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67.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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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6시간째, 나는 30분 동안 같은 구간을 헤매고 있었다.
내가 이래서 길 찾는 게임이 싫어. 추격자는 쫓아오는데 길은 찾아야 하지, 그렇다고 길이 친절하게 ‘여기로 가시면 됩니다’하고 일직선으로 나 있는 것도 아니고 환풍구나 개구멍, 벽에 난 틈새 같은 숨겨져 있는 길을 찾아야 하고...
오늘 안에 끝내고 싶은데. 이대로는 오늘은커녕 이번 주 내내 해야 할 것 같아서,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기분 탓인지 속도 좀 울렁거린다. 이번 주 내내 고기 못 먹을 거 같아...호러게임 싫어! 난 시공하면서 룰루랄라 게임할래! 내 행복한 게임 스트리밍 방송을 돌려 줘!
좋아, 오늘 방송이 끝나면 세연이에게 오랜만에 소금 샤워를 시키겠어.
아그극....
이빨 갈린다 진짜 ㅋㅋㅋ
“길이 도대체 어디야!”
대머리들이 주변에서 쫓아오지, 길은 더럽게 복잡해서 좀만 잘못 돌면 바로 제자리로 돌아오지, 문이란 문들은 하나 같이 죄다 잠겨 있고! 정말 주옥 같은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무슨 길이 이따위야!
하수구먼 해도 충분히 복잡했는데 이젠 좁기까지 한데 길까지 복잡하네? 덕분에 나는 핏물로 가득한 수도를 뛰어다니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길이 그 길로 보여서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분간이 안간다.
대머리들이 이렇게 많이 들러붙는데 길까지 찾으라니, 이 게임을 만든 놈들은 변태들이 틀림없어. 30분 동안 10번을 넘게 죽어 가며 겨우겨우 길을 찾아 진행하고 있으니 이제는 대머리들이 무섭기는커녕 짜증만 났다.
그냥 보내줘! 내가 너희한테 뭘 했다고 지랄인데! 내가 니들 머리를 밀어 버린 것도 아니잖아!
“오른쪽, 왼쪽, 왼쪽, 오른쪽?”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외운 길을 지나가며, 나는 막다른 방까지 도달했다.
“길 어딨어?”
여태처럼 환풍구인가 해서 천장을 올려다봤지만 환풍구도 없고, 개구멍도 없다. 이거, 무슨 이벤트 각인가? 이럴 때 의문의 조력자 같은 게 튀어나와서 막 도와주는 상황 같은데? 역시나 내 예상이 맞는 듯, 방구석에 있는 물건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밑에 누구요? 그놈들과 한 패는 아닌 것 같은데 맞소? 빨리! 살고 싶으면 식기 운반기에 올라타시오!]
나는 갑작스레 들려온 대사에 주변을 둘러보다 이제 막 내려온 식기 운반기를 쳐다보았다. 여기에 사람이 들어가? 뭐 게임이니까 알아서 들어가던지 하겠지! 나는 식기 운반기의 앞에서 상호작용키를 난타했다. 빨리 열려! 나는 다진 고기가 되기 싫다고!
다행히도 우리의 저널리스트 마일즈 군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식기 운반기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식기 운반기는 문이 닫히자 엘리베이터 마냥 천천히 건물을 올라갔다.
그래서 조력자 얼굴을 볼...까?
[잘 선택했네 친구!]
“야, 야! 때리지 마! 뼈맞았어!”
누가 공포게임 아니랄까 봐 정말 갑작스럽네! 정수리가 벗겨진 알몸 에이프런을 입은 할아버지가 주인공의 얼굴을 후려갈기곤 잡아당겼다. 시야가 뒤집히며 땅에 부딪치고, 흐릿한 시야로 비웃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하긴 이런 곳에 정상적인 놈이 있을 리가 없지.
“이번엔 머리카락이 조금은 있네...”
그게 제일 중요한 거냐고 ㅋㅋㅋㅋ
왜 이렇게 머리카락에 집착하는데 ㅋㅋㅋㅋ
왜긴 왜야. 네가 대머리의 슬픔을 알아? 니들은 모르겠지! 머리가 벗겨진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난 실제로 대머리 직전까지 머리가 짦아 진적이 있다고! 머리카락 조절을 그때 못했으면...진짜...후...대머리 듀라한이라니,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겠지...모근을 잃느니 죽는 게 낫지!
[그 사제 놈쪽 끄나풀이군. 안 그래? 그놈의...목격자인가 뭔가 하는 그거. 아주 피곤하셧겠어. 잠깐 쉬자고, 응? 이 친구야.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서 담소 나누자고.]
망할 알몸 에이프런 할아버지가 뭐라 씨부리지만, 나는 그걸 한 귀로 흘려들으며 키보드를 난타했다. 역시나 이벤트 컷신인지, 캐릭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야 야,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
무서워...무섭다고...나 귀신은 몰라도 이런 거에 약하단 말이야...응애 나 아기 듀라한, 호러게임 시러.
