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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7화 (7/305)

<-- 05. 노가다의 신 -->

김선혁은 더욱 더 훈련에 몰두했다. 그저 각성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겉핥기로 배웠던 기초 군사 교육의 교범을 되짚어가며 닥치는 대로 병기술을 연마했다. 손에 잡히는 게 창이라면 창을 휘둘렀고 검이라면 검을 찔렀다. 또 방패가 있으면 방패를 들고 하루종일 날뛰어댔다.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저러고 있어?”

“벌써 며칠째야.”

김선혁의 기행은 이제 24연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중갑을 착용한 채 연병장이 좁다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는 주둔지의 병사들에게 꽤나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이방인이라고 죄다 날로 먹는 놈들만 있는 건 아니었구먼.”

“그러게 하루도 빠짐없이 참 열심히여.”

스킬과 병과를 이용해 쉽게 성장하는 이방인들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일반 병사들이 어느새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와, 기병대 놈들 텃세 진짜 장난 아닌가보네.”

“저쯤 했으면 이제 좀 받아줘라. 기병인데 말도 못 타게 하고. 저게 뭔 짓거리여.”

개중에는 쓸데없이 자부심만 강하다며 기병대를 험담하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기병대원들은 뜬금없이 원성을 사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는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눈 아래로 여기는 보병들 따위와 드잡이질을 하기에는 체면이 상한다 여기기라도 한 것인지 애써 모르는 척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노골적으로 김선혁을 무시하는 것으로 풀었다. 이제는 기병대원들 중 어느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따금씩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하던 요나슨마저도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거라도 마시고 하쇼.”

한창 창을 휘두르던 김선혁은 이름 모를 보병의 호의에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거, 날 때부터 기병은 없는 거랍디다. 열심히 하다 보면 저 모진 놈들도 인정을 해줄 거요. 힘내십쇼.”

끝까지 모를 소리를 해대는 보병의 모습에 어찌 대답해줘야 할지 몰라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만 표하니, 그게 또 사내다워 보였는지 보병이 더욱 더 진한 눈빛을 보내다 사라졌다.

“뭐지? 요즘 들어서 자꾸 이러네.”

근래 들어 지나가던 보병들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종종 생겨 의아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보병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린 김선혁은 이내 다시 창을 휘두르는데 집중했다.

[눈물 겨운 반복 훈련 끝에 새로운 스킬을 성장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왕국 표준 창술 스킬(최하급)이 왕국 표준 창술 스킬(하급)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스킬은 이후에도 꾸준히 연마하여 발전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왕국 표준 창술 스킬이 성장해 해당 무기에 대한 숙련도가 기존보다 상승합니다. 공격 속도와 위력이 조금 더 상승합니다.]

“아자!”

조금 전부터 뭔가 감이 올랑 말랑 하더니 스킬이 성장하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최하급에서 하급으로 창술 스킬이 성장했다는 메시지에 김선혁은 환호를 내질렀다.

[김선혁]

□ Level. 2

□ 용기병(Dragon Rider)

□ 고유 속성

-풍(風)

□ 근력 19 / 지구력 18 / 민첩성 21

□ 보유 스킬

-드래곤 테이밍

-드래곤 라이딩

-차징(Charging)

-초급 기마술

: 초급 기마술 + 차징 = 어설픈 차징

-왕국 표준 창술(하급)

-왕국 표준 검술(최하급)

-중갑 기동(30Kg)

-보병 방패술(최하급)

열흘이라는 기간 동안 얻은 것이 적지 않았다. 방금 전에 이루어낸 창술 스킬의 성장 말고도 검술과 중갑 기동, 보병 방패술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잠도 줄이고 내내 훈련에만 매진해 극한의 노가다를 통해 얻은 쾌거였다.

“전과 비교하면 1.5 배쯤은 강해진 거 같은데.”

실제로는 어떨지 몰라도 자신감이 마구 차올라 그는 되는 대로 지껄여댔다. 그게 영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닌 것이 중갑 기동 스킬 덕분에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내지른 창과 검은 확실히 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꽈르릉.

혼자서 우쭐거리던 그가 갑작스러운 뇌성에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잔뜩 구름이 낀 하늘이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동작을 열흘이나 반복한 탓에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던 그인지라 훈련을 마무리 지었다.

