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빈자리 (237/270)
  •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빈자리

    ‘하필 바르셀로나 CF라니…….’

    16강 상대가 정해진 지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동민은 여전히 골치가 아팠다. 가장 만나고 싶지 않던 팀 중 하나를 16강에서부터 만나야만 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동민에게 큰 문제였다.

    몇 년 전 바르셀로나 CF는 다비드 페레즈라는 명장의 탄생을 알리며, 짧은 패스와 유기적인 움직임, 공을 빼앗겼을 때의 발 빠른 압박 등을 내세워 화려하게 유럽 정상에 섰다.

    사람들은 그들의 방식을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으로 축구에서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술)라 칭했고 그들의 전술은 몇 년간 유럽을 휩쓸었다.

    그 후 다비드 페레즈가 떠나고 그때의 핵심 선수들 중 일부는 이적하거나 은퇴하는 등 바뀌었지만 바르셀로나 CF는 지금도 충분히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였다.

    그런 상대와 경기를 한다는 것은 물론 대단한 경험이고 동민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토너먼트에 올라서자마자 그런 강팀을 상대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FC 마드리드를 두 번이나 상대하면서 진짜 유럽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팀들이 어느 정도 레벨인지 깨달았으니까. 확실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

    동민은 지난 조별 리그에서 FC 마드리드와 있던 2연전을 떠올렸다. 베이포트 FC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도, 동민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FC 마드리드는 베이포트 FC보다 팀적으로 더 완성되어 있었고, 선수들의 개인 능력은 너무도 차이가 컸을 뿐이었다.

    3 대 0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로 패배했던 첫 번째 경기는 차치하더라도, 동민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고 선제 골까지 득점했던 2차전마저 역전패를 당했던 것은 그의 마음속에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다.

    ‘아직도 그 경기가 후회된다거나 그때만 생각하면 침울해지는 건 아니지만, 역시 어떻게 이길지 상상이 안 되는 팀이야. 바르셀로나 CF도 FC 마드리드급의 강팀이니…….’

    동민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바르셀로나 CF와의 16강전이 당장 코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2월 중순에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때쯤이면 부상으로 빠져 있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도 돌아온 상태니, 또 다른 부상자가 없다면 가능한 한 최상의 상태로 맞설 수 있다는 점은 동민에게 몇 안 되는 안식거리였다.

    ‘일단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나중에 더 고민해도 되겠지. 당장 급한 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 최대한 선수들의 체력 부담을 줄이며 박싱 데이를 넘어가는 거니까.’

    동민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챔피언스 리그에 대한 생각을 지워 버렸다. 바르셀로나 CF와의 16강전은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아직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박싱 데이 동안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빈자리를 어떤 식으로 채우는가였다.

    ‘AC 로마전에서처럼 중앙에 밀집해서 볼을 점유하는 방식은 노팅힐 AFC를 상대하면서 느꼈지만, 자주 써먹을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니까.’

    얼마 전에 있던 노팅힐 AFC와의 경기는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상대의 수비 실책으로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페널티킥을 얻으며 경기는 베이포트 FC 측으로 흘러가는 듯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측면에서 볼을 끌어줄 선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노팅힐 AFC의 수비는 경기 내내 크로스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고, 베이포트 FC는 결국 그들의 수비를 뚫어낼 수 없었다. AC 로마전처럼 중앙으로 상대를 몰아넣고 측면에서 단박에 공격을 풀어보려 했지만, AC 로마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듯 노팅힐 AFC의 풀백들은 중앙으로 끌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 14분 클락 왓슨에게 중거리 포를 얻어맞으며 동점 골을 허용했다. 이후 경기는 비등비등하게 흘러갔지만 베이포트 FC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확실한 찬스를 만들지 못했고, 골키퍼로 나선 폴 맥마흔의 선방으로 무승부를 지켜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만한 노팅힐 AFC전에서 확실히 느낀 것은 차별화된 측면 자원의 필요성이었다. 부상으로 이탈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중앙 공격수에 가깝게 변한 박주현을 빼면 베이포트 FC의 측면 자원들은 모두 수직으로 움직이는 클래식 윙어에 가까웠다. 그들만으로는 상대의 수비를 뚫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시즌에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도 없었고, 박주현의 결장에도 나름대로 공격을 이끌 수 있었는데… 지난 시즌에 너무 성적이 좋았던 탓인가.’

    동민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난 시즌에는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밀집 수비를 내세우는 팀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승격 팀인 베이포트 FC는 비겨서 승점 1점을 목표로 해야 할 팀이라기보다는 충분히 겨뤄볼 상대로 느껴졌으며,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 몰라 혼란스러운 상대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달랐다.

