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23.부먹이냐 찍먹이냐, 그것이 문제로다(2)
* * *
“세연아, 햄버거 먹...세연아?”
어딘가 방구석에서 쭈구리마냥 박혀 있어야 할 찍먹 성애자 처녀귀신이 보이질 않는다.
뭐야, 어디갔지? 지박령이라 어디 못가는거 아니었어?
아니 정말 탕수육 부어먹었다고 가출한거야...?
근데 애를 어디서 찾지? 처녀귀신이라 볼 수 있는 사람이 나말곤 없는데다가, 난 세연이가 갈만한 곳 같은건 모른다. 나는 애가 이 집에서 벗어난 걸 한번도 본적 없단 말이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어떻게 찾아야 돼? 그냥 올때까지 기다려볼까?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우리집 처녀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잠깐 삐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었다. 부먹이 그렇게 심각한 일이야? 뭔가 내가 존나 쓰레기 같잖아.
생전에 부먹에 대한 트라우마라도 있었나...? 죽은 사유가 부먹이라던가?
당장 생각나는 좋은 방법이 없다. 생각해보면, 이세연 석자 빼고는 내가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좋아하는 건 뭔지, 싫어하는 건 또 뭔지...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글은 정상적으로 쓸 수 있으니까.
아는 게 없으니 단서도 없다. 갑자기 죽은 사람 이름을 묻고 다니면 이상하게 쳐다볼게 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직접 발로 뛰면서 찾아보는 건데...뭔가 단서가 없을까? 추리 소설도 이만하면 단서도 안주고 추리하라 한다고 욕바가지로 먹을 텐데, 뭐 없나 진짜.
“세연아~안 나오면 햄버거 없다~!”
이건 내가 너무 좀생이 같이 보이는데. 무당이라도 부를까? 근데 무당은 믿을 수 있나? 어릴 때 집안에 잡귀 몰아낸답시고 할아버지가 금수도사인가 금강도사인가 하는 금되게 좋아하는 무당 불러서 굿하다가 미끄러져서 기둥에 머리 박고 병원에 실려 간 것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그 이후로 무속인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렸지. 나는 O먼킹이나 O죠처럼 뭔가 뒤에서 튀어나와서 배틀이라도 할 줄 알았어...
차라리 호구조사나 해볼까. 지박령은 보통 죽은 곳에서 머문다고 했으니까 여기 집주인이면 뭐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근데 집주인을 만날 수 있나? 내 선에서 어떻게 해결하는 게 제일 깔끔한데. 일단 빌라를 돌아다녀볼까?
차라리 한솔이한테 물어보러 가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
껴안고 있던 머리를 목위에 올려놓고 붕대로 감았다. 이젠 하도 많이 해서 얼마 걸리지도 않네. 아, 붕대 새 걸로 할걸 그랬나. 좀 찝찝하네. 어차피 잠깐 나갔다올 거니까 빨리 갔다와야지. 문을 나선다. 한솔이가 사는 방까지는 10걸음이면 된다. 방 하나 건너에 있는 집이니까.
딩동
초인종을 누르자, “나가요~”하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무슨일이에요?”
티셔츠에 돌핀팬츠라는 정말 편해보이면서도 남자들의 눈을 만족시키는 ㅜㅑ한 복장이다. 쉬고있던 모양이었다. 정작 나도 돌핀팬츠는 애용하지만, 나는 애새끼라서 볼륨감이 부족해...없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학생 기준에서의 볼륨감이랄까...
“혹시 요 빌라에서 일어난 일 없었어? 살인사건이라던가, 자살이라던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뭘 물어보는거야 이 인간은...’같은 표정 짓지 말고 알려주면 안될까. 이쪽은 꽤 진지한 일이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런 불길한걸 물어보니까 신경쓰이잖아요. 제가 알기론 옆방에서 사람이 죽었다더라, 그거 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금 저희 둘 사이에 있는 집은 아예 내놓지도 않고 있대요.”
“사람이 죽어? 옆옆방이 아니고 옆방에서?”
“네. 옆방으로 알고 있어요.”
“아, 어쨌든 고마워. 그럼 난 가볼게.”
“아, 네. 잘가요~”
그럼 왜 세연이는 옆옆방에 있었던 걸까? 자기가 죽은 곳이 아니란 소리잖아. 옆집을 확인해보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어떻게 들어가지? 집주인에게 열쇠 좀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럴 듯한 변명 없나?
바람에 빨랫감이 옆집 베란다로 날아들어가서 꺼내게 열쇠좀 빌려주세요?
그냥 구경하고 싶으니 열쇠좀 빌려주세요?
