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81.도를 아십니까(4)
* * *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목사님.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왼쪽 뺨을 맞았으면 오른쪽 뺨도 내밀어라. 딱 대 이 새끼야.”
“그건 오른쪽 뺨부터...”
내 머리카락 펀치가 목사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작렬했다. 머리카락 뭉치에서 낫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묵직한 소리와 함께, 목사는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보니 살아있긴 한 모양이었다. 아 죽지만 않았으면 됐지. 어차피 뒤처리는 라쿤 박사님이 해줄 거야!
흡혈귀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경악하고, 누구는 당혹스러워 하고, 누구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는 포위망에 합류했다.
딴건 모르겠고, 어차피 싸움은 기싸움에서 이기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야! 내 초등학교 시절 반 친구랑 싸우면서 깨달았지! 난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에도 아랑곳 않고 당당하게 소리쳤다.
“네놈들 교회는 망했어! 여긴 이제부터 내가 지배한다!”
꼬우면 너도 듀라한 하던가! 나는 대놓고 머리를 떼어내 머리를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곳곳에서 흡혈귀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하긴 갑자기 머리를 떼어내면 당연히 놀라겠지!
“시발! 뭔데?”
“야, 어차피 한명이야! 빨리 최면이나 걸어!”
흡혈귀들이 내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며 진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아, 다굴은 에반데. 나는 머리카락을 붙잡고 바닥에 무작정 휘둘렀다. ‘나 잘 못 건드리면 니들 ㅈ됨’을 표현하기 위한 시위였다.
쾅!
귀가 먹먹해지는 소리와 함께 나무파편이 튀어 올라 내 얼굴에 부딪혔다. 그리고 내 시야의 반이 어둠으로 뒤덮였다. 바닥이 붕 떠있네? 아무래도 바닥 밑에 공간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머리를 끄집어내고, 머리를 다시 꺼내들었다.
“먼저 맞고 싶은 사람?”
나는 정수리 쪽 머리카락을 손으로 꽉 쥐고 머리를 들어 올린 채로 엉거주춤하는 흡혈귀들을 노려보았다. 머리가 떨어져 있는 것에 놀란 건지, 아니면 내가 바닥을 한방에 박살낸 것에 놀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몇 명은 표정이 안 좋은 걸 보니까 후자 같기도 한데.
“방금 소리 들었냐?”
“시발, 도대체 뭔데. 어떻게 최면에서 풀려난 거야? 저 년 담당 누군데?”
어쨌든 어그로만 끌렸으면 됐다. 나는 일단 저 짜증나는 흡혈귀들이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게 계속해서 위협하고, 기밀관리본부가 올 때까지 시선을 끈다. 작전은 완벽했다. 최면을 또 쳐 맞기 전까지는.
최면을 사용한 것은 나를 납치한 그 흡혈귀 년이었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덕에 완전히 최면은 강하게 의식하고 있으면 효과가 약해지니 걸리지는 않았지만, 잠시 몸이 주춤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제 서야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흡혈귀들이 조금씩 어디선가 가져온 연장을 들고 조금씩 다가왔다. 각목에 쇠파이프에 식칼? 니들 용역이야? 아님 조폭이라도 돼?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닌 것 같은 게, 연장좀 써본 솜씨라기엔 딱 보기에도 어색한 자세였다. 그냥 있는 대로 주워와서 들고 있는 건가? 식칼을 든 놈은 아예 손을 덜덜 떠는걸 보니 저걸 휘두르지도 못할 것 같았다. 생긴 건 굳건이처럼 생겨놓고 하는 짓은 쫄보 그 자체로군.
나는 대치상황을 이어가며 예배당 입구 쪽에 걸린 시계를 잠시 쳐다보았다. 시간 더럽게 안가네. 이재 내가 여기 들어오고 나서 30분 정도 지났다.
아니, 언제 오는데! 언제까지 버텨야 돼? 나 싸움 잘 못한다고! 급식 때 막 싸움 몇 번 한것 빼고는 제대로 싸워본 적도 없어! 게다가 이 몸은 몸집도 원래 몸보다 작아서 리치도 짦다고!