    지난 시즌 4위를 차지하며 저력을 보여준 탓에 베이포트 FC에 대한 다른 팀들의 경계는 훨씬 더 올라갔다. 마치 여느 강팀들을 상대할 때처럼 확실하게 승점 3점을 노리기보다는 실점하지 않으며 승점 1점이라도 노리고, 기회가 된다면 역습을 노린다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팀들이 많아진 것이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박주현을 이용해 상대 수비를 들쑤시는 방식이 너무 잘 먹혔다는 게 오히려 이럴 때는 악재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박주현의 침투와 패스, 그리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수비를 휘젓는 능력이 궁합이 좋아 많이 이용했던 만큼,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는 팀은 적었다.

    그리고 그 결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없는 지금은 상대의 밀집 수비를 뚫어내기 힘들어진 것이다.

    “너무 효과적인 조합을 발견한 결과 가장 장점이 되는 전술의 불확실성이 옅어진 게 이 결과라니,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네.”

    볼멘소리를 투덜거렸지만 동민은 빠르게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지난 시즌 핵심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에도 대안을 찾아내고 필립 포덴이라는 원석을 발견한 것처럼 이번에도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늦네.”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시계를 보았다. 그런 동민의 혼잣말을 들은 것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강, 제임스예요. 들어갈게요.”

    그 말에 동민은 반색을 했다. 지금까지 그가 기다리던 상대가 드디어 온 것이다.

    “어서 와요. 생각보다 조금 늦었네요.”

    “선수와의 면담이 조금 길어져서요. 미안해요.”

    “아뇨, 괜찮아요. 와달라고 요청한 사람은 나니까요.”

    제임스 워든은 동민의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사과했다. 원래 그가 오기로 했던 시간은 10분 전이었지만 그런 이유라면 동민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제임스 워든 또한 U18팀이어도 자신과 같은 감독이었고, 감독은 선수들을 케어해야만 했다. 오히려 성인 선수들을 상대하는 자신보다 어린 선수들을 상대하는 제임스 워든이 더 중요시해야 하는 면이기도 했다.

    “그래서… 유스 선수들 중에서 추천할 만한 측면 자원 선수를 말했었죠?”

    동민이 오늘 제임스 워든을 부른 이유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유스 선수가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시즌 해리 맥스웰의 빈자리를 필립 포덴으로 채웠듯 혹시 이번에도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수도 있었다.

    동민이 기대한 것은 바로 그 것이었다.

    “네. 내가 직접 보면 좋겠지만 일단 먼저 당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요.”

    동민은 차분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유스 선수들을 보고 곧바로 어떤 선수가 적합할지 파악하고 그 선수를 콜업시켜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동민은 그러지 않았다.

    ‘내 능력이 있다고 해도 단순히 스테이터스를 확인하는 것보다 직접 지도하고 있는 제임스 워든의 시선이 더 정확할지도 몰라. 심리적인 부분은 내가 볼 수 없기도 하니까.’

    선수의 능력이 뛰어나도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부분이 있거나 불안정한 부분이 있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지 몰랐다. 예전 주현의 경우처럼 그 부분이 아예 선수의 특성으로서 정확히 나와 있다면 특성 제거를 통해 그 부분을 고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동민이 한 눈에 알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면은 그동안 그 선수를 지도했던 제임스 워든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만약 그 선수가 유스 팀에서 중요시하는 선수라 이 일로 갈등이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최악의 경우가 되니까.’

    동민은 제임스 워든과의 충돌이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퍼스트 팀과 유스 팀이 충돌한다니, 농담이라도 말이 안 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종종 있었다.

    가령 유스 팀에서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가면서 선수가 커가길 바라는 상황인데 퍼스트 팀에서 갑자기 그 선수를 콜업시키고 그 결과 그 선수의 성장이 더뎌지거나 기대만큼 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곧바로 유스 팀과 퍼스트 팀의 갈등으로 변할지 몰랐다.

    혹은 유스 팀에서 팀의 핵심으로 반드시 필요한 선수를 급작스럽게 강제로 데려가게 되어 유스 팀의 기본 자체가 무너지는 일도 없다고 할 순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임스 워든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해.’

    동민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임스 워든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글쎄요… 일단 지금 어린 선수 중에서 싹수가 보이는 녀석들은 있습니다. 분명 몇 년 뒤에는 지금의 퍼스트 팀에서 활약할 만한 재능을 가진 녀석도 있죠.”

    그의 말을 들으며 동민의 표정은 밝아졌다. 기대한 대로 제2의 필립 포덴처럼 스타가 될 만한 선수가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제임스 워든의 다음 말로 사그라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 추천할 만한 선수는 없어요.”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동민은 차분하게 물었다.

    “네, 그렇죠. 하지만 그건 그 어린 선수들이 더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프로 무대에서 버틸 만한 피지컬이나 무기가 생긴 이후예요. 지금은 기대만큼 해내지 못할 겁니다. 필립의 경우가 특별했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콜업은… 솔직히 말해 걱정스럽습니다.”

    제임스 워든은 차분하게, 그러나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재능은 있어 보이지만 아직 프로 데뷔는 준비되지 않은 선수들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롤이라면 더욱이요. 오히려 어린 선수들이 자신감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되니까요.”

    동민은 선수들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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