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84화 (84/352)

〈 84화 〉 78.도를 아십니까(1)

* * *

78. 도를 아십니까(1)

“어머나, 신수가 정말 훤하시네요!”

뭐야?

나도 몰라...

나와 세연이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이 시국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고 다가와서 한다는 게 ‘신수가 훤하시네요’라니,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발언이었다. 내 신수가 훤한 건 사실이긴 하지만. 로션밖에 안 발랐는데 화장품 광고에 나온 연예인들 마냥 얼굴에서 빛이 나잖아.

이게 바로 K­TS미소녀의 위엄이다.

그나저나 요 근처에 전도꾼들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를 며칠 전에 유라한테 들었는데, 정말로 만나게 될 줄이야.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옷차림도 말끔하고, 얼굴도 나쁘지 않은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저 정도면 도쟁이가 아니라 모델을 해도 먹히지 않았을...

잠깐.

“혹시 종교가 있으신가요?”

“아, 아뇨. 무교에요.”

아, 무심코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그냥 외국인인척 하면 알아서 지나갔을 텐데. 나는 눈앞의 여성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조금씩 여성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나는 사이비 종교 같은 거 관심도 없다.

살다 살다 사이비한테 붙잡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내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내 외모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접근을 안 하더라. 딱봐도 외국인처럼 생겼잖아.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게 생겼는데 사람들이 말을 걸 생각을 할 리가 없다.

내가 갑자기 WHAT?이러면 어쩔 건데. HI! I“M 철수! 이럴 것도 아니잖아. 아니면 콩글리시의 민족답게 How are You? i’m fine! 이럴 거냐? 내가 몇 개 알지도 못하는 영어단어를 씨부리면 사람들은 다 공포에 질린단 말이야.

햣하! 영알못들아 hey man의 공포를 느껴라! 이것이 아름다운 와꾸의 힘! 서양스러운 얼굴과 이국적인 목소리의 콜라보! 찐따들은 보는 것조차 겁먹게 하는 백발 금안 미소녀는 길거리에서 무적이라고!

...농담이 아니라 진짜. 나 하와와 여중생 미소녀 듀라한이 되고나서 길거리에서 말 걸린 적은 없는데. 진짜.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심장에 부담 가는 외모를 가진 미소녀한테 용기 있게 말을 걸 미친놈은 그리 흔하지 않다. 말 한번 잘못 걸었다가 까이면 그날로 이불킥 흑역사 하나 추가된다고.

내가 남자보고 좋아서 꼬리치는 어장 관리녀도 아니고. 나는 마음은 아직 남자에 가까웠다. 요 근래 좀 몸가짐은 유라랑 한솔이 때문에 비교적 여성스러워 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직 머리는 남자라고. 몸은 솔직하게 암컷타락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저번에 꺄악, 하고 비명을 지른 걸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아가씨?”

“안사요, 안 봐요, 안가요.”

날 끌고 가서 메차쿠차 입교시킬 생각이지? 내가 당할 줄 알아? 내가 그렇게 쉬운 여자로 보여?

“에이, 그러지 말고 한번 들어보세요. 이건 정말 기회에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새로운 삶이 아니라 조져진 삶이겠지! 사이비 종교에 입교한 인간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를 끌고 가서 메차쿠차...겁... 아니 다단계를 시킬 생각이지?

근데 나는 정말 끌려가면 정조의 위협을 받을 것 같았다. 어떤 남자가 이 얼굴을 보고 발기...하지 않을 수 있겠어? 아 근데 생각하니까 기분 좆같네. 내 앞에서 고추 새우는 새끼 있으면 다시는 남자구실 못하게 만들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피를 얼굴에 쏟아버리는 건 덤이다.

애초에 머리 한번 들어서 휘둘러주면 알아서 쫄겠지. 목 없는 여자한테 성욕을 느낀다?

선생님 저희는 그걸 사람새끼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냥 좋은 말씀 전하려던 것뿐인데...”

좋은 말씀이 뭔데! 옥장판 매트 3개 팔면 마음이 정화되고 5개 팔면 신실한 신도가 되고 10개를 팔면 구원을 받는 게 좋은 말씀이야? 도쟁이가 이렇게 멍청하다니, 교주가 봤다면 이마를 탁 치며 쓸모없는 년이라고 한바탕 욕을 날렸을 거다. 이런 험한 세상에서 그 정도 노오력으로 취업 할 수 있을 것 같냐!

아주 그냥 대놓고 사이비 종교 전도사라고 밝히지 그래. 내 생에 이렇게 멍청한 사이비 종교인은 처음이었다. 인터넷 썰이나 X튜브 보면 이젠 이런 방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각을 잡고 조심스럽게 들어오던데, 애는 아직도 쌍팔년도식 전도를 하고 있네.

얼굴 예쁘다고 날로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어? 전도 하려면 좀 제대로 하던가! 요즘은 뭐 심리검사다 뭐다 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도 하고 대학원 사칭도 하면서 연구한다고 구라도 친다 매?

요컨대 정성이 없어 정성이. 그냥 이마에 ‘나 사이비 종교 전도사에요’라고 써놓고 다니지 그러냐?

“좋은 말씀이요? 혹시 신앙을 가지면 천국에 갈 수 있다거나, 천신님이 꼬인 인생을 풀어준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

뭐야, 왜 조용해. 마치 정곡을 찔린 듯 눈앞의 전도꾼 아가씨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전도꾼 년의 시선을 피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로 그 말 하려고 했던 거야?