이렇게 까지는 하기 싫었는데!
“오지 마! 다가오면 이 목사 놈의 목숨은 없다!”
나는 슬며시 발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목사의 가슴팍에 올려다 놓았다. 내가 몸무게 실어서 밞으면 이 목사 놈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부러진 갈비뼈가 내장을 조져버리겠지! 조금씩 좁혀져오던 포위망이 다시 멈췄다. 아무리 그래도 이 목사가 흡혈귀들 대장쯤 되는 것 같은데 대장 버려? 대장 버려?
너네들 인성 문제 있는 거 아니지?
그럼 내가 너무 곤란한데. 기껏 협박까지 했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슬프잖아! 나의 협박으로 성사된 아슬아슬한 대치전은 벌써 3분을 달리고 있었다. 저쪽이 수가 워낙 많다보니 내 사각을 노리려 하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머리를 빙빙 돌리며 위협 헀다.
저쪽도 쫄보 밖에 없구만. 최면 걸어서 피만 빨 줄 알지 제대로 싸워 본적 없는 인간들 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찐따 들아! 머릿수만 많으면 뭐하냐고! 왜 내가 쳐다 볼 때마다 쫄아서 뒷걸음질 치는데! 니들이 그러고도 남자냐?
굳건이가 니들 보면 ‘아이고 저런 새끼가 대한민국의 남저라니’ 하면서 재입대 시키겠다! 분위기는 X야환담마냥 잡아놓고 하는 짓은 폐급 이등병 같은 놈들!
나는 흡혈귀들이 다가올 기색을 보이면 상모돌리기를 시전하며 놈들을 위협하며 시간을 끌었다. 어느 정도 상황에 적응한 흡혈귀들이 나를 덮치기 전에 빨리 뭐든 와야 하는데.
“주인니이이이이이이임!”
오, 에포나가 드디어 온 모양이었다. 근데 왜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 불길해, 아주 불길하다. 내 몇 달간 경험으로 보건데, 이건 트러블의 징조였다.
내가 당하는.
나는 머리를 붙잡고 뒤쪽을 확인했다. 분명 벽이 있었을 텐...?
“주인님! 제가 왔어요!”
벽이었던 것들의 파편이 휘날린다. 얼마나 강한 힘으로 부딪혔는지, 벽돌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향해 검은색 말발굽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발!
말발굽에 사람 머리가 부딪히면 어떻게 된다? 당연 수박 깨기 빳다죠 시발! 내 머리는 1마력의 발길질을 견디지 못하고 투수가 던진 강속구마냥 입구를 향해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내 몸은 머리를 놓친 충격으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내 등! 아파!
“에포오오오오오오아나아아아아아아!”
“유진아아아아아! 괜찮아?!”
에포나의 등 위에 타고 있던 세연이가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날아왔다. 세연이는 안절부절못하며 내 머리를 빼내려고 했지만, 물리력이라곤 거의 없는 세연이가 내 머리를 빼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앗! 주인님! 왜 거기 계세요?”
“네가 차 날렸잖아 이 미친 망아지야!”
“...헤헤.”
“헤헤가 뭐야 헤헤가!”
덩치는 산만해져가지고 하는 짓은 덜렁이라니, 이건 재앙이야! 재앙이라고! 머리가 벽에 박혀서 안 떨어지잖아! 나는 머리카락에 최대한 힘을 주고 벽속에서 빠져나왔다.
벽 틈새에 머리카락을 꽃아넣고 상황을 보니, 벽이 완전히 박살나 달빛이 예배당 안을 비추고 그 아래에 에포나가 서 있었다. 한쪽 벽이 완전히 박살났군. 벽 너머로 보이는 광경을 보니 꽤나 구석진 곳에 있는 곳인지, 바깥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저 말은 또 뭐야!”
“쩐다...”
쩔긴 뭐가 쩔어! 니들이 감탄할 때야? 도망가던지 맞서 싸우던지 하나만 해라!
“에포나! 네 발밑에 내 몸 밞지 않게 조심해!”
“알았써!”
