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54화 (54/352)

〈 54화 〉 52.'울어라, 지옥참마도!'(2)

* * *

“저승사자하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지 말임다.”

저승사자는 인스턴트 커피가 담긴 커피잔을 잠시 바라보다가, 잔을 후후 불곤 조금 들이켰다. 딱히 내놓을 게 없어서 인스턴트 커피라도 타왔는데, 다행히도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자기를 저승사자라 소개한 피로에 쩔어 있는 얼굴을 한 남성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저승사자가 언제 찾아올지 아는 인간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저도 이게 처음임다.”

그렇구나. 나는 방문틈새로 나와 저승사자를 보며 안절부절하고 있는 세연이를 흘끔 쳐다 보다, 다시 저승사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승사자도 제3의 인물을 눈치챘는지 방문 쪽을 슬쩍 보곤 다시 내게 시선을 향했다.

“영혼 하나 잡아가려고 온 것은 아님다. 안 그래도 잡을 영혼이 많아서 명부에 적힌 것만 데려 가도 빡셈다.”

“그럼 무슨 일로 왔는데?”

존댓말이라도 해야 할까 하다가, 나는 그냥 반말로 하기로 했다. 초면에 예의를 지키는 게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저 괴상한 말투를 보면 존댓말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실제로 본인도 별말 안 하기도 하고.

“제 상사가 귀하에게 관심이 많지 말임다.”

“나를? 왜?”

머리 분리되는 거랑 귀신 보고 만질 수 있는 거 빼곤 평범한 데? 나 정도면 나름 평범한 축에 드는 거 아니야?

“머리가 분리되는데 평범할 수가 없슴다...”

“귀신도 있고, 흡혈귀도 있고, 거인도 있는 데 듀라한 정도야...”

“이 세상에 듀라한은 당신 뿐임다.”

히든종족이라도 되나? 변이자들 중에 나 말고 한 두 명쯤은 듀라한이 또 있지 않을까 생각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뭐 이거 판타지소설 주인공한테나 붙을 법한 설정인 데. 이왕 붙을 거면 좀 더 괜찮은 걸로 붙어주면 안 될까...이왕이면 돈 잘벌리는 쪽으로.

“저는 저승을 대표해서 귀하께 스카우트 하러 왔지 말임다.”

네? 취업알선이요? 상상도 못 했던 발언에 나는 잠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저승사자를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저승사자한테 스카웃 제의를 받는 거지? 귀신 보고 만질 수 있는 건 저승사자는 다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저승사자로 취직할 생각 없냐는 거야 지금?”

“아르바이트도 괜찮슴다. 최저시급보다 50%는 더 쳐줄 수 있슴다.”

저승사자가 최저시급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었다. 생각이상으로 저승사자들도 삶에 찌들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저승사자 노조 이야기도 나오겠네.

“저승사자 노조는 없슴다. 그런거 만들시간에 영혼 하나라도 더 잡아야 실적이 오름다. 실적이 올라야 봉급도 늘어남다.”

영업사원이야? 저승사자도 인생 참 팍팍하구나...현세나 저승이나 살기 팍팍한 건 매한 가지인 듯하다. 그래서 야근에 찌든 직장인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저승사자를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한 때는 저랬다고...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좀비같은 몰골로 출근해서 좀비같은 얼굴로 퇴근하는...

“혹시 한잔 더 줄 수 있슴까?”

“뭐 그 정도야...”

싱크대에서 잔을 씻고 물기를 털어낸 뒤 그 안에 인스턴트 커피 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티스푼으로 잔 속 내용물이 잘 섞이게 휘휘 저어 다시 저승사자 바로 앞에 내려놓았다.

“감사함다.”

“나는 저승에 취업하고 싶지는 않은 데...”

날 스카우트하러 온 저승사자 꼬라지 보고 저승에 취업할 생각이 들겠냐? 안 그래도 ㅈ소기업에서 구르고 구르다가 망해서 강제로 백수된 몸인 데, 더 끔찍해 보이는 직장에 들어 갈 수는 없었다. 돈 좀 못벌어도 차라리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스트리머가 훨 낫지.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직장생활 스트레스보단 낫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슴다. 그럼 가끔 의뢰를 맡기러 와도 되겠슴까? 그 뭐시기, 방송인가 뭔가 찍어도 됨다.”

“아니, 나야 돈만 준다면 그 정도 는 괜찮은 데, 촬영을 해도 된다고?”

“어차피 보통 사람들은 못 봄다.”

“그럼 찍는 이유가 없잖아.”

“x튜버들은 안 보이는걸 보이는 척 하면서 돈을 쓸어담지 말임다.”

x튜브는 저승사자도 보는 모양이다. 하긴 정말귀신 잡아 오는 저승사자 입장에서 심령튜브는 웃음벨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사람들이야 귀신이 있는지없는지 모르니까 속는다지만 저승사자한테는 허공에 손가락 가리키고 말거는 콩트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래도 진짜 있는 곳을 찍는 거랑 없는 곳을 찍는 건 느낌이 꽤 다르지 말임다.”

“그건 어떻게 알아?”

