였다. 아무래도 그 사스테인 기병단이라는 놈들과 원한이 여간 깊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되는 병력은 맹스크의 5연대, 그 뒤의 27연대, 그리고 우리 24연대로 총 3개 연대 규모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임무는 경기병대가 몰아넣은 사스테인의 숨통을 끊어놓는 역할이다.”

한참을 설명하던 클라크가 다시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그 묵직한 눈빛이 부담스러워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기병 대 기병, 누가 승자가 되든 간에 피해가 무지막지하겠지. 하지만 상부에서는 아군의 피해가 얼마나 나오는지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오직 사스테인 놈들만 처리할 수 있으면 기꺼이 피해를 감수하겠지. 그만큼 사스테인 놈들한테 당한 적이 많으니까.”

밀집 대형으로 달리는 기병대간의 충돌은 승패를 떠나 양측에 큰 피해를 강요하게 마련이다. 몸을 빼낼 틈도 없는 틈바구니 속에서 양측의 기병들은 서로 들이받고 굴러 떨어져 아군과 적군의 말굽에 밟히고 사지가 으스러지고, 결국 얻을 수 있는 것은 상처뿐인 승리였다.

몸값 비싸고 조련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기병이라는 고급 자원을 그리 함부로 굴릴 지휘관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아마 끔찍할 거야. 실전 경험 없는 신병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전장이 될지도 모르지.”

딱딱하게 굳은 김선혁을 보며 클라크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에게 선봉을 맡기려 한다. 하지만 네가 거부한다면 맡기지 않겠다. 선봉의 자리는 억지로 떠밀려서 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아마도 가장 생존 확률이 희박한 선봉을 경험도 없는 신병에게 맡겨야 한다는 사실에 클라크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사내다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 그는 그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이를 악물었다.

“좋습니다. 까짓 거 제가 선봉 맡죠.”

긴장과 두려움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긴 하지만, 김선혁의 두 눈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사스테인이란 놈들. 왕국에서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적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 그렇지. 아, 아무래도 그간 그놈들에게 당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니까. 당장 격파당한 기병대만 해도 10개 중대고, 보병대는 그 몇 배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당황한 클라크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런 놈들을 처치하면 당연히 전공도 어마어마하겠네요.”

“아...”

그제서야 김선혁의 생각을 이해한 클라크가 감탄했다.

위기를 기회로.

이야말로 기병대의 진짜 사나이들에게 어울리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까짓 거 한탕 크게 하고 빚 전부 까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고. 그 놈들 잡으면 복잡하게 중대장 끼고 머리 굴릴 것도 없잖아요.”

억지로 만들어낸 호기일 게 빤히 보이는데도 그게 꼴불견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 그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그리고 딱 보니까, 내가 선봉에 안 끼면 어차피 다 죽을 판이라면서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면 까짓 거 한 번 나서서 앞에서 몸빵 해드리죠.”

긴장으로 굳어진 목을 보기 흉하게 삐걱거리면서도 허세를 떨어대는 김선혁의 모습에 클라크와 기병대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

“후우.”

결정을 내린 순간에도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게 과연 잘 하는 짓인지 스스로의 주둥이를 특어 막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김선혁은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어차피 서야 할 전장, 차라리 제 능력에 희망을 거는 쪽이 조금이라도 살 확률이 높아지는 길이었다. 최소한 멋도 모르고 무너진 대열에 발 엉켜 낙마한 채로 허무하게 죽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과연 자신이 피를 볼 각오가 되어 있냐는 것이었다. 다른 이방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죽든 죽이든 어느 쪽이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들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믿을 거라고는 저쪽 세상에서 현역 군인으로 복무하며 늘 세뇌처럼 받아왔던 정신교육이 조금이라도 망설임과 두려움을 해소시켜주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다른 이방인들보다는 사정이 조금은 낫지 싶었다.

“사스테인 기병단은 대체 어떤 놈이죠?”

마음은 무거웠지만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그날 선봉에 서기로 나선 이후로 김선혁은 클라크에게 불려가 따로 교육을 받았다.

“사스테인 기병단은 경장 기병도 그렇다고 중갑 기병도 아닌 근본 없는 잡종 놈들이다. 그들은 특별히 조련된 전마를 타고 원거리에서 적을 괴롭히는 전술을 선호하지.”

들어보니 사스테인 기병단이라는 놈들은 저쪽 세상의 몽골 기병과 서양 기병의 장점만을 모아 만들어진 괴물 같은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근접전 자체를 꺼리는 것은 아니야. 그런 그들을 얕 잡아보고 무리하게 돌격했다가는 도리어 이쪽에서 잡아먹힌다.”

파괴력과 속도, 둘 다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이곳에는 기사라는 초인들이 있었기에 그게 가능했던 모양이다.

“기사로 성장할 가망이 없어 일찌감치 퇴출된 놈들이지만 견습 기사 정도의 재능은 있는 놈들이야. 그게 바로 사스테인 놈들이 무서운 점이다. 분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부족한 무게를 만회하기에 충분하다.”

경기병대의 몰이가 성공한다고 해도 저들을 꺾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는 클라크를 보며 김선혁이 불쑥 물었다.

“그럼 우리 기병대는요?”