옆방에서 계속 이상한 소리가 나서 확인하고 싶으니까 옆방 열쇠 좀 빌려주세요?
세 번째가 제일 그럴 듯 해 보이는데. 뭔가 호러영화나 괴담에서 나올법한 레파토리다. 분위기도 있어 보이고.
어.느.것.을.고.를.까.요.알.아.맞.춰.보.세.요!
역시 세 번째가 정답이네!
[옆방엔 아무것도 없어. 처자가 잘못 들은거 아닌가?]
“저는 정말로 들었는데요?”
[내가 그 집에 머무른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런말을 해서 몇 번이고 들어가 봤지만 한번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네. ‘그 일’이 있었기는 했지만 굿을 하기도 했으니 원혼이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네. 아마 착각일 게야.]
“아, 네. 그럼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결국은 못 열어준다 이거구만. 아쉽긴 하지만 문을 열어줄 것 같지는 않다. 집주인과의 연락을 끝내고, 방구석에서 머리를 껴안고 생각에 잠긴다. 별로 쓰고 싶은 수단은 아니었는데. 연습의 성과를 보여줄 시간인가?
하지만 작전을 실행하려면 밤이 되어야 하니, 오늘도 결국 방송이 끝나고 움직여야 한다. 오늘은 휴방이라도 할까. 세연이가 신경쓰여서 방송에 집중하기도 힘들 것 같고. 근 한달간 같이 부대끼고 살았던지라,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내가 미안하니까 돌아와줘...내가 이번엔 탕수육 소스 안부을게...
[그럼 내일봐요~듀바~]
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 여러분은 고개를 들어주세요.
아 이게 아니지.
“자라나라 머리머리...”
머리카락을 늘린다. 너무 길게는 필요 없다. 한 1미터정도면 충분하지. 이 시국에는 밤이 되면 인적이 정말 드물어서 들킬일은 없다. 혹시 몰라 주변을 눈대중으로 체크하고, 옆집 베란다를 살핀다. 이래뵈도 어릴적엔 공 좀 던진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정도 거리면 문제없이 던질 수 있어!
“MAMA~ OOH~ didn’t mean to make you cry~”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베란다 문을 연다. 이 빌라는 작은 베란다가 벽에 달려있는 구조라서, 아주 약간이지만 공간이 있다. 머리를 묶은 끈을 돌린다. 세상이 빙빙 돈다~
대충 이즈음이면 되겠지? 나는 미친 듯이 돌아가는 시야속에서 눈대중으로 머리를 던졌다. 목표는 옆집 베란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다. 순식간에 베란다 난간이 가까워진다. 다행히도 내 머리는 원하던 곳에 착지했다.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탓에 먼지투성이가 되었지만, 저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으면 됐다.
혹시 누가 목격할지 모르니까 몸은 일단 베란다 안에 넣어두고, 나는 목근육을 스프링처럼 튕겨 창문의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역시 잠겨있네. 하지만 이럴 때 쓰는 방법이 있지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에 신경을 집중한다. 머리카락을 줄였다 늘였다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부산물이지만, 정말 유용한 능력이다. 머리카락 몇가닥을 조심스럽게 창문과 창문 틈사이로 집어넣고, 몇 번을 헤멘 끝에 잠금장치를 해제한다.
이 험한세상 머리카락을 손대신 쓰기라도 해야 해쳐나갈 수 있는 법이다.
으, 퀴퀴한 냄새!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한거야? 퀴퀴한 냄새도 냄새지만, 그 사이에서 섞여나오는 역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이런데 들어가기는 싫은데...일단 어두워서 보이는게 없다. 눈에 야간투시 기능은 없어서. DLC구매 안되나. 5000원 정도면 사줄 생각 있는데.
어찌어찌 어두운 방안을 달빛에 의지해서 둘러보고 있자니, 바닥에 꺼림찍한 자국이 보인다. 갈색 바닥재가 깔려있는 바닥이라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지...? 장르 변경 에반데.
“세연아~”
“...”
아주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인간의 것이라기 보다는, 서늘한 느낌. 세연이던 아니던 이곳에 귀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고민 끝에 베란다 창문에서 바닥으로 점프한다. 돌아가면 목을 박박 닦아야지. 목 단면에 붙는 먼지가 불쾌하다. 화장실 쪽인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 화장실로 향한다. 아마 구조는 똑같은거 같으니 화장실도 비슷한 위치에 있겠지.
화장실 앞에 도착한 나는 머리카락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열린 문 사이로 서늘한 공기가 빠져나온다. 같은 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온도차였다.
나와 변기위에 쪼그려 앉아있는 세연이의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뭐해. 돌아가자. 햄버거 먹어야지.”
“...나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