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단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차츰 가늘어진다. 어두운 하늘은 아까보단 그 먹먹함이 덜했지만, 그럼에도 햇살이 지상에 닿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크, 하아······.”
ㅁ뒤늦게 고통을 알아차린 루가네스가 신음을 뱉었다. 그러다 오른손에 들린 지팡이를 치켜들어 러셀을 공격하려 했다.
쾅!
걷어차인 루가네스가 고랑을 깊게 파며 진흙탕 위에 널브러졌다. 허나 걷어찬 러셀은 찜찜한 표정이다. 사람의 육신을 때린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 그보다는 솜이불을 찬 것 같다.
찰나에 마력을 둘러 러셀의 공격을 막아낸 루가네스가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비는 내리고 있다.
“······너무 큰 욕심을 부린 모양이군.”
그러고는 지팡이를 바닥에 세우고 오른손으로 잘려 나간 어깻죽지를 빠르게 훑었다. 그의 입에서 고통 어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두건은 충격에 뒤로 젖혀져 있었다. 외외로 그 안의 얼굴은 평범한 청년의 것이었다.
흔하디 흔한 갈색 머리카락에 약간 얄상한 얼굴. 당장 어느 영지, 도시나 마을에 집어 던져놓아도 위화감이 없다.
허나 푹 꺼진 눈두덩 안쪽에서 빛나는 붉은 동공은 인간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 말하는 듯했다.
“죽여버리겠다.”
루가네스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다시 한번 흑마력이 일어서고, 조합되며 현상을 빚어내기 시작한다.
그 모든 광경은 러셀에게 차곡차곡 쌓이는 경험이 되고 있었다. 이 세상에 흑마법사가 저놈 하나뿐 일리가 없다. 아니, 많을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마법의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재능이 필요하다. 웬만한 재능이 아니고서는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진리의 편린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악마와의 계약은 그보다 간단하고 쉽다.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키워준 부모를 살해하고, 목숨을 살려준 친구를 배신하고, 알고 지냈던 모든 인연들을 파괴할 수 있다면.
그들을 제물로 바칠 수 있다면 악마는 힘을 내려준다. 설사 이후 영혼이 저당 잡혀 무간지옥에 빠진다고 해도 개의치 않을 놈들은 많았다. 그들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이미 지옥이었으므로.
죽은 후에 받게 될 고통은 너무나 먼 것으로 느껴지기에 악마와의 계약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러셀은 마을 여기저기 죽어있는 시체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런 더러운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저 개같은 흑마법사의 공격 패턴과 마력의 흐름 등을 충분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흑마법사의 지팡이에 매달린 다섯 개의 강철 고리가 맹렬히 떨리며 소음을 자아낸다. 저장되어 있던 모든 흑마력이 풀어헤쳐졌다.
“피어나라!”
두 번째로 외쳐지는 시동어. 그 주문의 반경 안에 있던 것은 나머지 세 개의 키메라 시체 전부다.
콰아아아!
생명 반응이 없어야 할 시체들에서 폭발적으로 마력이 뛰쳐나오고, 인간 비스무리한 이족보행의 원형이 무너진다.
마력에 이끌리는 것은 키메라들 뿐만이 아니었다. 루가네스가 이제껏 죽여왔던 마을 사람들의 시체 또한 끌려왔다.
액체처럼 흐르는 피와 살들은 한데 모이더니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외관의 군육체群肉體를 형성했다.
진물인지 핏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끈적한 액체를 줄줄 흘리는 군육체가 세 개의 다리에 네 개의 팔을 휘두르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괴성을 질렀다.
그어어어어어-!
그런 이적, 아니 괴적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기괴한 형상을 빚어내는 흑마법사의 마력과 주문을 보면서, 러셀은 체내를 가만히 관조하고 있었다.
상승한 마력 제어력으로 가능한 것들은 앞으로도 다양할 것이다.
아까처럼 마력을 넓게 퍼트려 자신만의 영역을 만드는 것 또한 그 한 갈래에 속한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영역’이라는 것이 이스칼리아와 싸울 때의 공간을 재현할 수 있는 기초 중의 기초라는 것을 알았다.
