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리터너-87화 (87/118)
  • [■] 여기로 핵 날아온다는데? [■]

    ─────

    "막아! 막아야 돼! 요격, 요격해라!"

    크리스토퍼는 거의 이성을 잃어버렸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인류에게 있어서 핵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안다면, 본토를 향해 핵무기가 날아들고 있는 상황은 거의 세계의 멸망과 동급의 충격을 안겨준다.

    "요격 불가능합니다! 궤도 측정이 안 됩니다!"

    "이런 미친 새끼들아! 요격이 안 되면 뭐? 그대로 처맞겠다는 거야!"

    크리스토퍼의 눈에 미국으로 그어진 두 개의 붉은 선이 보였다.

    저 선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상 침착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머리 위로 핵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침착하란 말인가.

    "각국에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워딩은?"

    "알아서 막으라고 해! 알아서!"

    크리스토퍼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이 빌어먹을 짱깨 새끼들, 내가 반드시 너희를 갈아 마셔 버릴 거다."

    중국에 대한 분노와 마왕에 대한 공포가 동시에 몰려들었다.

    아무리 마왕이 불가해한 능력을 발휘한다고는 하나,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열여덟 개의 탄도미사일을 그냥 처리하는 것도 아니고… 세계 각국으로 카운터를 쳐버릴 줄이야.

    '이걸 어떻게 예측하란 말이야!'

    최악 중의 최악을 가정했지만, 그 이상의 최악이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요격해! 이쪽으로 오는 건 모조리 요격하라고! 미사일 방어는?"

    "궤도가 특정되지 않아서……."

    "이 미친! 제기랄, 그럼 어쩌자는 거야!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까? 국방부 연결해! 플레어를 갈기든, 아니면 전투기를 직접 몰고 가서 몸으로 막든, 어떻게 해서든 탄두가 이곳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으란 말이야! 그리고!"

    크리스토퍼가 핏발이 선 눈으로 소리쳤다.

    "중국에 연결해. 쉬청인지 뭔지 하는 그 개새끼에게 미사일 원격 폭발 가능한지 물어봐! 지금 당장!"

    "예!"

    크리스토퍼는 날뛰기 시작하는 사령부를 보며 비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전 세계가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중국에서 쏘아올린 핵 한 방, 한 방이 뭐 얼마나 큰 위력이 있겠냐마는,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빌어먹을 새끼들.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으면 미사일이라도 비싼 걸 쓸 것이지."

    페어링 후에 여러 탄두를 날리는 형식이었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날린 탄도미사일은 단일 방식에 착탄형이었다.

    "신이여."

    크리스토퍼가 자신도 모르게 가슴 앞으로 성호를 그었다.

    * * *

    "이, 이게……."

    쉬청은 기겁을 하여 화면을 바라보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던 탄두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전 세계 각지를 향해 방향을 틀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합니까, 국방부장님!"

    "아니,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무슨 일이?"

    "미사일의 궤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마왕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 같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물어!"

    쉬청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지휘봉을 내팽개쳤다.

    "어디로! 어디로 떨어지나? 어디로! 국내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하, 한 발이……."

    "한 발?"

    "베, 베이징 주변으로……."

    순간, 쉬청은 눈앞이 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베이징? 베이징이라고?

    "지금 이곳으로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

    "다행히도 탄도미사일 자체의 속도은 급감속했습니다. 로켓의 추진체는 이미 모두 소모되었고, 가속도는 급격한 방향 회전과 동시에 날아갔습니다. 다만……."

    "다만?"

    "그렇다 해도 음속에 가깝습니다."

    쉬청의 머리가 급격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음속이라면 여객기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다. 쓰촨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두 시간 이내에 도착한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는가,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쉬청이 버벅이며 잘 돌아가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는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현재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미사일들을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느냡니다."

    "원격?"

    쉬청이 눈을 빛냈다.

    "가능한가?"

    "…시도를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착탄형이 아닌 ICBM들도 폭발 시한을 넘겼으나 폭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파방해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시도해 봐! 지금 당장."

    "…하지만 국방부장님, 지금 폭탄이 터지게 되면 열여덟 개의 핵무기가 중국 상공에서 터지게 됩니다. 탄도의 위치는 지극히 낮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국방부장 쉬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군."

    모든 것은 그들이 벌인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대가를 모두 지불할 수는 없었다. 쉬청은 미사일을 날린 대가로 모든 결과를 중국이 떠안아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고 느꼈다.

    "일단 전파방해 때문에 원격 폭발이 안 된다고 해서 시간을 끌어. 나는 지금 당장 주석님과 연락을 해보겠다."

    "예!"

    쉬청이 한쪽으로 가 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조금 후.

    "…대기한다."

    "국방부장님?"

    "베이징에 핵탄두가 도달할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대기한다. 그와 동시에 가용한 전투기를 모두 출격시켜서 베이징 상공에 준비시켜."

    "예!"

    "타 미사일들이 본토에서 가장 멀어지고 베이징에는 아직 닿지 않는 그 순간에 원격 폭발을 시도하고, 실패할 시에는 직접 요격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

    "예! 알겠습니다."

    "실패하면 여기 있는 놈들 모두 죽는 거야. 내가 죽이는 게 아냐. 베이징이 흔적도 없이 날아갈 거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날아드는 탄두에 대비해!"

    작전실이 날뛰는 비명 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쉬청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이마에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아내었다.

    "빌어먹을."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단 말인가.

    만약 원격 폭발이 실패한다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다시는 지금과 같은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오는 건 욕밖에 없고, 흐르는 건 식은땀밖에 없었다.

    "북경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핵탄두가 떨어지는 곳이 어딘가?"

    "그게… 지금 착탄 지점이 특정이 되질 않습니다."

    "반경으로 보면 되잖아! 국가 단위로는 나올 거 아냐!"

    "국가로는……."

    지도를 확인한 이가 신음하듯 말했다.

    "한국, 혹은 일본입니다."

    "제길."

    쉬청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래도 최소한은 해야지. 한국과 일본 정부에 연락해. 지금 그쪽으로 핵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이야."

    "이미 파악했을 겁니다."

    "그래서 입 처닫고 있자는 소리야? 너는 외교가 뭔지도 모르는가?"

    "지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쉬청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리저리 붉은 선이 오가는 한국을 바라보았다.

    '일본은 몰라도 한국은 껄끄러운데…….'

