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61.너는 너무 말이 많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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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언니! 오랜만이에요! 지금까지 잘 지내셧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었어요! 과자 드실래요? 여기 휴게실에 맛있는 과자가 많아서 적당히 배 채우기에는 정말 좋아요!”
한번에 하나씩 말해! 대답할 타이밍을 못잡겠으니까!
여전히 정말 작고, 정말 말이 많은 애였다. 근데 나보고 이 애를 맡으라는 거지? 나는 복잡한 심사를 숨기며, 내 앞에서 신나게 조잘거리는 꼬마를 쳐다보았다.
“여기 간식중에서도 이 빵이 정말 맜있어요! 이름이 뭐더라, 마...마...마...아, 마들렌! 이거 정말 달달해서 먹을때마다 입안이 행복해져요! 하나 드셔보세요!”
“어, 고마워.”
나는 어색하게 마들렌을 받아들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안에 던져넣었다. 너무 단건 싫은데. 단걸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준 성의가 있으니 무시할 수는 없다.
달다. 좀 많이. 하지만 사회생활 하면서 쌓인 표정연기는 완벽했다. 나는 정말 맜있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맛있네.”
“그쵸? 동네 빵집에서 파는 마들렌이랑은 완전 다른 것 같아요!”
애초에 라쿤 박사님이 나한테 맡길 정도면 가정 사정이든, 아니면 무언가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까, 박하게 굴 수는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활기찬 모습과는 정반대로 몸은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말라 있었으니까.
“지금부터 갈 집에 불길한 일이 생겼어서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귀신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처녀귀신일까요 총각귀신일까요! 막 자고 있는데 천장에서 지켜본다거나 분명 제대로 놔둔 물건이 이상한 곳에 떨어져 있다거나 밤에 잘 때 가위가 눌려서 눈을 떠보면 시선이 마주친다거나 하는 거죠! 정말 오싹하네요!”
그 귀신, 우리집에서 식모살이 하고 있는데?
“보통 무서워 하지 않나...괜찮겠어?”
거기 아직 시체 썩은내 좀 남지 않나. 그냥 같이 사는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에는 집이 좁다보니 침대를 하나 더 들이기는 애매한데.
뭣하면 내가 옆집으로 이사하고 지금 사는 집에 살게 해도 되는데. 시체 썩은내야 세연이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괜챃아요! 익숙해요!”
“익숙해지지마!”
비련의 여주인공도 아니고! 가정사정이 정말 비련의 여주인공 뺨치는 수준인가. 픽션에서야 왠만하면 해피엔딩이 보장되니까 그러려니 하고 주인공의 시점에 몰입하는 장치에 불과하지만, 현실에서는 말도 꺼내기 힘든 비극 그 자체라 좀 그런데.
“빨리 새 집에 가보고 싶어요!”
“집이 준비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며칠동안은 유진씨의 집에서 지내면 어떻겠습니까?”
요원 누나가 유라에게 제안했다.
하긴, 가구까지 사서 넣고 시체냄새 빼고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근데 왜 내 집이야? 여기서 좀 더 지내면 안 돼? 입 밖으로 나올 뻔한 말을 나는 다시 집어넣었다. 내가 가오가 없지 눈치가 없나.
딱 봐도 심각한 이유가 있어서 나에게 맡기는 걸테니, 첫 단추부터 거하게 말아먹는건 최악의 선택이니까.
“우리집에 남은 이불이 있던가...”
오랜만에 방바닥에서 자겠군.
“와! 집이 정말 깔끔해요! 먼지 한톨 없네요? 엄청 깔끔한 성격이신가 봐요!”
...우리집엔 우렁각시가 산단다. 언제나 청소와 빨래를 해주지. 제물로 햄버거만 바치면 된다다. 유라에게서 시선을 떼고 거실 구석을 보니, 짱박혀서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세연이가 눈짓으로 나에게 물었다.
애는 누구야? 그리고 햄버거는?
글쎄 애가 누굴까. 나는 말로 대답을 할 수 없어 어깨를 으쓱이는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빈손이 보이느냐. 세연이를 소개시켜도 될까.
“와,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 들어요! 역시 귀신들린 집이라 그런거죠?”
그건 옆집인데...틀린말은 아니네. 어쨌든 귀신들린 집은 맞으니까.
“저쪽에 뭔가 보이니?”
영감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시험삼아 유라에게 세연이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질문했다.
“어...안보여요! 하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아요!”
“재가 그 귀신이야.”
“와 정말요? 안녕하세요! 저는 며칠간 신세지게될 장유라라고 해요! 잘부탁드려요! 귀신 언니? 오빠?”
“처녀귀신이니까 언니지.”
“와! 처녀귀신! 한번 보고 싶었는데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게 아쉬워요! 처녀귀신이면 소복입고 머리 길게 늘어트린채로 노려보고 있는거에요?”
아니, 폰으로 놀고 있는데. 요즘 시대는 귀신들도 스마트폰의 마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 말이야. 세연아 니 서마터폰 중독이다! 새로운 뉴페이스의 등장에 세연이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으로, 폰을 내려놓고 내쪽으로 걸어왔다.
[...신세진다니? 혹시 친척이야?]
