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68화 (168/200)
  • # 168

    Chapter 41. 고통과 희망 (1)

    “빌어먹을 놈의 대마법 주문!”

    “저걸 어떻게 없애!”

    “으으으…… 어째서 저런 괴물과 싸워야 하는 거야!”

    의혈맹의 병사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화려한 불꽃을 일으키면서 폭발한 화염 마법에도 언데드 기사들이 쓰러지지 않았다.

    폭발로 인한 화염에 가려져 있을 때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화염이 걷히고 난 뒤에 마법이 아무런 효과 없었다는 게 밝혀지자 의혈맹의 병사들은 절망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런 괴물들과 자신들이 직접 싸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무림맹 내부에서도 돈 지랄 한다고 원성이 자자했던 대마법 갑옷의 위력이었다. 동대륙의 통일을 위해서 거금을 들여 제작한 대마법 갑옷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투덜거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징징댈 시간에 어떡해서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를 앙다물었던 정천우가 역천검의 검집을 왼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샤칼, 멈춰!”

    분통을 터트리면서 주문을 외우려는 샤칼을 정천우가 말렸다. 눈에 독기를 품은 것으로 보아 7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게 뻔히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샤칼의 판단이 사실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였다.

    무림맹의 기사들에게 지급된 대마법 갑옷은 6서클의 마법까지 막아 준다. 7서클의 마법이라면 대마법 갑옷은 고철덩이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껄끄러운 적을 처리하자고 대량 살상 능력을 지닌 중요한 전력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더욱 힘든 전투가 될 것이 뻔했으니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정도련이 과연 언데드만 보냈을까 하는 점이다. 자신이 정도련주라면 언데드로 밀어붙이고 의혈맹의 힘이 빠진 틈을 타 공격할 것이다. 쌩쌩한 적보다 흐물흐물해진 적을 상대하는 게 경제적이니까.

    그래서 샤칼을 말렸다. 지금은 자신이 나설 때였다.

    “내가 해치운다!”

    정천우가 역천검을 뽑으면서 호기롭게 외쳤다.

    “위험해요!”

    “맹주님, 그러다 포위당하면 끝장입니다.”

    주소용 후작과 팽선웅 백작이 기겁한 얼굴로 말렸다. 그러나 정천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팽선웅 백작이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정천우는 훌쩍 몸을 날려 이미 파비스를 뛰어넘고 있었다.

    “맹주님께서 나가신다! 마법 중지! 마법 중지!”

    샤칼이 깜짝 놀라 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주인인 정천우의 안전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모든 마법을 무효화 하는 역천검을 지닌 정천우였기에 쓸데없이 마나를 낭비하는 걸 막는 것이다.

    물론 정천우를 위하는 척 한마디 보탠 것은 노림수다. 말이라도 그를 생각해 주는 것처럼 해 둬야 나중에 갈굼을 당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파바박, 파박!

    정천우는 거칠게 지면을 박차면서 날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날아간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움직임이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10여 미터를 쭉쭉 나가고 있으니 달려간다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츠즈즈즛!

    오른손에 쥔 역천검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왔다. 오러 블레이드의 꼬리를 만들면서 나아가는 그의 몸은 유성(流星)을 방불케 했다.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데 불과 몇 번의 호흡을 갈아 쉬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읍! 빌어먹을 언데드! 꺼져 버렷!”

    정천우가 시체 썩는 냄새에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역천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역천검을 휘두르면서 내공을 더욱 강하게 밀어 넣었다. 공간을 수평으로 갈라 가는 역천검을 따라 오러 블레이드가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늘어졌다.

    “차압!”

    짧은 기합성과 함께 정천우가 역천검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바우웅! 윙, 윙!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늘어졌던 오러 블레이드가 연결이 끊기면서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맹렬하게 회전을 일으켰다.

    그냥 단순한 회전이 아니었다. 역천검이 공간을 가르면서 진행하던 방향으로 쭉 뻗어 나갔다.