    이미 도쿄의 절반을 잃은 일본은 과거의 국력을 좀체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역시 얼마 전에 서울이 반파되기는 했지만, 육상 병력을 거의 소진하지 않았기에 군사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그리고 힘을 잃었다고는 하나 이지혁은 여전히 껄끄러운 존재였다.

    "막아라, 어떻게든."

    쉬청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 *

    위이이이잉!

    사이렌이 쉴 새 없이 울려 댔다.

    김다솜이 태연자약한 이지혁을 보며 살짝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대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피?"

    이지혁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너는 대피하는 게 맞겠지만… 아니다, 이젠 너도 대피하는 게 좀 이상하기는 하지. 만약 핵이 중국에 떨어지고 있는 경우라면 그냥 불구경이나 하면 되고, 몬스터가 출현한 거라면 막아야 하니까."

    "그런데 왜 사이렌이 울려요?"

    "옆 나라에 핵 떨어지는데, '그냥 딱히 피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냅 뒀어요'라고 했다가는 대통령 모가지가 광화문에 걸릴 테니까."

    김다솜이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전무후무한 경우라 대처법이 없었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라면…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면피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별걱정할 것 없어. 우리와는 별 관계 없는 일이거든."

    이지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대로 대피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왜?"

    "어차피 가게 문 다 닫고 사람들 다 대피할 건데, 들어가 있을 데도 없고… 여기 허허벌판에서 서 있어야 할 텐데……."

    "그건 좀 문제네."

    그 많은 시간을 다 놔두고 왜 하필 놀러 나온 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중국 가서 한 번 뒤집어엎을까?'

    여하튼 저 짱깨 놈들은 도움이 안 된다. 짜장면을 개발한 것 말고는 인류에 기여한 게 없다.

    아, 짜장면도 한국인이 개발했던가?

    여하튼.

    "그럼 뭐, 집에나 갈까?"

    "안 돼요! 시간까지는 같이 있어주는 걸로 약속했잖아요."

    "그럼 너도 우리 집에 와."

    "…그럴까요?"

    김다솜이 생각도 못한 횡재를 했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이지혁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떨어지라고, 이 찰거머리 같은 기집애야!"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요."

    "요즘 애들은 진짜 발랑 까졌네."

    "나이 많아서 좋으시겠네요. 이제 곧 서른?"

    "나와, 이년아."

    이지혁은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이상한 것은 아닐진대, 왜 그의 주변에는 이상한 여자만 있는가 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와 같았다.

    RRRRR.

    그 순간, 이지혁의 상념을 깨듯이 전화기가 울렸다.

    "국방부 장관이네."

    이지혁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양반들은 사람을 무슨 114쯤으로 아나, 심심하면 전화해서 뭐 물어보고 난리네. 나는 뭐 프라이버시도 없나?"

    이지혁이 한숨을 쉬며 막 싸우고 있는 김다솜과 정해민을 말리려 하는 순간, 다시 전화가 울렸다.

    "아니, 이 민대머리 아저씨가!"

    이지혁이 분노를 내뿜으며 휴대폰을 꺼냈지만, 액정에는 국방부 장관이 아니라 최정훈이라는 세 글자가 당당히 찍혀 있었다.

    "끄으으응."

    이상하게도 최정훈이 전화를 하면 무시할 수가 없다. 코가 꿰여도 단단히 꿰였다는 생각을 하며 이지혁이 전화를 받았다.

    "왜요?"

    퉁명스레 전화를 받은 이지혁이 짜증을 부리며 말을 이었다.

    "아, 알아요. 중국 놈들이 핵 쏜다고 했잖아요. 뭐, 이미 아는 걸 굳이 이야기해요? 사이렌도 그거 때문에 울린 거잖아요.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그 직후, 이지혁의 고개가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었다.

    "응? 뭐라구요?"

    이지혁의 목소리에 황당함이 어렸다.

    "그러니까… 그 쏜 핵이… 어, 그래요. 어, 그러니까… 음, 그게……."

    이지혁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여기로 온다고? 핵이?"

    뚝.

    금방이라도 치고받을 듯 소리치던 두 여인의 입이 동시에 다물어졌다. 그들이 천천히 슬로우 모션처럼 이지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여기는 뭔 지옥인가? 마왕 때문에 서울 날아간 지가 언제라고 이제는 또 핵이 날아온데? 허허, 나라 망하겠네, 나라 망하겠어."

    김다솜과 정해민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뭐, 알았어요. 네, 네에."

    전화를 끊은 이지혁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둘을 보며 말했다.

    "야, 여기로 핵 날아온다는데?"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지 마, 이 미친놈아.

    정해민이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가슴으로 삼켰다.

    * * *

    "핵이요?"

    김다솜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앞과 뒤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지혁은 평소처럼 앞뒤를 다 잘라 먹고 제멋대로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김다솜도 평소라면 적당히 무시하든가 하는 방법으로 이지혁을 상대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지혁의 말이 평소보다 너무 어마무시했던 것이다.

    "해, 핵이 날아온다구요? 농담이죠?"

    "뭐……."

    이지혁이 볼을 벅벅 긁더니 입을 열었다.

    "최정훈 씨가 쓸데없이 전화해서 그런 농담을 하는 취미가 있을 수도 있지. 국방부 장관이랑 합심해서."

    "진짜네요?"

    "아니, 그럴 수도 있잖아."

    "날아오고 있다는 거네요."

    "…어, 그래."

    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다솜이 넋이 나간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기 어딘가에서 여기로 핵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 그럼 어떻게 해요?"

    "글쎄……."

    이지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미 대피할 사람은 거의 대피하지 않았을까? 그게 핵방공호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겠지만 말이야."

    "건물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대로 두면 다 죽을 텐데."

    "자자, 진정하고……."

    이지혁이 김다솜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사람이 패닉에 따지면 패버리는 게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는 걸 경험상 알고 있는 이지혁이지만, 사람의 탈을 쓰고 김다솜을 폭행할 수는 없으니 대충 이런 방법으로 퉁치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떨어지고 있다고는 했지만, 여기라고는 안 했어. 핵의 위력도 잘 모르니, 어쩌면 서울이 날아가는 정도로 끝날지도 모르잖아?"

    "무척이나 희망적인 말을 들은 것 같아요."

