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43.뭐하고 있냐 몸통아! 어서 와서 붙지 못하고!(3)
* * *
“여기 들어가시면 됩니다.”
요원들이 정중하게 손으로 내가 들어갈 곳을 가리켰다. 저 영화에서나 볼법한 요원들의 얼굴은 내가 저 흉물스러운 것에 들어가는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아니. 저기요?
나는 비장해보이기까지 하는 눈빛으로 라쿤맨의 ‘해결책’을 상자에서 꺼낸 요원들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내가 세상을 구할 용사라도 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잡는 요원들의 진지한 행동과 꺼낸 물건이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 나는 망연자실하게 내 앞에 놓여진 물건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정말 밖에 나갈 수단이라는게 진짜 이거야?
나 놀리는거 아니지?
내가 요즘 사고 많이 친다고 엿맥이는거 아니지?
라쿤맨? 나는 너를 믿었는데!
에반데...
한솔이는 라쿤맨이 내놓은 외출수단을 보고 웃음을 참고 있는지, 끄윽끄윽대며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이게 아주 정말 재밌는 모양이었다.
넌 이게 웃기냐? 웃지말라고! 넌 이게 웃음거리로 보이냐! 이건 인간 존엄성의 문제야!
나는! 저걸 입을 바엔 그냥 머리만 나갈래! 내 나이가 몇인데 저런걸 입고 밖을 나가냐고! 누굴 머리 밖에 없다고 다 들어주는 호구로 아나본데, 한솔아 나도 순정이 있다! 네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밞으면 마! 그땐 듀라이더맨이 되는 거야!
나는 혼자서 갈끄니까! 나는 내 몸 찾으러 갈끄야! 나를 막지마라!
자라나라 머리머리! 그래 터졌구나 요원놈아! 네가 빵 터진 동안 나는 이곳을 탈출하겠다! 내가 몇 주동안 해온 훈련의 성과를 보여주마!
머리카락을 문 바깥 난간까지 늘려 다시 머리카락을 줄인다! 그대로 관성을 타고 앞으로 날
“어디 가십니까.”
내 필사의 도주는 여성 요원의 손에 허망하게 막혔다. 요원은 요원이라는 건가...뻥 차인 축구공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가는 내 머리를 캐치하다니, 나에겐 너무 강한 눈나였다. 나는 저항할 의지를 잃었다. 아무리 내 대가리가 단단해도 지금 느껴지는 팔힘은 내 머리로 아주 드리블을 쳐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3대 몇이나 치셧수?
“시간이 없습니다. 다소 불편히실지 모르겠지만 입고 나가셔야 합니다.”
선글라스 사이로 보이는 요원의 눈빛에서 ‘당장 들어가지 않으면 내가 시말서와 감봉을 받게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에게 저것을 입혀야 한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비장해보이는게 아니라 정말 비장한 거였군. 나는 난간에 묶은 머리카락을 풀었다. 여기서 더 날뛰면 저 손아귀에 느껴지는 강력한 힘으로 나를 쳐박아 버릴거야...
“내가 입혀줘요?”
온갖 지랄을 하던 나를 지켜보던 한솔이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 저년 당장이라도 웃음보 터질라고 하는 거 보소. 내가 매번 밥도 사주고! X수들이 지랄하는 거 하소연도 들어주고! 집 청소하는 것도 도와주고 그랬는데 날 비웃어?
아카데미로 보내버릴까? 내가 네 이름으로 아무 아카데미물에다 5700자로 쪽지 적어서 작가에게 보내줄까? 요즘 대세는 존나 굴림굴림굴림물이라고!
안 돼 참아...내 안의 시우야.
나는 쏘 스윗한 미소녀 듀라한이니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착한 생각...착한 생각...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생각...아니 내 부모님 살아있잖아. 당황한 나머지 셀프 패드립을 시전한 나는 한솔이가 나를 들어 저 끔찍한 물건에 내 머리를 집어넣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귀엽네!”
뒤에 초성체로 ㅋㅋㅋㅋㅋㅋㅋㅋ를 붙여야 할것같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이거 안쪽은 비어있는건가. 착한 생각...이건 대의를 위해서야. 대의를 위해서니까 내 한몸 바쳐서 입어주마. 머리카락을 대량으로 늘려 슈트안에 머리카락을 밀어넣었다.
머리카락으로 잔뜩 채워놓은 슈트를 입은 채로 시험삼아 걸어본다. 인형옷을 조종하는 건 처음이라, 아무래도 뒤뚱뒤뚱 걸을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더 커지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크흡, 혹시 평소에도 그렇게 다니실 생각 없어요?”
