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화 〉 강시 아니라고(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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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하면 한 번쯤은 주인공의 무공 수련 파트가 나오곤 한다. 기초를 잡아가는 장면부터 하산하는 장면까지, 무협지라면 무조건 한 번은 등장해야 하는 부분이다.
물론 수련따위 전부 스킵하고 바로 강해져서 나오는 작품도 있지만, 그래도 수련씬이 있어야 뭔가 주인공이 노력으로 강해졌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단 말이지. 폭포도 맞고, 운기조식도 하고, 영약도 먹고, 기연도 얻고...
근데 읽을 때는 괜찮은데, 직접 하는 건 좀 이야기가 달랐다. 물론 내가 하자고 말한 거지만 뭔가 막 굴리는 느낌이란 말이지.
“아직 364번 남았느니라.”
“아직도요?”
“그렇느니라.”
드럽게 많이 남았네. 나는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베며 생각했다. 무려 이 공간에서 수련 한 달째, 나는 미친 듯이 굴려지고 있었다. 정신과 시간의 방 곳에서 미친 듯이 굴려지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무공을 배우는 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으로 한 달 정도를 버텼다.
말이 한 달이지 어쩌면 보름일지도 모르고, 세달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무림과는 유리된 시간을 가진 장소였으니까.
그런 곳에서 장백파의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 미친 듯이 굴려지는 중이고.
장백파의 심법인 무원심공? 인가하는 걸 배우긴 했지만, 내 베이스가 베이스라 심법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더라. 하긴 머리가 분리되는 시점에서 정상적으로 내공심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어.
물론 망할 미트칼리버가 몸에 특수한 조치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덕에 실제로는 연결된 거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구음지체 같이 특이한 상태인 것은 맞아서 그 부분은 방법이 없단다.
어휴, 인생 뭐 하나 쉽게 가는 거 없네.
돌아가면 미트칼리버 한테 야채나 한 껏 먹여야지. 거부권 따위는 없다.
“딴생각하지 말거라.”
“넵.”
쓸데없이 눈치만 빠르시네. 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매일 천 번 검 휘두르기 이후에는 검법 전수와 보법 수련이 이어졌다.
장백파의 검법은 굳이 말하면 검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사부의 말에 의하면, 제자가 되기 전에는 기생집에서 추던 검무를 검법으로 재정립 시킨 검법이라고 했다. 기생집에서 검무를 췄다는 말이 좀 놀랍긴 했지만, 무림이 있는데 검무 추는 기생이 뭐가 대수라고.
그래서 딱히 이름도 없단다. 애초에 본인 대에서 전수도 하지 않고 끝난 검법이라 이름을 붙일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고, 붙일 생각도 없다고.
“많이 늘었구나.”
“한 달 동안 안 재우고 수련만 했는데 안 늘면 그게 사람이예요?”
“세상천지에 몸이랑 머리가 따로 노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좀 그런데요.”
반박할 수가 없네.
몸이랑 머리가 서로 분리되는 인간이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지. 좀비도 몸이랑 머리가 떨어지면 죽는다고. 생명체의 절대명제를 무시하는 시점에서 인간을 자칭하기는 좀 그렇지.
실제로 사신에 가까운 몸이기도하고.
“자, 보여 줄테니 따라 하거라.”
언제나 그랬듯이, 내 스승이 된 월향사부는 내 앞에서 검무를 추었다. 초식이니 뭐니 하고 딱딱 갈라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춤을 그리며 나아가는 검법이었다. 정확히는 검을 들고 추는 춤에 가까웠다.
곡선을 그리며 잔상을 남기는 검이 허공을 베고, 찌르고, 때로는 회전하며 화려한 움직임을 보인다. 검이 그리는 궤적은 이 공간에 유일하게 떠 있는 달빛을 조명 삼아 화려하게 반짝였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검무였기에, 나는 넋을 놓고 검무를 바라보곤 했다. 벌써 스무번 넘게 본 검무임에도 그랬다. 화려함과, 어딘지 모를 아련함과, 절도 있는 동작이 그리는 궤적은 그만큼 시선을 잡아끌었으니까.
