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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승리, 그러나……. (153/270)
  • 값진 승리, 그러나…….

    휘트비 알비온의 감독 제이미 호슨은 찡그린 얼굴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경기가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코의 영향력이 제대로 발휘되질 못하고 있는데…….’

    휘트비 알비온의 전략은 간단히 말해 측면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공격적인 전술로, 중원에서의 창의성 부족을 빠른 측면 공격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그것이 시즌 전반기까지 그들의 전술이었지만 베이포트 FC와의 1차전에서는 약점인 중원을 공략당해 무기력하게 패배했었다.

    그리고 그 전술의 단점인 중원을 강화시키기 위해 마르코 케디라를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했지만, 오늘은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활약을 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오늘은 아예 제대로 공을 잡지도 못하고 있어. 공이 마르코에게 가는 횟수 자체가 적은 상황이니…….’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는 마르코 케디라에게 공을 공급하는 두 명의 미드필더를 악착같이 방해하며 그에게 공을 줄 기회를 막아내고 있었다.

    ‘공을 잡고 있을 때의 움직임으로 수비를 붕괴시키는 것이 내가 마르코에게 부여한 역할이지만, 반대로 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경기에 영향을 주기 힘들어. 마르코가 슈팅이나 패스에서의 임팩트가 있어서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만으로도 상대를 흔들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더욱…….’

    제이미 호슨은 입술을 깨물며 현재 상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마르코 케디라를 막으려 하면 측면에서 공간이 생기거나, 다른 미드필더에게 찬스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 그를 미끼로 쓰려던 것이 완전히 봉쇄당한 것이다.

    베이포트 FC는 그런 그들의 생각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하듯 마르코에게 공이 이어지지 못하도록 막거나, 마르코 케디라가 공을 가지더라도 다른 공간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그 결과 마르코 케디라는 공을 잡더라도 상대 수비에게 혼란을 주지 못하고 공을 돌리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저번처럼 약점을 찔러올 거라는 생각은 했었고, 그걸 역이용하려고 했지만 이런 방식일 줄은…….’

    휘트비 알비온의 벤치에서의 한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경기는 얼마 되지 않아. 2위는 여러모로 운이 따라줘야 해서 쉽지 않겠지만, 이번 경기를 시작으로 남은 8경기를 잘만 해서 3위로 올라선다면 프리미어리그로의 승격이 눈앞이다!’

    휘트비 알비온과의 경기를 뛰는 해리 맥스웰의 머릿속은 프리미어리그로의 승격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낮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베이포트 FC 선수들이 그렇듯, 시즌 말미가 되면서 승격이 동기부여가 되어 더욱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 자체는 우리가 유리하니까.’

    그는 또다시 마르코 케디라를 노리고 이어지는 패스를 슬라이딩 태클로 끊어내고 측면을 바라보았다.

    그를 비롯한 베이포트 FC의 노림수는 간단했다.

    중앙에서 이어지는 상대의 공격을 끊어내고, 즉시 측면으로 공을 돌려 역으로 상대의 장점인 빠른 역습을 가한다. 휘트비 알비온의 주 공격 루트이자 장점이 측면공격이라는 점을 반대로 파고드는 것이다.

    양발이 모두 이용 가능한 휘트비 알비온의 좌우측 윙은 사이드라인을 따라 공을 끌고 갈 수도 안쪽으로 파고들어 갈 수도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심지어 공이 없을 때조차 순식간에 수비진 뒤로 파고들어 가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그들은 상대하는 팀으로선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이는 그들의 장점인 측면 공격은 그 두 선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베이포트 FC의 생각은 그런 그들이 공격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중앙에서 공이 번번이 막히고, 뒤쪽이 계속 신경 쓰이면 공을 잡고 드리블은커녕, 파고들 생각도 아예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했지. 참, 내가 만약 상대 팀이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인간이라니까.’

    그는 동민의 브리핑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매 경기마다 그랬듯 상대의 장점을 노려 무너뜨리는 베이포트 FC의 계책은 이번 경기에서도 충분히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코치들과 감독에게서 그런 명확한 지시가 나온 이상, 남은 건 선수인 우리들이 그 지시를 확실하게 행동으로 옮기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승격으로 향하는 것까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좌측으로 강하게 공을 차 보냈다. 그의 발끝을 떠난 공은 자로 잰 듯 야야 둠베흐의 앞 공간으로 떨어졌고, 야야 둠베흐는 기다렸다는 듯 달리던 속도를 살려 달라붙는 수비를 앞질렀다.

    “그렇지!”

    동민은 그 장면을 보면서 기대에 찬 환호성을 내질렀다. 상대가 빠른 측면 공격이 장점이듯 베이포트 FC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시즌에 여러 전술들을 바꿔가면서 팔색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본래 지난 시즌까지 베이포트 FC의 팀 컬러는 조나단 케인을 비롯한 단단한 수비와 해리 맥스웰에게서 이어지는 긴 패스, 이에 따른 측면의 빠른 역습이었다.

    그리고 그 역습을 마무리 짓는 것은.

    -골!! 로날드 조던이 세일러들을 흥분시키는 오늘의 첫 골 주인공이 됩니다!

