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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65화 (166/225)

165화 처리

***

수만 명이 거주하는 자하드 영지에 혼란과 파괴, 비명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테러를 일으킨 흑요정 페르쿠스가 흩뿌린 네멘스토의 숨결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스며들어 그 육체를 제물로 괴물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요정이 빠른 다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넓은 영지를 전부 돌아다니면서 네크놀을 만드는 것은 시간상, 그리고 공간상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사람들이 많은 밀집 구역부터 시작해서 네크놀들을 만들고 광범위하게 퍼지도록 유도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인간의 피와 심장, 뇌를 양분으로 마력을 증폭시키고 동족을 만드는 네크놀들은 그 본능에 따라 더 많은 생명력과 마력이 깃든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씩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본능에 이끌린 대로 무차별적인 파괴를 일으킨 것이 문제일 뿐, 자하드 가문이 보유한 병력은 막강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네크놀들을 몰아냈다.

“기동 제한 완료!”

“찔러넣어!”

하나의 괴물에 다섯의 병사들이 달라붙어서 무기를 찔러넣었다. 일개 영지의 병사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의 갑옷과 품질이 높은 무기가 그들에게 들려 있었다.

마치 사마귀의 외견을 본딴 것 같은 형태의 네크놀이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강철 그물이 다리를 붙잡으며 움직임을 제한했고, 곧바로 날카로운 창날이 그 몸통을 헤집으며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왔다.

키에에에에!

별안간 사마귀 형태의 네크놀이 괴성을 지르며 마력을 발산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방사형으로 밀리고 날아갔다. 병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으아아악!”

“버텨야, 컥!”

네크놀의 팔끝에 달린 기다란 칼날이 병사 하나의 배를 관통한 채 들렸다. 질 좋은 강철 갑옷이 그 한 수에 부서지며 쇳조각을 떨어트렸다.

키르르르르······.

낮은 울음을 흘리는 네크놀의 입이 병사에게 다가왔다. 좌우로 쩍 벌려지면서 수십 개의 톱날 같은 이빨이 스멀거리고, 아무것도 없는 어둠이 그 안에서 넘실거렸다.

“큭, 아아아악!”

배가 관통당한 병사는 그 와중에도 허리춤에서 보조 무기인 단검을 꺼내들어 네크놀의 팔을 내리쳤다. 죽음이 바로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와중에도 보이는 투지였다.

끄륵, 끄륵, 끄륵.

그런 인간의 발버둥이 같잖다는 듯 네크놀의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병사의 배와 다리를 타고 떨어지는 핏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안색이 창백해진 병사가 결국 팔을 축 늘어트렸을 때.

“하압!”

위급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소녀의 기합 소리와 함께 섬광이 작렬했다.

짜자자자작!

허공이 깨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네크놀의 정수리에 청백색의 벼락이 내리꽂혔다. 벼락과 함께 나타난 것은 백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녀였다.

어디서 주워든 것인지 장검 하나를 들고 네크놀의 정수리에 매달린 소녀는 괴물의 체내 속으로 전격을 끊임없이 밀어넣었다.

키아아아악!

거대한 몸집의 사마귀가 온몸을 비틀면서 날카로운 앞발을 휘둘렀다. 자신을 노리는 섬뜩한 칼날에도 불구하고 아엘라시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알았어!”

누군가에게 답한 아엘라시스가 딛고 있던 네크놀의 정수리를 박차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녀가 발한 선명하고도 맑은 심상이 마력과 섞여든다.

샤아아아아-!

그러자 마력으로만 이뤄진 푸른 얼음 결정이 허공에 나타나더니 그대로 거대한 창이 되었다. 세 개로 갈라진 뾰족하고도 날카로운 창날에 어린 한기가 하얀 숨결을 줄기줄기 내뿜었다.

아엘라시스의 검지가 정수리에 검이 꽂힌 네크놀을 가리켰다. 여전히 검에서 쏟아지는 전격에 온몸을 바들거리며 서 있던 괴물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외침과 함께 하얀 얼음의 창이 공간을 관통했다. 병사들이 그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이미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네크놀을 꿰뚫은 후였다.

쩌저저적······!

사마귀 괴물의 온몸이 급속도로 냉각되더니 그대로 얼음 동상이 되어버렸다. 괴물을 꿰뚫은 냉기의 창이 대지에 틀어박히자 엄청난 냉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솨아아아-!