“설마 영원히 말을 못 타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이제는 기병답게 말을 타야 할 시간이었다.

이런 저런 소득을 얻었다지만 그래도 그날 겉핥기로나마 맛보았던 속성의 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쯤이면 승마 금지령을 풀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클라크를 찾았다.

“아, 잊고 있었군. 요즘 이래저래 녹테인 놈들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말이야.”

마침 중대장의 막사에서 나오던 클라크는 잊고 있었다 말하면서도 전혀 미안한 얼굴이 아니었다.

“다시 기마 훈련을 하는 건 좋지만, 시기가 영 그렇네.”

“또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 있지.”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더니 클라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태풍이 올 거거든.”

이건 또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린지, 클라크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네놈이야 원체 몸이 튼튼하니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이런 날씨에 말 타고 미친놈처럼 설쳐댔다가는 말이 견디지 못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잔뜩 구름이 낀 하늘이 빗방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서 막사로 돌아가. 할 일이 아주 많아질 거다.”

**

“망할 마법사 새끼들! 알려주려면 일찍 알려줄 것이지!”

얼굴에 들러붙은 정체불명의 천조각을 떼어내며 한센이 사납게 욕설을 내뱉었다.

“날씨 좋을 때 미리 준비했으면 좀 좋아?”

평소라면 시끄럽다고 한센을 타박했을 동료 기병대원들도 이번만큼은 투덜대는 주둥이를 막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친놈처럼 날뛰어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하는 작업이 못마땅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던 탓이다.

“지금이라도 알려준 게 어디냐. 저번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막사 다 날아가고 마구간 무너져서 나중에 말 찾는다고 고생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한창 마구간의 지붕을 보수 중이던 클라크가 기병대원들을 다독였다. 하지만 기병대원들의 짜증은 끝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만 일찍 태풍이 올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틀거리에 위치한 국경의 맹스크 요새로 피신해 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지금 죽어라 달리면 태풍이 제대로 시작되기 전에 맹스크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자살하고 싶다면 안 말리마. 대신 니 말은 두고 가라. 내가 잘 써줄 테니까.”

이죽거리는 동료의 말에 한센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 평원에서 말을 달리는 것만큼 미친 짓도 없는 건 스스로도 인정하는지 별달리 반박하지는 않았다.

“근데 저쪽은 아까부터 뭐가 저렇게 소란스러워?”

한창 작업에 열중하던 클라크가 웽웽거리는 바람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소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막사 쪽인데, 뭔 일 있는 거 아냐? 한센 니가 가서 확인해봐.”

“왜 내가!”

“아까부터 입만 나불대는 게 별로 할 일이 없어 보여서.”

클라크의 지시에 한센이 구시렁거리다 결국은 마지못해 막사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금세 달려오는데 그렇게 돌아오는 한센의 얼굴이 뭔가 신기한 것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뭐야? 진짜 무슨 일 있어?”

“그게 그 이방인이!”

이방인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클라크가 황급히 마구간의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아니, 막사 주변이나 정리하라고 남겨둔 애들 있잖아.”

“아오! 답답하게!”

터프가이들뿐인 기병대 속에서도 유독 뇌까지 근육으로 들어찬 한센을 심부름 보내는 게 아니었다고 자책하며 클라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곧장 소란의 중심지를 향해 달려갔다.

“어?”

그런데 그렇게 막사로 달려온 클라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광경을 발견하고는 얼빠진 얼굴을 해보였다.

“오오오!”

궂은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환성, 그 중심에 삽을 굳세게 움켜쥔 김선혁이 있었다.

**

처음에는 그냥 보고만 있으려 했다. 김선혁은 대놓고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내들 사이로 파고들 정도로 호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굳이 나서서 일감을 찾을 정도로 작업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기병대원들이 배수로를 깐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아오. 우리가 왜 이런 작업까지 해야 돼! 기병 체면이 있지!”

“땅개 새끼들도 지들 막사 정리하고 주둔지 보수하느라 바쁘시단다!”