“제 후배중에 x튜버 한다고 자기가 잡으러 간 귀신들 찍다가 감봉당한 저승사자 있슴다.”

별의별놈이 다 있네. 그래도 저승사자 X튜버...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인 데 한 번 보고 싶은 조합이다. 저승사자가 직접 X튜브하면 그것보다 완벽한 증거가 없다. 저승사자가 앞에 귀신이 있다고 하는 데 안 믿을 사람이 어디 있냐. 안 믿으면 그 날로 저승사자랑 면담하게 될 수도 있는 데.

결국 저승사자인 걸 증명해야 가능하겠지만....

“그리고 이것도 전달하러 왔슴다.”

저승사자가 품에서 작은 칼을 거내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저승사자가 내려놓은 물건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고풍스러운 장식에 손바닥만 한 칼이라, 사극에서 본 적이 있는 데. 열녀들이 자결할 때 쓴다던 은장도였나, 그랬던 것 같다.

“은장도?”

“맞슴다. 그걸 뒤의 영혼에게 먹이면 됨다.”

“이걸 먹이라고?”

“그렇슴다. 저승에서도 꽤 귀한 물건임다. 여차할 때 호신용으로 쓰시면 됨다.”

“이게 뭔데?”

“지옥참마도 임다.”

“뭐라고?”

“지옥참마도(?????) 임다. 꽤 비싼 검다. 원귀한테 휘두르면 바로 저승으로 사출됨다.”

나는 내 손에 올려진 은장...아니 지옥참마도를 내려다 보았다. 이름이 도대체 왜 그래. 농담이지? 하지만 저 인스턴트 커피를 마치 고급진 차를 마시는 것마냥 즐기는 저승사자가 농담을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근데 이걸 세연이한테 먹이라고? 왜? 칼집처럼 쓰기라도 하라는 건가?

“뒤에 있는 혼에게 먹이면 귀하에게 귀속되지 말임다. 귀속되면 굳이 저승으로 오지 않아도 됨다. 꺼낼 때는 울어라, 지옥참마도! 라고 외쳐주시면 됨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저거 확실하게 노린 거였네! 누구야! 이름 저렇게 지은 놈은! 제정신이야?

“선물이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됨다.”

내 얼떨떨한 모습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저승사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선물을 주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딱히 저승사자한테 감사받을 만 한 일을 한적도 없다. 내가 한 거라고는 세연이 성불시키고, 뒷골목 귀신 줘패고 다닌 것밖에 없는 데 도대체 뭐가 감사해서 선물까지 주는 걸까.

아니, 애초에 찾아온 것부터 이상하긴 했다. 저승사자가 굳이 나를 찾아올 이유가 있나? 상사의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그래봤자 듀라한인 걸 빼고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데.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이상한 게 아님다. 듀라한이랑 척을 지고 싶어 하는 저승사자는 없슴다.”

말 하는 뉘앙스가 요상했다. 마치 나 말고 다른 듀라한이 있었다는 것처럼 들리는 데. 동서양 교류가 과거에도 아주 활발했던 모양이다. 뭐 1년에 한 번씩 동서양 저승사자들 모여서 계모임이라도 하나. 이 괴상한 상황과 계속해서 때려 박아지는 정보들이 쌓여가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좀 제대로 설명해 주면 안 될까? 나 말고 다른 듀라한이 있었어?”

“그렇슴다. 하지만 말은 못해줌다. 제 직급으론 말할 수가 없슴다.”

쩝. 꽤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였는데. 하지만 나름 ㅈ소기업의 고충을 아는 나로서 저승사자를 배려 해 주기로 했다. 쓸 일이 있나 싶기는 하지만 나름 유니크한 선물을 가져 오기도 한 손님이고. 굳이 저승사자와 싸울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세연이를 데려간다고 한다면 좀 이야기가 다를지도 모르지만.

뭔가 ‘듀라한’을 특별취급하는 것 같지만, 그 부분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날 인연도 아닌 것 같으니 나중에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

“그럼 저는 가 보겠슴다. 명부에 기록된 영혼이 아직도 너무 많슴다...요즘 시대는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임다...”

저승사자는 자기 처지를 한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승사자를 배웅해 주기 위해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향했다. 저승사자가 능숙하게 도어락을 해제하고 문을 열고 나가자, 나는 적당히 배웅해 주려고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슴다. 다음 방송은 좀 더 재밌는 겜을 해줬으면 좋겠슴다...시공은 하나도 모르겠슴다...”

...내 시청자였어?

저승사자도 인터넷 방송 보는 구나...하긴 X튜브도 보는데 X위치를 보는 게 대순가. 나중가면 이상한 사이트 하다 걸리는 저승사자도 나오겠구먼. 이미 지옥참마도가 정말 나오는 시점에서 글러 먹은 건가.

저승이 어지간히도 심심한가 보다. 하긴 거기에 뭔가 오락거리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껏해야 독서정도가 아닐까.

여러모로 복잡한 하루구먼. 손에 쥐여져 있는 지옥참마도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세연이와 함께 방으로 돌아 갔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