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22.부먹이냐 찍먹이냐, 그것이 문제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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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중국집 땡긴다.
어제 자기전에 보던 X튜브 영상에서 유명한 중국집 요리를 리뷰하는 영상을 본게 원인이었다. 요 며칠동안 귀찮아서 식사를 대충 때운탓에 배달요리가 더 그리워진 상황이기도 했고.
근데 난 이 지역에서 괜찮은 중국집은 잘 모르는데. 배달앱으로 적당한 곳에서 시키면 된다지만, 역시 음식점은 입소문이 중요하지. 배달앱에 써있는 리뷰는 돈주고 작성한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적이 있어서, 영 신뢰가 안간다.
...귀찮아. 그냥 시키자. 뭐 내가 미식가도 아니고, 정말 더럽게 맛없는 집만 아니라면 상관없다. 그래도 이왕이면 맛있는 집이 좋으니 적당히 별점이 높은 집에서 시키면 되지 않을까?
“세연아, 짬뽕먹을래 자장면 먹을래?”
“...ㅈ...ㅏ...ㅈ...ㅏ...ㅇ...ㅁ...ㅕ...ㄴ...”
그럼 나는 짬뽕이나 먹을까. 어쩐지 얼큰한게 땡긴다. 요새 매운 음식을 하나도 입에 대지 않아서 그런건가. 자장면 한그릇에 짬뽕 한그릇, 탕수욕 소(小)자 하나. 2만 5000원. 원래 이렇게 비쌌나? 배달하는 집이라 그런가. 전에 살던 집에서는 거의 해먹거나 라면으로 때웠던 탓에 치킨 말고는 배달음식을 시켜본 적이 드물었다.
중국집은 직장에서 질리도록 먹었으니까. 내 상사였던 김미영 팀장이 일주일에 한번은 중국집에서 점심을 시켜대니 이제는 자장면을 볼때마다 신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나에게 검은색 면을 가져오지 마라, 이 악마야!
난 뼛속까지 짬뽕파라고!
마침 쿠폰이 있어서 쿠폰까지 쓰니 3000원 할인까지 받아서 22000원. 대략 도네 10댓번 정도 받으면 나오는 금액이다. 아 도네제한 10000원으로 올리고 싶다! 올리면 돈에 미친년이라고 욕 먹겠지만. 오히려 수익이 줄어들게 뻔한 미래기도 하다. 나름대로 조금씩 시청자가 늘어가는 중이라, 여기서 스스로 날개를 꺾는 미친짓을 할 생각은 없다.
“30분정도면 오겠지?”
30분동안 뭐하지? 열심히 다 마른 빨래를 접는 처녀귀신을 구경하며 폰을 만지작 거린다
현대인 특)할 짓 없을 때 폰 만짐.
그나저나 우리집 지박령 아가씨는 집안일이 능숙하다. 잠을 잘 필요가 없어서 그런가, 뭔가 시키지 않은 집안일까지 다 하는 덕에 빗자루를 쥐어본지가 언제인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은 모아둔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거랑 햄버거 데우는 일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마저도 손 몇 번 까딱이면 끝나는 일이니 사실상 방송말곤 하는 일도 없다.
이거 위험한거 아니야?
그래도 돈은 내가 벌어오니까 할 일은 다 했지. 아무튼 그래. 월세 내고 뭐하다보면 생활도 빠듯한 금액이지만, 일단 저축한 돈을 아슬아슬하게 까먹지 않고 있다는게 중요하다. 의외로 방송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벌써 똥믈리에라고 소문이 다 나버려서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똥겜들만 하게 되는건 좀 그렇지만.
도대체 가슴 근육을 조작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임은 누가 만든거야! 쓸데없이 BGM이 좋아서 더 짜증나! 근데 도네는 잘 터져서 좋아! 그 게임을 3시간동안 하면서 5만원을 벌었지! 기뻐해라! 그게 무엇이든 간에 도네가 터진다면 좋은 게임이야! 내가 암걸려 죽을 것 같아도!
그래도 시공의 폭풍은 사절이야! 탱커를 고르면 딜러가 없고 딜러를 고르면 탱커가 없는 정신 나간 매칭시스템을 가진 게임은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괴로울 뿐, 도대체 누굴 위한 게임이야? 나름 500레벨까지 찍었는데도 내가 어떻게 찍었는지 이해가 안가.
그래도 X지가 양심이 없다는건 잘 알겠다. 제발 너네 본진으로 꺼져...
오늘 부터는 방송 시간을 한시간 뒤로 밀었으니 좀 시간적 여유가 있다. 내가 생각해도 12시는 아닌 것 같아. 밥 먹기 힘들잖아. 대신 한시간 늦게 끝나지만.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다보니 초인종이 울린다. 드디어 배달이 왔네.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보니 25분 정도 걸렸다. 생각보다 빨리 오네.
“배달 왔습니다~”
“네~가요~”
머리를 살짝 조정하고 붕대를 만지작 거리며 문을 연다.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쓴 배달부가 보인다. 내 얼굴을 보고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리던 배달부는 내가 현관문을 활짝 열자 현관앞까지 들어와 철가방을 내려놓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그릇은 다 드시고 현관문 옆에 놓으시면 됩니다.”
