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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145화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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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6. 분열(分裂) (1)

    “무림맹을 견제하기 위해서 남궁세가를 접수하고 싶어요. 만약 무림맹이나 정도련이 남궁세가에 터를 잡는다면 아미파의 영지가 위험에 노출될 거예요.”

    주소용 후작은 회의를 주관하는 정천우를 향해 진군을 주장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청이었다. 남궁세가를 무림맹이나 정도련에 빼앗기면 아미파와 하루 거리에 위험요소를 안고 가게 되기 때문이다.

    전면전이 벌어지기 전이었다면 상관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림맹과 정도련이 모두 적이다. 남궁세가를 접수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소용 후작의 의견에 정천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때라니요? 맹주님, 지금 하신 말씀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주소용 후작은 정천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되묻는 것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은 커다란 실례였지만 그녀는 지금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만큼 그녀에게 있어서 아미파의 안전은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천우는 주소용 후작에게서 눈을 떼고 팽선웅 백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한 식구가 되었으니 비밀을 얘기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팽선웅 백작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맹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이미 마음을 정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저로서는 우리 연합군의 힘이 더 강해지는 게 좋습니다.”

    팽선웅 백작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천우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에서 ‘비밀’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남들이 듣는 자리에서 ‘비밀’이라는 말을 꺼낸 이상, 그것은 비밀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아미파와 동등한 입장이 되었다. 지금은 숨길 때가 아니라 함께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야 할 때였다.

    “지금 두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힘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맹주님의 뜻은 알아요. 하지만 이미 전쟁은 벌어졌어요.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힘을 키우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주소용 후작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전쟁이 코앞에 닥쳤는데…… 아니, 이미 전시 상황인데 힘을 키우겠다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힘이라는 건 단시간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천우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주소용 후작의 옆에 앉은 주미혜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혜 경,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지금은 힘을 키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직접 경험하셨을 텐데요?”

    “그게 무슨…….”

    “제가 당신에게 준 단약.”

    “아!”

    주미혜는 놀란 얼굴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정천우가 자신에게 준 단약이라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

    “맹주님, 전 찬성이에요. 저희 영주님이 강해진다면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미혜 경, 그게 무슨 말이죠?”

    주소용 후작은 자신의 딸인 주미혜가 뭔가를 아는 듯하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제가 갑자기 실력이 늘었다는 건 아실 거예요.”

    “맞아, 어떻게 단시간에 강해진 거니?”

    주소용 후작은 내내 궁금했던 일이었으나 이제야 물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자신의 딸이 강해진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얘기해 주지 않아 묻지 않았을 뿐이다. 계속 일이 터지는 바람에 물어볼 시간이 없기도 했다.

    그런데 주미혜의 입에서 그 얘기가 나오자 급속도로 치미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맹주인 정천우와 주미혜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라도 자신 모르게 주미혜가 맹주에게 약점을 잡힌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공식 석상이라는 것도 잊고서 주미혜에게 둘이서 있을 때만 사용하던 말투를 사용하고 말았다.

    “맹주께서 남궁세가와 전투를 벌이던 날 단약을 주셨어요. 그걸 먹고 육합권을 수련했더니 갑자기 강해졌어요.”

    “육합권?”

    “네, 영주님께서도 맹주님의 단약을 드시면 경지를 가로막은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게 정말이니?”

    주소용 후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미혜를 다그쳤다. 그러나 대답은 정천우의 입에서 나왔다.

    “물론입니다. 단약을 드신다면 팽선웅 백작과 비슷한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네?”

    “응?”

    정천우의 대답은 동시에 두 사람을 놀라게 했다.

    주소용 후작은 자신의 경지가 팽선웅 백작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에 놀랐고, 팽선웅 백작은 자신과 엇비슷할 거라 생각했던 주소용 후작이 사실은 자신보다 경지가 낮다는 것에 놀랐다.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입니다. 현재 주소용 후작께서는 팽선웅 백작의 실력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약을 복용한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약간의 차이는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팽선웅 백작께서는 피나는 수련을 하셨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

    주소용 후작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정천우와 팽선웅 백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당사자인 팽선웅 백작 또한 마찬가지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주소용 후작이 자신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는 말이 놀라웠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놀라거나 말거나, 정천우는 시큰둥한 태도였다. 그저 사실을 말한 것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겁니까? 현재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아!”

    주소용 후작의 얼굴에 나타났던 혼란스러움이 그제야 사라졌다.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강하고 약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벌써 몇 년째 발전이 없는 자신의 무력이 높아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맹주님, 정말 미혜 경이 먹었다는 단약을 제게 주실 수 있어요?”

    흥분을 가라앉힌 주소용 후작은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떨려 나오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니오.”

