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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하지마-9화 (9/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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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한이 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하루 정도는 충분히 시간을 비울 수가 있을 터였다.

    "자식이 내가 러시아로 간다고 하면 지랄을 할 텐데 어찌 해야 하나?"

    성호는 진한이 발광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러시아로 가서 돈을 번다고 하면 아마도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성호는 진한을 달래줄 방법을 열심히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진한을 달래줄 방법이 없다는 점을 금방 깨달았다.

    "어떻게 달래지? 에효, 내 팔자가 어떻게 친구놈들을 달래줄 생각을 하고 있냐."

    진한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자신이 러시아로 간다고 하면 분명히 왜 가냐고 물을 것이고 일을 하러 간다고 하면 아마도 다들 미친놈이라고 하며 말리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성호는 그런 친구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을 유일하게 생각해 주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성호는 진한의 사무실이 보이는 카페에 도착해 진한을 기다렸고, 이내 그가 달려와 서로 마주 앉았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나오라는 거야?"

    "앉아.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오라고 한 거야."

    성호의 진중한 모습에 진한은 바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너 혹시 무슨 사고 쳤어?"

    "내가 사고나 치고 다니는 놈으로 보이냐?"

    "그거야 아니지만 그래도 수상하잖아. 갑자기 전화를 해서 할 말이 있다는 게 말이야."

    진한은 확실히 눈치가 백 단이었다.

    자신이 할 말이 있다고 언급했을 뿐인데, 금방 무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으니 말이다.

    성호는 오늘 갔던 한성그룹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주일 후에 러시아를 간다는 말도 함께 진한에게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묵묵히 성호의 말을 듣고 있던 진한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말도 않고 성호를 보고만 있었다.

    그런 진한을 보고 있는 성호는 마음 한구석에 불길한 느낌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런 성호의 느낌을 확인을 해주려고 하는지 진한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고 있었다.

    "야! 이 미친놈아, 갈 데가 없어 러시아까지 가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어?!"

    성호의 말을 들은 진한은 성질이 나서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일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도 마다하더니 결국 간다는 곳이 러시아란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러시아로 간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호의 말대로 한 달에 오백이라는 금액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잘 찾아보면 조금 적을 수는 있어도 충분히 벌 수 있는 곳은 많았다.

    게다가 진한의 생각에는 한성그룹이 갑자기 해외로 인원을 고용하는 점도 조금은 수상하게 느껴졌다.

    러시아의 공사를 한성그룹에서 땄다는 말은 그만한 리베이트를 주었다는 말인데 그러고도 오백이나 되는 금액을 주고 사람을 고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일이 힘들거나 아니면 위험하다는 이야기일 게 뻔하지 않은가.

    진한은 성호가 그런 점도 생각지 않고 돈만 보고 결정하였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났다.

    "좀 조용히 말해라, 사람들도 많은데."

    성호는 진한이 크게 고함을 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자 신경이 쓰이는지 진한을 달래려 애썼다.

    진한도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화가 나도 소리를 죽이고 이야기를 하였다.

    "한성그룹이 우리나라의 굴지의 기업이기는 하지만 고작 인부에 불과한 인원에게 그렇게 많은 금액을 주고 고용한다는 게 수상하지도 않아?"

    "수상하기는 뭐가 수상하다는 거야?"

    "이… 병신 같은 놈아. 대기업에서 그렇게 거액을 주면서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는 위험하거나 아무나 쉽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드는 경우가 아니면 고용을 하지 않을 게 뻔하잖아. 너는 그런 것도 생각 안 하고 사냐?"

    성호는 무언가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오백이라는 월급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진한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결정한 것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내린 결정이니 그만하자.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친구들과 가기 전에 술이나 한잔했으면 해서 온 거야."

    진한은 성호의 말대로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일 테니 자신이 더 이상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답답한 것은 성호가 자신이 우려한 점들을 생각지도 않고 결정을 한 점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진한도 포기했는지 성호를 째려본 뒤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 그래, 이미 결정이 난 일을 가지고 떠들어 봐야 입만 아프지. 알았어. 더 이상 그 문제를 가지고 말하지 않으마. 그리고 친구들 문제는 내가 연락을 해보고 이야기를 해줄게. 오늘은 나하고 우리 집에나 가자. 우리 어머니가 너를 데리고 오라신다."

    성호는 진한의 어머니가 오란다는 말에 그러고 보니 제대를 하고 잠시 들른 뒤로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해주던 진한의 어머니를 생각하니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대로 러시아로 떠나게 되면 더욱 그럴 것 같아 이참에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럴게. 나도 어머니를 뵙고 싶었는데 잘됐다."

    진한은 어머니에게 가자고 하면 성호가 거절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바로 수락을 하자 신기하게 여겼다.

    "그래, 고맙다. 오랜만에 그렇게 빠르게 대답을 해주는구나."

    "그런가? 어머니에게는 죄송해서 그렇지, 다른 마음은 없었다.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그래."