아직은 걸음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그만의 절대무변한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압사당해 죽어라!”
거대한 질량이 하늘을 가리며 덮쳐든다.
콰앙-!
군육체의 거인이 손바닥으로 땅을 내리치자 굉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파가 주위의 건물들을 깡그리 날려버렸다.
그에 그치지 않고 물러진 지반이 내려앉았다. 어디로 흐를지 몰라 고여있던 빗물들이 푹 꺼진 지반으로 줄줄 흘러 들어갔다.
루가네스는 눈을 희번득거리면서 주위를 살폈다.
“뭐야. 어디로 간 거냐?”
이제까지 그가 본 러셀의 신체 능력이라면 저 공격을 곧이곧대로 맞았으리라 생각하지 않은 것. 하지만 마력으로 주위를 훑어도 러셀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파아아아앗!
손바닥을 내리친 자세 그대로 굳어 있던 군육체의 거인이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윽고 거인의 전신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진물을 흘리던 피부가 새하얀 물감으로 덧칠되어 간다.
거인이 얼어붙으면서 근처의 모든 액체들도 빙결되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때마다 뭉툭한 얼음들이 피어났다.
“이 무슨!”
경악한 루가네스가 지팡이를 휘둘러 거인을 조종하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마력을 투사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그보다 강력한 누군가의 마력이, 흑마법사의 마력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 마력의 주인, 러셀은 손바닥 아래에서 한 손만으로 그 거대한 것을 받치고 서 있었다. 주위는 온통 서리 범벅이다.
“하아아······.”
하얀 숨이 허공에 맺어지다가 사라진다.
러셀의 하반신은 완전히 땅속에 묻혀져 있었다.
그럼에도 상체는 꼿꼿이 세워져 있고, 손바닥을 노려보는 두 눈에는 안광이 형형했다.
냉기를 다루는 도끼를 휘둘러 온 지 벌써 몇 달. 그는 이제 냉기라는 속성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것을 마력으로 어떻게 조형하는지도 알았다.
다만 도구를 통해 뿜어내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편리해 쓰지 않았을 따름. 그리고 도끼를 통해서만 냉기를 쓸 수 있다는 착각 또한 심어줄 수 있었기에, 이제까지 쓰지 않았다.
놈의 마력은 이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아마 죽은 키메라의 체내에 있던 붉은 수정을 강제적으로 촉발시키기 위해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러셀은 얼어서 굳은 손바닥에 대고 주먹을 툭, 갖다댔다. 작은 충격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전격. 날카롭고 회전하는 드릴 같은 전격이 군육체의 거인을 꿰뚫었다.
쿠구구구구······.
군육체의 거인이 조각조각 무너져 내리고, 러셀이 구덩이 안쪽에서 솟구쳐 하늘 높이 올랐다. 그 뒤로 서리 조각들이 유성우 같은 꼬리를 그린다.
루가네스가 다급히 지팡이를 휘저어 마력을 일으켰다. 갈퀴처럼 일어난 마력이 무너져 내린 군육체의 사체 조각들을 끌어모아 자신을 고치처럼 감쌌다.
그를 본 러셀의 눈빛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더는 보여줄 게 없나 보군.”
대기 중의 수분을 응결시켜 탄환처럼 쏘아내고, 공기의 충격파를 만들고.
키메라들을 조종하면서 죽은 사체 또한 흑마력으로 되살려 조종할 수 있지만.
고작 이 정도. 그러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라 할지라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재해나 다름없다.
러셀의 위로 치켜든 오른손 검지에서 푸른 전격이 일다가, 돌연 위로 쏘아졌다. 푸른 섬광이 점차 그쳐가는 구름 속으로 파고든다.
우르르릉.
하늘이 화답했다. 그리고, 방전한다. 짙은 회색 속에서 발광하는 빛무리.