    “……그렇군요.”

    주소용 후작은 ‘그럼 그렇지’라는 듯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주소용 후작님뿐만 아니라, 모든 기사에게 나눠 줄 겁니다.”

    “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우선은 육합권을 배우게 한 뒤에 단약을 나눠 줄 겁니다. 거기에는 화산파의 기사도 포함됩니다. 다만 화산파 출신의 수련기사는 훈련을 거친 뒤에 단약을 먹일 생각입니다.”

    “……맹주님은 정말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군요.”

    실망하던 표정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표정을 바꾼 주소용 후작이 정천우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맹주님.”

    “대체 우리는 무슨 ‘맹(盟)’입니까?”

    “……그것부터 정해야겠군요.”

    환하게 웃음 짓던 주소용 후작의 얼굴이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

    성문조차 복구되지 않은 화산파의 영지성.

    영지성에는 지금 하북팽가와 아미파의 병력이 화산파의 병력과 함께 거대한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정천우가 대량으로 만들어 낸 단약의 힘으로 아미파의 기사들이 한 단계 이상 성장했다. 사기가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병력 앞에 높이 세워진 단상이 있었고, 그 위에는 매서운 기운을 풍기는 사내가 서서 아래를 굽어보는 중이었다. 그는 바로 정천우였다.

    그의 앞에는 4만 명에 이르는 병사와 천 명이 넘는 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남궁세가를 공략하기 위해 떠난다. 현재 남궁세가는 텅텅 비어 있다. 우리의 진정한 목적은 남궁세가를 치는 것이 아니라, 무림맹과 정도련을 견제하는 것이다.”

    정천우가 단전의 내공을 담아 사자후의 수법을 사용해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세가로 진격하기 전에 군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정천우가 연설을 하는 것이다. 한사코 싫다고 거절했지만 주소용 후작과 팽선웅 백작이 떠넘기다시피 강제로 부탁했다. 의혈맹(義血盟)의 최고 명령권자가 연설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우겨대니 정천우로서도 마냥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그게 지금의 상황이다.

    처음에 곤란해하던 정천우의 목소리는 점점 힘차게 바뀌었다.

    “우리가 왜 의혈맹이 되었는지 아는가!”

    “…….”

    정천우가 주먹을 불끈 쥐고서 의혈맹원들을 내려다보았다.

    급조한 듯한 이름의 단체였지만 의미만큼은 연합군의 취지와 맞아떨어지기에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음에도 의혈맹을 택했다.

    하지만 그거야 수뇌부들의 생각일 뿐이다. 병사들이나 말단 기사들은 의혈맹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천우의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름을 지은 수뇌부조차 정천우의 질문에 답할 수 없을 정도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림맹이 우릴 배신했다. 하북팽가와 아미파를 사지(死地)에 밀어 넣었다.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 힘을 보여 줄 것이다. 결코 무림맹 따위가 함부로 버릴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것이다.”

    “…….”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북팽가와 아미파의 사람들은 무림맹의 횡포를 당해 보았기에 정천우의 말에 공감했다.

    화산파 사람들은 그들대로 정천우의 말에 공감했다. 마교와 손을 잡고서 제 살길만 찾으려 했던 임철웅 백작에게 버려졌다는 걸 그들도 아는 것이다. 버려졌다는 것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화산파였다.

    하북팽가와 아미파의 사람들과 같이, 화산파였던 사람들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는 사이, 정천우의 입이 다시 열렸다.

    “모든 원흉은 현 무림맹주다. 너희도 알 것이다. 모범을 보여야 할 권력자가 썩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말이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정천우는 잠시 말을 끊고서 역천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이글거리는 오러 블레이드를 순식간에 생성해 냈다.

    길게 자라난 오러 블레이드는 무려 10미터에 이르는 높이까지 뻗었다.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빛을 뿌리는 오러 블레이드의 모습에 도열한 의혈맹의 사람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가 있어 이처럼 강인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겠는가!

    의혈맹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처럼 뛰어난 무력을 가진 사람이 이끄는 자신들이 바로 의혈맹이다.

    투지가 절로 치솟아 올랐다. 저런 사람과 함께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반드시 싸워서 이긴다!”

    “이긴다! 이긴다! 와아아아!”

    정천우의 마지막 말을 따라 하면서 화산파의 영지성이 부르르 진동을 일으켰다.

    “진군!”

    길게 뽑아낸 오러 블레이드로 성 밖을 가리키며 정천우가 크게 소리쳤다.

    먼저 기사단이 성 밖으로 나가고 그 뒤를 따라 병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비장한 각오가 스며 있었다. 반드시 싸워 이기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그렇게 전쟁은 또 다른 변수를 배출하면서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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