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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80화 (80/200)
  • # 80

    Chapter 21. 흑룡 기사단 (2)

    “서둘러라!”

    정천우는 말안장 위에 올라 무기를 점검하면서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을 둘러보았다.

    ‘새끼들이…….’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의 얼굴을 발견한 그는 입맛을 쩍 다셨다.

    실실 웃고 있는 모습이 거슬렸다.

    ‘뭐, 겁먹은 것보단 낫지.’

    정천우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목책 위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던 그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조금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했지만 굳이 이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모두 준비됐나!”

    “옛!”

    정천우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이 힘차게 소리쳤다.

    “우리는 잠시 대기하다가 다른 기사단이 출격하면 그 뒤를 따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모두 알고 있겠지?”

    “예!”

    “좋다! 노파심에서 얘기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아군 기사단과 적군 병사를 격리하는 것이다! 출격하면 내 뒤만 따라와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샤벨타이거 기사단 소속 기사들이 힘차게 소리쳤다.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정천우가 바위를 처리하면서 보여 준 능력에 감탄한 이들이다. 거기에 더해 미녀 마법사 제인의 사랑을 받는 사내.

    기사들은 존경심과 부러움이 뒤섞인 눈으로 정천우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들이, 부담스럽게 왜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정천우는 떨떠름한 얼굴로 기사들을 일별하고는 다른 기사단을 바라보았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다른 기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썬더 기사단을 비롯한 나머지 기사들이 말안장에 기름이 든 가죽 주머니를 걸고 있었다.

    ‘우린 안 줘?’

    정천우는 샤벨타이거 기사단에게는 아무런 물건도 지급하지 않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관심을 접었다. 주지 않을 만하니까 주지 않는 거라고 속 편하게 생각한 것이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나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목책의 문이 활짝 열렸다.

    목책의 문이 열린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말 위에서 대기하던 썬더 기사단원들의 몸에서 투기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투기가 전염되어 타이거 기사단과 라이온 기사단까지 투기를 뿜어냈다.

    “준비하라!”

    정천우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미 다른 기사단이 어떤 상태인지 눈으로 본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은 창대를 움켜쥐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장에 뛰어들어야 할 순간이 되자 심장이 세차게 뛰고 숨이 거칠어졌다.

    “진격하라!”

    멀리서 우람한 덩치의 팽우룡이 세이버를 연결한 창을 높이 치켜들며 고함을 질렀다. 마나가 늘어난 덕분인지 그의 목소리가 목책 내부를 뒤흔들었다.

    ***

    “건방진 하북팽가의 촌놈들에게 무당파의 무서움을 보여 주도록 하라! 병사들이 진격할 수 있도록 쉬지 말고 발사하라!”

    장천근 후작이 커다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목책과 대략 300미터가량 떨어진 곳이다. 하북팽가의 병사들이 크로스보우로 쿼렐을 쏜다고 해 봐야 닿지 않을 거리였다.

    그러나 트레뷔셰는 다르다.

    100킬로그램에 이르는 바위를 300미터 거리까지 날려 보낼 수 있다. 운용하는 데 인력이 많이 필요해 두 대만 운용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병사들이 각종 공성 병기를 운용하면서 진격해 나가는 모습을 장천근 후작이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일반 보병들은 방패를 앞세워 진격하고, 그 뒤로 배터링 램(Battering ram, 성문을 부술 때 사용하는 기둥)을 장착한 캣(Cat, 지붕이 있는 바퀴 달린 수레)이 뒤따랐다.

    시즈 타워(Siege tower, 성벽에 직접 건너갈 수 있도록 높게 만든 이동식 탑)까지 진격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영주님,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그래야지. 암! 그래야 하고말고!”

    장천근 후작은 병사들의 일사불란한 진격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편히 말하게.”

    기사단장인 장맹기가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장천근 후작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까 트레뷔셰로 날린 바위를 부순 게 마음에 걸립니다. 특히 두 번째 바위는 누군가 혼자서 해치웠습니다. 하북팽가의 기사 전력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닌지 해서 말입니다.”

    장맹기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법사라면 몰라도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바위를 기사들이 창으로 던져 무력화시켰다는 게 놀라웠다.

    팽선웅 백작과 기사들이 힘을 합쳐 첫 번째 바위를 부순 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바위는 한 자루의 창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팽선웅 백작이 있는 곳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위치였다. 하북팽가의 무식한 기사 4인방 말고도 더 엄청난 기사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으음…….”

    장천근 후작은 장맹기의 우려에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뷔셰를 운용하는 이유는 마법사 때문이다. 마법사들이 광역 마법을 시전할 수 없도록 방어에만 전념하게 하기 위해서다. 병사들이 무사히 목책에 도착할 때까지 마법 공격을 받지 않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돌덩이를 막아 낼 기사가 존재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마법사가 마나를 회복할 시간을 벌어 준다면…….

    “귀찮게 되겠군.”

    “응? 영주님, 목책의 문이 열립니다!”

    장맹기가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

    하북팽가의 놈들이 초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튀어나오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병사들로 퇴로를 막고 기사단으로 갈아 버리면 될 테니까.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하북팽가 소속 기사단의 숫자 때문이었다. 이제껏 알고 있던 숫자가 아니다. 파악한 정보보다 3분의 1 정도가 더 많은 숫자였다.

