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76.주인님 그거하자 낑낑(2)
* * *
“귀여워~”
“주인님! 살려줘!”
둘이 잘 어울리네. 재밌게 놀아라. 나는 유라에게 붙잡혀 마구 쓰다듬어지는 망아지를 보며 닭다리를 뼈째로 씹어 먹었다. 뼈가 고소하네. 이 집 닭다리는 뼈도 꽤 괜찮네. 안 좋은 닭이면 뼈도 맛이 없던데.
“그렇게 먹으면 뼈 때문에 다치지 않아요?”
“강철도 껌 마냥 씹을 수 있는데 닭 뼈 씹는다고 다칠까.”
입안과 위장도 덩달아 튼튼해진 덕에 이정도로는 상처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뼈째로 고기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뼈 발라내기도 귀찮고, 쓰레기도 덜 나오고, 뼈가 생각 보다 맛있다. 개가 뼈다귀 붙잡고 물어뜯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할까.
“그렇긴 해요...”
한솔이는 콜라 대신 내 피를 종이컵에 따라 마시며 수긍했다. 내 피 맛있나? 한솔이 말로는 기밀관리본부에서 사용 할 수 없는 혈액을 적십자에서 얻어다 보급한다고 했지만, 별로 질이 좋지 않다나. 반면에 내가 토해낸 피는 영양가가 높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흡혈귀 기준이지만. 보통 사람에게 내 피는 죽을 정도까진 아니어도 해롭다고 하니까...
...증상만 보면 에이즈랑 다를 게 없는데?
“주인님! 난쟁이가 괴롭혀!”
유라의 품에서 괴로워하던 망아지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빠져나와 내 등 뒤로 숨어들었다. 아무래도 갑작스런 유라의 행동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유라는 아쉬워하는 얼굴로 망아지를 바라보았다.
사감 빼고 객관적으로 보면, 여자애들이 좋아할만한 외형이긴 했다. 진짜 망아지 보다는 인형 같은 생김새에다 갈기도 솜털처럼 부드럽고, 목소리도 귀엽고. 하는 짓도 유치원생 쯤 되는 것 같으니까.
“괴롭히는 거 아니고 너랑 놀고 싶대.”
“그럼 나랑 같이 달리는 거야?”
누가 말 아니랄까봐 놀다=달리다로 인식하네. 이 말딸 같은 년...
“망아지야, 이것 좀 봐라.”
나는 폰으로 어린이용 킥보드를 검색해 망아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뭐야?”
“킥보드라는 건데, 이걸로 변해서 유라랑 한 바퀴 돌고 올래?”
이정도 크기면 유라도 탈 수 있지 않을까. 킥보드라 그렇게 위험할 것 같지도 않고.
“내 처음은 주인님 건데...”
소름끼치는 소리하지 마! 누굴 말박이로 만들려는 거야! 난 박지도 못해! 말박이를 찾고 싶은 거면 저기 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꺼져버려! 저쪽에는 무지갯빛 갈기를 가진 망아지들이 잔뜩 있으니까 친구도 사귈 수 있겠네!
“유진씨. 이번에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걱정 고맙다 한솔아...”
좀! 정상적인! 녀석이! 나오면! 안되냐!
슬슬 상식인 하나 정도는 나와도 되잖아! 그나마 상식인 이었던 한솔이도 내 피에 환장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상식과는 작별한 모양이었다. 이곳에 멀쩡한 인간은 나밖에 없는 건가. 세상이 말세다 말세.
“근데 유진언니, 쟤 이름은 뭐에요?”
이름? 생각해보니 이름이 뭐더라. 세 명의 시선이 망아지에게로 향했다.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망아지는 우리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우릴 올려다보았다.
“망아지야, 너 이름이 뭐야?”
“이름? 주인님이 지어줘!”
“내가 지어주기 전에, 다른 이름 없어?”
“이름은 주인님이 지어주는 거라고 했어!”
“누가 그랬는데?”
“음...몰라!”
아는 게 뭐야?
나한테 오기 전에 불리던 이름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야. 망아지는 계속 없다고 대답했지만, 정말로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망아지에게 계속 물어봐도 이름을 지어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니, 결국 나와 유라, 한솔이는 이 망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그럼 핑키파...”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그런 이상한 이름 말고 좀 귀여운 이름 어때요?”
“아니면 뭐 괜찮은 이름 있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시골집에서 키우던 개 이름도 왈왈이, 삽삽이, 동동이로 지어서 부모님한테 너는 자식 낳으면 절대 이름 짓지 말라고 혼났던 사람이라 이름 짓는 건 자신이 없다. 결국 그 개들의 이름은 첫째, 둘째, 셋째가 되었지.
나는 왜 혼났던 걸까...왈왈이가 더 잘 지은 이름 아니야? 개한테 첫째 둘째 셋째 같은 무미건조한 이름 붙이는 것보단 낫잖아. 복날 먹을 개 기르는 것도 아니고.
“음...스페셜 위...”
“스톱. 그 이상은 저작권에 걸린다. 그리고 너 사실 이름 짓기 귀찮은 거지?”
“설마요. 그냥 저 망아지를 보니 생각나서...”
눈 피하지 마. 근데 너도 말딸 아는구나. 하긴 겜방 하는 스트리머라면 모르기도 힘들겠다. 이래저래 저번 봄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게임이었으니까. 씹덕이던 아니던 그때는 죄다 말딸로 통일되던 시기였으니까.
“앙투아네트 어때요! 귀여운 느낌이 살아있으면서 고급스러움까지 함께 겸비한 이름! 무려 프랑스 왕비의 이름이었던 데다가...”
“근데 그 왕비 단두대에서 목 잘렸잖아.”
