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185화 (185/352)

〈 185화 〉 163.전쟁에 상도덕 따위는 없다(2)

* * *

“늦었어요.”

“고작해야 3분 늦은 걸 가지고 왜 그래~”

“저희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잊으셨습니까?”

“나도 알아. 그래서 일부러 더 일찍 모인 거잖아?”

“거기까지만 해라. 앞으로 같이 임무를 수행할 사이니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말도록.”

아트라하시스의 지적에 아스칼라보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둘 사이에 보이는 불화의 조짐에, 이발디는 한숨을 쉬고 으르렁대는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시작부터 엉망이군.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포모르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지시된 장소로 이동한다. 이세계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온갖 상황에 대비해야 하니,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겠지. 짐들은 잘 챙겨왔나?”

일행들은 대답대신 등에 맨 가방을 몸을 틀어 슬쩍 보여주었다. 있는 것 없는 것 꽉꽉 눌러 담은 가방은 군장에 비견될 정도여서, 이발디는 준비를 충분히 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세크헤트는 가방이 너무 무거운 탓에 벌써부터 지친 기색이었다. 세크헤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럼 곧 출발하도록 하지.”

이발디와 일행들은 아테나가 머무르고 있는 신전으로 들어섰다. 아테나는 마법진을 점검하고 있었다.

포모르에게는 낯설지 않은 마법진이었다. 그의 스승인 파르사드가 마지막으로 그렸던 그 마법진이 었으니까. 스승은 어떻게 되었을까. 포모르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금세 떨쳐냈다. 지금은 일에 집중할 때였다.

‘네가 할 일이 있단다.’

포모르는 메티스에게서 받은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파르사드의 의지를 이어받아 이 대륙을 살린다는 목표는 여전히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대못처럼 박혀 있었다. 피로 물든 길일지라도, 그는 그의 소원을 이어갈 생각이었다.

설령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해도. 파르사드는 그런 선택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어렴풋이 기억하는 어릴 적 광경을 다시 보고 싶었다. 녹음이 우거진 숲, 초록빛 풀이 땅을 뒤덮은 언덕...세상에 멸망에 치닫게 되면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들 이었다.

낙원에는 존재하겠지만, 그건 결국 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장소겠지. 포모르는 아주 희미한 냉소를 입에 머금었다.

“왔구나, 용사들이여. 그대들은 지금부터 이 마법진 위에 서거라.”

“알겠습니다.”

일행은 전부 커다란 마차 하나 정도는 안에 넣을 수 있을 법한 크기의 마법진 가운데에 섰다. 아테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세크하트에게 작은 보석이 담긴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세크하트는 공손하게 목걸이를 받아들고는, 조심스럽게 목에 걸어 옷 속에 집어넣었다.

“그 목걸이 내가 가진 목걸이와 공명하는 목걸이다. 너희들이 이 세계에 안전하게 돌아오기 위해선 그 목걸이가 필요하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고, 그 목걸이의 보석에 이 마법진이 그려져 있으니, 돌아올 때도 그 마법진을 보고 그리면 되느니라.”

“알겠습니다. 아테나님.”

“...잘 다녀오거라. 무운을 빌도록 하마.”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신들에게 영광을!”

“영광을!”

그들의 외침과 함께,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눈부신 빛에 이발디 일행들은 눈을 감고 가만히 서서 마법진이 발동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점점 부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테나는 점점 희미해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멀쩡하게 작동하는 군. 그녀도 처음시도해보는 마법진인 탓에 혹시나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멀쩡하게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이번 일로 모든 게 해결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럼 이 지긋지긋한 총사령관 노릇도 그만 둘 수 있겠지.

그녀는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며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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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이발디 일행은 몸을 감싸던 부유감이 사라지고 땅바닥에 발이 닿는 감각이 느껴지자 조심스럽게 눈을 떳다.

“여긴...?”

“이곳이... 이세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서울의 한 건물 옥상이었다. 아직 채 꺼지지 않은 한밤중의 네온사인들과, 전등이 밤거리를 비추는 모습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포모르는 아주 단단한 돌을 깎아 만든 건물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다는 드워프들의 마을을 떠올렸다.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실제로 드워프들의 마을이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 여기가 이세계가 맞을까요?”