    “저들의 숫자가 이상합니다. 응? 하나가 더 있어?”

    장맹기가 신음하듯 소리치다가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하북팽가는 기사단이 세 개였다. 세 개의 기사단이 모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하나의 기사단이 더 목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맹기 경, 뭐라고 말 좀 해 보시게!”

    장천근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트레뷔셰를 파괴하러 적 기사단이 튀어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멋지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파악하고 있던 숫자의 두 배에 이르는 기사단이 튀어나오자 장천근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무당파의 기사단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였다. 이렇게 되면 기사단 전력에서 밀릴 확률이 높다.

    “어떻게 단기간 내에 기사단을 확충할 수 있었던 거지? 어떻게?”

    장맹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목책 밖으로 튀어나온 기사단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흐흐흐…… 뭘 그리 두려워하는 거요?”

    “오오! 엑스타콘 단장! 내 그대를 잊고 있었구려. 맞소! 그대가 있었소, 그대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장천근 후작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흑룡 기사단!

    무당파의 비밀 병기이자, 하북팽가와 영지전을 벌여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안겨 준 원동력.

    이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그대가 썬더 기사단을 맡아 준다면 무당파의 기사단이 뒤를 받쳐 줄 것이오. 반전하기 전에 우리 마법사들이 마법 지원을 하기로 되어 있소.”

    장천근 후작은 들뜬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흑룡 기사단장인 슈발리에 드 엑스타콘의 얼굴에 음침한 미소가 걸렸다.

    ‘한심한 작자 같으니, 이런 놈이 한 지역을 다스리는 패자라고? 동대륙 놈들은 죄다 소심한 겁쟁이 놈들이구나!’

    슈발리에는 속으로 장천근 후작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저들은 급조된 것이 분명하오. 아마도 수련기사들까지 박박 긁어서 반항하려는 것 같소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내 눈엔 그저 오합지졸들로 보일 뿐이오만?”

    슈발리에가 목책을 빠져나와 대열을 정비하는 기사단을 손으로 가리켰다.

    장천근 후작과 장맹기는 슈발리에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슈발리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목책 밖에 나와 열을 맞추는 하북팽가의 기사들은 허둥대는 느낌이었다. 특히 마지막으로 나온 기사단은 대열을 맞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과연! 과연 그대의 말이 옳소이다! 맹기 경!”

    “예, 영주님!”

    “그대는 엑스타콘 단장의 뒤를 받쳐 주시오! 반드시 하북팽가 놈들을 전멸시키길 바라오!”

    “충!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맹기가 군례를 올리며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우리 흑룡 기사단이 길을 터놓을 테니, 뒤처지지 않길 바라오!”

    슈발리에가 자신감을 드러내며 앞장섰다.

    “알겠소이다!”

    ‘기분 나쁜 놈.’

    장맹기는 호탕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이내 안색을 굳혔다.

    등을 돌린 슈발리에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꺼림칙하기만 하다. 마치 흑마법사를 대하는 느낌이다.

    아니, 흑마법사보다 더 괴기스러운 기운이 전신에서 흘러나온다. 아군이 아니었다면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다.

    ‘인간인지도 의심스럽고…….’

    자신의 기사단에게 가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장맹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서둘러야 할 거요. 우리가 다 휩쓸고 지나가면 손맛도 못 볼 테니까 말이오. 하하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소이다. 우리 무당파의 기사단의 실력도 그리 녹록하지 않소이다.”

    “그렇소? 내 기대해 보도록 하겠소. 하하하!”

    “끄응…….”

    슈발리에가 느물거리는 얼굴로 웃음을 터트리자 장맹기의 기분이 시궁창에 떨어졌다.

    한마디 쏴붙이고 싶었지만 슈발리에가 이끄는 흑룡 기사단의 도움 없이는 하북팽가의 기사단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물고 참아 내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망할 자식!”

    장맹기는 흑룡 기사단의 선두로 이동하는 슈발리에의 등에 대고 투덜거리며 욕했다.

    이런 무시를 당하다니…….

    뿌드득!

    장맹기가 이를 갈아붙이고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맞추고 선 자신의 기사단에 합류했다.

    “하북팽가의 떨거지들이 드디어 둥지를 벗어났다. 오늘 우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 전쟁을 치를 것이다. 역사에 패배자로 남고 싶은가! 아니면 승리자로 남고 싶은가! 나는 승리자가 되어 당당히 무당파로 돌아가고 싶다!”

    장맹기는 무당파의 기사들을 둘러보며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오늘의 전투로 하북팽가를 집어삼킨다면 무당파는 더욱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 슈발리에에게 무시당했지만 무당파가 번창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이런 녀석들과 함께하는 한 나는 무적이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기사들의 눈빛을 받으며 장맹기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드디어 결전이다!

    이날을 위해 그동안 절치부심하면서 칼을 갈아 왔다.

    장맹기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제 결실을 맺을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진격하라!”

    장맹기가 막 사기를 돋우려는데 등 뒤에서 슈발리에의 우렁찬 고함이 튀어나왔다.

    “썅! 지, 진격하라!”

    당황한 얼굴로 장맹기가 급하게 말 머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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