내가 저런 검법을 따라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었지만, 어차피 장백파의 무인 행세를 하려면 배워야 하는 검법이었다. 나는 최대한 일부러 느리게 펼쳐지는 검무의 동작들을 하나하나 눈에 새겨 가며 검법을 익혀갔다.
물론 보법도. 결국 검무를 추려면 보법 또한 배워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나비가 살랑살랑 날갯짓을 하듯, 검무에 맞춰 움직이는 다리와 발의 움직임 또한 내 뇌에 전부 새겨넣었다.
그리고 스승의 지도 하에 검무를 하루에 수십 번씩 춰가며 검무를 춘지 대략 한 달.
기본적인 틀이 잡히고 적당히 봐줄 만한 수준까지 또 한 달.
이 공간에 들어온 지 세 달이 지났다.
“이제 좀 봐줄 만 하구나.”
“그래요? 난 그냥 좀 편해진 것 말고는 모르겠는데...”
맨날 똑같은 춤을 추니 꿈에서도 춤추는 꿈을 꾸게 되던데. 심법도 어느 정도 개량된 걸 굴려서 내공은...못 쌓았다.
어차피 혈맥은 노폐물 하나 없이 깨끗하니 혈도문제도 없고, 신체 능력은 애초에 탈 인간 수준이니 베이스 하나는 아주 훌륭하니 내공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는 커버 가능했다.
스승 말로는 순수하게 신체 능력으로만 초절정 고수와 붙어도 밀리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까. 물론 단순하게 스펙만 비교했을 때지만, 등선까지 한 절대 고수의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닐 거다.
내공이 문제기는 하지만 그건 애초에 내가 인간이 아니므로 굳이 내공을 쌓을 필요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
인간처럼 굳이 내공을 쌓아서 자기 몸에 맞게 개조할 필요 없이, 적당히 선기를 뽑아서 내공 대신 사용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문제는 내 기운이 기본적으로 사기(死?)를 띠고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평범한 사람은 훅 갈 수 있다는 거다.
여기서 사신인 게 이런 식으로 적용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자동으로 디 버프를 거는 패시브가 달려 있는 거잖아. 아니 나야 무기가 하나 더 생기면 좋긴 하지만 그래도 좀 신경 쓰이지?
사실수틀리면 입에서 피를 뿜어내서 얼굴을 피범벅으로 만드는 게 제일 쉽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짓하면 뭔 취급을 받을지 모르니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놓을 생각이었다.
“이 공간도 이제 한계로구나.”
“그렇게 부셔먹었으니 어쩔 수 없죠 뭐.”
얼마 전부터 몇 주 동안 대련하면서 이곳저곳 부숴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덕에 어느 정도 고수(인간기준)소리 들을 정도로는 배울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이제 적당히 뒤로 빼면서 눈치 싸움하다가 다른 신선 좀 찾아봐야지.
요 스승은 신입중의 신입이라 그런 거는 잘 모르신단다. 그렇다고 나를 선계로 데려가기에도 문제가 많아서, 결국 직접 발로 뛰어서 다른 신선을 만나러 가야 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묘하게 도움 안 되는 스승일세.
“...뭔가 건방진 생각하고 있는 듯 하구나.”
“네? 제가요?”
“너 말고 누가 있느냐.”
“그런 생각 한 적 없는데요?”
왜 킹받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럼 나는 가야겠구나. 그 늙은이들이 나를 얼마나 볶아댈지 생각하면 정말 짜증이 나는 구나...”
월향 사부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공에 손을 휘저어댔다. 동시에 공간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싸부, 나중에 봅시다.”
“...그래. 망할 제자야. 나중에 보자꾸나.”
결국 다른 신선들이랑 접촉하다 보면 사부랑 한 번 정도는 만날 테니까.
겉으로는 동년배로 밖에 보이지 않는 사제지간은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애매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광경이 눈에 들어오자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내 숙소가 어디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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