근데 저기까지 어떻게 가지? 음...나는 갈팡질팡하는 흡혈귀들을 무시하고 천장으로 시선을 향했다. 쓸데없이 고급진 샹들리에가 벽이 부서진 여파 때문인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려 샹들리에를 붙잡았다.
중력과 관성을 이용해서 샹들리에에 매달려 날아간 나는 아슬아슬하게 내 몸 앞에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서 일어나 새로운 난입자에 의해 혼비백산하는 흡혈귀들을 보다 맨 뒤에 있을 은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니, 왜 한숨 쉬는데. 한숨 쉬고 싶은 건 나야.
“기밀관리본부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을 납치 및 폭행죄로 연행하겠습니다.”
은하가 수갑 더미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예배당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오기 시작 했다. 기밀관리본부의 요원들이었다. 요원들은 갑작스런 공권력의 출동에 어버버하며 굳어버린 흡혈귀들을 솜씨 좋게 제압하며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도망치려고 했던 흡혈귀 년과 아직도 기절해 있는 목사가 수갑에 묶이고 나서야 겨우 일이 일단락 된 것 같았다.
“이유진씨, 어딜 가십니까.”
“난 집에 가면 되는 거 아니야?”
“같이 가시죠.”
뭐? 왜?
공권력에 저항할 수 없었던 모범시민인 나는 흡혈귀들과 같이 기밀관리본부로 호송당헀다.
“자네는! 정말! 트러블에! 자주! 휘말리는군!”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나 좀 내버려둬. 식사까지 대접해 준건 좋은데 벌써 9시가 넘었다고. 난 피해자인데 이렇게 붙들려 있을 이유가 없단 말이야. 나 집에 가서 씻고 자고 싶어. 내일 방송도 해야 된다고.
“무사해서! 다행이네만! 너무! 소란스럽지! 않나! 자네 애완동물에! 대한! 민원이! 스무 건을! 넘었네! 도심을! 아주! 화려하게! 질주! 했더군!”
“하지만 주인님이 위험했는걸!”
아니 그걸 말 상태로 달리면 어떡하라고. 벌써 뉴스기사랑 X튜브에 영상이 뜨기까지 해서 직원들이 때 아닌 철야근무를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미안해...내가 교육 잘할게...일단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이 년의 밥은 풀떼기다. 당근은 절대 안 줘!
“내가 말을 해도 안 듣더라...”
네가 그렇게 미안할 필요는 없지. 에포나가 말 지지리도 안 듣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게다가! 아주! 박살을! 내놨더군! 폭행죄로! 잡혀가고! 싶나!”
“에이 그건 정당방위에요 정당방위.”
“정당방위는! 사람을! 반죽음으로! 만들지! 않네!”
“그건 넘어가기로 했잖아요. 이번에 흡혈귀들 검거한건 제 공도 있으니까 그걸로 퉁치기로 하셧으면서.”
저 라쿤 페이스로 잘도 답답하단 표정을 짓네. 라쿤 박사는 가슴을 두드리며 분노의 괴성을 질렀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젠 이런 상황에도 완전히 적응해 버렸네.
“다행으로! 알게! 상대가! 흡혈귀가! 아니었으면! 자네는! 빼도 박도! 못할! 폭행범이! 되었을! 거라네!”
“그건 반성하고 있어요. 너무 흥분했던 것 같고...근데 정조의 위기를 느끼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목사가 저를 끈적거리는 시선으로 쳐다봤으니까 시선강간으로 정당방위 아닐까요?
아님 말고.
“후! 알겠네! 그럼! 이제! 돌아가게!”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라쿤 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미적대다간 설교가 한 시간 더 늘어날지도 몰라! 나는 조용히 기밀관리본부를 빠져나왔다. 직원들 눈이 수틀리면 내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것 같았단 말이야.
“주인님! 나 잘했으니까 돌아가는 길에 당근 사줘!”
“당근을 엉덩이에 꽃아 버리기 전에 닥치지 않으련?”
“주인님이 원한다면 꽃아도 좋아!”
“...”
...망아지는 반품 안 되나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