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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323화 (323/352)

〈 323화 〉 에포나의 기묘한 모험(9)

* * *

“...여긴 어디지?”

천마는 눈을 떴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 보였다.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있는 모양을 보니 숲인 모양이라고 그는 추측하며,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천마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에폰나에게 손이 잡히고 엄청난 풍압과 동시에 의식을 잃은 장면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팔이 욱신거린다고 생각하며 천마는 흙먼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끌고 다닌 정체불명의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기감에도 잡히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그를 버리고 간 건지, 아니면 어디를 멀리 갔다 오는 모양이라고 천마는 생각했다.

전자는 그를 끌고 왔음에도 버리고 갈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차치하고, 후자라면 그 말도 안 되는 속도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못해도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비견될 속도라면 잠깐 ‘어딜 갔다 오는’ 의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도망칠까?’

천마는 고민했다. 이 시점에서 그를 납치한 소녀가 그보다 훨씬 윗줄에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천마는 비록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멍청하지도 않았다. 적당한 오성과, 적당히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그는 눈치가 빨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림에서 눈치가 없으면 별다른 사문 없이 살아남기는 요원한 법이니까. 특히 자신이 건들면 안 될 사람과 건드려도 탈 없을 사람을 구별해 내는 건 무림인이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할 능력이었다.

세상에 은 거기인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 하나 잘못 건드렸다가 죽어 나가는 무림인 숫자만 따져도 중대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천마는 가진 모든 능력을 총 동원해 주변을 살폈다.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얼마나 멀리 나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여기서 도망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상대가 그보다 월등히 빠르다는 점, 그리고 상대가 어디로 갔을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상대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지금 쉽게 놓쳐줄 것 같지도 않고, 잘못 개기면 천마라는 이름 값도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될지도 모른다. 협행을 하고 싶어도 일단 살아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천마는 엄마를 기다리는 자식마냥 얌전히 있기로 했다.

도망칠 궁리를 할 시간에 어떻게든 정보를 캐낼 생각하는게 더 이득일 테니.

“그 전에 이 숲이 어딘지 알고 싶군...”

이 세상에 표류하게 된 지 1년째, 그는 전 대륙을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여행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대수림부터 중원에서는 보기 힘든 사막, 황야, 초원까지 돌아다녔지만, 적막한 분위기의 숲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까마득하게 큰 거목들과, 적막함 사이에 스며들어오는 스산한 기운, 그리고 그늘에 묻힌 축축한 흙바닥. 나무 사이로 보이는 끝없는 숲의 풍경은 장관이었지만, 천마에게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천마는 품속에서 주섬주섬 낡은 종이를 꺼냈다.

대륙의 대략적인 지형이 기록된 지도였다. 여행자들에게는 무조건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할 평가를 받는 물건은 꽤 고가의 물건이었다. 천마도 두어 달 정도 괴물들을 사냥해 얻은 돈으로 겨우겨우 산 지도였다.

천마는 일단 그가 장기간 체류하고 있었던 도시인 샤르지를 먼저 찾아냈다. 대륙의 동쪽에 있는 샤르지는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였으니, 최소한 사막을 넘어간 것은 확실했다. 지도에 표시된 샤르지에 손가락을 짚은 그는 천천히 서쪽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사막을 지나, 교역거점으로 유명한 모니카 마을. 그리고 더 서쪽으로 가면...

“...정말로 그곳은 아니겠지?”

그의 추측이 맞다면,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건 뭐야?”

“아아, 이건 지도라는 것이오...는 언제 오셨소?”

“방금?”

에포나는 손에 들고 있던 당근을 한입 베어물으며 대답했다. 당근 씹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에포나가 바로 옆까지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천마는 식은땀을 흘리며 에포나를 올려다보았다.

손에 가득 들린 당근은 어디서 가져온 걸까.

묻고 싶었지만 천마는 묻지 않기로 했다. 변변찮은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 애초에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먹을래?”