“아닌데. 나도 어쩌다보니 맡게 됐어.”
[어쩌다보니? 애를 맡는게 어쩌다가 될만한 일이야?]
아니 왜 바가지를 긁으려 하세요. 사실 나도 잘 모른단 말이야. 재 사정은 차근차근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가정 사정이라는게 쉽게 물어볼만한 것도 아니고 나 같은 아싸한테는 그런거 물어보는게 정말 부담스러워서 함부로 말도 못 꺼낸다.
“캐리어는 나한테 줘. 화장실은 저쪽이니까 일단 씻을래?”
“네! 감사합니다!”
유라는 캐리어에서 세면도구랑 옷가지를 꺼내들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거실 한 구석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머리를 뗴어내 안아들었다. 듀라한이란 종족 특성이 그런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그런건지 몰라도 머리를 목 위에 올려놓는 것만으로 피곤해 진다니까.
안 그래도 외출을 잘 안하던 내가 정말 나가야 하는 일이 없다면 거의 방구석에 쳐박혀 있었던 이유다. 최근에는 꽤 밖을 많이 돌아다닌 것 같기는 하지만...
“세연아, 재 좀 잘 돌봐줘. 라쿤 박사님이 맡기셧는데, 아무래도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거든. 그냥 좀 신경만 써주면 돼. 말걸면 폰으로 적당히 타자쳐서 대화도 해주고...햄버거도 하나 더 줄테니까.”
“...알았어.”
세연이는 흔쾌히 승낙했다. 역시 햄버거야. 성능 확실하네. 나는 냉장고에서 x벅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 시작했다. 슬슬 냉동 햄버거도 거의 다 먹었네. 냉장고 윗칸을 가득 매웠던 햄버거가 몇 개 남아있지 않았다. 하긴 요즘 하루에 대여섯개는 먹어치우니까 당연한 건가.
방 구석의 장롱에서 이불을 꺼낸다. 한동안은 바닥에서 자야하니 미리 꺼내놔야지. 여름이불이 아니라서 좀 더울 것 같기는 하지만, 뭐 반쯤 덮고 자면 되겠지. 전자 모기향을 방안에 켜고, 갈아입을 옷을 미리 꺼내두고, 침대에 앉아 잠시 멍을 때렸다.
아내일 방송은 시청자가 얼마나 늘어나려나. 그래도 나름 방송의 여파로 시청자가 늘어날거라는 희망적인 관측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늘어날지가 관건이었다. 단번에 머기업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건 힘들테니까.
시청자 수 늘어나면 분탕치러 오는 사람들도 늘어날텐데. 채팅창 관리에 더 신경써야 할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저 다 씼었어요! 따뜻한 물이 잘나와서 좋네요!”
15분정도 걸렸네. 빠른건지 느린건지는 잘 모르겠다. 여자애들은 씻는데 오래걸린다고 들었는데. 단발머리라 그런건가. 딱 봐도 편해보이는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유라가 수건으로 머리를 둘둘만채로 나와 식탁에 앉아 있었다. 키가 너무 작아서 머리만 탁자위에 올라와 있는게 불편해 보였다.
“쥬스 마실래?”
“네! 감사합니다!”
나는 머리카락을 늘려 냉장고 문을 열고 작은 유리병에 담긴 오렌지 쥬스를 꺼냈다. 유기농이니 뭐니 하는 겉포장에 낚여서 사봤는데 별 차이는 못 느끼겠더라. 유라는 내가 머리카락을 조종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내 머리카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대단해요! 머리카락을 조종할 수 있다니! 저는 키 작아진 것 말곤 달라진것도 없는데! 부러워요!”
“아직 못찾은 것 뿐이고, 너도 뭔가 특별한 능력같은게 있지 않을까?”
변이자들은 뭔가 하나씩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던데. 나는 머리 탈부착이랑 머리카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한솔이는 보는 것 만으로 최면을 걸 수 있고. 뭐...아직 깨닫지는 못했지만 애도 뭔가 초능력같은게 있지 않을까.
“비싼 쥬스 같아요! 맛있네요!”
비싼 쥬스긴 했다. 무가당이니 유기농이니 그런 문구가 잔뜩 붙어있는걸 샀으니까.
“캐리어는 저쪽에 놔뒀으니까 짐 정리할거 있으면 정리하고...빨래할 옷 있으면 저기 통에 넣어놓고, 칫솔은 있어?”
“네!”
“그럼 그건 됐고, 잠은 내 침대에서 자. 나는 바닥에서 잘 테니까.”
또 뭐 말할게 더 있나?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데.
“제가 바닥에서 잘게요! 저는 침대에서 자본적이 없어서 바닥이 더 좋아요!”
그렇게 말해도 내가 침대에서 잘 리가 없었다. 나야 대충 어디서 널부러져 자도 잘 자지만 애는 침대에서 자는 쪽이 더 나으니까.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침대에서 자렴.”
“하지만...”
이상한데서 고집을 부리네.
결국 5분간의 실랑이 끝에 나와 유라는 같이 침대에서 자는 걸로 합의를 맺었다.
...나 잠꼬대 심한데. 자는척 하다 중간에 바닥으로 내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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