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후일담:책임 없는 쾌락(1)
* * *
“저 잠시 시공에 다녀오겠습니다~”
시공이 뭐임?
시공은 시공이지 뭐겠어. 사실 대놓고 화장실 다녀온다고 말하니까 유라랑 한솔이가 좀 부끄러움 좀 가지라고 해서 돌려 말하고 있는 거였다. 하긴 여자들은 화장실 다녀온다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더라.
저번에 공용화장실 가보니까 물 내릴 때 새소리 나는 기계도 있던데.
근데 왜 화장실이 시공이냐고?
몰?루.
그냥 대충 아무거나 쓰자해서 가장먼저 떠오른 게 시공이었을 뿐이다.
읍읍
말하면 혼남 아 ㅋㅋㅋㅋㅋ
ㅜㅑ ㅜㅑ
나는 헤드셋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좀 갔다 와야지. 벌써 4시간이나 가만히 앉아서 게임하고 있었다고. 나는 방을 나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런 몸이 되어도 생리현상은 평범하게 생긴다는 게 참 신기하단 말이야.
이런 몸이면 그냥 생리현상 정도는 안 생겨도... 아닌가 있는 게 낫나. 인간미를 위해서 말이야. 아무리 처먹어도 오줌도 똥도 못 싸면 좀 이상할 것 같은데. 정작 입으로 생...아니 피를 토하면서 말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볼일을 보고 나온 직후였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다 위화감을 눈치 채고 멈춰 섰다.
문이 왜 열려있지? 내가 문을 닫아놓고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혹시 모를 상황 때문에 잠시 볼일을 보러 나올 때는 문을 닫아놓는 습관이 있었기에 내가 문을 열어놓고 나갔을 리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문틈으로 안을 살폈다.
...아.
내 방송 이래 최고의 위기상황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노트에 열심히 한글을 끄적이던 리온은 X물의 숲이 하고 싶었다.
요 근래 X물의 숲에 푹 빠져있었던 리온은 하루라도 X물의 숲을 하지 않으면 손이 근질거릴 지경이었지만, 숙제도 하지 않을 정도로 푹 빠져버린 리온에게 유진이 특단의 조치로 게임 금지령을 내린 것이 벌써 사흘이었다.
아직 빛 더 갚아야 하는데...거미도 잡고...나무도 베고...가구도 사고...
훌륭한 마을주민이 되어버린 리온에게는 사활문제였다. 잠깐만, 아주 잠깐이라도...하루라도 타란튤라를 잡지 못하면 입에 가시가 돋는 지경에 이르게 된 리온은 유진이 방을 나가는 것을 확인하자 몰래 방송실에 들어갔다. 목표는 당연하게도 게임기였다.
게임기는 방송 송출용 컴퓨터 옆에 충전기에 꽃힌 채로 놓여 있었다. 리온은 혹시라도 들킬세라 조심스럽게 컴퓨터 앞으로 접근했다. 도둑도 감탄할 법한 조용한 발걸음이었다. 책상 앞에 도착한 리온은 게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게임기는 꽤나 깊숙한 곳에 비치되어 있었기에, 리온으 손이 닫지 않았다.
게임기를 꺼내기 위해선 밞고 올라설 만한 발판이 필요했다.
리온의 시선이 의자에 닿았다. 리온은 곧장 의자에 올라가 게임기를 집었다. 리온은 조심스럽게 충전기를 떼어내고, 의자에서 내려가 방을 나가려 했다.
화면을 쳐다보지만 않았다면.
왔나보네
ㅇㅇ
근데 왜 말이 없음? 아바타 움직이는 거 보면 온 거 아님?
리온의 시선이 모니터의 아바타에 꽃혔다. 그리고 웹캠에 맞춰 움직이는 듀라의 아바타가 리온의 눈에 띄었다. 리온은 곧 듀라의 아바타가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고 있음을 눈치 챘다.
“아...”
흔들흔들.
시청자들은 말없이 좌우로 흔들거리기만 하는 듀라의 아바타를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묘하게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기도 했거니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했기에, 시청자들은 돌발 상황이 발생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 챘다.
돌발상황이란 곧 X수들이 클립을 딸 준비를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듀라 아닌 거 같은데?
듀라 가족이랑 같이 살았나?
ㅁ?ㄹ
“...와.”
?
듀라 목소리가 아닌데?
X수들은 듀라의 목소리가 아닌 어린애 목소리가 들려오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듀라가 본인의 인적사항을 거의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한물 간 드립을 치곤 하는 듀라의 나이대를 20대 중후반쯤으로 추측하는 X수들이 많았다.
30대라고 하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어리게 느껴지고, 10대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성숙한 목소리. X수들이 느끼는 듀라에 대한 감상이었다. 작정하고 어린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방금 들린 감탄사는 듀라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동생인가? 듀라는 본인이 남자랑 사귀어본 적이 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던 적이 있었기에 X수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나이차 좀 많이 나는 동생이라고 하면 이상할게 없었으니까. 아니면 사촌동생이거나.
“리온? 여기서 뭐하니?”
아주 작게, 듀라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X수들은 언제든지 클립을 딸 준비를 하며 이 묘한 상황을 지켜보았다.
“어, 엄마아...그냥...동물 친구들이랑...놀고 싶었어...”
유진은 마이크가 떨어져 있어 목소리까지는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슬픈 오산이었다. 귀를 곤두세우고 있던 X수들의 귀에 리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굉장히 당혹스러운 상황에 유진은 일단 리온을 내보내기로 했다.
재수 없게 x수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이미 늦었지만 유진은 아직 눈치 채지 못했다. 리온에게서 스위치를 뺏어 다시 충전기에 돌려놓은 유진은 따끔하게 혼내려다가, 아직 방송 중이었음을 떠올리고 일단 방밖으로 내보냈다. 혼내는 것보단 일단 방송부터 다시 잡는게 먼저였다.
후. 위험했네. 위기를 잘 넘겼다고 생각한 유진이었지만, 채팅방을 쳐다보자마자 상황이 그리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유부녀?유부녀?유부녀?유부녀?유부녀?유부녀?유부녀?유부녀?유부녀?유부녀?유부녀?유부녀?
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해명해
딸이 있...다고?
...좆된 거 같은데? 나는 복귀 이후 갑작스럽게 켜진 적신호에 머리를 싸맸다. 그게 다 들렸을 줄은 몰랐는데!
아니, 아직 골든타임이야!
[듀라팬 1234호 님이 1000원 후원하셧습니다!]
듀라 그렇게 안 봤는데...우릴 속였어!
유부녀? 유부녀?
X수들의 순정을 농락한 유부녀 듀씨 해명해!
유부녀에 레스토랑스에 버튜버 하는 혼종 버튜버가 있다?
하하. 개판이네.
어쩌면 내 방송생활 최고의 위기였다. 수습 못하면 내 방송이 조져지겠군. 딱히 리온 잘못이라고 할 순 없지만, 나는 한숨을 쉬며 헤드셋을 쓰곤 마이크를 입에 갖다댔다.
“어...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혹시 책임 없는 쾌락이라고 알고 있으신지?”
아, 거꾸로 말했다.
상황이 혼파망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