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44화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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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5. 신위(神威)를 보이다 (6)

    고오오오오…… 파지직! 파직, 파직!

    마족의 모습으로 변화한 임철중 백작이 쓰러지자 정천우의 주변에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듯 희열에 찬 듯…… 정천우의 얼굴에는 주변의 치열한 전투와 상관없이 시시각각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마족의 기운을 흡수한 정천우의 내부에서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마족의 기운이 혼원벽력신공과 합쳐지면서 정화되었다.

    순수한 벽력(霹靂)의 힘.

    거대한 내공이 그의 전신을 타고 돌 때마다 그의 전신에서 방사되는 전격의 기운이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감히 근처에 다가갈 수도 없을 만큼 강렬한 기운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늘어난 내공을 수용하기 위해서 단전의 크기가 점차 커져 갔다. 그럴수록 정천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반쯤 감은 눈과 굳게 다문 입술에는 미소가 맴돌았다.

    파괴적인 내공이 단전에 안착하면서 느껴지는 포만감이 그를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해 주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내공은 혈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근육에 힘을 전해 주었다.

    투둑, 툭, 투둑!

    몸속에서 맹렬하게 혈도를 타고 흐르는 내공이 기로(氣路)를 확장하고 튼튼하게 해 주었다.

    점점 내공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정천우의 주변에 옅은 강기의 막이 형성되었다. 그러고는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였다. 그를 중심으로 마나의 농도가 점차 짙어졌다.

    정천우의 몸속에 맴도는 내공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주변의 기운과 공명을 일으켰다. 대자연의 기운이 내공의 흐름과 동조하면서 백회혈(百會穴)과 회음혈(會陰穴)을 통해 정천우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주변에 흐르는 풍부한 대자연의 기운이 병목현상을 일으키면서 회전을 일으켰다. 그러자 정천우의 육신이 대자연의 기운에 마구 부대끼면서 천천히 허공에 떠올랐다.

    이른바 공중부양!

    내공이 등봉조극(登峯造極)의 경지에 다다르면 일어난다는 현상이다. 공중부양을 이뤄 내고서야 정천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대자연의 기운이 그의 몸속에 파고들어 혼원벽력신공을 더욱 정순하게 해 주었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져나갔다.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다들 싸우느라 정천우를 신경 쓸 여력이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정천우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과정을 겪는 중이다.

    그의 몸속에 흐르는 기운이 모두 정화되고 대자연의 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혼원벽력신공으로 만들어진 내공이 더욱 깊어졌다.

    내부에서부터 차오르는 거대한 힘.

    주변에 흐르는 대자연의 기운이 그의 몸속에 모두 빨려 들고, 나머지 기운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정천우의 눈이 열렸다. 순간적으로 뇌전의 기운이 그의 눈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엄청난 힘에 정천우가 입을 크게 벌렸다.

    “우아아아아!”

    쿠르릉!

    정천우가 가슴이 터질 듯한 뿌듯함을 이기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화산파의 영주성이 쩌르르 울렸다.

    “크윽!”

    “으아악!”

    “머리가, 머리가!”

    정천우의 고함을 들은 기사와 병사들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사자후(獅子吼)의 묘리까지 담아 내공이 충만한 기파(氣波)가 전장을 뒤흔들어, 싸움을 벌이던 사람들의 전의(戰意)를 대번에 꺾어 놓았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정천우가 역천검을 뽑아 전신을 타고 흐르는 충만한 내공을 모조리 퍼부었다.

    역천검에 싯누런 뇌전이 솟아올랐다가 이내 눈부신 빛으로 화하면서 오러 블레이드가 형성되었다. 검보다도 몇 배나 더 길고 폭이 넓은 오러 블레이드였다.

    “우우우…….”

    “어, 엄청나!”

    “맹주님! 저분이 바로 우리의 맹주님이시다!”

    “와아아아!”

    화산파 소속의 사람들은 기가 죽어 경악했고, 하북팽가와 아미파의 사람들은 정천우의 무력에 감탄하며 환호성을 보냈다.

    때를 같이해 정천우가 역천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바웅!

    슈아악! 콰과광!

    오러 블레이드가 역천검을 떠나 초승달 형태로 모양을 바꾸었다. 강기가 성벽을 강타한 순간,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충돌음이 일어나면서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우우우우…….”

    먼지가 걷히면서 성벽에 새겨진 문양에 적아(敵我)를 구분할 것 없이 탄성이 흘러나왔다.

    성벽에 10미터가량의 홈이 깊게 파였다. 얼마나 강력한 힘을 담았는지 사방으로 균열이 퍼져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쏘아 보낼 수 있었던 존재는 동대륙을 통틀어…… 아니, 동대륙과 서대륙을 모두 따져 보아도 단 한 사람뿐이다.

    그것은 바로 벽력대제(霹靂大帝) 팽진옥.

    정천우가 만들어 놓은 어마어마한 위용에, 기사들과 병사들은 싸우던 중이라는 것도 잊고 입을 쩍 벌리면서 감탄했다. 성벽에 새겨진 균열과 정천우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놀라는 사이 정천우는 마족의 형상으로 모습이 바뀐 임철중 백작의 시신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내공을 뿜어 임철중 백작의 시신을 감싼 채 왼손을 들었다.

    허공섭물(虛空攝物)의 기예(技藝)!

    그의 손짓에 따라 임철중 백작의 시신이 떠올랐다.

    “화산파의 영주 임철중 백작이 죽었다!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싶은 자는 무기를 들어라! 내가 직접 목을 따 주겠다!”

    정천우의 목소리가 영주성을 뒤흔들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무, 무리야. 우리가 졌어.”