“선넘네...”
“에이. 엄청 귀여우신데~”
볼 찌르지마라. 나를 미취학 아동처럼 안지도 마! 나는 28살 예비군3년차 군필 여중생이다! 사회에 나오면 어? 어?
하지만 내 저항이 무색하게도,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인형옷을 입고 나를 안아올리는 한솔임를 막을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이거 디자인 한 사람 누구야! 누가 아기상어 인형옷을 나한테 입힐 생각을 한 거냐! 팔은 왜 지느러미로 만들었냐! 물건을 제대로 쥘 수도 없잖아! 내 앞에 당장 불러와! 업무로 단련된 갑질이 뭔지 보여주마!
차라리 줄거면 킹룡 인형옷을 달라고!
“야, 좀 춥지 않냐?”
“병신아 지금 존나 더운데 뭔 개소리야.”
“아니, 진짜로 안 추워?”
사람이 오지 않는 스산한 뒷골목에 숨어 담배를 피던 유성민은 시퍼런 안색으로 제 몸을 끌어안는 친구를 비웃었다. 그늘 속에 숨어있어도 쪄죽을 것 같은데, 이게 진짜 미쳤나. 얆은 반팔티를 입고 있는 지금도 너무 더워서 땀이 흐를 지경이라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었던 유성민은 친구의 헛소리에 쏘아붙였다.
이새끼는 뭔 개소리야. 빨리 피고 피방이나 가야지. 안 그래도 플래티넘으로 가는 승급전을 앞두고 있어 손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이제 친구들한테 골딱이 소리 듣는것도 진절머리가 난다. 지들은 플딱이면서 어디서 골드한테 지랄이야. 골드나 플래나 그게 그거지. 말만 들으면 시발 무슨 천상계인줄 알겠다.
당연히 놀리려고 하는 말인건 알지만, 기껏해야 플래티넘 4에서 턱걸이중인 인간이 쓰잘데기 없는 티어부심 부리는 것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유성민은 평소에 꼴릴때만 몇 판씩 돌리던 리오레를 요 며칠간 빡세게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진짜 존나 추운데...야, 성민아 저거 뭐냐?”
떨리는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유성민은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는 인영에 피식 웃었다. 뭐야. 사람이잖아. 우리처럼 담배라도 피려고 왔나. 인기척이라고 없는 한적한 새벽인 지금 못해도 40미터 이상 떨어진 인영을 그들이 제대로 식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벅 저벅.
“야야...빨리 나가자. 저 사람 존나 이상해...”
“아니...뭐가?”
“머리쪽이...뭔가 허전하지 않냐?”
친구가 의문을 제시하는 동안에도 정체불명의 인영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둘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인영은 점점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단순한 걷는 소리가, 이제는 둘의 심장을 옥죄는 소리로 돌변했다.
그러고 보니 유성민은 다른 친구에게 들은적이 있었다. 이 뒷골목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으로는 사람 머리를 누가 발견했다던가. 흉흉한 소문이지만 으레 여름마다 나오는 괴담 같은 걸로 인식되어 그때는 피식 웃어념겼지만, 지금은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머리만 발견되었다면...그게 사실이라면, 몸은 어디 있을까?
갑작스런 의문이었다. 평소라면 무시했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무시할 수 가 없었다. 그 순간에도 정체불명의 인영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규칙적인 발소리가 이렇게 무서운 적은 처음이었다. 뒷골목에서 살인마를 만난 피해자의 심정이 그러할까.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도망쳐야 해!’
본능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육감이란 것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살아온 둘은 이 순간 육감이란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저 인영은 위험해. 유성민과 친구는 눈이 마주치자 점점 가까워지는 인영과 뒤쪽 길을 번갈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뒷걸음질은 느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두 사람은 이내 코앞까지 다가온 인영을 보며 비명을 삼켰다. 가까이 다가온 인영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목이 없는.
둘은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아 필사적으로 비명을 삼켰다.
들키면 안돼. 들키면 안돼.
들키면...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버린 상황에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저 괴물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이었다. 목없는 사람은 두 사람 앞에 잠시 멈춰섰다가, 그들을 지나쳐 사라졌다. 잠시 혼이 나간 듯 침묵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야, 도대체 뭐였냐...? 잘못본거 아니지...?”
“나도 몰라...”
“근데 뭐라고 하지 않았냐...?”
“그, 그랬던 것 같은데...분명...”
너희들은 아니야, 라고 들렸어.
두 사람은 서둘러 뒷골목에서 도망쳐나왔다.
꾇*요원들이 가져온 슈트는 이런 느낌의 인형옷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아기 상어 버전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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