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토너먼트의 상대는 (236/270)
  • 토너먼트의 상대는

    “그런가. 베이포트 FC가 이겼나…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구나.”

    쾰른 07의 감독인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경기가 끝나고 그렇게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FC 마드리드와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 직후, 그들은 AC 로마와 베이포트 FC의 경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16강 진출과 1위가 확정된 FC 마드리드를 홈으로 불러들여 3 대 1이라는 놀라운 승리를 거둔 그들이었지만 베이포트 FC의 승리로 16강 진출은 무산되고 말았다.

    “우리가 이 경기를 아무리 잘했어도 결국 상대가 미끄러지길 바랐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별수 없구나.”

    그는 씁쓸함이 섞인 목소리로 한숨을 흘렸다. 지금까지 조별 리그에서 무패를 이어오던 FC 마드리드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를 안겨주었지만, 베이포트 FC가 승점 10점을 쌓으며 그 승리가 무색하게 된 것이다. 베이포트 FC가 AC 로마에게 패배했다면 골 득실로 자신들이 2위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 기회는 날아가고 말았다.

    결국 E조에서는 FC 마드리드가 4승 1무 1패, 승점 13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베이포트 FC가 3승 1무 2패로 승점 10점을 거두며 FC 마드리드의 뒤를 이어 16강에 진출했다. 그 뒤로 쾰른 07이 2승 1무 3패, 승점 7점으로 유로파 리그 행을 확정 지었고 AC 로마는 1승 1무 4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며 탈락하고 말았다.

    9월 중순부터 이어진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잘했어! 우리가 해냈어!”

    “16강이야! 토너먼트에 갈 수 있다고!”

    경기가 끝나고, 베이포트 FC의 라커 룸은 환희에 빠졌다. 라커 룸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시즌 4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던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구단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 진출했다는 사실에 그때보다 더한 환희에 잠겼다.

    프리미어리그 진출 시즌에 곧바로 4위를 차지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 티켓을 얻은 것도 대단한 업적이었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 토너먼트에 진출한 것은 지금껏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베이포트 FC가 속해 있던 조가 FC 마드리드와 AC 로마, 쾰른 07이 속해 있던, 죽음의 조라 불리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우리가 유럽에서 열여섯 팀 안에 든 거나 다름없어!”

    “와하하하!”

    선수들은 토너먼트에 진출한 것에 흥분하며 지친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음을 터트렸고, 마지막까지 조마조마한 경기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던 코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웃음을 짓던 동민은 이제 진정시킬 때가 되었다는 듯 선수들을 불렀다.

    “일단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 우리는 16강으로 갑니다.”

    동민의 그 말에 선수들은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들이 90분이 넘는 혈투를 이겼다는 사실이 동민의 말로 이제야 실감이 났다. 그런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동민은 이내 선수들을 진정시키고 말을 이었다.

    “이건 지금껏 우리 클럽에 없었던 일이고, 우리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든 셈입니다.”

    프리미어리그 승격 시즌에 4위를 차지하고, 첫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서 토너먼트에 오르는 데 성공한 것은 베이포트 FC라는 클럽 전체의 역사에서 보아도 대단한 일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동민은 그렇게 웃으며 말하다가 눈빛을 바꾸었다.

    “아직 우리가 갈 길이 많습니다. 저는 분명히 여러분들에게 이번 시즌 우리의 목표는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이라고 말했고, 이제야 우리는 그 목표의 첫 단계를 통과한 셈입니다. 앞으로 FC 마드리드보다 더 강한 팀들을 만날 수도 있고, 오늘보다 더욱 치열한 경기를 치를지도 모릅니다.”

    동민의 말에 선수들은 입을 다물었다. 16강에 진출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이자 베이포트 FC의 목표는 우승이었다.

    “그러니 내일까지만 휴식을 취하고 마음껏 기뻐하길 바랍니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리그에서 노팅힐 AFC라는 강적을 상대해야 하고, 그 뒤에는 곧 이어질 박싱 데이 일정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동민은 라커 룸에서 나섰다.

    베이포트 FC의 챔피언스 리그 도전은 이제 2월 중순까지 미뤄지고, 그들의 눈앞에는 리그와 FA컵 등이 비치고 있었다.

    조별 리그가 끝나고, 32팀 중 토너먼트에 진출한 16팀은 토너먼트 상대의 발표를 기다렸다. 조별 리그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며칠 후, 베이포트 FC의 스태프들과 선수들은 한 곳에 모여 16강 추첨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2위로 진출했으니까 우리가 만나는 팀은 E조를 뺀 나머지 7개 조의 1위 팀 중 하나. 그중에서도 같은 EPL팀을 빼면 5팀이 되는 건가.’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은 각 조의 1위 팀이 2위 팀과 만나 홈과 원정을 오가며 경기를 치르고 승자를 정하는 룰로, 2위인 베이포트 FC는 자동적으로 1위 팀을 만나게 된다. 게다가 조별 리그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리그의 팀끼리는 아직 만날 수 없으므로 베이포트 FC는 B조의 1위인 스톡포트 시티와 D조의 1위인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는 만날 수 없다.

    그 결과 베이포트 FC가 만날 수 있는 팀은 5개로 압축되었다.