너는 애를 단두대로 보내고 싶은 거야? 뭔가 좀 심플하면서 부르기 좋고 다른 사람이 들어도 ‘아 이건 애완동물 이름이네.’하고 납득할만한 이름 없어? 경마장에서 부를 것 같은 이름 말고.
“이상해! 주인님이 지어줘!”
“점순이?”
“뭔지 모르겠지만 촌스러워!”
“어...천하무적?”
“이상해! 그 것도 촌스러워!”
천하무적이 뭐 어때서. 그래도 말 이름으로 이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무적아! 무적아! 불러보니까 좀 그러네. 서리드워프 센세가 한창 날아다닐 때는 그렇게 멋있는 말이었는데. 우리 서리드워프 센세는 도대체 말은 어디 놔두고 걸어 다니십니까. 왜 뚜벅이가 되셧냐구요!
“음...”
괜찮은 이름...괜찮은 이름...뭔가 그럴듯한 이름으로 지어줘야 애가 조용해질 것 같은데. 뭔가 적당히 부르기 좋으면서 저 망아지도 만족할 만한 이름이 필요했다. 뭔가 떠오를 듯 말 듯 한데.
“...에포나?”
“그거 로...”
“그거도 어차피 빌려온 거잖아. 원래 에포나는 말과 당나귀들과 노새들의 여신 이름이라고.”
말의 여신이니까 망아지한테 지어줄 만한 이름이기도 하고. 아닌가, 이것도 불경죄인가? 신이 나타나서 신벌이라도 내리는 건 아니겠지? 신이 진짜 존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가지고 뭐라 하진 않겠지...
“에포나? 좋아!”
마음에 들어 하니 다행이네. 그렇게 망아지의 이름은 에포나가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잘 지은 이름이야.
“그럼 저는 돌아가 볼게요. 슬슬 방송 준비도 해야돼서...”
“그래, 잘 들어가...”
한솔이는 내 피가 가득 담긴 페트병을 안아들고 돌아갔다.
“저도 들어가 볼게요. 숙제가 있어서...잘 먹었습니다!
유라도 집으로 돌아가 버리자, 방에는 나와 에포나 만이 남았다. 에포나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자기 이름을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말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아니 저건 말이 아닌가. 아까는 세발자전거로 변신하기도 했고.
“유진아. 나도 있어...”
“아, 세연아, 언제 돌아왔어?”
“3시간 전 부터 있었는데...쟤는 뭐야?”
“쟤라니! 나는 주인님의 애마! 에포나야!”
에포나는 세연이의 물음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쟤라고 지칭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세연이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건가. 하긴 애 유령마 비스 무리한 것 같으니까 귀신을 보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고양이가 자기 영역에 들어온 낯선 고양이를 발견한 것처럼, 둘은 서로를 노려 본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계심을 드러내며 날을 세우는 모습은 싸우기 직전에 간을 보는 고양이들 같다고 할까.
“주인님! 이 반시는 뭐야!”
반시가 뭔데. 밴시 말하는 건가. 애 그냥 처녀귀신인데. 그런 살벌한 귀신 아니야.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는 우리 집에 영구 취직한 우렁각시라고.
“우리 집 식구인데. 너도 인사해. 애는 세연이야. 세연아 쟤는 에포나고.”
“...”
“...”
웬 신경전이야? 나는 내 인생 장르에 러브코미디 같은 게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느 쪽이 이겨도 나한텐 득 될 게 없잖아.
“우리 주인님한테서 떨어져!”
“...유진이는 나 없으면 안 되거든?”
세연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에포나의 말을 받아쳤다.
이건 수라장의 예감이다. 망아지와 처녀귀신의 수라장이라니. 누군지 몰라도 취향이 참 고약하도다.
나는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에포나를 안아들었다. 더 놔두면 서로 신경전이나 벌일 것 같으니까 일단 떼어놓고 보자. 어차피 장도 봐야 하니까 좀 떼어놓으면 덜 하겠지.
“세연아, 나는 장보고 올 테니까 화 좀 식히고 있어.”
“...나도 따라갈게.”
“나한테 주인님을 뺏길까봐 그러는 거지?”
망아지야. 그런 러브코미디에서나 할 법은 대사 좀 그만해주면 안되겠니? 네가 무슨 히로인인줄 알아? 넌 그냥 마스코트 포지션이야!
“에포나. 그런 말 하면 안 돼. 알았어?”
“알았어 주인님! 에포나는 착하니까 주인님 말 잘 들어!”
옳지. 나는 말 잘 듣는 어린이는 좋아해. 나는 에포나 몰래 세연이를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연이도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니니까, 어린애가 투정 부리는 것 정도가지고 진심으로 화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에포나, 이것 좀 봐줄래?”
나가기 전에, 나는 에포나에게 x튜브 영상을 보여주었다. 요거면 면허도 필요 없고, 조작도 쉽고. 기껏해야 사람이 달리는 속도랑 비슷한 수준이니 위험하지도 않다. 에포나의 능력을 테스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탈것이었다.
“이걸로 한번 변해볼래?”
“알았어 주인님!”
에포나는 내 품에서 빠져나와 아까처럼 연막을 흩뿌리며 모습을 바꿨다. 연막이 사라지고 내가 x튜브로 보여준 물건과 똑같이 변한 에포나가 앞뒤로 움직이며 으스대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하다구!”
“그래그래. 그럼 이 상태로 내려가서 타볼까.”
나는 에포나를 들고 현관 앞까지 내려와 조심스럽게 발판위에 올라섰다. 내가 발판위에 올라서자 에포나는 내가 가르쳐준 방향을 향해 바퀴를 굴리기 시작 했다. 무척 부드러운 주행이었다.
그렇게 듀라한과 마스코트와 처녀귀신 트리오는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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