    “그워어어어!”

    “키에에엑!”

    “크웍!”

    살아 있는 사람의 기운을 느낀 언데드 기사들이 광분해서 괴성을 질렀다.

    맹렬하게 회전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오러 블레이드를 향해 언데드 기사들이 방패를 들어 막았다. 죽기 전에는 최정예 기사로 활동하던 놈들이라서 그런지 공격에 반응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투캉! 콰과곽! 퍼걱!

    “그웩?”

    “크륵?”

    “쿠룩?”

    언데드 기사들은 방패를 들어 막았음에도 무언가 자신의 몸을 지나쳐 가는 느낌에 의문스러운 기색이 묻어나는 괴성을 흘렸다.

    썩어 버린 뇌에도 본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를 살피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둑…… 터더덩…….

    “퀘엑?”

    “쿠웨엑!”

    손에 쥐고 있던 롬파이어와 방패가 후두둑 잘려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 언데드 기사들이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타고 있던 반쯤 썩은 전투마의 머리가 스르륵 흘러내리고는 썩은 피를 흘려 대는 모습에 영문을 몰라 했다.

    쓰러지는 말에서 뛰어내리려던 언데드 기사들은 자신의 몸이 상체와 하체로 나뉘는 것을 확인하고는 듣기 싫은 괴성을 질러 댔다.

    “좋아! 검강은 못 막는다는 거지? 다 뒈졌어!”

    검강에 맞은 언데드 전투마와 언데드 기사가 나자빠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정천우가 으스스하게 미소를 지었다.

    “크와악!”

    언데드 기사들은 동료가 반으로 썰려 나가는 모습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정천우에게 롬파이어를 휘두르며 돌진해 왔다.

    죽음의 기운을 담은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정천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살아 있을 당시처럼 마나 대신에 죽음의 기운으로 마나 쉐도우와 비슷한 것을 롬파이어에 덧씌워서 공격을 퍼붓는 언데드 기사들.

    같은 수준의 베테랑급 기사들에게는 충분히 위험천만한 공격이었다. 문제는 정천우가 마스터를 뛰어넘는 수준의 고수라는 점이다.

    제아무리 숫자로 밀고 들어와 봐야 정천우에게는 죽음의 기운이나 마나의 기운이나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이야압!”

    정천우가 오러 블레이드를 길게 뽑아 언데드 기사들이 찔러 오는 롬파이어를 향해 휘둘렀다.

    파캉! 쩌저저정!

    죽음의 기운을 덧씌운 롬파이어가 오러 블레이드를 담은 역천검에 우수수 잘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대마법 주문이 새겨진 갑옷까지 베어졌다.

    마법 공격의 걸림돌을 쉽게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정천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젠장! 명령체계란 건 없는 거냐?”

    그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볼멘소리를 해 댔다.

    아무리 언데드라고 할지라도 살아생전의 습관은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상관으로 모셨던 언데드 기사들이 싸우는 동안에는 언데드 병사들이 진격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심지어 언데드 기사와 정천우가 싸우는 공간을 가로질러 가는 언데드 병사들도 있었다. 기파에 휘말려 몸이 갈리든지 말든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제길!”

    정천우는 자신의 오러 블레이드에 걸려 비산(飛散)하는 롬파이어와 갑옷 조각에 맞아 머리통이 깨지는 언데드 병사들을 보면서 욕설을 터트렸다.

    속전속결(速戰速決)!

    언데드 병사들이 본진에 더 접근하기 전에 언데드 기사들을 해치우고 복귀해야 한다.

    대마법 주문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언데드 기사의 수는 대략 50. 나머지 일반 갑옷을 입은 언데드 기사는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언데드 병사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느리다는 정도?

    “크워!”

    바웅!

    잠시 그가 한눈파는 사이, 거대한 덩치의 언데드 기사가 말 위에서 롬파이어를 두 손에 쥐고 정천우의 머리를 노렸다.

    그것은 시작을 알리는 공격과도 같았다.