    "아니면 잘 막아낼 수도 있을지 모르는데, 괜히 여기로 핵 떨어진다고 말을 했다가 사람들이 지하로 몰리면 핵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날 수도 있잖아. 그러니 말을 안 하는 거겠지. 정부 놈들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아. 이미 대피는 반쯤 시켰으니까."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자면… 핵이 떨어지니까 대피하라는 매뉴얼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핵이 떨어지든, 쓰나미가 닥쳐오든, 몬스터가 나타나든 항상 같은 패턴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 게 대한민국의 경보 체계이니까 말이다.

    혼란을 우려해서인지, 아니면 경보 체계의 미비이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추가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에… 보자."

    이지혁은 자신의 머리를 콩콩, 두드렸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어선지 머리가 잘 돌지 않는 느낌이었다. 지금 그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선, 음……."

    이지혁이 볼을 벅벅 긁었다.

    '일단은 얘들부터 대피를 시켜야겠네. 그리고 예원이랑 엄마랑… 아, 또 아빠도.'

    할 일을 정리한 이지혁이 좌우로 손을 뻗으려다가 멈췄다.

    "그런데 이거,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 거지?"

    최정훈의 말에 따르자면, 전 세계에 열여덟 발의 핵무기가 랜덤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어디서 안전한 포인트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당장 생각나는 곳은 예전에 가족들을 대피시킨, 미국의 방공호인데…….

    "크, 사람이 힘을 잃으면 이게 문제로군."

    예전이야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크리스토퍼가 순순히 그에게 방공호를 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정해민."

    "응?"

    "텔레포트 지정해 놓은 곳 중에 여기는 정말 안전하다 싶은 곳 있어?"

    "응? 한국에서 멀어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전 세계에 열여덟 발이 랜덤으로 떨어지고 있데."

    "하늘나라는 안전하지 않을까?"

    "동감이다."

    이지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 엿 같은 상황을 다 보겠네."

    그 혼자 살아남으라면 방법이야 수천 가지가 되겠지만, 그렇게 살아남아서는 의미가 없다.

    "일단은 너, 얘 데리고 우리 집에 좀 가 있어라. 나 예원이랑 아버지 데리고 갈 테니까."

    "…알았어. 빨리 와야 해?"

    "그래."

    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다솜을 정해민에게 쭉 밀었다. 김다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했는지 두말하지 않고 정해민의 손을 잡았다.

    "간다."

    스슷.

    김다솜과 정해민이 사라지고 나자 이지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전화기를 다시 들었다.

    '지금 엄청 바쁠 텐데.'

    미친 듯이 통화를 하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최정훈은 전화벨이 채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 예, 이지혁 씨!

    "시간은 얼마나 있어요?"

    - 우습게도 두 시간이나 있습니다.

    "원래 핵무기라는 게 그렇게 느린 거예요?"

    - 그럴 리가요. 원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라는 건 성층권을 뚫고 올라가서 낙하합니다. 눈으로는 쫓을 수도 없는 속도로 떨어지는 건데, 이건 발사 추진체가 이미 다 소진되었음에도 마왕 놈이 손을 쓴 모양입니다. 일반 여객기 수준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흐음……."

    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일단 핵이 떨어져도 안전한 곳 하나 수배해 주세요. 한국에도 벙커 정도는 있을 것 아니에요. 고위 공직자 아저씨들 대피하려고 뚫어놓은 곳. 있죠?"

    - 예, 있습니다. 다만…….

    "다만?"

    - 왜 굳이 그런 곳을 찾으시는 건지 모르시겠네요. 이지혁 씨가 제집처럼 드나드는 곳에 가장 안전한 지하 벙커가 있지 않습니까?

    "어디요?"

    - 청와대요.

    "아!"

    이지혁이 다시금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위기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판단도 정정해야 할 것 같다. 겨우 이런 상황에 처했다고 그 당연한 것도 떠올리지 못하다니.

    "지금 어디세요? 아까 그 공사장이에요?"

    - 예. 지금 이동 명령이 없어서 일단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럼 해민이한테 전화해서 데리고 가라고 해요. 다솜이도 같이 있으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 다 데리고 청와대 벙커로 이동하세요."

    - 여기 있는 사람 전원 말입니까? 허가가 안 떨어질 텐데요?

    "지금 죽니 사니 하는 판에 허가가 어딨어요. 못 들어온다 그러면 내가 가서 다 뒤집어 버린다고 해요."

    -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지혁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이 다 터지네."

    두 시간의 여유라는 것이 되레 사람의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당장 이십 분 뒤에 떨어진다고 하면 지금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뛰고 있을 건데, 두 시간이나 있어야 떨어진다고 하니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심정이었다.

    "일단 엄마부터 챙겨야지."

    할 일이 애매하면 일단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하면 된다.

    일단은 가족이었다.

    "근데 나 텔레포트 되나?"

    알파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줘서 대충 연습을 해보기는 했다만, 텔레포트 같은 고위 마법도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에이, 대마법사 깜냥이 있지."

    이지혁이 좌우로 손을 뻗어 마나를 끌어당겼다. 순수한 마나가 육체에 가득 밀려 들어오면서 더할 수 없는 벅찬…….

    "아야야야야야야! 아이고오, 나 죽는다아아아아!"

    고통이 밀려왔다.

    "이런 빌어먹을, 흑마력 써도 아프고, 백마력 써도 아프면,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냐!"

    흑마력은 원래 육체를 파괴하는 기운이라 사용할 때마다 고통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고, 백마력은 흑마력과 상극이다 보니 흑마력에 쩔어 있는 이지혁의 육체와 반발을 일으켰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죽을 만큼 아프다는 뜻이었다.

    "몸뚱아리 효율이 쓰레기여!"

    온몸을 부들부들대는 이지혁이지만, 그 와중에도 마력이 착실하게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흑마력을 최대한 억제해 놓았더니, 그래도 어느 정도 쓸 만큼의 마나를 모을 수 있었다.

    얼마 전처럼 흑마력을 잔뜩 박아놓은 몸이라면 일반적인 마력은 들어오는 순간 육체를 가득 채우고, 몸 안에 있던 흑마력에 동화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지혁이 고통을 참으며 눈을 감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가족들의 몸에 찍어놓은 표식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이지혁은 마나를 모아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너, 어디서 나타난 거니?"

    "엄만 그게 뭔 차림이여?"

    이지혁은 방공호 안에서 어머니를 찾아냈다. 사람들이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이지혁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능력자가 워낙 흔한 세상이다 보니 다들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야 주방일 하다 왔으니까."

    이지혁은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를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제대로 대피는 했네."

    "그럼 대피하라는데 대피해야지."