“...맞을 걸세. 여신님이 좌표를 틀리시지는 않았을 테니.”

“와, 뭐 이리 불빛이 많아? 누가 보면 낮인 줄 알겠네. 게다가 저 길에 돌아다니는 말 없는 마차는 뭐야? 엄청 빠른데? 저거 타 볼 수 없을까?”

“아스칼라보스.”

“아 미안미안. 너무 신기해서 그만...”

이발디의 질책 섞인 부름에 아스칼라보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에게 사과했다. 다른 일행들은 그의 행동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이 세상은 충격이었으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불빛에, 만신전의 바벨탑보다도 높은 건물들. 말없이 움직이는 마차. 모든 것이 그들에겐 충격이었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복장은 그들과는 너무 달라, 이질감을 느낄 정도였다.

“...사람들 옷이 천차만별이군.”

“하지만 갑옷을 입은 사람은 없다. 그럼 이곳은 안전한 구역이라는 건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 위병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말은 통할까요?”

“아마 통하지 않을 거다. 이세계가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쓸 리가 없다. 아마 화폐도 다를 테지.”

세크하트의 물음에 이발디가 즉답했다. 일행은 난감한 기색을 숨기진 못했다. 이세계라 어느 정도 각오를 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워낙 상상이상이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막막함을 느꼈다. 당장 이 건물 위에서 보는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여신 하나를 찾으라니.

“세크하트. 추적 마법을 사용할 수 있나?”

“매개체만 있다면요...”

확실한 매개체가 있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침 아테나 여신에게서 받은 그 여신의 머리카락이 있지 않은가. 이발디는 품속에 넣어놓은 여신의 머리카락이 든 상자를 잠시 매만지다, 일행에게 시선을 돌렸다.

“흠...추적은 내일 아침부터 하도록 하지. 오늘은 일단 이곳에 자리를 잡고 수면을 취한다.”

“이곳에서요?”

“다행히도 이곳은 안전한 것 같다. 아직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섣불리 움직이는 것보다 일단 수면을 취하고 추적마법을 통해 빠르게 목표를 찾는다.”

그들은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적막한 바람소리만이 들리는 옥상에 가방이 땅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자기 몫의 모포를 꺼내 바닥에 깔고 자리에 누웠다. 가을의 밤은 조금 쌀쌀했지만, 낙원 바깥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이 망가진 탓에 낯에는 모든 걸 구워버릴 듯 한 태양빛이 내리쬐고, 밤에는 성에가 낄 정도로 추워지는 날씨보다야 한국의 가을 날씨가 더 따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불침번은 나부터 서도록 하지. 1시간씩 서면되겠군.”

이발디는 자청해서 가장 먼저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그는 자기 전에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둘 생각이었다. 일행을 이끄는 리더로 선택된 만큼, 그는 일행을 이끌고 임무를 성공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었으니까.

모두가 모포를 덮고 잠에 빠지자, 옥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던 이발디는 생각에 잠겼다.

과연 여신이 우리를 이곳에 보낸 의도가 우리 세계를 구하기 위함인가? 이발디는 낙원 태생이 아니었기에. 바깥세상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과연 신들께서 꼭 데려와야 한다는 여신 하나의 힘으로 대륙은 다시 푸르름을 되찾을 수 있는가?

아주 불경한 일이지만, 이발디는 아주 약간 의문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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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람들이 저희를 전부 쳐다보고 있는데요?”

“무시하도록. 어차피 말도 통하지 않으니 무시하는 쪽이 낫다. 지금은 그 여신을 찾는 게 급선무다.”

주변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웅성웅성 거리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일행은 추적마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주변 사람들은 중세판타지에서나 볼법한 복장과,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진 외국인 5명을 보며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뭐지? 영화 촬영이라도 하나?”

“*한국에서 저런 복장을 입고 영화를 찍을 리가 없잖아. 코스프레한 거 아닌가?”

“*이 시국에 마스크를 안 썼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군. 포모르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기울였지만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저쪽이군.”

이발디의 말에 일행은 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 건물에 그 여신이 산다는 건가. 특이한 양식의 건물이었지만, 여신이 살기엔 많이 누추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지은지 오래된 빌라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제 어떡하죠?”