무게와 속도, 양립할 수 없는 그 두 개의 기치를 동시에 거머쥔 것은 저들뿐만이 아니었다. 클라크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든든한 얼굴을 해보였다.

“믿겠다.”

어깨를 두들겨주는 클라크를 보며, 김선혁이 말했다.

“아무래도 리허설이 필요할 거 같아요.”

**

아무리 생각해도 실전 경험도 없는 자신이 선봉에 서는 것은 무모한 행위였다. 하지만 그 무모함을 만회하기 위해서 김선혁은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진짜 괜찮겠어?”

“어차피 촉 빼고 쏘는 거라 맞아도 안 죽을 거 아니에요.”

요나슨의 우려 섞인 얼굴에도 김선혁은 완강했다.

“아무리 촉이 없어도 달리는 속도가 실리면, 어디 한 군데 구멍 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걱정 말고 쏘기나 하라니까요.”

전혀 흔들림 없는 그 모습에 갑주를 가볍게 입은 기병대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가 이방인들의 훈련방식은 이해할 수가 없어.”

기병대원들은 김선혁이 말한 리허설이라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선봉에 서려면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적에게 통할지를 알아야 한다며 굳이 훈련을 강행했다.

그게 바로 사스테인 기병단의 주 전술 중 하나인 충돌 전 원거리 사격을 체험해보는 것이었다.

“재수 없게 다가가기도 전에 화살에 털리면 그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한 그가 말을 한참이나 뒤로 물렸다. 그를 따라 요나슨과 기병대원들도 멀찌감치 물러나 신호를 기다렸다.

“지금!”

이내 약속했던 깃발 신호가 떨어지자 서로가 서로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와. 살 떨리네.

꽤나 먼 곳에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면에서 마주오는 기병대원들의 박력에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는 마음을 다잡고 말을 내달렸다.

“쏜다!”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경고, 그 순간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기병대원들이 쏘아올린 화살이 그에게 짓쳐들었다.

“윈드 피어싱.”

속삭임과 동시에 스킬이 발동되고 사방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어느 순간 그를 둘러쌌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거대한 기류 위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팅. 팅.

듣기 거북스러운 소음, 하지만 김선혁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움츠렸던 어깨를 펴며 활짝 웃었다.

**

“저, 저게 말이 돼?”

최대한 사스테인 기병단의 전술을 비슷하게 발휘하기 위해 최대한으로 시위를 당긴 활이다. 그런데 그렇게 내쏜 화살들이 김선혁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피, 피해!”

“저, 저 미친놈이!”

그 경이로운 광경에 입을 쩍 벌린 기병대원들이 뒤늦게 저 무지막지한 챠징이 자신들을 향해 있음을 깨닫고는 혼비백산해서 흩어졌다.

그리고 김선혁 특유의 말도 안 되는 챠징이 끝이 나고, 다시 그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와. 혹시나 했는데, 이 어려운 걸 내가 해냈네. 또.”

한껏 거들먹거리는 그 뻔뻔스러운 모습에 기병대원들이 어이없는 얼굴을 해보였다. 하지만 그가 놀라운 도전을 성공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그럼 화살을 막을 수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범위가 문제인가. 혹시 제 뒤에서 저 도와주실 분?”

“끄응.”

결국 요나슨과 기병대원들은 효율적이지만 이 살떨리는 훈련에 끙끙대며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김선혁의 시도는 그 뒤로도 며칠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그 무모한 실험이 끝이 났을 때, 김선혁과 기병대원들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이 정도면 사스테인 놈들이랑 맞붙었을 때, 지지는 않겠죠?”

김선혁의 질문에 클라크와 기병대원들이 피식 웃었다.

“사스테인 놈들이 문제가 아니라, 사스테인 할애비가 와도 안 밀리겠다.”

클라크의 대꾸에 김선혁이 활짝 웃어보였다.

**

출정의 날은 빠르게 다가왔다. 적 기병단이 국경 인근의 마을들을 우선적으로 유린할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기병대가 우선적으로 주둔지를 떠나게 되었다.

“조심하고. 저번에는 미안했다.”

“저도요. 형도 사스테인인지 뭔지 하는 괴물 같은 놈들하고 붙어야 한다던데... 몸 조심해요.”

이번 출정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은 것이 기병대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퍼진 후라 강정태와 박수홍이 사과를 해왔다.

“국경에서 봐요.”

말 위에 앉은 채로 김선혁은 그들에게 짧게 인사를 해보이고는 곧장 기병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김선혁과 24연대 중갑 기병 중대는 주둔지를 나섰다.

========== 작품 후기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의 지적처럼 사실상 서평을 쓰기에는 분량이 적습니다. 그래서 이벤트를 분량이 모이는 18일까지로 잡았습죠. 그러니 제가 수치사 하든 말든 천천히 달아주시면 됩니다. 제가 죽어도 이 글은 계속됩니다. 데헷.

*헉! 궳둛쉓궷님께서 글쟁이의 수치사를 막아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수치사 걱정 없이 느긋하게 이벤트 진행하며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글쟁이의 연재력이 다소 상승합니다. 아주 낮은 확률로 연참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선작과 추천 코멘트는 글쟁이의 좋은 단백질원입니다.

*전편에 오류 지적해주신 독자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앞으로도 기탄 없는 지적과 비판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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