    "알았어, 엄마. 일단 나랑 같이 가."

    "어딜 가? 여기 꼼짝 말고 있어. 괜히 이럴 때 돌아다니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에이, 참."

    이지혁이 등을 찰싹찰싹 내려치는 어머니의 손을 밀어내며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살살 때리는 거 같은데, 왜 뼛속까지 아프냐고!

    이지혁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는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 *

    "……."

    "……."

    "어……."

    이지혁의 눈에 띠꺼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예원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발로 비벼 껐다.

    "아니, 이년이 진짜."

    이지혁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정신 좀 차렸나 싶더니, 어디서 똥양아치들이랑 또 놀고 있어!"

    "어이, 아저씨. 똥양아치라니.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에요?"

    "지랄한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띠꺼운 얼굴로 이지혁을 노려보았다.

    어쭈?

    노려보네?

    이지혁이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창식이가 있었으면 알아서 정리를 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양아치들은 그를 본 적이 없는 양아치들인 것 같았다.

    그래도 나름 좋은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좋은 학교라도 나름은 노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패착이었다.

    "내가 시간만 좀 있었으면 너희 전부 피똥 싸게 해줬을 텐데, 내가 지금 바빠서 참고 가는 줄 알… 아야야야야야야야!"

    순간, 이지혁이 고개를 모로 꺾고 비명을 질렀다. 박선덕 여사가 장난감처럼 이지혁의 귀를 쭉쭉 잡아당기고 있었다.

    "누가 엄마 앞에서 담배 물래!"

    "아, 엄마! 귀, 귀! 엄마! 귀!"

    "이놈의 시키!"

    한쪽 귀를 잡힌 채 등짝이 부서져라 스파이크를 당하는 이지혁이 오징어처럼 전신을 뒤틀었다.

    "헐……."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들이 다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건 안 당해보면 모른다. 벗어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지옥의 연쇄 같은 것이다.

    "확 그냥!"

    박선덕이 귀를 놓아주자 반사적으로 이지혁이 팔을 들어 날아오는 스파이크에 대비했다.

    "시, 실수였어, 엄마."

    "너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 이예원."

    "예! 어머니!"

    "이리 와, 이년아."

    "……넵."

    덥썩.

    박선덕이 예원이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일단 가자. 가서 이야기 하자, 이 망할 것."

    "추, 출발하겠습니다."

    폭력배를 태운 택시 기사 같은 느낌으로 이지혁이 조심스레 예원이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는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대체 뭐야?"

    순식간에 사라진 세 사람을 보면서 남아 있던 이들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 * *

    스슷.

    청와대에 도착한 이지혁이 두 사람의 손을 놓자 어머니가 이예원의 머리를 잡은 채 앞으로 질질 끌고 갔다.

    "악! 엄마! 머리, 머리!"

    "시끄러워, 이년아! 머리털을 다 뽑아버릴라!"

    "악! 엄마, 머리 진짜 아프다니까!"

    "한마디만 더하면 뽑힐 머리도 없게 만들어줄 테니까, 딱 한마디만 더 해라. 농담 아니다."

    이예원은 머리가 뜯겨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어머니, 박선덕 여사는 한 번 한다고 하면 정말 하는 사람이었다.

    "이 기집애는 대체 뭐가 되려고……."

    찰싹찰싹, 스파이크 소리에 이지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등짝 다 나가겠네.'

    박선덕의 스파이크를 온몸으로 버티고 살아온 이지혁이니만큼 지금 이예원이 겪고 있는 고통에는 애도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등짝에서 불이 나는 고통을 어찌 다른 이들이 짐작이나 할 수 있겠냔 말인가.

    "엄마, 그만 좀……."

    보다 못한 이지혁이 박선덕을 말리고 나섰다.

    차라리 핵이 떨어지는 게 차라리 낫지, 저러다 예원이가 핵 맞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비켜, 이놈아! 동생이 양아치 놈들이랑 담배나 뻑뻑 피워 대고 있는데, 뭘 '그만해'야! 너도 잘한 거 없어. 네가 만날 담배나 피우고 있으니 애가 배운 거 아냐!"

    "나 오 년 동안 사라졌다 나타났을 때, 얘는 이미 담배 피우고 있었는데?"

    "뭘 잘했다고 말대꾸야?"

    아, 논리로는 이길 수 없구나.

    이지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새삼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엄마, 여기 청와대야."

    "응?"

    어머니가 이예원의 등짝을 내려치던 손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소한 건물이라는 것을 느꼈는지, 이예원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에서 슬쩍 힘이 빠졌다.

    "어머, 여기가 어디니?"

    "……."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처음은 아니라지만, 순간적으로 텔레포트를 했는데 주변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일단 딸내미의 머리채를 움켜잡는 것이 과연 어머니라고 해야 할까?

    이지혁은 자신의 전투 본능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 순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유전자가 그의 정신에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청와대라고?"

    딱히 설명은 필요 없었다. 입을 열기도 전에 한쪽에서 슈트를 쫙 빼입고 인이어를 낀 경호원들이 우르르 달려왔기 때문이다.

    "이지혁 씨?"

    "네."

    "연락받았습니다. 가족분들은 저희가 벙커로 모시겠습니다. 이지혁 씨는 2회의실로 와달라는 대통령님의 전언입니다."

    "네, 알겠어요."

    이지혁이 박선덕을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 그럼 벙커에 좀 계세요."

    "…무슨 일 있는 거니?"

    "아니, 뭐……."

    이지혁이 볼을 긁었다.

    "별거 아니에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만에 하나 대비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버지도 와 계실 거예요."

    "그래, 알았다. 무리하지 말거라."

    "네."

    이지혁은 경호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어머니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런데 2회의실이 어디죠?"

    "어서 오게."

    "오랜만에 뵙는 거 같아요. 기분상 말이죠."

    "그렇구만."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이들의 얼굴을 보니 대한민국으로 핵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말이 절로 실감 났다.

    "오셨습니까?"

    최정훈에 국방부 장관, 그리고 참모총장까지… 모두가 이곳에 있었다.

    이지혁은 그들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바람 잘 날이 없네요, 진짜."

    "…익숙한 일 아니겠습니까."

    최정훈은 대답을 하면서도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입장에서 인생이 바람 잘 날 없어진 것은 이지혁이 등장한 이후부터인데, 이지혁이 저런 말을 하니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최정훈이 상황을 간단하게 브리핑하고 나자 이지혁이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소파에 앉았다.