    사방에서 언데드 기사들이 롬파이어와 워액스를 휘둘러 왔다.

    “차앗!”

    정천우의 입에서 신경질적인 기합이 튀어나왔다.

    아래에서 위로 역천검이 솟구치면서 빛으로 이루어진 반원을 그렸다.

    써컹!

    “그와악!”

    정천우의 반격에 걸린 언데드 기사가 비명을 질렀다.

    갑옷째 두 팔이 잘려 나갔다. 시커멓게 썩은 피가 정천우를 덮쳤다.

    그러나 그는 썩은 핏물을 피할 여유가 없었다. 고스란히 썩은 피를 뒤집어쓰면서 연달아 역천검을 마구 휘둘렀다.

    “웩! 씨부랄 거!”

    언데드 기사들을 밀어붙이면서 정천우가 투덜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서너 구의 언데드 기사가 정천우를 포위하듯 전면으로 다가와 무기를 휘둘렀다.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린 역천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콰지직!

    롬파이어로 찌르기 공격을 하던 오른쪽의 언데드 기사에서부터 오러 블레이드가 두개골을 훑고 지나갔다. 뇌에 담긴 마력 원천이 파괴되면서 언데드 기사들이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언데드 기사들의 수는 아직도 많았다. 주인을 잃은 전투마들의 틈을 비집고 다른 언데드 기사들이 몰려왔다.

    두 눈에서 검붉은 기운을 폭사하며 달려드는 언데드 기사들을 발견한 정천우가 오른발을 들었다.

    콰앙!

    강하게 지면을 짓밟자 흙먼지가 풀썩 일어나 정천우를 집어삼켰다.

    “쿠룩?”

    피어오르는 먼지 때문에 정천우를 놓친 언데드 기사는 살아 있는 목표를 놓치고 괴상한 신음을 흘렸다.

    몇 번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언데드 기사의 머리가 급격하게 돌아갔다. 시야에서 목표물이 사라진 순간, 생명의 기운에 반응한 것이다.

    언데드 기사가 노려보는 곳은 정천우가 원래 있던 흙먼지 자욱한 곳이 아니었다. 그보다 멀찍이 떨어진 엉뚱한 곳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천우가 거기에 있었다. 마치 블링크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처럼 순간적으로 이동한 것이다.

    잔뜩 자세를 낮춘 채 언데드 기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언데드 병사가 어기적거리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크락?”

    “케르륵!”

    “캬학!”

    본능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를 증오하는 언데드 병사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생기(生氣)에 반응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정천우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정천우는 언데드 병사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데드 기사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역천검은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전신에 내공을 휘돌리는 중이었다.

    콰득, 꽈드득, 우두득!

    “캬아아아!”

    “크웍!”

    “그르륵!”

    무기와 이를 앞세워 달려들던 언데드 병사들이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면서 꿈틀댔다. 그의 전신에 흐르는 호신강기가 접근하는 언데드 병사의 무기와 육신을 바스러뜨린 것이다.

    하지만 언데드 병사들은 육신에 부서지는 와중에도 정천우에게 흉성을 드러내면서 접근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언데드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천우를 노리다가 놓쳤던 언데드 기사는 물론, 그 옆의 다른 언데드 기사들까지 몰려들었다.

    언데드 기사들은 저마다 죽음의 기운을 짙게 풍기면서 무기를 치켜들었다. 증오와 원념을 담은 무기를 치켜든 그들이 지근거리에 다다를 때까지도 정천우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츠즈즈즛…….

    그의 전신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극성으로 내공을 끌어올린 정천우가 조금 더 자세를 낮추자 전신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그와 동시에 그에게 몰려들었던 언데드 병사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뒤로 밀려났다.

    우두둑!

    역천검의 손잡이를 잡은 그의 손가락 마디에서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데드 기사들이 거의 지척에 다다를 즈음, 정천우의 상체가 그들을 향해 비틀리듯 회전을 일으켰다.

    “끼야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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