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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85화 (85/200)
  • # 85

    Chapter 22. 불길한 상상 (3)

    “우, 웃기지 마라!”

    슈발리에가 튕겨 나가는 스콜피온을 억지로 잡아끌어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굉장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손아귀가 욱신거릴 만큼 강렬한 일격이었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목을 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네놈 따윌 웃겨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정천우는 역천검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자세를 잡았다.

    순간 그의 주변에 흐르던 뇌전의 기운이 요동쳤다. 뇌전의 기운은 흐릿했던 호랑이 형상을 진하게 만들고는 역천검으로 흘러들었다. 누런 뇌전의 기운이 검기를 더욱 진하게 만들어 내면서 웅웅거리는 소음을 일으켰다.

    정천우가 단번에 상대를 해치우려 힘을 집중하는 사이, 슈발리에 역시 전신의 힘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누가…… 웃겨 달랬냐아악!”

    잇새로 씹어뱉듯이 소리친 슈발리에가 스콜피온의 창대를 넓게 쥐고는 눈을 부릅떴다.

    시커먼 마나 쉐도우가 창날에 모여들어 뭉클거렸다. 스콜피온이 찢어발기는 공간을 따라 길게 마나 쉐도우가 꼬리를 그렸다.

    때를 같이해 정천우의 역천검이 움직였다. 자신의 어깨를 노리고 떨어지는 스콜피온의 창날을 향해 역천검이 파고들었다.

    콰광! 파직! 파지직!

    창날과 역천검이 부닥치면서 폭음이 일어났다. 무기가 부닥친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었다.

    역천검이 스콜피온의 창날에 맺힌 마나 쉐도우를 파괴하면서 스파크를 만들어 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쿨럭! 쿨럭!”

    슈발리에가 괴로운 신음을 터트리며 두 손을 떨었다. 손에 쥔 스콜피온이 같이 흔들렸다.

    스콜피온에 맺힌 마나 쉐도우를 꿰뚫은 역천검이 슈발리에의 가슴까지 관통한 것이다. 뇌전의 기운을 담은 역천검이 근육을 오그라들게 했기에 슈발리에는 정천우를 앞에 두고서도 그저 움찔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중원이나 여기나 마교놈들은 정이 안 간다, 정이 안 가.”

    정천우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역천검의 손잡이를 비틀었다.

    우드득…….

    “크헉! 망할 자식! 주, 죽이고 말겠…….”

    고통 때문에 스콜피온을 놓친 슈발리에가 정천우의 역천검을 움켜잡았다.

    상처가 벌어지면서 핏물이 콸콸 쏟아졌다. 그럼에도 슈발리에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역천검의 검신을 금속 건틀릿을 낀 손으로 더욱 강하게 쥐었다.

    칼날을 빼내려 했지만 정천우의 행동이 더 빨랐다. 가슴에 박힌 역천검을 우악스럽게 잡아 뽑자 검날을 움켜쥐었던 슈발리에의 손가락이 우수수 잘려 나갔다.

    “크아아악!”

    슈발리에가 손가락이 잘려 나간 통증과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비명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정천우가 비명을 지르는 슈발리에의 머리통을 역천검으로 날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캬악! 퉤! 온몸이 다 욱신거리네! 씨발 거!”

    정천우는 목을 잃고 서 있는 슈발리에의 시체에 침을 뱉고는 팽우룡의 곁으로 다가갔다.

    지랄맞은 마법에 직격당하는 순간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뇌전의 기운이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힘이 회복되긴 했지만 육체에는 고통이 남았다. 뇌전의 기운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은 끔찍했다. 근육이 너덜거린다는 표현은 지금의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를 앙다물고 걸어간 정천우는 연신 입으로 피를 게워 내는 팽우룡을 부축해 일으켰다.

    “쿨럭, 쿨럭! 고, 고맙습니다, 천우 경.”

    “괜찮으십니까?”

    “컥, 쿨럭! 저, 저보다 기사들을, 기사들을 도와주십시오.”

    팽우룡은 각혈을 하면서도 손으로 썬더 기사단을 가리켰다.

    그곳은 여전히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천우가 이끄는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합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마교의 흑룡 기사단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혼자 놔두고 가도 괜찮겠습니까?”