    "여하튼 짱깨 새끼들."

    "…크리스토퍼도 비슷한 말을 하더군요. 칭챙총이 어쩌고."

    "뒈질라고. 썩을 인종차별주의자 새끼."

    니가 한 것도 같은 말이야, 인마.

    나는 인종차별을 해도 내가 인종차별을 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강렬한 의지를 내뿜는 이지혁이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때요?"

    "모니터 보시죠."

    최정훈이 모니터를 가리키자 중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붉은 점이 보였다.

    "평면도로 그려놓은 것이라 실제 위치나 속도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음……."

    "현재 이동하고 있는 탄도미사일이 가장 먼저 떨어질 것이라 예상되는 곳은 베이징 주변입니다. 두 번째로는 한국과 일본이고, 세 번째는 러시아 쪽입니다."

    "동아시아부터 확실하게 조지겠다는 건가요?"

    "음, 이게……."

    최정훈이 비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은 우연히 범위에 들었을 뿐이지 동해에 떨어질 확률이 제일 높습니다. 러시아는 땅이 워낙 넓어서 정말 운이 더럽게 없지 않은 이상은 불모지 쪽에 떨어질 겁니다. 예상 착탄 지역이 이쪽인데, 사실 러시아의 국토 80%는 버리고 보는 땅이라 딱히 피해가 클 것 같지 않습니다."

    "음, 그렇네요."

    "문제는 여기죠. 베이징."

    최정훈이 지휘봉으로 모니터를 톡톡, 때렸다.

    "베이징은 인구 밀집이 워낙 높은 도시인데다 주변에도 인구가 많습니다. 만약 베이징 한복판에 핵폭탄이 떨어진다면, 중국은 국토 마비까지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구요."

    이지혁이 단칼에 최정훈의 말을 잘랐다.

    "그래서 이쪽은요?"

    최정훈이 한숨을 쉬었다.

    모니터 요원에게 눈짓을 하자 지도가 확대되더니,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뒤덮는 커다란 붉은 원이 생겨났다.

    "착탄 예상 지점입니다."

    "뭐, 어쩌란 건지……."

    "일반적인 궤도를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궤도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그게 뭔 소리래요?"

    "쉽게 말하자면……."

    최정훈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황새가 핵미사일을 물고 날라다 주고 있는데, 그 황새가 어디에 내려앉을 것인가를 과학적으로 측정해야 하는 수준이라……."

    "이해했어요."

    이지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속도 자체가 그리 빠르지 않다면 대응도 가능할 것 아니에요? 대응은요?"

    "요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탄도미사일이 서해로 들어와야 요격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상공에서 터뜨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예요?"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미 국제 공조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중국 상공에서 요격을 시도했다가는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자국민 보호가 제일 중요한 것 아니에요?"

    국방부 장관이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자 송정수가 대신 말을 받았다.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도 있네."

    "네?"

    "지금부터 요격을 시도한다고 해도 중국의 극동부에서 폭발이 일어나게 되네. 그런데 중국의 극동부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집중되어 있네.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발전소가 터지기라도 한다면, 동해가 아니라 서해에서도 후쿠시마가 터지게 되겠지."

    "끄응……."

    이지혁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럼 서해로 들어올 때까지는 요격도 불가능하다는 거네요?"

    "그렇다네."

    "음……."

    이지혁이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지자 최정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우려하실 상황은 아닙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나으니까요."

    "어째서?"

    "그냥 탄도미사일 열여덟 발이 날아온다고 했을 때는 인류 멸망 시나리오인가 했습니다마는……."

    최정훈이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탄도미사일이 무서운 것은 요격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 속도가 어마어마하고 교란이 가능한 점도 있구요. 하지만 저런 속도로 날아온다면 육안으로 보고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라 요격이 딱히 힘들지 않습니다. 거리만 잘 조절하면 전투기에서 요격하고 살아 돌아올 수도 있을 겁니다."

    이지혁이 가만히 최정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요."

    "네."

    "그건 일반적인 경우 아니에요?"

    "예?"

    "애초에 날아갔던 핵탄두가 방향 돌려서 다른 곳으로 날아드는 것도 보통 상황이 아닌데, 그게 당연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마왕 놈이 무슨 야료를 부려놨을지 아무도 모르는 건데."

    "아……."

    이지혁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나직하게 말했다.

    "마왕 상대하는 게 그리 쉬운 거였으면 누가 고생하겠어요. 한 번 제대로 당하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를 하는게 나을 거예요."

    "……."

    "이런 말 해봐야 직접 느끼는 것만 못하겠죠. 그래서 베이징은 어떻게 됐어요?"

    "베이징은……."

    지도를 돌아본 최정훈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사일 거의 도달했습니다."

    "더는 무리입니다."

    쉬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핵탄두들이 영토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렸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베이징 쪽으로 날아오는 핵이 터질 위험이 있었다.

    "원격 폭발 시도해!"

    "예!"

    쉬창은 폭발을 시도하는 와중에서도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마음이었다.

    '열여덟 발의 폭발 여파를 우리가 모두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베이징으로 날아오는 탄두 한 발을 어떻게 처리해 버리고, 다른 탄두는 내버려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가슴속에서 속삭이는 악마를 내리누르며 쉬창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애국심이라는 것은 때로는 괴물이 된다.

    그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스스로도 악행이라는 자각이 있겠지만, 개인의 이득이 아니라 국가의 이득과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는 방패막이가 생기는 순간, 스스로의 행동을 악행이 아니라 대의를 위한 결단쯤이라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창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망설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결정권자가 아닌 탓이었다. 주석의 허가 없이는 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설사 그의 자의적 판단으로 주석의 판단 이상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해도 그에게 남는 것은 명령불복종의 대가로 돌아올 무자비한 숙청뿐이다.

    쉬청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원격 폭발 신호 보냅니다!"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쉬청은 주먹을 꽉 쥐었다.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과 실패했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안 터집니다! 방해전파가 있습니다."

    쉬청의 육체가 일순 살짝 늘어졌다.

    이마로 흐른 식은땀이 눈썹을 타고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

    "재시도합니다! 실패! 먹히지 않습니다."

    "됐다!"

    쉬청이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잘됐다. 베이징으로 날아오고 있는 탄두는 전투기로 요격한다. 나머지 탄두에 대해서는 원격 폭발 불가라고 각국에 전하고 그들에게 맡겨라."

    쉬청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십 년은 훌쩍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이제 저 탄두만 처리하면 된다. 나머지야 어떻게든 되겠지."