하지만 내가 싫다고 게임이 저절로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벌써 90만원이나 쌓인 미션 금액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떻게든 깨기만 하면 돼! 후반부는 별로 안무섭다고 들었으니까 이 부분만 어떻게든 넘기면 이제 괜찮아!
젠틀하신 알몸 에이프런 할아버지,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저 이제 그만 정신병원 말고 시공으로 떠나고 싶은데요. 제 131레벨 주캐인 서리드워프님이 저를 기다린단 말이예요. 하지만 내가 그러건 말건 화면 속의 새로운 빌런은 주인공을 휠체어에 묶은 채 어딘가로 데려 가기 시작했다. 근데 저 아저씨는 왜 앞치마 하나만 두르고 있는 거야...?
“아니 다른 건 둘째치고 왜 옷을 안 입어? 아까도 알몸 쌍둥이가 관음을 하더니 이번엔 알몸에 에이프런 하나 입고 쫓아오는 할아버지라니, 노출증이야?”
ㄹㅇ...왜 앞치마만 입고 있는 건데 ㅋㅋㅋ
알몸 에이프런 ㅜㅑ...
할아버지 알몸 에이프런이라는 끔찍한 패션에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누가 모드라도 만들어서 저놈 모델링을 귀여운 고양이귀 미소녀로 바꿔줘! 헬 창 고양이 미소녀 말고! 하다못해 빻빻이라도! 남자보단 여자가 낫지! 아니야 빻빻이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내 앞에서 치워줘!
“으...”
너무나도 끔찍한 장면을 본 것 때문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아니, 울렁거리는 것보다는 울컥 올라오는 느낌인데...속이 뜨거웠다. 너무 역한 걸 많이 봐서 그런가. 내가 비위가 약하긴 한데, 평소와는 좀 다른 느낌이랄까. 뭔가 튀어나오려 하는데 뭔가에 막혀서 올라오지 못하는 느낌?
저 박사가 ㄹㅇ 싸이코임
무서워 ㅠㅠ
[슉슈슉 님이 1000원 후원!]
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
“박사? 저 알몸 에이프런 할아버지가 박사야?”
ㅇㅇ
“박사면 박사답게 대학원생이나 갈구면 안 될까? 왜 죄 없는 저널리스트를 괴롭히는 거야!”
대학원생은 뭔 죄임 ㅋㅋㅋㅋ
[쉿, 쉿. 어차피 쓸모도 없는 혀였잖아. 사실은 우표 붙인다고 혀를 내미는 게 영 귀찮았거든.]
휠체어에 탄 채로 저 박사의 손에 고통받는 대머리들을 보니 안 그래도 울렁거리던 속이 울렁거렸다.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복장의 박사님은 목소리까지 부담스러워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다. 왠지 저 목소리 듣고 있으니 속이 느글느글 거리는 것 같아...
내 생각보다 나는 고어한 것에 약한 모양이었다.
아니지, 그런 거로 치면 파멸 시리즈도 충분히 고어한데 속이 울렁거리거나 하지는 않았잖아? 그냥 점심에 뭘 잘못 먹은 걸까? 내가 점심에 먹은 게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이긴 했는데, 냉장고에 넣어 둔 게 하루 만에 상하던가...?
이것만 보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자. 일단 뭐든 간에 게워내면 속이 편해지겠지.
내가 의문을 가지건 말건 게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주인공은 이제 피칠갑이 된 화장실 한가운데에서 박사가 카메라를 세면대 사이에 놓고 이동식 선반에서 흉흉한 수술도구들을 고르고 있었다.
얆은 칼을 장난스레 목에 대고, 커다란 식칼을 만지작거리며 농담을 던지고, 마지막으로 거대한 가위를 가지고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절대 이 상황이 원만하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거 분명 어디 하나 골라가는 클리셰잖아! 이런 클리셰 필요 없어!
손가락 만지지마, 설마 자르는 건 아니지?
[아, 돈 빌려 저 돈 갚는 격이지만 별수 있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지. 근데 돈이 한 푼도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우웁...”
결국 내 불길한 예상대로, 박사는 사람 몸통만큼이나 커다란 가위를 꺼내 들고는 주인공의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 끔찍한 장면에 나는 참지 못하고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주인공의 처절한 비명이 너무 끔찍해서, 당장에라도 꺼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못 참겠어...!
“저, 잠시만 화장실 좀...!”
토할 것 같아!
나는 머리에 씌운 헤드셋을 벗기고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갔다. 당장에라도 입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나는 재빨리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통에 얼굴을 처박았다. 더럽지만 일단 입안에 있는 것을 토해 내는 게 먼저였다. 입을 열자마자 몸속의 무언가가 그대로 변기안에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웨에에에에에엑!”
뭐, 뭐야?
눈물 때문에 눈앞이 잘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잘못본 것일 리가 없었다. 변기 안이 온통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람 몸에서 나올 수 있는 붉은 액체는 혈액 뿐이었다. 평생 맡아본 적 없는 진한 비린내가 내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왜, 내가, 피를?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게 현실인지, 아니면 내 착각일 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나는 결국 어지럼증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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