그런데 삽을 들고 부산을 떨어대는 기병대원들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날 것만 같았다. 도대체가 삽을 제대로 잡아본 적은 있는지 싶을 정도로 어설프기만 한 삽질, 정말로 기병대원들은 삽질하고 있었다.

“나와 봐요!”

결국 보다 못해 삽자루를 뺏어들고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뭐래. 이 비실이놈이.”

고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기병대원들의 입이 쩍 벌어지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삽을 이렇게 잡고!”

굳세게 삽자루를 움켜잡은 김선혁이 어설프게 만들어둔 배수로에 삽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는 곧장 힘을 실어 깊게 박힌 삽날을 퍼 올렸다.

“이렇게 퍼내다 보면!”

너무나도 숙련된 동작, 단 몇 번의 반복만으로 이제까지 기병대원들이 끙끙대며 파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봐요! 금방 되잖아요!”

마치 이 쉬운 걸 왜 못하냐는 듯한 말투에 기병대원들이 얼빠진 얼굴을 해보였다. 제 딴에는 시범이랍시고 몇 번이나 같은 동작을 해보였지만 도대체가 아무리 봐도 뭘 어떻게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걸 왜 못해요!”

하기야 그들이 어디 가서 배수로 까는 거라면 이골이 난 대한민국 병장의 삽질을 구경해보았겠는가. 능숙하다 못해 마치 마법이라도 부리 듯 배수로를 빠른 속도로 깔아가는 김선혁의 모습은 차라리 경이롭기까지 했다.

콱, 콱!

만약 삽질로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삽질은 세련미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고 또 그만큼 효율적이었다.

“오오오!”

순식간에 막사 주변을 둘러싼 배수로가 생겨났다. 그 엄청난 속도에 기병대원들이 무심코 환성을 내뱉었다.

한 번의 삽질에 한 번의 탄성, 클라크의 명령을 받은 한센이 막사를 찾은 것도 이때쯤이었다. 클라크는 엄청난 속도로 배수로를 깔다 못해 성의 해자라도 파듯 깊게 땅을 파헤치는 김선혁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삽질의 신이구만!”

작업도 멈추고 김선혁만 졸졸 따라다니는 동료들의 모습이 이해가 갈 정도로 엄청난 모습이었다.

한센이 그렇게 놀라고 있는 사이, 김선혁은 주변의 반응이야 어떻든 간에 삽질에만 열심히였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막사 주변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그간의 스트레스가 정화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오오!”

주변의 환성에 그가 더욱 더 신이 나서 삽을 움직였다. 원래대로면 적당히 시범만 보이고 빠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높은 스테이터스 수치 덕인지 마음먹은 대로 쑥쑥 파이는 배수로를 보고 있자니 그만 작업에 열중하고 말았다.

“아...”

뒤늦게 스스로가 무아지경에 빠졌었음을 깨달은 김선혁이 탄성을 내뱉으며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보았다.

막사 주변을 빙 둘러싼 배수로는 깊어도 정말 깊었고, 깔끔해도 심하게 깔끔했다. 이 정도면 다른 곳은 다 떠내려가도 이곳만큼은 멀쩡하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수로는 완벽했다.

높은 스테이터스 수치와 총보다 삽이 친근한 대한민국 육군 병장의 경험이 이루어낸 환상의 콜라보였다.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재능이 발휘되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상급 작업 스킬이 항목이 생성되었습니다.]

[주둔지를 보수하고 진지를 형성하는 데 소모되는 체력이 대폭 줄어들고 작업의 효율이 향상됩니다.]

한 술 더 떠서 스킬까지 생성되었다. 밤낮 없이 몸을 혹사시키고 나서야 겨우 생성되었던 다른 스킬과 비교하면 정말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스킬 하나를 얻은 것이다.

차라리 황당할 지경이었다.

“이게 정말로 너 혼자 한 거라고?”

언제 나타난 것인지 클라크가 말을 걸어왔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어깨까지 들썩이며 말을 하는 사내다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네.”

김선혁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형용불가의 얼굴이 된 클라크가 배수로와 그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참 만에 물었다.

“혹시 삽질 말고도 다른 것도 할 줄 아나?”

그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육군의 자부심, 연장만 있으면 못할 게 없는 게 바로 말년 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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