    쉬청이 초조한 눈으로 전투기의 배치가 표시된 비전을 바라보았다. 이제 턴은 저쪽으로 넘어갔다.

    * * *

    "뭐가 날아온다는 거야, 젠장."

    베이징 항공을 뒤덮은 SU-35와 SU-27 전투기들이 편대비행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상황 설명도 듣지 못하고 다짜고짜 하늘로 출격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전쟁이라도 났나?"

    가용 가능한 전투기들이 모조리 베이징 상공으로 소환되고 있었다. 심지어 북경 군구뿐 아니라 심양 군구와 제남 군구, 남경 군구에 배치되어 있는 전투기까지 모조리 베이징으로 끌려오고 있는 판이다.

    - 전쟁이 났으면 베이징으로 다 몰려오겠나?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지.

    "제길, 내 말이."

    전쟁이 난 상황도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가용 병력이 모조리 날아올 필요가 있느냐, 이 말이다. 훈련이라고 하면 납득은 가지만, 전투기 한 번 뜰 때 드는 비용을 감안한다면 이런 훈련을 할 리가 없었다.

    - 다들 닥치고 편대 유지해.

    "라져."

    - 이 구역에 얼마나 많은 전투기가 들어와 있는지 알고 있겠지? 어설프게 항로 잘못 잡았다가 사고라도 나면 너희 목만 날아가는 게 아냐.

    리우징은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전투기끼리 부딪치면 목이 달아날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그전에 죽어 있을 텐데, 상부의 문책이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 기다려.

    '제길.'

    그놈의 기다리라는 말만 벌써 얼마나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나라는 사람을 부속품이라 생각하는 건지,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비상 상황이 확실한데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네네."

    대충 대답을 해놓는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북경 군구의 조종사로서 복무한 지가 6년이 넘었지만, 이런 경우는 결단코 처음이다.

    '뭔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졌어.'

    비행 훈련을 할 때는 보통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아무리 중국이 전 세계에서 무시무시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해도 전투기라는 물건은 한 대만 문제가 생겨도 심장이 쫄아들 만큼의 돈이 날아가는 물건이다. 그런 물건을 일반 보병 운영하듯이 막 굴릴 리가 없다.

    정비창에 들어가 있는 전투기까지 모조리 끄집어내서 출동시킨 것을 보면 최소한 준전시 상황에 준하는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쓰촨성에 머무르고 있는 마왕군이 일순간 거리를 좁혀서 베이징에 출현하지 않은 이상은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 가뜩이나 마왕군을 상대한다는 명목으로 출동한 전투기들이 모조리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나 공군 전력이 2/3 이하로 떨어진 중국군 아니던가.

    취이이익.

    그런 리우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귓가에서 탁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잘 들어라. 브리핑한다.

    "라져."

    - 현재 남서부 방향에서 베이징 방면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근접하고 있다.

    순간, 리우징이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탄도미사일이라니, 그런 게 왜 베이징으로 날아온단 말인가. 전쟁이라도 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인도인가?'

    남서쪽에서 중국으로 탄도미사일을 날릴 만한 나라는 인도밖에 없다.

    '마왕 관련은 아닌 모양이군.'

    그런데 잠시만?

    리우징이 순간 혼란에 빠졌다.

    '남서쪽이라고?'

    탄도미사일이라는 것은 하늘 위에서 고각으로 꽂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남서쪽에서 탄도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은 대체 무슨 말이지?

    리우징이 혼란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브리핑은 계속 이어졌다.

    - 탄도미사일에는 핵무기가 장착된 것으로 보인다.

    "썩을."

    "으, 제기랄."

    편대에서 욕설들이 마구 터져 나왔다.

    - 현재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향해 원격 폭발과 격추를 시도했지만, 모조리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직접 미사일을 격추하는 수밖에 없다.

    '농담이 아니야, 이 미친놈들아.'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육안으로 보고 격추하는 게 가능했다면 핵이 무서울 게 뭐가 있는가. 차라리 손으로 날린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허공에서 실을 꿰는 게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 그나마 작전상 유리한 부분은… 현재 탄도미사일이 음속 이하로 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리우징은 머리를 휘휘 저었다.

    이해가 가는 말이 단 하나도 없었다.

    - 조국의 운명이 여러분에게 달렸다. 베이징에 핵이 떨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여러분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서 국가의 운명이 바뀐다.

    '그런 말은 이럴 때 하지 않는 게 좋은 거야.'

    자부심을 느끼게 해줄 때는 좋은 말이겠지만, 당장 지옥 같은 상황을 겪어야 하는 그들에게는 부담을 가중시키는 언사에 지나지 않았다.

    - 무운을 빈다.

    중앙에서 떨어지는 브리핑이 끝나자 편대장이 입을 열었다.

    - 다들 들었겠지?

    편대장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무전으로 전해지는 말이라 잡음이 심해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들은 게 맞다면 편대장도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고 출동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까지 작전을 숨겼다니.'

    하기야.

    미리 듣는다고 달라질 게 있을 리 없었다. 단 한 번도 연습해 보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데 미리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 질문.

    "탄도미사일이 음속 이하로 비행하고 있다는 말이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 정확한 상황은 나도 알지 못한다. 다만, 현재 탄도미사일은 정상적인 발사 상태가 아니라 외부의 힘으로 강제 이동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능력자인가?

    그게 아니면 마왕의 짓일 것이다.

    리우징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정말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탄도미사일이 공중에서 폭발할 때, 탑재되어 있는 핵이 폭발할 위험이 크지 않습니까?"

    - 대부분은 그렇게 된다고 봐야겠지.

    "그럼 근거리에서 미사일을 요격한 전투기는?"

    - 제군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다.

    "하……."

    리우징이 헛웃음을 흘렸다.

    같이 죽으라는 거군.

    아무리 전투가기 빠르게 이탈한다고 해도 등 뒤에서 터지는 핵의 폭발 반경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쪽발이 놈들이나 하던 짓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 그러한 이유로 탄도미사일에는 일 개 편대씩만 접근한다. 접근해서 요격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이탈한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예."

    리우징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애국심이란 것은 리우징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상황이 내가 살겠다고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거라 생각해 온 리우징조차도 국가와 국민이라는 이름이 따라붙자 거대한 중압감에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금 이곳에서 이탈한 대가가 베이징의 파멸이라면, 리우징은 과연 남은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개 같은 상황이군."