“넵.”
“그, 그럼 맛있게 드세요!”
나라도 왠 서양인 미소녀가 문을 열어주면 당황하겠다. 마룻바닥에 놓인 그릇들을 쳐녀귀신이 펼쳐놓은 상위에 하나하나 올려놓는다. 비주얼만 보면 합격점이다. 탕수육은 조금 눅눅해 보이긴 하는데. 어차피 부어먹을 거니까 상관없다.
그릇 끝부분을 나무젓가락으로 비벼 비닐을 뜯어낸다. 일하면서 중국집을 먹다보면 생기는 노하우다. 사실 집에선 그냥 가위로 잘라도 되지만, 그럼 가위에 소스가 묻어서 설거지 거리만 늘어난다. 내가 하는건 아니지만.
탕수육 비닐도 뜯고 소스도 비닐을 뜯는다. 소스가 담긴 작은 그릇을 들어올린다. 그대로 탕수육 위에 소스를 투하
“...ㅂ...ㅜ...ㅁ...ㅓ...ㄱ...ㅁ...ㅓ...ㅁ...ㅊ...ㅜ...ㅓ!”
“아 탕수육 먹을 줄 모르네! 탕수육은 부먹이지!”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처녀귀신이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얼굴도 쓸데없이 진지해서 평소의 그 맹한 얼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ㅁ...ㅏ...ㅅ...ㅇ...ㅏ...ㄹ...ㅁ... ...ㅅ...”
“선넘네...”
그러다가 아예 못먹는 수가 있다? 처신 잘하라고.
그렇게 찍먹이 하고 싶더냐. 하지만 물주인 나는 부먹이 하고 싶은걸? 나는 처녀귀신의 저항에도 아랑곳 않고 접시에 소스를 부었다. 황금색의 달콤한 소스가 탕수육의 표면을 뒤덮는다. 그래도 최후의 자비로 반만 부은 덕에 소스가 탕수육 접시를 완전히 뒤덮지 못하고 반정도만 덮었을 뿐이다. 그래도 놔두면 바닥이 소스로 가득해지겠지만.
원래 부먹 찍먹은 돈 낸사람 마음대로랬어.
처녀귀신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탕수육을 쳐다보다가, 우울한 얼굴로 자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아 자장면은 불으니까 슬퍼도 먹어야 한다고...나도 짬뽕이나 빨리 먹어야지. 면발을 휘휘 저으며 풀어주고 젓가락으로 면발을 집어 조심스럽게 팔을 직각으로 움직여 면발을 입에 집어넣는다.
목이 정말 달려있기만 한 내 몸상태로는 고개를 숙여서 면을 먹는 행위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다 내 머리가 짬뽕국물 속으로 다이빙하게 될 테니까. 군대에서도 안하던 직각식사를 집에서 하게 될줄은 몰랐는데. 면요리를 먹을 때 너무 불편하다. 어쩔 수 없이 턱에 묻다보니 턱받이라도 해야 하나 싶을때도 많고.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하다...존나게 획기적인...
냉면, 라면, 콩국수, 막국수, 비빔면, 쫄면...근데 이 몸이 되고나서 면요리를 먹는게 정말 불편하다. 라면 한번 먹으려다 라면 그릇에 얼굴이 투하되고나서 면요리는 가급적 먹지 않는 방향으로 메뉴를 선정했는데, 오늘따라 중국집이 너무 땡겨서 그만...
고생 끝에 입안에 면발을 넣는다. 턱에 닿는 면발이 거슬리지만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내가 세 살짜리 애기도 아니고 턱에 짬뽕국물을 묻혀가며 먹어야 한다니. 젠자앙...하지만 머리를 비스듬히 들고 밥을 먹으면 팔이 너무 아프단 말이야...
그래도 두어달 만에 먹은 짬뽕은 맛있었다. 이집 꽤 괜찮네. 다음에도 여기서 시키면 되겠다. 면발을 적당히 맛보았으니 다음 차례는 탕수육이다. 보이는 것 중에 적당한 크기의 탕수육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집어넣는다. 탕수육 소스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튀김의 식감이 짬뽕의 매콤한 맛을 순식간에 몰아낸다.
역시 탕수육은 이래야지. 비싼 돈 주고 시킨 보람이 있다. 찍먹에 진심인 처녀귀신도 자장면을 열심히 흡입하고 있다. 하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설마 이런걸로 삐지겠어?
애가 먹을것에 유난히 집착하기는 하지만 설마 그럴까. 애도 아니고. 아니 귀신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좀 그런가? 내가 만나본 귀신이라고는 내 앞에서 자장면 소스를 묻혀가며 먹는 처녀귀신 뿐이라 잘 모르겠지만, 귀신은 생전에 미련이 쌓여서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굶어죽기라도 한건가...?
...하지만 그게 내 착각이었다는 것을, 이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한시간 뒤, 처녀귀신이 가출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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