광포한 힘의 격류가 소리보다 빠르게 러셀에게 깃들었다. 입에서 저도 모르게 침음성이 나왔다.
“큭.”
문은 그가 열었으되,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은 구름이 오랫동안 품었던 빛과 빛의 메아리, 땅에게 건네는 하늘의 가장 폭력적인 질문과 답이다.
러셀조차 벼락을 오랫동안 몸에 묶어놓을 수는 없다. 자신의 마력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 순수한 벼락의 힘은 그도 잠깐만 정신줄을 놓는다면 마력 회로와 근육, 신경을 태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렇기에 그는 벼락을 전신에 휘감은 채로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그 끝에는 무너져 내리는 사체들을 끌어올리는 흑마법사의 다급한 몸짓이 있다.
퍼뜩 위를 쳐다본 루가네스의 비명은 엄청난 천둥에 묻혔다.
***
비는 모두 그쳤다. 하늘의 구름은 이제 조금씩 개어가고 있었다. 러셀은 저 먼 지평선에서 평야를 훑는 광선들을 지켜봤다.
마을은 완전히 폐허 비스무리한 뭔가가 되어있었다. 흑마법사가 막판에 모든 마력을 소진해서 만든 군육체의 거인이 휩쓸고 지나간 탓이다.
폐허를 보던 그는 다시 쭈그려 앉아 아까까지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던 것을 내려다봤다.
“그으아아아······.”
사지가 완전히 뜯겨 나간 벌레 같은 것이 의미 없는 신음성을 냈다. 러셀이 손수 뽑아버린, 흑마법사의 몸뚱아리다. 그 옆에는 조각조각 부서진 지팡이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쉽게 죽여주지 않겠다는 말을 확실히 지켰다. 영겁과도 이어지는 고통의 순간에서, 루가네스는 흐른 시간이 한 시간도 아니고 고작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에 절망했다.
“죽고 싶나?”
러셀의 물음에 천천히 끄덕여지는 고개. 마음 같아서는 더 빠르게 끄덕이고 싶지만, 신경을 태우는 전격의 짜릿함은 그런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러셀은 그를 지지고 있던 손가락을 몸에서 떼어냈다.
“크허헉, 허억, 허억!”
러셀의 손가락이 떨어지자마자 다급히 숨을 몰아쉬는 루가네스. 얼굴에서는 피 섞인 눈물, 콧물, 침 따위가 섞인 채 줄줄 흐르고 있다.
“그 붉은 수정은 네가 만든 건가?”
“붉은 수정······. 새, 생명의 돌을 말함인가······.”
그걸 생명의 돌이라고 하나. 인간의 육과 혼을 제물 삼아 만드는 물질이니, 어찌 보면 틀린 명칭도 아니다.
“생명의 돌······, 은 악마에게 전달받은, 지식 중 하나다······.”
“목적이 뭐지?”
“대륙, 전반의 혼란······.”
“네가 모시는 악마의 이름은 뭐냐?”
이제까지 잘만 말하던 놈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언뜻 두려움의 색채가 눈에 스친다. 허나 러셀의 알바는 아니었다. 러셀은 두 눈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 번쩍이는 안광을 직시한 루가네스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말해.”
“게, 겔리오투스······. 흐어어억!”
겔리오투스라는 말을 하자마자 놈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단숨에 온몸의 피부가 쪼그라들더니, 가슴을 중심으로 압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흐아아악! 안돼! 안돼!”
퍼벅, 하고 놈의 눈알이 피를 튀기며 터졌다. 러셀은 뒤로 물러났다. 루가네스의 가슴팍에서 일어난 흡입력이 그의 몸을 통째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우득, 우드득!
압력을 이기지 못한 뼈마디가 우그러지며 한점으로 수렴한다. 놈의 살, 신경마디, 내장 등, 신체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곧, 피 한 방울 살점 하나 없이 말끔히 소멸했다. 잔여 마력 하나 남지 않았다.