기온이 급격하게 하강하면서 열기와 냉기가 뒤섞이고, 난기류가 휘몰아치며 거센 바람을 불렀다.

그러나 태풍 같았던 바람은 곧 산들바람으로 변하며 주변을 부드럽게 휘감다가 사그라들었다. 주변을 모두 얼릴 기세로 퍼지던 냉기도 어느 순간 주춤하더니, 아엘라시스가 마력을 거두자 평범한 물이 되어 바닥을 적셨다.

벼락과 얼음 창의 공격에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간 네크놀이 비틀거리다가 건물 하나를 무너뜨리면서 쓰러졌다.

그 충격에 칼날에 배가 관통당해 있던 병사가 휙 날아가다가 누군가의 품에 쏙 안겼다.

“괜찮아?”

어느새 정오에 뜬 태양.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흐릿해진 시야로 눈부신 햇살과 그 햇빛을 정통으로 받는 소녀의 얼굴이 들어왔다.

“처, 천사님······ 이십니까?”

“에? 어, 아닌데.”

아엘라시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병사는 그 답을 듣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그제야 병사의 배에 뚫린 구멍을 본 아엘라시스가 곧장 바닥에 내려앉은 뒤 병사를 눕혔다.

“델리온!”

마력파에 의해 멀리 날아갔던 병사들이 쓰러진 병사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그러다가 바로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아엘라시스를 보고 멈칫했다.

“누, 누구십니까?”

“야, 그분이시잖아. 그 왜, 도련님이 데려오신······ 마법사.”

“아, 아아. 아니지. 델리온이 부상 당했어! 누구 붕대나-”

“괜찮아.”

다급히 응급치료를 하려던 병사를 아엘라시스가 가벼운 손짓으로 비켜나게 했다. 키와 체구가 작은 소녀가 건장한 성인 장정을 손쉽게 밀어낸다.

밀려난 병사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엘라시스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정체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용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보일 수 있는 의문이었다.

병사를 물린 아엘라시스가 배 위에 두 손을 겹쳐 올리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수인을 맺지도, 주문을 외우지도 않았다. 그저 마력에 의지를 실었다. 그리고 마법은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듯 구현되었다.

솨아아아아······.

연녹색의 빛이 일어나며 병사 델리온의 몸을 덮었다가 사라졌다. 아엘라시스가 작고 고운 손을 치우자 뻥 뚫려있던 구멍은 매워져 있었다. 둥글게 찢어진 천옷과 누비, 그리고 박살난 갑옷만이 그 자리에 흉악한 관통 자국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손을 탁탁 턴 아엘라시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병사들이 경외의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상처는 치료했지만 피를 많이 흘렸어. 무리한 거동은 안 하는 게 좋대, 아니 좋아.”

“예! 감사합니다!”

넙죽넙죽 허리와 고개를 숙인 병사들이 축 늘어진 델리온을 업고 바삐 사라졌다.

“후.”

아엘라시스는 가벼운 한숨을 내뱉으며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목에는 검붉은 색깔의 팔찌가 끼워져 있었는데, 표면에 새겨진 무늬로 보아 평범한 팔찌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엘라시스가 거기에 입을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여긴 끝났어, 언니. 치료도 했고.”

그러자 팔찌에서 칼리아의 목소리가 울리며 아엘라시스의 말에 대답했다.

-잘했다. 이제 대강 마무리가 된 것 같구나. 난 이루실이랑 합류해서 남은 것들을 정리하마.

아엘라시스가 이곳, 주거 구역으로 날아오면서 처리한 괴물들만 일곱 마리. 그녀 혼자서 처리한 숫자가 그 정도고 방금처럼 기사나 병사들이 붙잡고 씨름하고 있던 괴물을 처리한 것까지 합하면 열 마리를 얼리거나 지져 죽였다.

그녀의 감각에도 영지에 남은 괴물은 확연히 그 수가 줄었다. 멀리서 쿵, 쿵 하고 울리는 소음이 둘 이상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두 마리 이내일 것이다.

“······.”

아엘라시스의 시선이 주변을 쭉 훑었다. 그야말로 대참사나 다름없다. 최소한 수백 명 이상이 다치거나 죽었다. 어쩌면 천 명에 가까울지도.