“괜찮소. 그보다 여긴 어디오?”

“어...여기가 어디야?”

“...내가 어떻게 알겠소? 소인을 데려온 것은 그대가 아니오?”

“그냥 달리다 보니 도착해서 잘 몰라!”

환장하겠군.

천마는 도대체 눈앞의 소녀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캐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악행을 저지른 것의 여부는 둘째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백치미 넘치는 소녀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벅찼기에 생각을 직접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럼 소인을 데려온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음~재밌어 보여서?”

한 치의 거짓없는 진실이었다. 에포나에겐 그녀의 주인을 위한 적당한 이야깃거리가 필요했고, 재밌어 보이는 인간을 집어 온 것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폭거에 천마가 필사적으로 인내를 삼켰다.

당장에라도 따지고 싶지만 따지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나름 절정 고수라는, 소수 중의 소수라는 실력자였지만 눈앞의 소녀에 비하면 반딧불이에 지나지 않으니, 천마는 잠자코 소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소인이 그렇게 재밌는 인간인지는 모르겠소만...돌려보내줄 수 있겠소?”

“음~하지만 아직 재밌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도대체 그 재미있는 일이 무엇이오?”

“주인님한테 해 줄 이야깃거리가 필요해!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전미가 울었다? 그런 거!”

“...전미가 울었다?”

낯설지만 어디선가 들어 본 말인 것 같은데.

천마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본 말이었다. 하지만 무림도 아니고 여기도 아닌, 그것보다 더 과거의...

“...당신도 이세계에서 왔소?”

“응!”

“혹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시오?”

“응! 거기서 살았어!”

동향사람이라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 그래도 동향사람이라면 말은 어느 정도 통할지도 모르겠어.

그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타향살이에서 동향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반가운 일이 없다고, 천마는 조금이나마 경계심을 누그러트렸다. 동향사람이란 것을 밝혔으니 바로 해코지를 하려 들지는 않으리라.

애초에 해코지를 할 의향이 있다면 식량을 그에게 주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혹시 이세계에 오기 전 몇 년 도에 살았는지 기억하시오?”

“음...몇 년 이었더라...3121년?”

너무 멀잖소!

그 때쯤이면 무협이고 뭐고 판타지 소설같은 게 남아 있을지 의심스러운 시간대였다. 2020년대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는 천 년이 넘게 차이 나는 격차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천 년이나 차이 나는 건 너무 하지 않은가.

이래서야 그가 살던 때의 지구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물어보는 것도 못 하게 생겼다.

“신기해! 주인님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야! 너는 몇 년도에서 왔어?”

“2021년의 지구에서 전염병으로 죽어 이세계에서 환생했소만...이렇게 말해도 이해할지 모르겠소.”

“아! 나도 알아! 그거 코로나지?”

“...미래의 교과서에도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소?”

천 년이나 시대가 차이나니, 그가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천 년이나 차이 나는데 정보를 습득할 방법이 교과서 밖에 생각나지 않기도 했다. 애초에 에포나의 외관 연령이 10대로 보이니 나오는 결론이기도 했다.

“교과서가 뭐야?”

“...미래에는 교과서도 없는 모양이로군. 그럼 어떻게 코로나를 알고 있는 것이오?”

“음~하지만 나리도 코로나에 걸렸는 걸. 그때는 주인님도 엄청 걱정하셨는데~”

“마치 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말하는군...”

“살았는데?”

“?”

“?”

두 명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는 지나친 시대 차이에, 에포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는 그에게 의문을 표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오. 어떻게 사람이 천 년을 넘게 살 수 있단 말이오?”

백 년이면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천 년은 어떻게 인간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단 말인가.

“사람 아닌데?”

“무슨 소리오? 그럼 그대는 귀신이라도 되는 것이오?”

“나는 말이야!”

“말? 내가 아는 그 말이 맞소?”

“응!”

천마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에포나는 그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대답할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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