악마와의 규칙을 어긴 결과. 육체의 통제권을 잃고 영혼은 지하에 떨어진다. 러셀도 지식이나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앞장서서 고문하고 있었기에 뒤로 물러서 있던 일행들이 저마다 끔찍한 것을 봤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엘라시스가 속이 더부룩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뭐랄까. 엄청······.”
“끔찍하군. 악마와 계약을 한 자들의 말로가 저러한가.”
칼리아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겔리오투스.”
“아는 악마인가?”
“······내가 인간이었을 때, 나와 계약했던 악마였느니라.”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자세히.”
“그 당시에도 대악마라 불렸던 악마였다. 살육과 시체를 좋아하는 악마지. 대륙의 중부에서 살았고, 거점이 어딘지는 아무도 몰랐지. 악마의 전령이 내게 왔었다. 그때의 나는 거의 모든 국토를 잃고, 왕국의 수도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던 중이었지.”
칼리아는 담담하게 자신의 과거를 말했다.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삭막했다. 그건 과거를 그저 과거로 받아들인 자의 얼굴이었다.
“그때의 내게는 복수심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계약을 맺었고. 강력한 힘을 얻었지만, 그 또한 내 백성들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끝내 나 또한 스러져 봉인되었지.”
“악마는 무얼 얻었나?”
“세상에 가득 찬 신음. 세상과 신을 저주하는 목소리.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죽은 자들의 시체······. 악마의 기호는 다양하나, 대개는 저런 것들이지.”
상종을 못할 것들이군.
“그 악마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 모양이로구나. 이런 흑마법사가 돌아다니고,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생명력을 모으고 있다면,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에서 대악마에 대한 것들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텐데.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인지.”
러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가네스가 있던 자리는 흡입력에 따라 진흙과 풀 따위가 소용돌이처럼 감겨진 채로 파헤쳐져 있다.
그들은 비가 그친 하늘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의 시체들을 한데 모았다. 그 양이 적지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러셀은 그 모두를 교회 안에 안치시켰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의자들을 모두 벽면으로 밀거나 부서트린 다음, 바닥에 한 구씩 내려놓았다.
러셀은 교회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마지막 서리를 회수하고,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작은 불똥이 튀었다가, 그의 마력을 받아 거센 불길로 자라났다.
교회가 활활 타올랐다. 검은 재와 연기를 하늘로 휘날리며, 잘도 탔다.
그때 걷혀가던 구름 틈에서 눈부신 햇살이 교회를 비췄다. 중천에 떠 있는 해는 따스한 시선으로 교회를 내려다봤다. 그 시선 속에 타오른 재가 춤을 췄다.
“가자.”
러셀 일행은 몸을 돌려 마을을 빠져나왔다. 아무도 그들을 배웅하지 않았다.
아엘라시스가 쪼르르 달려가 러셀의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칼리아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그림자 속으로 스르르 스며들었다.
“카이! 안와?”
“가오.”
목책 앞에서 불칸과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던 카이가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자신을 불살라 지상을 비추는 태양신을 믿는 것처럼, 교회는 자신의 품에 들어온 모든 이들을 불로 태워 하늘로 올렸다.
***
“저기, 마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확실한 거겠지.”
“예, 아무렴요.”
“지도를 잘 본다더니. 그냥 혼자 와도 좋을 뻔했는데.”
“······그랬으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늦게 마을을 찾았을 겁니다.”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어떤 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마을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음. 습격을 당한 걸까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귀족적인 얼굴이지만 입고 있는 것은 여느 모험가나 용병과 다를 바 없는 청년. 그가 목책을 보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에 당한 흔적 같은데.”
반면 흑발에 흑안이라는 이질적인 외모의 여인이 목책을 손으로 훑었다.
이미 시일이 많이 지난 것인지 마력의 흔적은 아주 옅었다. 그러나 마력을 곧잘 다루는 그녀는 이 목책의 파괴가 마법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마법이요?”
“그래. 충격파로 날렸어. 규모로 보아 강한 마법사였군.”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 같이 가요, 이루실!”
“오기나 해.”
파렐스는 다급히 이루실을 쫓아 마을에 들어섰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