괴물에게 직접 죽은 것보다는 간접적으로 죽은 사인들이 더 많았다.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죽었다던가, 괴물과 자하드 가문의 병력이 충돌하는 여파에 죽었다던가, 아니면 도망치는 사람들 틈에서 넘어져 죽었다던가······.

하지만 그리 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았고, 또 봐왔음에도 소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그녀의 친구가 아닌 탓이다.

***

“크륵······.”

러셀의 발아래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몸이 꽤 튼튼하군.”

“험한 일 하는데, 튼튼해야지······ 큭큭.”

고개를 내저은 러셀은 그대로 바이젠의 멱살을 쥐고 들어올렸다. 바이젠도 작지 않은 키였지만 러셀이 눈높이까지 끌어올리자 겨우 발끝이 땅에 닿았다.

“살고 싶나?”

러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바이젠은 입 안쪽을 우물거리다가 핏덩이를 퉤, 하고 뱉었다.

“시발, 죽고 싶은 놈이 어딨어? 존나 멍청한 질문이네.”

“너도 그 흑요정이랑 한 패인가?”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 컥!”

두리뭉실한 대답에 곧바로 러셀의 주먹이 바이젠의 배에 꽂혔다. 그 충격에 바이젠의 몸통이 앞으로 훅 꺾이고 가죽자켓의 등 부분이 터져나갔다.

몸을 직접 타격하면서도 안의 뼈나 내장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섬세한 마력과 타격의 운용이 돋보이는 일격에 바이젠이 박수를 쳤다.

“와우, 시, 발. 센 건 알았는데, 이 정도였나? 우리 누나랑 붙이면 볼만 하겠는데······”

“대답하지 않을 건가?”

“아, 해줘야지. 안 그러면 더 때릴 거잖아? 난 맞는데는 취미 없다고······ 누나라면 몰라도.”

실실거리며 웃던 바이젠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까 네가 말했던 것처럼 제국 측에서 의뢰를 건 게 맞아······. 그것도 이젠 지지세력이 다 떨어져 나간 황자쪽에서였지. 지금 당장은 황녀가 다음 황제로 아주 유력하거든. 어디서 그리 힘이랑 세력을 키워왔는지, 요 1년간 아주 공격적으로 원로원을 압박했지······. 우리는 그냥 떠돌아다니는 용병들이야. 다만 아주 특별한 고객들만 상대하지.”

러셀이 말했다.

“귀족들이군.”

바이젠이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귀족, 왕족, 황족······ 자신들이 푸른 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뭐 그중에는 진짜로 푸른 피를 갖고 있는 놈들도 있지만. 어쨌든. 의뢰 내용은 별거 없었어. 그냥 한 흑요정 호위 임무였지. 자하드 영지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온 흑요정을 호위하면서 빠져나오고, 국경을 넘어서 제국에 다시 데려다놓는다. 진짜 별거 아니었단 말이지.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아무리 돈을 제시해도 받아주지 않는 건데.”

“알았다. 이제 자라.”

러셀의 오른손에서 솟구친 푸른 전격이 바이젠의 뒷목에 스며들었다.

“으겍!”

괴상한 신음과 함께 바이젠으 축 늘어졌다. 뇌와 척추가 연결되는 연수에 직격으로 전격을 때려박았으니 한동안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격이었지만 바이젠의 체내를 살펴본 바, 러셀은 그가 쉽게 죽지 않을 정도의 육체단련을 일궈낸 전사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기절시킨 바이젠의 뒷덜미를 잡은 러셀은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영지를 가로지르는 러셀은 그대로 감각권을 넓혔다.

집에 숨어들어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과 건물의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출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라하르트 또한 갑옷에 흙먼지를 묻혀가며 나무 기둥을 들어올리고 석재를 박살내는 중이었다.

타닥.

“누구······! 도련님?”

“뭐?”

바닥에 내려선 러셀을 보고 검을 들었던 기사가 그를 알아보고 외쳤다. 라하르트 또한 뒤를 돌아보다가 러셀을 보고 말했다.

“러셀! 그쪽은 다 끝난 거냐?”

러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제가 온 곳에서는요. 느껴지는 이상 반응은 없었습니다.”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린 라하르트가 문득 러셀의 손에 들려있는 바이젠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구냐?”

“이야기하자면 복잡하지만······. 아버지. 이번 테러는 제국에서 일으킨 것 같습니다.”

“뭐라고?”

라하르트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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