    “……난, 살고 싶어.”

    투두둑…… 터덩, 텅…….

    여기저기에서 화산파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천우의 신위(神威)를 눈으로 목격한 이상 반항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유일하게 그들을 지탱해 왔던 것이 임철중 백작이었다. 그러나 흉물스러운 몰골로 죽은 모습을 보니 싸우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졌다.

    게다가 싸우기 전에 들었던 돌레스 마을의 촌장 드간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임철중 백작이 인근 마을을 공격해 영지민을 학살했다는 얘기…… 반신반의했는데, 임철중 백작이 마족의 형상으로 죽은 것을 보니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끝났어.”

    “화산파는 이대로 사라지는 것인가! 크윽…….”

    하북팽가의 매서운 공격에서 살아남았던 화산파의 기사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무기를 떨궜다. 반면에 아직도 항복할지 말지 망설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천우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항복을 망설이는 자들이 어딜 쳐다보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천우의 앞에 포진한 마교의 기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상당수를 죽여 놓았지만 그래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정천우는 허공섭물로 들어 올렸던 임철중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정천우를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던 마교의 기사들이 임철중 백작의 시신에 한눈을 판 사이, 정천우의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마교의 기사들이 이상한 낌새를 느낄 사이도 없이, 조금 전에 보았던 초승달과 닮은 오러 블레이드가 그들을 덮쳤다.

    쐐애액!

    퍼거걱!

    “피해…….”

    뒤늦게 정천우의 끔찍한 만행을 목격한 마교의 기사가 경고성을 발하려 했으나, 한참이나 늦은 뒤였다. 이미 그의 몸조차 오러 블레이드가 훑고 지나간 다음이었으니까 말이다.

    마교의 기사들을 훑고 지나친 오러 블레이드는 땅속에 파고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뒤늦게 마교 기사들의 몸이 상하로 나뉘면서 핏물을 쏟아 냈다. 그 처참하고도 강력한 공격에 항복을 망설이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미련 없이 무기를 내던졌다.

    완강하게 저항하던 화산파의 기사와 병사들이 무릎을 꿇자, 하북팽가와 아미파의 병사들이 무기를 압수하고서 포박하기 시작했다.

    장기전을 예상했던 공성전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 모두가 엄청난 무력을 선보인 정천우의 공로였다.

    ***

    싱거우면서도 강렬했던 전투가 끝나고, 화산파 영주성은 시끌벅적하게 바뀌었다.

    사람들은 정천우의 가공할 신위를 칭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가 나서자 성문이 너무나 쉽게 뚫리고 화산파의 기사단이 망가졌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마교의 기사조차 정천우에게 맥없이 전멸했으니, 그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존경심이 더욱 깊어졌다.

    화산파의 병사들은 하북팽가와 아미파의 연합군에 너무나 쉽게 흡수되었다.

    드간이 직접 나서서 임철중이 벌인 일들에 대해 침을 튀겨 가면서 설명했고, 다른 촌장들이 증언을 더해 주었다. 화산파의 병사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화산파 기사들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무언의 긍정.

    병사들은 화산파 기사들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믿을 수 없는 아군을 따르느니, 공명정대한 하북팽가와 아미파 연합을 따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중심에는 정천우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신위를 보인 정천우의 모습이 화산파 병사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인간으로 각인되었다.

    거기에 ‘전설의 후계자’라는 얘기까지 들으면서 하북팽가 연합군에 합류하기를 원하는 화산파의 기사들까지 생겨났다.

    끝까지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지하 감옥에 가두고, 나머지 사람들은 승전을 축하면서 술판을 벌였다. 지독한 아픔이 남겨진 영지전이었기에 그것을 위로하기 위한 주소용 후작과 팽선웅 백작의 배려였다.

    한편.

    영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인 정천우는 홀로 성벽 위에 올라 첨탑에 앉아 사색에 빠져 있었다.

    승전을 축하하는 술자리에 초대받았으나 한사코 그것을 거부했다. 워낙 갑작스럽게 강해진 탓이다. 자신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오늘만큼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가부좌를 튼 다리 위에 역천검을 올려 둔 정천우의 얼굴은 심각하기만 했다.

    ‘내가 정말 초절정의 단계에 이른 것인가?’

    정천우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면서 의문에 빠졌다.

    현재 내공 수준은 이 갑자 반.

    불과 얼마 전에 100년 내공을 완성했는데, 대번에 50년 내공을 더 얻었다. 풍부한 내공을 바탕으로 검강을 쉽게 발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과연 자신은 진정한 초절정의 경지를 개척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환골탈태까지 경험했다.

    육체의 질이 달라졌다. 피부는 질기고 부드러워졌으며, 근육에 힘이 넘쳐난다. 그야말로 무공을 펼치기에 최상의 상태가 되었다.

    정천우는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 둔 역천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우우웅!

    검강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자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오늘 영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검강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쳤다. 내공을 역천검에 밀어 넣고 순환시키면서 회전력을 바탕으로 검기를 날카롭게 가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역천검에 내공을 불어넣기가 무섭게 단전과 이어지면서 내공이 막힘없이 소통했다.

    굳이 검강을 일으키지 않아도 어검술(御劍術)이 펼쳐졌다.

    검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내는 상승의 절기가 바로 어검술이다.

    역천검을 어검술의 원리로 제어하면 검강을 발휘하는 것보다 효율 면에서 더 좋다. 게다가 어검술을 발휘하면 검신에서 룬어가 빛을 내며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저런 실험 끝에 그는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경지가 초절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쓰잘데기 없는 전쟁…… 빨리 끝내야겠어.”

    정천우는 역천검을 검집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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