    "알고 있으니 다행이네. 내친김에 지금 갈까?"

    "그러지, 뭐. 나도 시간이 있으니 가자."

    성호와 진한은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한편 진한의 어머니는 진한이 성호와 함께 온다는 언질을 받고 식사를 준비에 한창이었다.

    오랜만에 오는 성호를 생각해 성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냉장고 문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니 또 허리 통증이 왔다.

    "이상하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여전히 통증이 있단 말이야? 다음에는 침이라도 맞아야 되나?"

    그렇게 크게 아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통이 있어서 얼마 전에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이상이 없다는 소리만 듣고 왔기에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진한의 어머니는 그렇게 다시 음식을 준비해 나갔다.

    이미 숙달된 음식이라 그런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고 준비 또한 금방 마칠 수 있었다.

    오늘은 진한의 아버지도 일찍 온다고 하니 오랜만에 모두가 모여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진한의 어머니는 기분이 좋았다.

    단지 약하기는 해도 허리 통증이 계속 밀려와 조금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예정된 시간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진한의 아버지였다.

    "여보, 다녀왔소."

    "수고하셨어요. 어서 씻으세요. 애들도 금방 도착한다고 하네요."

    "알겠소."

    진한의 부모는 예전에도 그렇듯 항상 서로가 존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성호는 자신의 부모님과는 다르게 두 분이 존칭을 사용하고 있어 처음에는 신기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그렇게 지내시는 모습이 보기 좋게 느껴져서 자신도 결혼을 하면 저렇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하였다. 그만큼 금실이 좋은 부부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진한의 어머니가 음식 준비를 마치고 아버지를 맞이했을 무렵, 진한과 성호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다녀왔어요."

    진한과 성호는 식사를 준비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인사를 하였다.

    "잘 왔다. 아버지도 방금 막 도착하셨는데 시간 맞춰 잘 왔으니, 우선 씻고 식사하도록 하자. 오늘은 내 특별히 소주도 허락해 줄 테니."

    진한의 어머니는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셨다.

    그래서 집에서 술을 먹을 수 있는 날은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그때가 명절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술을 허락해 주시는 것을 보니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건가 싶은 성호였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와, 우리 어머니께서 오늘은 어쩐 일로 다 술을 마실 수 있게 해준대요?"

    진한은 어머니의 말에 더 놀란 모양인지 신기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술을 허락하는 것은 즉흥적으로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호호호, 오늘은 성호가 와서 허락을 하는 거니까 오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쳇! 나는 맨날 뒷전이야."

    진한은 어머니를 보며 삐친 듯이 말했다.

    "호호호, 이제는 그런 짓에 안 속는다. 아들!"

    어머니는 이미 여러 차례 당해본 경험이 있으신지 진한의 말에 바로 반격을 하셨다.

    어머니의 대꾸에 진한은 절망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갔다.

    성호는 진한을 따라 함께 갈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진한의 방은 이 층에 욕실과 같이 사용하게 되어 있어 불편하지 않았다.

    성호와 진한은 빠르게 씻고 내려가 식사를 하려고 하였다.

    "오늘은 어머니가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

    "몰라, 내려가 보면 알겠지. 아버지도 오셨다고 하니 어서 가자."

    진한과 성호는 빠르게 내려갔다.

    밑에는 진한의 아버지가 계셨지만 전과는 다르게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성호는 말로만 몸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자신이 직접 뵈니 지금 상당히 몸이 안 좋아 보였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성호는 오랜만이네. 자주 좀 찾아오고 그래라."

    진한의 아버지는 성호를 보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그런 아버지를 뵙고 있으니 성호는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성호는 진한의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 자신이 방황할 때 가장 힘이 되어주신 분이 바로 진한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군에 가서는 그 사실들을 깨닫게 되어 나중에라도 반드시 은혜를 갚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였다.

    성호는 아버지의 몸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나자 문득 치료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끼고 있는 반지에는 엄청난 치료를 해주는 신비의 힘이 있었다.

    물론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반지의 힘으로 치료를 한다고 하면 아마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지압이나 침술을 이용하게 되면 남들이 이상하게 여길 리 없다고 생각해서 선택하였던 것인데 법적인 문제가 있어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한의 아버지를 뵈니 눈으로 보기에도 심각해 보이셨다.

    "아버님, 제가 진맥을 조금 해봐도 되겠습니까?"

    성호의 말에 진한과 아버지는 놀란 얼굴을 하며 성호를 보았다.

    "진맥을 하는 거야 괜찮다만 할 줄은 아느냐?"

    "예,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군에서 거의 잊고 살았지만, 군에서 인연으로 전역 이후 제대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아버님을 뵈니 그냥 갈 수가 없어서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저를 믿고 맡겨보십시오."

    성호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그 눈을 보신 아버지는 허락을 해주셨다.

    "허허허, 어서 진맥을 해보아라. 너를 믿으마."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성호는 바로 팔을 들어 진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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