    욕이 자꾸 나온다.

    리우징이 눈을 질끈 감았다. 성공해도 문제고, 실패해도 문제다. 그가 지금 바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그가 실패해서 핵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을 때 누군가가 성공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최상의 결과가 쉽게 나올 리가 없다.

    그는 언제나 운이 없는 편이었으니까.

    - 북경 군구 12편대, 선봉으로.

    '12편대라…….'

    헛웃음이 나온다.

    그가 속한 곳이 바로 12편대였으니, 헛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 이동한다.

    편대장의 지시에 리우징이 이를 꽉 깨물었다.

    리우징은 그제야 왜 그 많은 이들이 국가와 국민의 이름 앞에서 희생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막중한 생명이 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최악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최악일까?

    아니면 그는 살아남고 수천에 달하는 인구가 죽는 것이 최악일까?

    평범한 상황이라면 리우징은 당연히 전자가 최악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는 개인주의적인 사람이고, 내가 죽고 나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상황에서도 내가 살아남기만 하면 다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역시 스스로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나만 살면 된다는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천만의 목숨이라는 것은 그만큼이나 상상조차 가지 않는, 거대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이천만이라는 인구가 모여 있는 곳이 베이징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단순히 이천만의 목숨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베이징의 파멸은 중국의 마비를 의미한다.

    십억이 넘는 인구 중에 이천만이 사라진다고 중국이 멸망하냐고?

    평소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부침을 겪기는 하겠지만, 중국은 결국 다시 일어설 것이다.

    평소라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쓰촨에서 마왕군이 베이징으로 밀려올라오고 있다. 베이징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들은 중국의 모든 곳을 파괴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흐흐흐."

    리우징은 조종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주 엿같이 걸렸다, 아주 엿같이.

    - 성공하면 전 인민의 영웅이 되는 것이다. 너희들에게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을 기쁘게 여겨라.

    빌어먹을.

    죽고 나서 영웅이 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리우징이 이를 꽉 깨물었다. 가슴속으로는 반발이 치고 올라왔지만, 그 반발심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은 리우징이 겁쟁이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런 흐름에서는 누구도 반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빌어먹을."

    리우징이 이를 꽉 깨물었다.

    편대가 최전방으로 나서자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좁아지고 전신에 땀이 배어 나온다.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겨우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때.

    시야에도 잡히지 않는 것을 포착한 것은 레이더였다.

    레이더 끝에서 뭔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이 표기되기 시작한다. 그 물체의 정체는 보지 않아도 빤했다.

    "후우우욱."

    리우징이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 편대 이동.

    가장 앞에 자리한 편대장의 전투기가 가속하기 시작한다. 이왕 터뜨릴 것이라면 베이징에서 가장 먼 곳에서 폭발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피해가 가장 적을 테니까.

    편대장의 전투기에 따라붙으면서 리우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미간을 좁혔다.

    "발사 준비!"

    "준비!"

    현대의 전투기는 조종사의 실력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전투기에서 목표물을 수동으로 포착하여 요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포착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컴퓨터의 몫이다.

    하지만 리우징은 곧 알게 되었다.

    이것이 평범한 요격 작전이 아님을 말이다.

    "저, 저게 뭐야?"

    비전에서 목표물을 쫓는 것과 별개로 리우징의 시야에도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점 같아 보이던 것이 점점 커지더니, 그 괴이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미친."

    길쭉한 탄도미사일 위로 좌우로 그 거대한 날개를 펼친 거대한 검은 새가 입을 벌리며 괴성을 토해냈다.

    카아아아아아아아!

    리우징의 전신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 * *

    "새?"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이었다.

    탄도미사일이 날아온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게 무슨 만화도 아니고… 웬 새가 탄도미사일을 날라온다는 말인가. 누가 이런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리우징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괴이한 광경이기는 하다.

    탄도미사일에 박아 넣은 발에서 꿈틀거리는 기다란 촉수가 나와 탄도미사일을 친친 감고 있었다.

    저게 눈으로 보인다는 것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는 소리다.

    "발사!"

    훈련이라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이 근거리에서 요격을 하고, 그 요격의 결과로 핵이 폭발하게 되면 본인이 죽는다는 자각이 있었다.

    망설임?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귀로 발사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이성에 앞서 정교하게 짜여진 트리거가 발동되듯 손가락이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촤아아아.

    뭔가 분리되는 소리와 함께 탑재된 대공미사일이 괴조를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이, 이탈!'

    기겁을 한 리우징은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좌측으로 기체를 틀며 최속으로 현장을 이탈했다.

    명령이 끝난 결과, 남은 것은 혼란이었다. 미사일을 발사한 순간, 일시적으로나마 긴장에서 벗어난 이들은 리우징이 이탈을 시도하자마자 바로 기체를 틀며 그 뒤를 따랐다.

    사실은 부질없는 짓이다.

    요격에 성공한다면 아무리 빠르게 이탈한다고 해도 그들은 죽을 것이고, 요격에 실패한다면 굳이 이탈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본능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폭발음이 귀로 선명하게 들어온다.

    음속을 초월한 속도로 날고 있음에도 이만한 폭발음이 들린다는 것은 목표물과 그들의 거리가 상상 이상으로 가깝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실패.'

    리우징은 순간적으로 허탈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저 폭발음이 귀에 들린다는 것은 작전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만약 요격에 성공했다면, 저 폭발을 느끼기도 전에 그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닐 테니까.

    - 이 새끼들아, 편대 지켜!

    편대장의 목소리에 이성이 돌아온다.

    '이 와중에 편대는 무슨. 미친 새끼.'

    아직 작전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들뿐 아니라 다른 편대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탈하기 전에 뒤에 위치한 편대가 작전에 성공하면 핵이 터지고 그들은 죽는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닐진대, 그러면서까지 불필요하게 편대를 통제하려는 것을 보면, 제식에 쩔어버린 군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 될 수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서글프게도 리우징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즉시 편대장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뒤쪽으로 선회하여 2차 공격을 준비한다.

    "정신 차리라고, 빌어먹을."

    아무리 탄도미사일의 속도가 정상이 아니라지만, 언제 터질지 모른다. 지금 베이징 상공에 동원된 전투기만 해도 200대가 넘는데, 12대씩 한 조로 구성되어 있는 편대가 모두 공격을 하기까지 산술적으로도 15회 이상의 공격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걸 기다렸다가 다시 공격을 하겠다고?

