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 만우절은 죽었어...이젠 없어!
* * *
“나 니 사장인데.”
[이건 무슨 신박한 장난이야? 나 지금 진짜 바빠!]
“감봉당하고 싶지 않다면 정신 차리려무나. 진짜 그러다 월급이 X노스 당하는 기적을 맛보게 될거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니 근데 진짜 사장님 맞아요? 아무리 들어봐도 웅녀 목소린데?]
“몸이 바뀌었어.”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악! 거기서 왜 죽어!]
“말 그대로야. 자고 일어나니까 나랑 웅녀 몸이 바뀌었어. X의 이름은을 현실에서 찍을 생각은 1도 없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몸을 다시 바꿀 방법을 찾는 중이거든? 판도라의 상자가 원인인 것 같아서 그것도 다시 확인해 보고 싶고.
지금 대화 가능하지?”
[죄송하지만 지금...]
“하지?”
[네!]
그래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렇게 나와야 내가 월급을 준 보람이 있다고. 내가 네 월급루팡질을 그렇게 참아주는데 이런 때도 그렇게 나오면 진지하게 미트 칼리버랑 조그레스 진화 시켜버릴 의향도 있단 말이야.
[아, 그래서 몸을 다시 뒤바꿀 방법을 찾으시는 거죠? 판도라의 상자가 원인인 것 같아서 확인도 해보고 싶고?]
“응.”
그러니까 빨리 답을 찾아서 내놓거라 이 게임 중독자 여신아. 거 내가 물어보는 와중에도 손은 열심히 레이드 보스를 때려잡고 있구나. 정말 미친 듯이 타자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네.
누가 재를 여신이라고 믿을까. X쿠아보다 더 충격적이라고. 개는 소설 속 여신이니까 그런 애여도 납득했지 현실 여신이 저러고 다니면 이미지가 박살나다 못해 가루가 되어버린다고. 차라리 일코라도 잘하면 그러려니 하는데 재는 애초에 일코따위 내던져버린 놈이고.
“그래서 방법 알아?”
[음...판도라의 상자는...레이드만 끝나고 한 번 체크해 볼게요.]
“그래. 근데 네 언니 말로는 판도라의 상자가 원인일 수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해?”
[변수가 없다면, 언니 말이 맞겠죠. 저 꼴이라도 머리 하나는 잘 굴리는 언니인지라.]
동생한테도 취급이 박하네. 하긴 트롤링 하다 칼 속에 갇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좀 듬직하던가 아니면 착하기라도 했으면 적당히 언니 대접받았을 거 같은데 뭐 자업자득이지.
꼬우면 반항해 보던가.
“근데 판도라의 상자가 진짜 원인이라면, 해결할 방법은 있어?”
[다시 봉인하면 아마 원래대로 돌아갈 거에요.]
‘아마’라...그럼 아닐 수도 있다는 거네. 그래도 일단 판도라의 상자부터 확인하고 나서 다음 방법을 생각하면 되겠지.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근데 왜 웅녀랑 내 몸이 뒤바뀐 걸까.
그럴듯한 공통점 같은 게 있어 보이지도 않고.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회수한 쪽이니까 그렇다고 쳐.
근데 왜 웅녀야? 웅녀는 판도라의 상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텐데? 접점도 없을테고. 뭐 안에 있는 거랑 궁합이라도 좋았던 건가. 잘 모르겠네. 웅녀한테도 물어봐야 하나? 근데 굳이 뭐 물어볼 필요까지 있으려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애초에 이번 일이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하는데, 늘어지면 방송도 문제고, 일상생활도 문제다.
진짜 이런 일은 왜 생겨가지고.
“그럼 판도라의 상자 들고 우리 집으로 와. 알았지?”
[그냥 체크만 하면 될...]
“들고 와.”
게임한다고 대충 체크 할지 모르니까 안되지. 이런 건 제대로 확인해야 뒷 탈이 없는 법이라고.
[네...]
여전히 불길하네.