“그냥 들어가서 납치해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저길 보도록.”

이발디는 입구를 가리켰다. 그들의 눈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금발적안의 여성이 하얀색 천을 입에 두르고 문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보초가 있군.”

“그런...건가?”

“잘 보도록. 인간이 아니다. 흡혈귀야. 흡혈귀가 보초를 서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는 뜻일거다.”

“그런 말도 안 되는...흡혈귀는 햇빛에 닿으면 타버릴텐데요?”

“이세계다. 우리 상식을 벗어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라.”

아트라하시스의 경악을 일축한 이발디는 조심스럽게 옆의 건물을 가리켰다. 일행은 건물의 문 너머로 보이는 계단을 보곤 이발디의 뜻을 알아차렸다.

“저 건물 안에 있다면 창문으로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을 터, 옥상으로 올라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지.”

일행은 조용히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다행히도 건물 옥상으로 가는 문은 잠겨있지 않았기에, 그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옥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세크하트. 추적 마법이 가리키는 곳은 어디지?”

“음...저쪽의 열린 창문이네요.”

세크하트는 손가락으로 그 건물의 3층을 가리켰다. 3층의 가장 끝 창문이었다. 그곳에서부터 아주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발견했군.”

“...근데 저게 뭘 하는 거지?”

두 건물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아 일행은 아마도 목표일 것이 분명한 여신이 뭐라 외치며 머리카락을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르겠군. 어쩌면 거울로 누군가와 연락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이의 있나?”

“...없다.”

“저도요.” “저도 없습니다.” “나도 없다구.”ㄹ

이발디는 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그 안에서 쇠사슬을 꺼냈다. 오래전 그가 아직 젊었을 적에 얻은 물건이었다.

“그 물건은...?”

세크하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가 꺼낸 사슬을 쳐다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쇠사슬처럼 보였지만, 세크하트는 저 쇠사슬에 강력한 마법이 걸려있음을 눈치챘다.

“마법의 사슬이다. 듣기로는 용을 묶기위해 만들어진 사슬이라는군.”

“...흥미롭네요.”

“...흥미해결은 일이 끝난 다음에 하도록 해라.”

이발디는 품에서 머리카락이 든 상자를 꺼내, 머리카락 몇 가닥을 쇠사슬에 대고 문질렀다. 마치 냄새를 맡은 사냥개마냥 쇠사슬이 진동하기 시작하자, 이발디는 쇠사슬을 손에 휘감고 던지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그의 자세는 자연스러웠다. 곧 이어 그의 손을 떠난 쇠사슬이 마치 화살처럼 여신에게로 쏘아져 날아가기 시작했다.

창문을 깨고 여신에게 도달한 쇠사슬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지자, 이발디는 신음성을 흘렸다.

“역시 여신이란 건가, 대단하군.,,!”

그들의 줄다리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아트라하시스와 아스칼라보스도 합세했지만, 정말 무지막지한 힘으로 겨우 끌려가지 않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발디의 감탄도 잠시, 이발디와 아트라하시스, 아스칼라보스는 엄청난 힘에 의해 공중에 떠올랐다. 이발디는 본능적으로 쇠사슬을 손에서 놓고 옥상의 난간을 붙잡았다. 다행히도 나머지 두명은 먼저 손을 놓은 탓에, 이발디 만큼 멀리 튕겨나가지 않아 난간에 부딪힌 게 끝이었다.

난간을 붙잡고 올라온 이발디는 언제라도 싸울 수 있도록 가방에서 도끼를 꺼내들었다. 이발디가 무기를 꺼내들자, 나머지 일행들도 조심스럽게 무기를 꼬나쥐었다.

“...역시, 쉽게 풀리지는 않는군.”

“*살다 살다 쇠사슬에 감기는 건 또 처음이네. 너넨 또 뭐야? 이세계인? 아니면 중2병 환자들? 진짜, 세상에 되는 일이 없어요.”

그들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 앞에는 머리가 쇠사슬에 감긴, 머리의 3분의 1이 붉은 하얀색 머리의 여성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눈치 챌 수 있었다.

저게 바로 그 여신이구나, 하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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