침묵하는 사이비 전도녀를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건 전도꾼은 커녕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해본 아싸 같은데. 진짜 얼굴 하나 믿고 들이댔던 거야? 근데 나 같은 여자인데? 아무리 캡모자에 마스크로 얼굴을 대부분 가리고 있지만 가슴도 한국에선 나름 거유에 속하는 이 뚜렷한 곡선을 보고도 나에게 전도를 시도한다고?

나를 사이비 종교의 전도 타깃으로 삼다니, 머리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사이비 종교 전도꾼들은 제대로 교육도 하지 않은 건가.

원래 사이비 종교라는 게, 노하우가 쌓이고 쌓여서 건드리면 안 되는 부류의 사람은 칼 같이 거르는 게 보통인데, 나는 그 조건을 3개나 가지고 있지 않나?

외국인(처럼 보임), 눈에 너무 띔, 하와와 여중생...

지뢰가 3개나 있음에도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알아? 몰라? 물론 전도꾼들이 전도를 하려는 것 자체가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었다. 내가 성인군자도 아닌데 지 스스로 끌려가서 사이비 종교 시다바리가 되는 인간들을 왜 동정해. 어떤 삶을 살았건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다면 그건 동정의 여지가 없는 거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만 들어주세요...”

내가 쉽게 걸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전도녀의 목소리가 절박해졌다. 날 콕 찍어서 무조건 데려오라고 한 걸까. 이상한 일이었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굳이? 내가 그렇게 전도 잘 당하게 생겼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름 쿨한 미녀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날 봐. 평소에도 쿨 하잖아.

“아 저 교회다니고 있어요.”

아 그러니까 빨리 가라고. 나는 전도꾼에게 물린 사람이 하는 멘트 1위를 내뱉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 니네 종교 안사니까 딴 사람한테 팔라고~ 이 시국에 사이비? 진짜 돌팔매 맞아야 정신 차릴래? 요즘만큼 사이비에 대한 시선이 험악한 때가 없는데, 이렇게 대놓고 전도를 하려는 멍청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거짓말은 하면 안 돼요...”

“아니, 진짜라니까요?”

인상을 팍 쓴다. 진심으로 짜증을 내는 듯 한 목소리에 전도녀가 울상을 지었다. 아니 이 년이 뭘 잘했다고 울상을 지어? 세연이랑 같이 장이나 보려고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붙잡혀서 되도 않는 전도를 당한 내가 울상을 지어도 지었지 네가 울상을 왜 짓는데?

“그, 그럼 어떤 교회 다니시는 데요?”

“한마음 구원 교회요.”

전도녀의 얼굴은 도대체 거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네가 이 교회 십자가가 몇 개 인줄 알아? 우리 대한민국은 십자가의 나라라고. 길거리에 널린 게 십자가야! 그만큼 교회도 썩어 넘치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웹소설에서 본 사이비 종교 이름을 말했지만 진짜로 전국에 하나쯤은 있겠지!

“으...”

“저 언니. 그러지 말고 저희 교회에 다녀보는 건 어때요?”

“네? 저는 이미...”

“그런 거짓된 신앙을 믿을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달하리라 약속된 저희 교에 찾아오시면 이 불안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교주님이 제시해주실 겁니다. 자, 저와 함께 지금 바로 가시죠!”

“네? 네?”

아 사이비 종교 말고 진짜 사이비 종교 믿으라고~우리 종교는 ‘구원’이라고~ 무려 교주님이 축지법도 쓰신다고~

나는 당황한 전도녀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손을 붙잡고 나는 그곳에서 벗어났다. 물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곳으로 갔지. 내가 미쳤다고 드문 곳으로 가냐. 전도꾼들은 2인1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인파가 많은 곳에 가야 혹시 모를 상황을 방지 할 수 있다고.

예상 밖의 상황에 많이 당황했는지 끌려온 전도녀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내 손을 떨쳐내려 했지만 그게 될 리가. 연약한 여성이 연약한 듀라한을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황하는 전도녀를 보니 마음속에서 왠지 모를 쾌감이 솟아올랐다. 역시 참교육은 최고야! 이러니까 다들 사이다를 좋아하지! 이거 방송에서 썰 풀면 수금각 좀 나오겠네! 방송에서 도네가 잔뜩 터지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아주 날 것 같았다.

아 거기 무슨 종교인지 몰라도 좀 빌려감. 아 빌려간다니까? 아 나중에 돌려준다고~ 요기 요 변이자는 내가 기밀관리본부에 잘 인도해 줄 테니까, 목 씻고 기다려라. 변이자를 사이비 전도에 이용했다는 기밀관리본부가 두고 볼 리가 없을 테니 저 사이비 종교의 운명도...

“아...정말!”

이대로는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달은 건지, 전도녀가 돌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내 어깨를 붙잡은 전도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내 눈동자를 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걸려라걸려라걸려라걸려라...”

내가 그런다고 최면에 걸릴 것 같아? 내가 한솔이에게 최면을 몇 번 걸린 줄 네가 알까?

그런데 짜잔! 절대란 건 없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조금씩 내 머리를 잠식하듯이 점점 내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헀다.

이 새끼 생각보다 좀 치잖아...

망할 흡혈귀년...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