    ‘VFB 뮌헨, 분데스리가의 확고한 최강 팀. 쾰른 07이 예상외의 강한 면모를 보여줬던 만큼 분데스리가 특유의 빠른 템포가 얼마나 골치 아픈지는 잘 알았어. 거기에 팀으로서의 완성도나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은 쾰른 07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팀이고. 우승을 노린다면 언젠가는 보겠지만 벌써부터 만나고 싶진 않은데.’

    동민은 A조의 1위를 떠올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조별 리그전에서 쾰른 07을 상대로 고전하면서 분데스리가의 빠르고 짧은 패스워크를 상대하는 것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골치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리그 라고해서 모두 같은 전술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두 팀은 꽤나 공통점이 많았다. 중원을 거치는 짧은 패스로 빠른 템포의 공격을 이끌어 나가고, 측면에서도 재빠른 움직임을 중요시했다.

    다른 점은 VFB 뮌헨은 단순히 빠른 공 운반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상대 수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개인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만약 쾰른 07과의 2차전처럼 그들이 빠른 템포의 플레이를 강제시키고 체력 싸움으로 나선다면 승산은 더욱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비슷한 이유로 같은 분데스리가 팀인 FC 에르푸르트도 마찬가지야. VFB 뮌헨만큼 강팀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지만 전방위적인 압박과 전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강한 체력을 가진 팀인 만큼 제대로 노리고 들어오면 오히려 더 힘들 테고.’

    C조의 1위인 FC 에르푸르트도 껄끄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지난 쾰른 07과의 2차전에서 생각하지 못한 약점을 발견했던 그는 아무리 가능한 대비한다고 해도 비슷한 계열의 팀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CF는… 세계 최고에 도전한다는 느낌을 다시 한번 받을 수 있겠네. FC 마드리드와 함께 프리메라리가를 양분하는 팀이자 유럽 최고의 팀이니까.’

    몇 년 전, 다비드 페레즈가 이끌면서 한 시즌에만 몇 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등, 세계 최고의 팀이었던 그들은 다비드 페레즈가 떠난 이후에도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도 군림하고 있었다.

    강팀과의 경기라도 주눅 들지 않는 동민이지만 FC 마드리드에게 2연패를 당한 이후로는 조심스럽게 변했다. 게다가 16강전부터는 토너먼트로 지는 순간 베이포트 FC의 챔피언스 리그 도전은 완전히 끝이 나고 만다. 그만큼 높은 순위를 원한다면 강팀과는 싸워도 가능한 한 나중에 만나는 것이 좋았다.

    ‘그나마 아베이루 CF나 SC 루체른이 비교적 상대할 만한 상대겠지만… 토너먼트까지 올라온 이상 어느 팀을 만나든 쉬운 상대는 없겠지.’

    동민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와 스위스 슈퍼 리그의 두 팀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앞의 세 팀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강한 팀이 아니라고 해도 결코 만만한 팀은 아니다. 그들도 분명 치열한 조별 리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올라온 팀들이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대단한 성적을 거둔 적은 없어도 꾸준히 출전하는 단골손님들이었다. 베이포트 FC와 비교한다면 오히려 그들의 승률을 더 높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결국 우리가 최약체인 건 변하지 않아.”

    동민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았다. E조에서 마지막까지 2위 자리를 투고 치열한 다툼을 했던 베이포트 FC가 다른 조의 1위 팀들을 두고 어느 팀은 힘들고, 어느 팀은 쉽다고 판단할 수 는 없었다. 물론 FC 마드리드와 AC 로마, 쾰른 07의 틈바구니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자만할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결국 동민은 어느 팀을 만나든 이제는 단 한 경기도 내줄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똑같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동민의 옆에서 다른 스태프들도 긴장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베이포트 FC의 구단주인 레이미 볼든까지 모여 16강 상대가 누가 될지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긴장을 뒤로하고 16강 조 추첨은 시작되었고, 동민은 가만히 손을 모으고 속으로 되뇌었다.

    ‘가능하면 VFB 뮌헨이나 바르셀로나 CF만은 피하게 해주세요…….’

    그의 바람이 들린 것일까, 처음으로 호명된 팀은 VFB 뮌헨이었다. 그것을 보고 동민은 등골이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이제 상대 팀을 호명할 차례인데, 거기서 베이포트 FC의 이름이 불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VFB 뮌헨의 상대는… 세비야 CDF! A조의 1위와 D조의 2위가 만나게 됩니다!

    그것을 보면서 동민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팀 중 한 팀이 흘러간 것이다.

    ‘좋아, 이걸로 VFB 뮌헨은 만나지 않아. 이제 바르셀로나 CF만 피하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그러나 동민이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다음 팀으로 호명된 것은 바로 그 바르셀로나 CF 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곧바로 동민의 등골은 다시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설마, 우리가 바르셀로나 CF의 상대가 될 확률은 대충 4분의 1, 25%밖에 되지 않아. 분명…….’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CF의 상대는… 베이포트 FC! 이번이 처녀 출전이면서 토너먼트까지 진출한 잉글랜드의 팀이 강적을 만나게 되었군요!

    그 순간.

    베이포트 FC의 스태프, 선수들을 포함한 모두는 숨이 멎은 듯한 침묵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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