나는 눈앞에 놓인 판도라의 상자를 보며 생각했다. 이 작은 상자가 한 세계를 개판낸 걸 생각하면 ‘불길하다’ 정도로 끝나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 작은 상자는 세상을 아주 박살 낼 힘이 숨겨져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나는 미트 칼리버를 판도라의 상자 옆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판도라의 상자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여는 건 아니다. 그냥, 어떤 반응이 올지 테스트하는 것 뿐이었다. 애초에 봉인되어 있어서 열고 싶다고 열 수 있지도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상자로 손을 뻗었다. 이윽고 내 손끝이 상자에 닿았을 때, 나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봉인되어 있으니까요.”
“그럼 내가 만져보는 의미가 있는 거야?”
내 물음에 마리아는 상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봉인되어 있다고 해도, 판도라의 상자는 만만한 물건이 아니에요. 이번 일의 원인이 판도라의 상자의 영향이라고 한다면 봉인된 상자에 닿기만 해도 무슨 반응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연관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네요.”
마리의 시선이 내 눈과 마주쳤다. 아니, 자세히 보니 마리아는 내 머리 위를 보고 있었다.
“상자 속 내용물의 잔재가 들러붙은 것 같네요.”
“...엄청 심각한 거 아냐?”
“잔재 정도야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진 건 아니에요. 기껏해야 몸 뺏으려다 영혼을 뒤바꿔버린 정도인데...웅녀의 육체가 이런데 취약한 모양이었네요.”
“아니 나는 아니잖아. 내 몸이 그런 거에 취약할 것 같지는 않은데. 모리안이 지가 쓰겠다고 이것저것 덕지덕지 기묘한 기능 달아놓은 거 아니었어? 이런 상황에 대비한 보안 시스템도 없다고?”
“그렇긴 하지만...제 언니는 불행하게도 뭔가 이상한 곳에서 실수를 하곤 해서.”
“아...그래.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해결하는데?”
“잔재를 봉인하고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돌아갈 거에요. 영혼은 그에 맞는 그릇이 있어야 하는 법이거든요. 모리안 언니가 굳이 몸을 개조해서 쓰려고 했던 이유기도 하고...”
시시한 결말이네.
“뭔가 허무한데.”
“해결이 아예 안 되는 것 보단 낫죠.”
“틀린 말은 아니네.”
“그리고 잔재를 봉인한다고는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 안에 있던것들은 하나하나가 세상을 멸망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것들이라, 찌꺼기에 불과한 것이라도 방사능 폐기물 처리하듯이 해야 되거든요.”
“그래? 그래서 이건 어떻게 봉인하는데?”
“두들겨 팹니다.”
“뭐?”
“몸에 들러붙은 잔재를 붙잡아놓고 두들겨 패서 힘을 뺀 다음 상자에 넣습니다.”
“거, 어처구니없는 방법이네.”
“유진씨니까 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일반인이면 들러붙은 시점에서 꼭두각시가 될 뿐이라고요. 유진씨가 말했던 그 고양이 처럼요.”
“아...그런건가.”
“저는 의식을 준비할 테니 웅녀양을 데려와 주시겠어요?”
“알았어.”
나는 마리아의 말을 따라 웅녀를 데려왔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웅녀는 어쩐지 어색한 눈으로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마리아가 왜 나오냐는 표정인데...생각해보니 애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바, 방법을 찾으셨다구유...?”
“응. 그러니까 협력해줘.”
“지는 언제든 환영이에유...근디 왜 마리아 선배가 여기에?”
“이쪽 전문이거든.”
“아...그래유?”
“응. 이 쪽은 그래도 전문가니까 믿어도 돼. 마리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돼?”
“적당히 넓은 공간이 있을까요?”
“방송실가면 되겠네.”
우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자를 들고 방송실로 향했다. 방송실은 세연이가 청소를 해 놓은 덕에 깨끗했다.
“여기에 나란히 누워주세요.”
나와 웅녀는 마리아의 말에 따라 나란히 누웠다. 마리아는 상자를 우리 둘이 머리 사이에 두고는,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잔재는 의식 깊은 곳에 숨어있을 거에요. 제가 마법으로 잔재를 붙잡을 테니, 의식 속으로 들어 가서 잔재를 두들겨 패서 무력화시키면 될 거에요.”
“쉽고 간단하네.”
“말처럼 쉽게 되길 빌게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