    방송과 함께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단번에 로날드 조던의 이름을 외치는 환호의 도가니가 되었다.

    로날드 조던이 발 빠르게 움직여 야야 둠베흐의 크로스를 잘라 들어가 선제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베이포트 FC와 앨런 휴즈 감독이 그에게 가장 원하는 플레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휘트비 알비온과의 지난 원정 경기에서는 오로지 상대의 창인 측면 공격이 나오지 않도록 중앙부터 막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그 점을 공격하는 거니까. 먼저 선제골을 뽑는다면 분위기는 확실히 우리 쪽이야.’

    동민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경기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고, 다른 코치진들도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동민은 어딘가 어색한 광경을 보았다.

    “…….”

    평소라면 환하게 웃으며 선수들을 칭찬하거나 다른 지시를 내릴 휴즈 감독이 조용한 것이다. 간혹 골을 넣고도 다른 플레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모습이 있긴 했지만 오늘은 그것도 아니었다. 분명 미소를 짓고는 있었지만 얼굴에 지독히 내려앉은 피로감에 가려져 있었다.

    “감독님?”

    “…응? 무슨 일이죠?”

    “저기… 무슨 일 있으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경기 시작 전 보았던 모습보다 더욱 피로한 듯한 모습에 동민은 물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지금 로날드의 골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따로 이야기할 것도 없어서요.”

    그게 무슨 어색한 변명이냐고 동민은 생각했지만, 피로가 깊게 자리한 표정 속에서도 강하게 빛나는 듯한 그의 눈빛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결국 그라운드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데…….’

    만족스러운 경기 내용에서도 동민의 걱정과 의문이 섞인 고민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전반전에만 두 골을 허용한 휘트비 알비온의 라커 룸은 하프타임을 맞이해도 조용했다. 경기 시작 전, 이번에야말로 지난 2 대 0의 패배를 설욕하자며 선수들의 기운을 북돋았던 제이미 호슨이었지만 지금의 결과에는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 같았어. 내가 노리려던 걸 역으로 들어왔으니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우리 팀의 강점과 약점을 완벽히 파악하고 그걸 파고든 건가. 1차전 홈경기에 이은 이번 경기까지…….’

    베이포트 FC와의 1차전 패배 이후 확실하게 드러난 중원에서의 문제점을 막기 위해 겨울 이적시장에서 마르코 케디라라는 새로운 영입까지 했지만, 이번에도 전술에서 완전히 밀린 것이다.

    독보적인 리그 1위를 달리는 모리스톤 타운 AFC와의 두 번의 대결도 이 정도로 그의 가슴속을 절망스럽게 만들진 않았다. 두 번의 맞대결 모두 패배로 끝이 났지만, 그때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라는, 챔피언십 무대를 뛰어넘는 스타플레이어나 선수들의 개인 능력에 감탄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베이포트 FC와 휘트비 알비온, 두 팀은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이 차이가 난다고 보긴 힘들었다.

    ‘심지어 저번 시즌에는 겨우 중하위권에 위치했던 팀인데…….’

    또한 똑같이 이번 시즌 두 번의 맞대결 모두 패배를 기록했던 체스터필드 원더러즈 때와도 달랐다. 모리스톤 타운 AFC처럼 선수들의 클래스 자체가 차이가 나는 것도,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처럼 본래 팀 컬러가 극 상성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베이포트 FC가, 정확히는 감독인 앨런 휴즈가 그의 약점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파고들어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제 막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베이포트 FC 쪽으로 넘어갔어. 홈경기라는 점을 떠나서 경기력에서 완전히 압도당했으니…….’

    그는 입술을 씹으며 생각했다. 지금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기력에서 밀린 것보다도, 지금 상황에서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반전에 두 골을 내줬다면 후반전에 변화를 주면서 세 골 이상을 넣겠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할 수 있다. 혹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도 최대한 경기를 따라붙으려 하면서 가라앉아 버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명확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르코 케디라를 이용해 중원에서의 압박을 분산시키고 찬스를 만드려는 시도는 이미 완전히 막혔고, 그들의 강점인 좌우 윙은 그들의 공격력을 보여주기는커녕 가열한 상대의 공격에 수비를 돕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빠르더라도 마르코를 빼고 두 중앙 미드필더를 측면 수비를 지원하게 하면서 좌우 윙을 이용한 역습에 나설까? 아니야, 그랬다가는 이미 밀리고 있는 중원을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어. 그러면 상대는 더욱 신나서 공격을 밀어붙이겠지.’

    그의 머릿속에서는 중원에서의 압박감이 사라지자 더욱 활개치고 다니는 해리 맥스웰이나 이안 페트로프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니면 공격력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중앙 미드필더를 추가하면서 중원에서의 패스를 더 신경 써야 하나? 그건 상대의 측면 공격에 대한 완벽한 대책은 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한참을 더 고민했지만, 결국 그가 하프타임이 끝날 때까지 라커 룸에서 한 말은 선수들에게는 익숙한 힘내자는 말뿐이었다. 그것은 어떤 방법도 택할 수 없는 지금의 그가 진심을 담아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말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 말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완전히 종료되었을 때 전광판에 뜬 경기 결과는 베이포트 FC의 3 대 0 승리를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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