    그전에 베이징이 날아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줄줄이 몰려가서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폭발 반경을 고려하여 대기하다가 공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굳이 돌아가겠다니.

    리우징은 순간 편대장의 머리를 해부해 보고 싶었다. 대체 뇌가 무슨 구조로 되어 있으면 저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제길."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최선두에 선 편대장의 전투기를 따라 원대로 복귀하고 있는 자신이 더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콰아아아아앙!

    다시금 폭음이 터져 나온다.

    '왜 자꾸 폭음이 들리는 거지?'

    순간, 리우징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격에 실패한 것도 아니고, 미사일이 목표물을 격중시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미사일이 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 괴조가 막아내고 있는 것인가?'

    리우징의 의문을 풀어줄 이가 지금 등장하고 있었다.

    * * *

    "격추시켰나?"

    쉬청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부관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목표물에 계속 명중을 시키고는 있지만, 목표물을 저지할 수가 없습니다. 먹히지 않습니다."

    "때려 박아."

    "네?"

    쉬청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전투기로만 작전 수행할 일이 아니라, 지대공미사일이든 뭐든 날려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지하란 말이야! 어떻게든 막아내! 전투기들을 돌진시켜서라도 반드시 막아내라고!"

    "지, 진정하십시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쉬청이 반쯤은 이성을 잃은 얼굴로 소리를 쳤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과 공포가 혼재되어 있었다.

    "막아내지 못하면 다 죽는 거야! 너도! 그리고 나도! 그리고 베이징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죽는다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나 알아!"

    부관 역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베이징이 터진다.

    그 의미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죽는 것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크리스토퍼의 말을 들었어야 했어.'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대에게 무작정 공격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타국들이 핵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단순히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후회라는 건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 법이다.

    "어,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서 격추하라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말을 하고는 있지만, 쉬청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용한 방법?

    원격 폭발이 먹히지 않고, 전투기를 통한 요격도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ABM은! ABM은 소용이 없나?"

    "유도가 불가능합니다. 이미 전투기와 교전이 들어가기 전에 ABM을 써보았지만……."

    "가용한 미사일은 모두 때려박으란 말이야! 지금 통하지 않는다고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잖아, 이 새끼야! ABM으로 대공망이라도 만들라고!"

    "예!"

    그 순간, 등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표물! 목표물 변화합니다!"

    "뭐?"

    비전으로 고개를 돌린 쉬청의 눈에 탄도미사일에 발톱을 박아 넣은 검은 괴조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봐오던 광경이다. 그런데 그 괴조가 꿈틀대며 몸집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인간과 같은 형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인간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조금 전 괴조의 형태에 비하면 훨씬 더 인간 같은 모습. 반인반조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저건……."

    검다.

    괴조의 형태가 그대로 줄어들어서인지 모습을 드러낸 반인반조는 검은 육신의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형상은 많이 보던 것이었다.

    위성사진으로 몇 번이고 확인한 쓰촨성에 나타난 마왕과 완벽하게 동일한 형태였다.

    미사일 위에 꼿꼿이 몸을 세운 괴조, 아니, 이제는 마왕이라 불러야 할 그 존재가 고개를 돌려 쉬청과 눈을 마주쳤다.

    '보고 있는 건가?'

    쉬청이 그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을 찍고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챈 듯싶었다.

    지금 저 마왕, 혹은 마왕의 카피라고 불러야 할 존재가 보고 있는 것은 그를 촬영하고 있는 위성카메라일 테니까.

    뭘 하려는 거지?

    화면상으로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쉬청은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더 뭘 하려는 거지?'

    그게 어떤 일이든 그들에게 있어서 좋은 결과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쉬청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 * *

    "흐음……."

    아락시스는 자신의 앞으로 줄지어 편대비행을 하고 있는 전투기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간들이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군."

    전투기를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도화된 마법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베라프도 마나를 이용하여 물건을 띄우는 것은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저 무거운 쇳덩어리를 하늘로 띄워 올린 것이다.

    더구나 단순히 띄워 올린 것에 지나지 않고, 그 쇳덩어리가 음속을 넘어 비행하고 불을 뿜어 댄다.

    "인간이라……."

    마법을 배운 인간은 마왕에게 감히 미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 세계의 인간보다 강하다는 건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다. 제대로 된 대마법사 하나만 이 세계에 떨어진다 해도 이곳의 어떤 인간보다도 강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인간들은 자신의 강함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종족의 강함을 키우는 쪽으로 발전했다. 지금 그의 발밑에 있는 핵만 하더라도 웬만한 마왕은 흉내도 내지 못할 파괴력을 내지 않는가.

    "재미있군. 확실히 인간은 흥미로운 존재야."

    처한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나 다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가지는 강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이 흥미로운 생명체들의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베라프와 다른 이 지구에 인간이 또 존재하듯이, 차원을 뒤지다 보면 어딘가에는 이들과 또 다른 삶을 사는 인간들이 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락시스가 살짝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괴조와 동조화를 한 상황이라 그가 가진 힘을 모두 발휘하기는 힘들겠지만, 저런 잡쓰레기들을 처리하는 데는 십분의 일 수준의 힘이면 충분했다. 아니, 그도 과했다.

    아락시스의 손이 둥글게 뭉친다 싶더니, 그 안에서 작은 새의 형상을 한 검은 그림자들이 무수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자, 보여줘야지."

    마나 하나 없는 저 쇳덩어리들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말이다. 이 세계의 인간이 믿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아락시스의 손에서 일제히 날아오른 괴조들이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둘로 나뉜 작은 괴조들의 일부는 전투기들을 향해 날아들었고, 일부는 아래쪽으로 퍼져 나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리우징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들 쪽을 향해 날아오는 작은 새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면 앙증맞게 보일 정도로 작은 형태의 새이지만, 그게 어디서 나왔는가를 생각한다면 결코 앙증맞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도 말이다.

    콰아아아아앙!

    작은 새와 충돌한 전투기가 그 자리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리우징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버드 스트라이크 따위가 아니다. 아무리 저 검은 새가 상상 이상의 밀도와 충격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 번의 충돌로 전투기가 잔해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터지지는 않을 것이다.

    "포, 폭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저 작은 새 하나하나가 전투기를 소멸시켜 버릴 정도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폭탄이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 폭탄은 새처럼 자유자재로 비행하며 전투기 하나하나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아, 안 돼!'

    자신이 몰고 있는 전투기로도 작은 새가 검은 악마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리우징이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전면에 달라붙은 새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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