    “후욱, 훅…… 난 썬더 기사단의 단장입니다. 제 한 몸은 충분히 지, 쿨럭! 쿨럭! 지킬 수 있습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폐를 상했는지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팽우룡의 눈은 흑룡 기사단과 싸우는 하북팽가의 기사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부탁합니다. 쿨럭, 쿨럭…….”

    팽우룡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정천우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더 말하지 않아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정천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등을 돌린 정천우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살기는 충만하다. 슈발리에를 죽이면서 무뎌졌던 살심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심장이 뜨겁게 요동치고 분노의 감정이 단전의 내공을 들끓게 해 주었다.

    천천히 움직이는가 싶었던 정천우의 몸이 지면을 박차며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시커먼 갑옷을 입고서 창을 휘두르는 흑룡 기사단원의 등이 흙먼지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기합 따위는 목구멍으로 삼켜 두었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전투마다.

    둥실 떠오른 정천우는 역천검의 칼날이 아래쪽을 향하도록 거꾸로 쥐고서 눈을 부릅떴다. 그가 노린 마교의 기사는 그런 상황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스콜피온을 휘두르는 데 온 정신을 다 하고 있었다.

    츠걱!

    히히히힝…….

    역천검이 흑룡 기사단원의 목덜미를 뚫고 들어가는 순간, 날벼락을 맞은 흑룡단원이 경련을 일으키며 스콜피온을 놓쳤다.

    “워, 워!”

    정천우는 재빨리 말고삐를 잡아당겨 놀란 전투마를 진정시켰다.

    시체를 옆으로 떨구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역천검을 검집에 넣고서 뒤로 손을 더듬었다.

    말안장에 걸린 예비용 스콜피온을 집어 든 정천우가 옆으로 손을 뻗었다. 급하게 스콜피온을 휘두른 바람에 내공을 담을 수는 없었다.

    텅! 우두둑…….

    마나 쉐도우가 담겨 있지 않음에도 정천우가 스콜피온을 휘두른 힘은 대단했다. 투구에 맞았지만 스콜피온에 담긴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흑룡 기사단원은 목뼈가 부러지며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때부터 정천우의 학살이 시작됐다.

    거침없이 휘두르는 정천우의 스콜피온은 흑룡 기사단원이 그를 적이라고 인식하기도 전에 목숨을 앗아 갔다. 기합조차 지르지 않는 정천우의 움직임은 흑룡 기사단원의 목숨을 다섯이나 처리하는 동안에도 발각되지 않았다. 일부러 눈에 띠지 않기 위해서 마나 쉐도우조차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정천우가 막 여섯 번째 흑룡 기사단원을 노리고 스콜피온을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적이다! 뒤에 적이 숨어 있다!”

    정천우의 암습을 발견한 흑룡 기사단원 중의 하나가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렀다.

    “힘을 내라! 나 정천우가 왔다아!”

    정천우가 내공을 담아 소리치며 스콜피온을 번쩍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스콜피온의 창날에 누런 뇌전의 기운을 담은 마나 쉐도우가 불처럼 피어올랐다.

    일반적인 푸른색 마나 쉐도우와 달리, 노란색 마나 쉐도우는 정천우를 나타내는 증거.

    강력한 흑룡 기사단원들에게 밀리던 하북팽가 기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천우 경이다!”

    “천우 경의 지원이다! 힘을 내라!”

    힘겹게 싸움을 유지하기 바빴던 썬더 기사단원과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이 고함을 질렀다. 침체되었던 기세가 일순간 뒤바뀌며 하북팽가의 기사들이 전의를 불태웠다.

    그 기세에 이제껏 하북팽가의 기사들을 밀어붙이던 흑룡 기사단원들이 움찔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놀랄 틈도 없었다. 하북팽가의 기사들과 대치하는 와중에 자신의 대열에 끼어든 정천우까지 견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천우는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미친 듯이 날뛰었다. 뇌전의 기운을 담은 스콜피온이 유성처럼 마나 쉐도우의 꼬리를 달고 떨어질 때면 어김없이 흑룡 기사단원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죽여! 죽여라!”

    정천우의 활약에 힘입은 썬더 기사단의 팽만리가 희열에 가득한 목소리로 창을 휘둘렀다.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정천우가 상대 기사단 속에서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적이 조직력을 잃었다. 적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그만큼 하북팽가가 유리해졌다.

    각개격파!

    흑룡 기사단의 기사들은 이제 하북팽가의 기사들을 홀로 두세 명씩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것은 아무리 마교의 무사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압도적인 무력으로 기습적인 공격을 가하는 정천우란 존재는 부담스럽기만 했다.

    “부단장님! 적을 포위 섬멸…… 뭘 보시는 겁니까?”

    썬더 기사단원 중의 하나인 팽만봉이 잔뜩 피를 뒤집어쓴 채 팽만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애를 먹이던 정체불명의 흑색 갑옷을 입은 기사단을 섬멸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정작 기사단을 이끌어야 할 팽우룡은 최초의 격돌에서 사라졌고, 부단장인 팽만리는 한눈을 팔고 있다. 팽만봉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팽만리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래서 팽만봉은 짜증을 부리지 못했다.

    “천우 경을 보고 있다네. 저 움직임을 보게. 철저하게 실전에 따르고 있어. 지금의 일격! 보았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상대의 목을 정확하게 따냈어. 마나 쉐도우의 도움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저런 공격은 감당하기가 어렵지.”

    “으음…… 그렇군요. 정말 대단한 무력입니다.”

    팽만봉은 보고하러 왔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을 정도로 정천우의 무공에 감탄했다.

    “아차! 아까 뭐라고 했나?”

    “적을 포위 섬멸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렇지! 저 망할 놈의 자식들을 아예 전멸시켜야겠어!”

    팽만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오른손에 창대를 움켜쥔 채 왼손으로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방향을 잡은 팽만리가 말의 배를 가볍게 걷어차며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적을 가운데로 몰아라!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하라!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팽만리가 마나를 담아 크게 소리쳤다.

    하나의 조를 이루어 싸우던 샤벨타이거의 기사들과 맹렬한 기세로 창을 휘두르던 썬더 기사단의 기사들이 움직임을 달리했다. 적을 죽이겠다는 것에서 한곳에 몰아넣겠다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었다.

    흑룡 기사단의 기사들은 돌변한 적들의 움직임에 일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상대보다 월등한 무력을 지녔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지휘관의 명령이 없으니 허둥대기 바빴다.

    “으아아아! 꺼져! 꺼지란 말이다! 명령! 명령을 내려 달란 말이다!”

    피로 목욕을 한 듯한 흑룡 기사단원 중의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한탄했다.

    동료들이 이리저리 떠밀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러다간 전멸할 게 분명하다는 위기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으으으…… 명령을! 명령을!”

    흑룡 기사단원은 눈을 부릅뜨며 마구 스콜피온을 휘둘렀다.

    그 살벌한 기세에 썬더 기사단의 기사조차 다가가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흑룡 기사단원이 광기를 드러내며 괴성을 질렀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흑룡 기사단원은 눈의 실핏줄이 터져 눈알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지옥에서 갓 기어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까지 변화를 일으켰다.

    흑룡 기사단장인 슈발리에가 최후의 순간에 보여 주었던 역혈대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크흑! 다! 다 죽여 버리겠어!”

    갑작스럽게 늘어난 힘에 취해 흑룡 기사단원이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쐐에엑!

    “웃!”

    분노를 터트리던 흑룡 기사단원이 무시 못할 파공음을 감지하고 재빨리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스콜피온을 휘둘렀다.

    콰앙!

    “우욱! 쿨럭! 크으으윽…….”

    두 손에 전해진 충격이 어깨를 지나 가슴을 진탕시키는 바람에 흑룡 기사단원이 기침과 함께 입으로 피를 토했다.

    ‘이렇게 엄청난 압력이라니…… 대체 누가…….’

    흑룡 기사단원은 이를 부드득 갈며 말의 몸통에 감은 다리를 움직였다. 오랜 세월 동안 주인을 태웠던 전투마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감지하고는 네 다리를 움직였다.

    그제야 흑룡 기사단원은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찾을 수 있었다.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사내였다. 그의 손엔 자신들의 무기인 스콜피온이 들려 있었다. 특이한 점은 스콜피온의 창날에 노란색 마나 쉐도우가 이글거린다는 점이다.

    바로 정천우였다.

    “명령이 필요하다고 했나?”

    정천우가 약간은 지친 얼굴로 무심한 듯 물었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흑룡 기사단원은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상대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난폭한 살기가 그의 입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까닭이다.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정천우는 으스스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핏물이 가득 묻은 그의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났다.

    “내가 대신 명령을 내려 주지! 명령이다! 뒈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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